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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O AFRICA - 일본과 중국의 새 전선

INTO AFRICA - 일본과 중국의 새 전선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 위치한 아프리카연합 본부 건물은 중국이 건설했다.



게타는 에티오피아 남부 해발 2.7㎞에 위치한 지방이다. 그곳의 한 작은 부지 안에서 보리협동조합 구성원들이 타작한 보리를 체에 거르고 있었다. 타작하고 남은 겉껍질은 매서운 바람에 휩쓸려 산 너머로 날아갔다. 그들 뒤에 붙어 있는 벽보에는 ‘改善(개선)’이라는 한자가 마커펜 손글씨로 쓰여 있었다.

‘더 나은 것을 향한 변화’란 뜻의 ‘개선’은 도요타를 필두로 한 일본 기업들의 경영철학과 관련이 깊다. 끊임없는 혁신과 발전을 강조하는 철학이다. 게타는 개선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지역이 아니다. 소규모 농업이 지배적인 데다 주민들의 일일 소득이 빈곤선 1.25달러를 겨우 넘어서는 곳이기 때문이다.

게타는 4륜 구동차를 타고 두 시간 동안 달려서 땔감 벌목으로 헐벗은 숲과 거친 농지를 지나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일본국제협력기구(JICA)가 산발적으로 전개하는 몇몇 사업들의 본거지다. 각각 수천 달러가 투입된 이 사업들은 일본에서 들여온 경영사례를 활용해 생계형 농부들을 스스로 지속 가능한 사업체로 바꿔놓고자 한다.

2013년 6월 일본 요코하마에서 제5회 도쿄 국제아프리카개발회의가 열렸다. 아프리카 51개국 정상이 이 자리에 초청됐다.
여기서 몇 ㎞ 떨어진 곳에선 언덕 위로 시멘트 먼지가 피어오른다. 한 중국 기업이 수백만 달러를 들여 포장도로를 건설 중이다. 이 도로는 게타와 인근 마을 워키테 사이를 연결하며 휴양지 데브레제이트와 수도 아디스아바바까지 이어진다. 바드룸 셰쿠르보리협동조합 이사장은 이 도로 덕분에 농부들이 우기에도 시장에 갈 수 있게 되면서 이 지역 경제에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용되는 흙길은 비가 오면 지나가기가 어렵다.

이 두 사례는 아프리카 내 두 아시아 거인들의 전략 차이를 잘 보여준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영향력 키우기에 나선 아베 신조일본 총리가 직면한 도전이기도 하다. 2013년 5월 아베는 아프리카에 140억 달러 개발원조와 65억 달러 기간시설 사업을 포함해 총 320억 달러의 기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2014년 1월에는 아프리카를 방문해 각국 지도자들을 만나고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다. 극적인 변화다.

전문가들은 아베의 행보가 아프리카에서 전략적으로 투자를 늘리는 중국을 향한 대응책이라고 분석한다. 센카쿠 열도를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인 일본과 중국은 아프리카에서 새로운 경쟁을 시작했다. 아프리카연합(AU) 본부 소재지이자 아프리카 대륙의 외교적 심장부인 에티오피아는 그 경쟁의 최전선이 될 듯하다.

“아주 최근까지만 해도 일본의 대 아프리카 원조는 전략적이기보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이뤄졌다.” 우드로윌슨센터의 동북아 전문가 고토 시호코는 말했다. “일본에 도전하는 중국의 모습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일본은 그동안 해오던 원조 대신 보다 눈에 띄는 방식을 택해야겠다고 느낀 것 같다.”

지난 수십 년 간 일본은 아프리카의 주요 협력국이었다. 일본의 국제원조를 담당하는 JICA는 농업과 교육 분야에서 미국평화봉사단과 유사한 청년해외협력대나 전문 기술자들을 동원해 규모는 작지만 효율적인 방식으로 개입하면서 원조와 간섭 사이를 요령 있게 넘나들었다. 이처럼 극도의 소프트파워를 발휘한 덕분에 일본은 가장 크고도 은밀한 원조국이 됐다.

이와 달리 중국은 대놓고 욕심을 드러냈다. 자원채굴권을 얻는 대가로 대규모 기간시설 사업을 약속한 것이다. 도로가 낙후되고 수시로 전력공급난을 겪는 아프리카 국가들에 기간시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중국이 제시한 거래가 공정한지 아닌지는 다른 문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3년 3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아프리카 대통령 11명과 조찬을 가졌다.
중국의 연간 대 아프리카 무역투자액은 2000년 100억 달러에서 오늘날엔 2000억 달러까지 상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의 무역투자액은 고작 그 25%밖에 되지 않는다. 2011년 중국의 대 아프리카 직접투자액은 31억7000만 달러, 일본은 4억6000만 달러였다.

중국 외교부장은 전통적으로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아프리카를 가장 먼저 방문했다. 2013년 3월 시진핑은 국가주석에 취임한 지 수 주 내에 탄자니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콩고민주공화국을 방문해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새 기간시설 개발과 투자 거래를 발표했다.

일본의 새 전략은 중국을 참고한 듯하다. 2014년 1월 아베의 아프리카 순방 역시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시진핑의 지난해 아프리카 순방을 떠올리게 한다. 아베는 경제가 회복 중에 있고 정치적으로도 유력한 프랑스어권 국가 코트디부아르에서 서아프리카 국가 지도자들을 향해 사헬지역 평화유지에 830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수십 년 간 아시아 에너지 대기업들이 천연가스 발굴을 위해 몰려든 모잠비크에서는 가스발전소에 1억7400만 달러를 내놓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티오피아에서는 일본이 중국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베는 일본의 전후 상승을 강조하면서 정부주도 경제로 “챔피언” 기업들을 보조하고 국가 개입과 민간부문 경쟁을 조화시킨 “발전국가” 모델을 설명했다. 교육과 투자, 관리기술 이전을 약속하며 합의에 기반한 원조로 아프리카 대륙의 미래를 아프리카인의 손에 맡기겠다고 설파했다.

대다수 아프리카 지도자와 경제학자는 중국을 30년 만에 빈곤국가에서 경제대국으로 발돋움시킨 중국식 개발모델을 높이 평가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중국의 대규모 투자가 사실은 안 그래도 빈약한 아프리카 제조업 부문을 초토화시켰으며, 이윤은 남았지만 불안정한 젊은 인구에게 나눠줄 직업은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중국과 아프리카 국가 대부분의 무역균형은 암울하다. 석유, 가스 등 천연자원은 수출되고 가공이 완료된 온갖 상품들이 수입된다. 2013년 당시 나이지리아 중앙은행장 라미도 사누시는 아프리카인들의 염려를 밝히며 중국과의 관계를 “본질적으로 식민주의”라고 평했다.

아베가 아디스아바바에서 가진 연설은 아프리카에 중상주의적인 접근을 취한 중국을 겨냥한 비판으로 보인다. 일본은 아프리카 전략이 불러일으킬 경쟁적 측면을 과소평가했다. 중국은 그렇지 않았다. 아베가 에티오피아를 방문하자 아프리카연합 주재 중국대사 셰샤오옌은 기자회견을 열고 아베를 “아시아의 가장 큰 골칫덩이”라고 평하며 아베가 중국의 확장을 봉쇄하기 위해 아프리카에 진출했다고 비판했다.

셰샤오옌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비록 일본이 보다 세심하게 사안을 다루는 것처럼 보일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아프리카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은 결국 중국과 비슷하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해 원전을 폐쇄하면서 새 가스 에너지원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일본 산업계는 장기적인 자원 수급 능력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일본 내 니켈의 51%를 공급하던 인도네시아가 2014년 1월 비정제 금속 수출을 금지하면서 외교적인 마찰이 빚어졌다. 중국은 고급 전자기기 제조에 필수적인 희토류 공급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원 매장량을 자랑한다. 석탄과 석유, 가스가 매장됐으리라고 여겨지는 미개발 지역도 가장 광범위하며, 아직 개발되지 않은 경작지도 세계 최대 규모다. 일본에서 공급이 부족한 것도 갖고 있다. 바로 성장이다. 20년에 걸친 불황 뒤에도 일본 기업들은 신시장에 뛰어들기를 주저한다. 아프리카 경제가 매년 성장을 거듭하면서 택시처럼 전국적인 업종에서 운용되는 미츠비시와 도요타 중고 차량이 가장 눈에 띄는 소비부문이 됐다.

중국의 상업적인 힘은 아디스아바바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중국 건설업체들은 도시 중심부를 관통하는 새 지하철 노선을 건설 중이다. 중국이 지은 AU 본부 건물아래 쪽에는 도심 외곽의 상점들 옆으로 겹겹이 쌓인 파형 철판들이 눈에 띈다. 그곳에서 약 40㎞ 떨어진 곳에 중국이 조성한 공단에는 화진 신발공장과 리판 자동차 조립공장이 있다. 시장 가판대에서 판매되는 플라스틱 샌들부터 산업부장관이 사용하는 조립식 책상까지 수많은 제품이 중국산이다. 심지어 에티오피아의 전통적인 커피 의식에 사용되는 커피잔조차 그렇다.

일본이 중국의 거대한 그림자 밑에서 가시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긴 쉽지 않다. 아프리카 정치인들과 국민들 사이에서 어렵게 얻은 호의를 유지하는 동시에 국익을 추구하는 것은 더 어려울지 모른다. 진 기미아키 JICA 에티오피아 사무소장은 그런 어려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 애를 썼다. 아디스아바바에서 에티오피아 전통 음식 인제라로 점심 식사를 함께 하며 진에게 아베의 요란한 아프리카 순방 이후로 무엇이 변했는지를 물었다. 진의 대답은 간단했다. “외교부 입장에서는 눈에 띄는 게 매우 중요하다.”

진은 여러 모로 전형적인 일본 개발 노동자다. 1990년 자원봉사자로 에티오피아에 처음 파견된 진은 실용적이고 정치에 무관심했다. 사업의 구체적인 사항을 세세하게 파악했다. 세 번째로 에티오피아를 방문한 그는 규모가 크고 가시적인 원조는 한번도 우선과제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우리가 원한 것은 근본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이 접근법은 아무리 경쟁이 심해지더라도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지 않고 큰 물고기부터 줘서는 안 된다”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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