중국인 ‘분유 싹쓸이’에 영국 부모 분통
중국인 ‘분유 싹쓸이’에 영국 부모 분통
4월 11일 영국의 세인즈버리(Sainsbury’s) 슈퍼마켓. 이곳에서 분유를 구매하던 런던 시민 린 패터슨은 “아스다와 테스코 매장에 갔으나 분유가 모두 동이나 여기까지 왔다”며 “요즘 분유 구하기가 하도 힘들어 전화로 재고가 있는지 수소문해서 찾아가야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요즘 중국인의 분유 사재기 열풍으로 영국에서는 분유 품귀현상이 빚어진다. 영국 대도시 거의 모든 매장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급기야 분유판매 제한조치까지 나왔다. 영국 소매유통산업의 80%를 회원으로 두고 있는 영국소매산업협회(BRC)는 최근 1인당 구매할 수 있는 분유량을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BRC 대변인 리처드 도드는 “최근 수 주간 영국 전역에서 분유 재고가 급격히 소진돼 위험 상황에 직면했다”면서 “회원사 보고에 의하면 비정상적인 대량 구매 소비자들이 최근 급격히 늘어나고 있으며, 이는 대부분 중국에 재판매하기 위한 목적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자국 분유 못 믿는 중국인2008년 세계를 경악시킨 멜라민 분유 사태 이후 중국인들 사이에서 외국 분유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당시 산업용 화학물질 멜라민이 함유된 분유로 중국에서는 6명의 아기가 죽었고 30만 명 이상의 유아가 병에 걸렸다. 이 사건 이후 중국 부모들은 자국산 분유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으며 비싸더라도 외제분유를 사먹이는 게 일반적인 모습이 되었다.
사건 직후 공황에 빠진 부모들은 홍콩과 호주, 뉴질랜드를 중심으로 대거 분유 구매에 나서면서 한때 매진사태까지 발생했다. 홍콩과 호주가 영국권 국가이기 때문에 중국인들은 자연스레 품질 좋은 분유하면 영국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는 영국 본토에서 직접 분유를 공수하는 사례가 급증하는 단초가 되었다.
시세 차익을 노린 보따리상도 갈수록 극성을 부린다. 영국에서 분유 1박스는 평균 10파운드(약 19만 원) 정도에 팔리는데, 중국에서는 2~3배의 고가에 팔린다. 이 때문에 영국 거주 중국인들은 본국으로의 분유 재판매를 통해 짭짤한 수입을 올리는 보따리상 활동에 앞 다투어 뛰어들고 있다. 중국 관광객들 역시 영국을 방문하면 분유 몇 통씩 사가는 것이 필수 코스처럼 되고 있다. 유학생이나 현지 교민들도 본국의 명절이나 계절이 바뀔 때마다 택배 등을 통해 영국 분유를 중국으로 나르고 있다.
이러한 중국인의 싹쓸이 분유쇼핑으로 영국 아기들이 굶주리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네슬레 영국지사 대외협력부 담당자는 “분유 품귀현상으로 영국 아기들이 배고픔에 떨 상황이 초래될 수 있으며, 이에 대해 아직까지 아무런 대책이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영국 유통업계의 1인당 분유 구매 제한 정책은 과거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서 시행했던 전시체제 물자 배급제한 정책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영국에서는 일부 품목의 품귀 현상이 일어나도 공급이나 구매 자체를 조절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 조치는 매우 이례적이고 심각한 상황으로 받아들여진다.
중국 내에서도 분유 문제는 여전히 강렬한 화두이다. 멜라민 분유 사태 이후 식약국이 분유 안전검사를 강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소비자들의 불신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인 타오바오가 발표한 3월 1일부터 일주일 간 검색어 통계에 따르면, 수입 분유의 검색 지수는 전주 대비 11%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배나 증가한 것이다.
뉴질랜드 분유 판매량 7.7배 증가문제는 분유의 품질과 안전성을 둘러싼 정부당국과 소비자 간의 시각차가 여전히 크다는 점이다. 지난 3월 개최된 양회(전국인민 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현장. 개막 전날인 3월 2일 첫 언론브리핑에서 뤼신화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대변인은 “중국 분유의 99%가 품질기준에서 합격점을 받았으며, 단지 문제는 중국산 분유 품질에 대한 소비자 신뢰가 회복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발표했다. 또한 2012년 선양시 당국은 총 12차로 나누어 중국 내 975개 유제품 및 분유제품의 검사를 진행했고 모든 업체가 100% 합격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러한 100% 합격이라는 말이 오히려 검사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을 증폭시켰다.
중국 아동보건 전문가들 역시 멜라민 사건 이후 중국품질관리 당국의 검사가 강화되고 중국산 분유의 품질이 개선돼 수입산 분유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며, 문제는 중국과 해외의 검사당국 검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 차이라고 지적한다.
올 2월 중국 국가품질관리당국이 실시한 검역 결과, 다수의 뉴질랜드산 분유가 불합격 명단에 공시돼 판매중지 및 폐기처분 조치가 내려졌다. 뉴질랜드 정부는 이에 발끈했고 불합격 명단에 포함된 뉴질랜드 분유회사 역시 불합격 사유를 강하게 반박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후 새로 실시된 검역 결과 중국이 제시했던 위험 물질이 아주 극소량으로 포함돼 국제기준치를 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에 대해 한 언론매체에서 소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중국 품질관리당국을 신임하는지에 대한 설문에 80% 이상의 소비자가 믿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 정도로 불신 풍조가 팽배해 있는 것이다.
외국산 분유는 최근 가격상승에도 중국 국내시장에서 여전히 폭발적인 인기를 끈다. 뉴질랜드 폰테라 그룹에 따르면, 얼마 전 뉴질랜드 북부에서 발생한 이상 고온과 가뭄으로 우유 생산에 차질이 생겨서 분유 값이 36% 상승했다. 하지만 인터넷 쇼핑몰 당당왕의 금년 1~2월 판매 통계를 보면 뉴질랜드산 분유 가격 상승에도 오히려 판매량은 7.7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산 유제품업계 또한 소비자 신뢰도 회복을 위해 고심하고 있다. 국가차원에서도 네이멍구 자치구에 올해 안에 국가 유제품 검사측정연구개발센터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네이멍구 자치구의 수도인 후허하오터시는 중국 2대 유제품 생산업체인 이리(伊利)와 멍뉴(蒙牛)의 본사가 있어 ‘우유의 메카’로 불리는 곳이다. 정부 주도로 운영되는 이 센터는 앞으로 유제품 생산과 가공, 시장 유통 등 전 과정의 관리감독을 담당하는 전담 기구로 운영될 예정이다.
분유 제조업체의 해외 분유공장 설립도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 3위 분유 제조업체인 완리국제투자유한공사는 뉴질랜드에 분유공장을 설립하기 위해 최근 부지를 매입했다. 한국 유제품 업계의 중국시장 진출은 아직 초보단계다. 중국시장에서 한국산 분유 브랜드의 인지도는 높지않고 시장점유율도 3%에 불과하다. 우리 분유업계가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시장 확대를 위해서는 타오바오 등 온라인 쇼핑몰을 활용한 제품 판매와 소비자 인지도 구축이 필요하다.
제팡일보에 따르면, 온라인 분유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홍콩과 영국의 분유구매 제한정책이 나온 이후 판매량이 70% 급증했다. 홍콩과 영국 등지에서 분유를 양껏 구매하기 어려워진 소비자들이 본토에서 수입산 분유 구매를 늘린 탓이다. 온라인 매장에서 팔리는 제품 가격도 훨씬 저렴하다. 수입제품 전문점 등 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하는 분유보다 인터넷을 통해 판매하는 분유가 20~50% 더 싸다.
중국의 한 경제매체에 따르면 2012년 유아용품 전자상거래 규모는 610억 위안에 이르러 전년 대비 86% 성장했으며, 올해 온라인 분유시장의 판매신장률이 50% 이상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우리 유제품 업계가 오프라인 시장만 고집하지 말고, 온라인 시장에 하루빨리 눈을 돌려야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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