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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DIPLOMACY - 현명한 외교란 무엇인가

Features DIPLOMACY - 현명한 외교란 무엇인가

미국의 이집트 정책을 두고 ‘모 아니면 도’식의 이념 논쟁은 소모적일 뿐 이익과 이상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하고 ‘정비사가 아닌 정원사’로서 융통성 있게 대처해야



1년 전 이집트인들은 이슬람주의 단체 무슬림형제단의 무함마드 무르시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러나 7월 초 대규모 반정부 시위 끝에 이집트 군부가 그를 몰아낸 뒤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는 그의 지지자들에게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 사태와 관련해 워싱턴의 양대 이념 진영은 오바마 행정부에 포괄적이면서도 상호 배치하는 이집트 정책의 원칙을 제시하고 나섰다. 어느 쪽이든 곧이곧대로 그 원칙을 적용하면 파국에 이를 가능성이 크다.

이 시점에서 ‘냉전의 설계자’로 불린 저명한 미국 외교관 출신 역사학자 조지 케넌의 명언을 돌이켜볼 만하다. 케넌은 1954년 미국 외교정책 책임자들에게 “정비사가 아니라 정원사가 돼라(Be gardeners and not mechanics)”고 충고했다. 정원사처럼 한 나라의 땅에서 소일하며 그 흙을 뚫고 무엇이 솟아오르는지 더듬어 봐야 현명한 외교정책이 나온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세계는 너무도 혼돈상태이기 때문에 추상적인 원칙이나 엄격한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

워싱턴 정가에 울려 퍼진 첫 원칙은 미국이 쿠데타를 용인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집트 군부의 최고지도자 압델 파타 알-시시 대장이 무르시의 축출을 발표하자 워싱턴포스트지는 사설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7월 3일 수요일 이집트에서 일어난 일은 명백히 민선 정부를 무너뜨린 군사 쿠데타다.”그러나 명백하기보다 상당히 모호한 면이 있다.

그 쿠데타는 이집트 사상 최대 규모의 민중봉기에 의해 촉발됐다. 또 알-시시 대장은 무슬림과 기독교 지도자, 주요 정교분리주의자와 이슬람주의자들에게 둘러싸여 무르시의 대통령직 박탈을 발표했다. 무르시나 무슬림형제단과 달리 정치적 포용성을 보여주려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워싱턴포스트지의 지적이 옳다. 무르시가 이집트 민주주의를 농단한 것에 대한 대응은 당연히 민주주의의 강화가 정답이다. 시위대는 군부의 개입을 촉구하기보다 올해나 내년에 예정됐던 총선을 통해 무슬림형제단을 견제하려는 노력에 초점을 맞춰야 했다. 물론 이집트의 일부 자유주의자들은 무르시가 국가 권력을 주무르기 때문에 선거를 통한 교정이 불가능하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군부의 개입은 아무런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군부는 무력으로 권력을 잡았기 때문에 지금 와서 그 권력을 쉽게 포기하리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둘째, 여전히 무슬림형제단을 지지하는 이집트인들은 자신도 권력을 원하면 무력으로 쟁취해도 된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집트의 쿠데타에 반대하는 것과 원칙상 미국은 쿠데타에 반대하기 때문에 모든 쿠데타에 반드시 반대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워싱턴포스트지 사설은 이렇게 설파했다. “의회가 통과시킨 법에 따라 미국의 이집트 원조(이집트군에 제공되는 연 13억 달러 포함)는 반드시 중단돼야 한다. 진정한 민주적 정권 이양이 추진될 때만 원조가 복구돼야 한다.”

“모든 평화적인 정치 세력에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무르시를 비롯한 무슬림형제단 지도부도 즉시 석방돼야 한다. 또 집회와 언론의 자유를 용인해야 한다. 폐쇄된 이슬람주의 방송사도 거기에 포함된다. 헌법 개정은 군부의 강권 없이 모든 정치 세력의 합의 아래 이뤄져야 한다. 아울러 총선과 대선을 조속히 실시해야 한다. 오바마 행정부는 반드시 그렇게 고집해야 한다.”

그러나 만약 이집트의 새 지도부가 그런 요구를 거부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식으로는 국제관계가 불편해질 수 있다. 파키스탄이 비근한 예다. 1979년 카터 행정부는 파키스탄 원조를 중단했다. 핵무기를 만드는 나라에는 원조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법이 의회에서 통과됐기 때문이었다. 파키스탄은 핵무기를 계속 개발했다.

1980년대 들어 미국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저지하는데 파키스탄의 도움이 필요해지자 파키스탄 원조를 재개했다. 1991년 소련이 퇴각한 후 미국의 정책 전문가들은 핵무기 개발 금지 위반을 기억해내곤 다시금 원조를 끊었다. 파키스탄은 핵무기를 계속 개발한 끝에 1998년 핵실험까지 마쳤다. 3년 뒤 9·11 테러가 발생하자 미국은 다시 파키스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원조를 더 많이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집트도 파키스탄처럼 미국의 최후통첩을 일축하는 정치 지도자의 지지도가 올라가는 나라다. 지난해 갤럽 조사에 따르면 미국과의 더 긴밀한 관계에 반대하는 이집트인이 찬성하는 이집트인의 거의 두 배였다. 2012년 7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미국 영사관을 다시 열기 위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를 방문했을 때 시위자들은 외교 차량 행렬에 토마토와 신발을 던졌다.

만약 미국이 원조를 중단한다면 이집트는 다른 원조국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2012년 무르시는 중동 지역을 벗어나는 첫 해외 방문지로 미국이 아니라 중국을 택했다. 현재 이집트는 미국보다 중국과 교역을 더 많이 한다. 군사통치로 돌아간다는 발상을 좋아하는 사우디아라비아도 원조를 대신해주겠다는 언질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미국의 이집트 원조는 결코 자선사업이 아니다. 전략적 요충지 수에즈 운하와 이집트 영공을 미군이 우선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대가다. 이집트가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을 지켜주는 대가이기도 하다. 실제로 2012년 가을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을 끝내는 데 이집트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공화당)도 이집트가 민주 선거를 치를 때까지 원조 중단을 촉구했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의 편집진이나 매케인은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되더라도 비민주적 정권과의 결탁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고립주의자가 아니다. 사실 그들은 미국이 중동 패권을 유지하거나 여차하면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매파다.

그런데도 그들은 미국의 힘이 쇠퇴하는 지역에서 패권을 유지하는 것과 도덕적으로 순수함을 유지하는 것 사이에 타협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하진 않는다. 매케인과 워싱턴포스트지는 미국이 일관성 있게 쿠데타에 반대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어떤 미국의 이익을 위태롭게 해도 좋다고 명시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은 추상적인 원칙에 집착하면서 그 원칙이 이처럼 불만족스럽고 어지러운 세계와 쉽게 조화될 수 있다고 믿는 시늉만 한다.



워싱턴포스트지가 오바마에게 ‘쿠데타 불용’을 이집트 정책의 근간으로 삼으라고 충고한 바로 그날 보수 논객 데이비드 브룩스는 뉴욕타임스지 칼럼에서 ‘이슬람주의자 불용’을 이집트 정책의 기본원칙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집트, 터키, 이란, 팔레스타인 등지에서 급진 이슬람주의자들은 현대 정부를 운용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그들 대다수는 독재적이고 종말론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 그들은 국가를 통치할 정신적 능력이 없다.”

브룩스는 미국이 ‘이슬람주의자’의 통치에 반대하기를 원한다고 말하면서도 ‘이슬람주의자’라는 표현을 구체적으로 정의하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이슬람주의자는 나라를 통치할 정신적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설령 이슬람주의가 이슬람을 정치관의 기초로 삼으려는 욕구를 의미한다고 해도 그 형태는 다양하며 때로는 서로 적대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하버드 로스쿨의 노아 펠드먼 교수가 지적했듯이 무르시는 이집트의 새 헌법이 지나치게 신권정치적이라고 우려한 자유주의자들과 타협하지 않았다.

그와 대조적으로 튀니지의 이슬람주의 지도자 라치드 가노우치는 새 헌법이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언급해선 안 된다는 정교분리주의자들의 뜻을 수용했다. 이란의 무자비한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도 이슬람주의자이지만 개혁을 추진하려 했던 무함마드 하타미 전 대통령도 이슬람주의자다. 하타미는 대통령 시절 정치 주권은 자칭 “신의 지상 특사”가 아니라 국민에게 있다고 말했다.

이슬람주의자들이 획일적인 부류가 아니라면 그들은 정치 권력을 두고 다투는 좀 더 세속주의적인 지도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터키의 이슬람주의 지도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는 분명히 권위주의적이다. 그러나 이슬람주의자들이 터키 정계에 권위주의를 떠안겼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에르도안 이전의 세속주의 정부들도 군부가 지배하며 그보다 더욱 억압적인 정책을 폈다.

가자 지구에선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로 정권을 잡은 하마스가 매우 억압적인 통치를 자행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세속적이고 친서방적인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도 그런 비판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서안의 팔레스타인 시위 진압에 관한 한 이스라엘 정부도 마찬가지다.

만약 무르시의 권위주의가 “이슬람주의자는 통치할 정신적 능력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그를 비판하는 이집트인 다수는 세속주의 지도자였던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에 관해서도 같은 말을 해야 한다. 그들은 무르시가 무바라크를 닮아간다고 주장했다. “무르시는 무바라크의 나라를 자신에게 맞게 요리해 통치했다”고 한 이집트 문제 전문가가 말했다.

브룩스가 ‘이슬람주의자’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방식은 냉전 당시 매파가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과 흡사하다. 문제의 국가에 내재하는 특성을 무시하고 누가 미국 편이고 누가 미국 편이 아니라고 단정하는 약칭으로 사용되는 용어들이다.

바로 그런 기계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과거 미국 정책 전문가들은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격파하면 베트남은 소련과 중국의 꼭두각시가 된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공산주의자든 아니든 베트남인들은 중국의 지배를 혐오했고, 1960년대엔 중국과 소련이 전쟁을 치르기 직전까지 갔다.

조지 케넌의 생각은 그와 달랐다. 그는 정권과 정치 세력이 특유한 이익과 전통을 쏟아 붓는 그릇이 바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같은 용어라고 믿었다. 케넌은 마셜 플랜을 지지했다. 보수파가 반대했지만 그 계획으로 유럽 사회주의자들에게 자금이 흘러들어갔다. 결국 바로 그들이 소련에 가장 효과적으로 반기를 들어 미국에 이익이 됐다.

또 케넌은 트루먼 행정부를 설득해 유고슬라비아 지도자 티토에게 경제적, 군사적 지원을 하게 했다. 티토는 철두철미한 공산주의자로 소련의 동유럽 지배에 저항했다. 케넌은 이렇게 주장했다. “미국은 공산주의 확장에 언제나, 또 반드시 반대할 필요가 없다. 또 모든 곳에서 똑 같은 수준으로 그에 맞서야 할 필요도 없다. 처한 상황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가 말한 정원사가 바로 그런 뜻이었다. 미국 정책 책임자들이 ‘이슬람주의’를 다룰 때도 융통성 있게 대처해야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미국은 이집트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미국은 세계무대에서 경쟁하는 선수 중 하나이지 심판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조지 케넌, 월터 리프먼, 레인홀드 니버 같은 미국의 냉전 현실주의자들은 실제로 그렇게 믿었다. 미국의 이익과 이상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그와 정반대였다). 이집트처럼 반시온주의, 반유대주의가 강한 나라에선 대외정책이 좀 더 민주적이 될수록 이스라엘과 맺은 평화협정이 더욱 삐걱거리게 된다.

미국의 정치자본은 제한돼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의 평화가 지속되도록 하려면 최대한 그 자본을 절약해야 한다. 이집트 국내문제에선 미국이 최대한 포괄적이고 유능하며 관용적인 정부를 지지해야 한다. 앞으로 당분간 이집트의 정치 과정은 냉전 직후의 폴란드가 아니라 러시아처럼 보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은 그들에게 조언을 제공하고, 그들을 회유하는 동시에 공개적으로 질책하기도 해야 한다. 민족청소나 대학살 같은 끔찍한 일만 없다면 미국은 관계를 단절할 준비가 돼 있지 않을 경우 일방적으로 최후통첩을 전달해선 안 된다. 사실 이집트가 미국을 필요로 하는 만큼 미국도 이집트가 필요하다.

한가지 더 있다. 미국 스스로 민주주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제대로 된 정부를 요구하며 계속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는 용감한 이집트인들에게 미국이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선물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몇 년 전 데이비드 브룩스도 칼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 사회가 무너지고 있다. 대중은 정치 엘리트들을 경멸한다.” 조심하지 않으면 미국의 정치 엘리트들도 “통치할 정신적 능력이 없다”는 소리를 들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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