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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irement - 황혼이혼의 원조, 갈수록 심해져

Retirement - 황혼이혼의 원조, 갈수록 심해져

40년 함께 살고 결별하는 커플도 … 日 전체 이혼 건수는 10년 전부터 줄어



장수대국의 핫 이슈 중 하나는 ‘황혼이혼’이다. 일본은 사실상 황혼이혼(黃昏離婚)의 원조국이다. 2005년 황혼이혼을 뜻하는 ‘숙년이혼(熟年離婚)’이란 TV드라마를 계기로 열도 전역의 이슈로 부각됐다. 정년퇴직일 저녁 불현듯 아내가 내민 이혼장이 드라마의 첫 대목이다. 이후 남편을 겨냥한 아내의 복수(별거)와 가족 갈등이 세세하게 묘사됐다. 이 과정에서 맞은 결혼기념일과 이혼 이후의 방황·후회·눈물 등이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관심이 대단해 평균 시청률 20%대를 기록했다.

뭘 그리 공감한 걸까? 회사인간으로 가정에 소홀함, 가부장적 권위 등 이 시대 보통 남편의 ‘원죄’가 많다. 때문에 황혼이혼은 남편의 현역 시절 내내 참고 삭히며 살아온 아내가 폭발하면서 시작됐다. 노후 약자인 아내를 배려하고자 연금분할이 허용된 것도 늦은 황혼이혼을 부추긴 한 요인이다. 50~60세에 헤어져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인생 2막이 길어졌다는 점도 한 몫 했다. 아줌마·할머니의 독립 선언은 주로 남편의 은퇴 시점에 맞춰진다. 그래서 황혼이혼이다.

힘세진 여성 파워도 황혼이혼을 부추겼다. 은퇴 이후 일을 잃은 남성은 여성화가 되는 것과 대조적으로 여성은 되레 남성화되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게다가 애초부터 일본 여심(女心)은 센 편이었다. 1947년 이미 ‘남녀동권(男女同權)’이 퍼지며 남성 우위가 빛을 바랬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방직기술이 발전하면서 ‘강해진 건 여성과 양말 뿐’이란 유행어가 퍼졌다. 여직원이 늘면서 별칭으로 ‘비즈니스 걸(BG, Business Girl)’ 오‘ 피스 레이디(OL, Office Lady)’ ‘커리어 우먼(Career Woman)’ 등이 고도 성장기 때 유행했다. 이밖에 ‘공처병(恐妻病)’ ‘재녀시대(才女時代)’ ‘여성상위(女性上位)’란 유행어가 관심을 끌었다.

지금은 중년 남성의 권위 추락과 관련된 유행어가 인기다. 요즘 정년퇴직 후 집에서 노는 남자들은 얼추 세 가지로 비유된다. 먼저 ‘대형 쓰레기(粗大ごみ)’다. 돈을 내야 치워가는 큰 쓰레기를 뜻한다. 돈을 줘서라도 처분하고 싶다는 속내다.

‘젖은 낙엽(濡れ落ち葉)’도 있다. 젖은 낙엽은 신발에 붙으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아내에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려는 남편을 의미한다. ‘와시모이쿠(わしも行く)’도 있다. 역시 갈 곳 없는 남편이 부인 가는 곳마다 동행하려는 걸 말한다. 이마저 못 참는 아내들은 ‘황혼이혼’을 감행한다.



황혼이혼 다룬 드라마 인기 절찬일본의 황혼이혼은 이미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워낙 고령화가 심화돼 황혼이혼은 딱히 새로울 게 없다. 뉴스거리로조차 함량 미달이다. 발생 빈도도 정점을 찍었다. 황혼이혼은 2011년 현재 3만7791건이다. 2005년(4만395건)보다 조금 줄었다. 전체 이혼 건수도 비슷하다. 2011년 이혼 건수(23만5734건)는 2010년(25만1378건)보다 줄었다. 1990년대 불황 이후 꾸준히 늘어난 이혼 건수는 2002년(28만9836건)을 정점으로 한풀 꺾였다(국민생활기초조사, 2011년).

2000년대 초중반 이후 이혼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다. 전체 이혼 중 황혼이혼 비율은 16%로 한국보다 낮다. 다만 동거기간 별로 보면 좀 다르다. 결혼 기간 20년을 전후해 이혼비율이 엇갈린다. 20년 이상 황혼이혼 비율은 10~15년(3만2985건)이나 15~20년(2만4135건)보다 높다. 30세에 결혼했다면 50세 이전보다 이후 갈라설 확률이 더 높다. 특히 동거 35년을 넘긴 이혼은 2005년(4794건)보다 되레 증가(5913건)했다.

계산상 65세에 헤어지는, 말 그대로의 황혼이혼이다. 그러니 안심할 수 없다. 30~40년을 훌쩍 넘긴 진짜 황혼이혼이 늘어난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환갑 이후 정년 은퇴자가 줄줄이 늘어난다. 800만 베이비부머(1947~49년생)의 65세 정년 은퇴도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정년 은퇴=이혼 요구’의 시나리오라면 황혼이혼은 꽤 위협적이다.

특히 전체 이혼은 감소세인데 황혼이혼만 증가세란 게 문제다. 경제 활동이 끝나거나 줄어드는 시점과 맞물려서다. 이혼 이후 고독·빈곤 함정에 빠질 확률이 높다. 국민·후생(공제)연금의 2층 구조를 갖춘 남편과 달리 1층(기초)만의 허술한 연금체계를 가진 전업주부 아내라면 더욱 그렇다. 연금분할을 받아도 부족할뿐더러 일해도 ‘늙은 돌싱녀’의 근로 형태는 파트타임이나 아르바이트가 대부분이다. 황혼이혼이 주는 기쁨은 짧고, 고통은 길어질 가능성이 있다.

연금분할만 믿고 이혼했다 후회하기도 한다. 연금분할은 이혼할 때 후생연금을 부부가 나눠 갖도록 2007년 도입한 제도다. 고령 이혼이 이혼 여성의 궁핍한 생활을 야기한다는 문제 제기가 받아들여진 결과다. 전업주부로만 살아왔다면 국민연금이 전부다. 그나마 전업주부는 1986년 이전에는 국민연금 가입의무가 없었다.

분할되는 건 후생연금이다. 국민연금은 대상이 아니다. 그나마 부부였던 기간에 납입한 보험료만 분할된다. 맞벌이였다면 2인의 후생연금을 합해 나눈다. 분할 비율은 협의로 최대 절반까지다. 2008년부터는 전업주부 기간에 한정해 상호합의 없이도 절반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이혼 후의 수급 총액은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 부양 배우자가 있을 때 가산되는 후생연금의 가급(加給) 연금을 못 받아서다.

아내만이 아니다. 경제적 곤궁과 심리·육체적 고독은 남편도 마찬가지다. ‘홀아비는 이가 서말, 과부는 은이 서말’이 한국만의 속담은 아니다. 황혼이혼이 미칠 부정적인 파급 효과는 대부분 남편에게 귀결된다. 고독·소외·단절의 독거생활이다. 일본 고령자의 상당수가 현역 시절 적잖은 금융·실물자산을 모아 금전문제는 급하지 않다.

선배 세대보다 적지만 베이비부머의 지갑도 두둑한 편이다. 설혹 부족해도 정년연장과 절약으로 궁핍한 생활은 피할 수 있다. 다만 외로움은 어쩔 수 없다. 가족·친지·친구와의 네트워크가 있어도 독거 압박은 상당하다. 일본은 이미 ‘고독사(孤獨死)’의 희생양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무연(無緣)사회다.



황혼이혼의 폐해 남성에 더 집중2010년 일본 노인 중 480만명이 단신 독거다. 여성(340만명)이 남성(139만명)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노인 인구 중 각각 20.3%, 11.1%다. 평균 수명을 감안하면 연령이 높아질수록 홀로 사는 할머니가 많다. 노인 중 배우자가 있는 사람의 비율은 남성(80.6%), 여성(48.4%)으로 할머니 2명 중 1명은 독거 신세다. 황혼이혼 후 독거 노인도 증가세다.

1990년 대비 남성(1.5%→3.6%), 여성(3.0%→4.6%)으로 늘었다. 헤어지지 않아도 혼자일 개연성이 높은데 황혼이혼이 독거 추세를 한층 부추기는 셈이다. 고령 남성의 20%는 곤란할 때 의지할 이가 없었다(내각부, 2011년). 단신 세대 중 고독사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응답은 64.7%에 달했다.

한국도 늙어 헤어지는 황혼이혼이 심상찮다. 장수사회 후보국답다. 한국의 20년 이상 결혼부부 이혼 건수는 2011년 2만8299건으로 조사됐다. 2007년(2만4995건)보다 늘었다. 전체 이혼 중 24.8%다(2012사법연감). 2000년엔 14.3%였다. 이유는 폭력·금전 문제와 성격 차이 등이 많았다. 결국 더 이상 참고 살지 않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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