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그룹, 누가 이끄나 - 오너 공백 메울 전문경영인 풀 부족
CJ그룹, 누가 이끄나 - 오너 공백 메울 전문경영인 풀 부족
CJ그룹이 다시 기로에 섰다. 560여 일째 부재 중인 이재현 회장을 대신했던 이미경 부회장이 건강 등을 이유로 미국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당분간 오너 남매의 경영 복귀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 CJ는 전문경영인 체제 강화가 불가피하다. 문제는 당장 그게 녹록하지 않다는 것이다. 전문경영인을 키워 계열사 책임 경영을 맡기는 다른 대기업과 달리, CJ는 이재현 회장의 ‘강력한 오너 1인 체제’로 성장해왔다. 현재 그룹경영위원회를 가동하고 있지만 이 회장의 빈 자리가 커 보이는 이유다. 1인 오너 경영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CJ그룹을 취재했다. CJ그룹에서 이재현 회장은 애플의 스티브 잡스 같은 존재다. 잡스는 애플을 키웠고, 애플이 곧 잡스였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모든 정보를 독점했고, 홀로 의사 결정을 내렸다. 결정은 때론 실패했지만, 대부분 대성공을 거뒀다. 이재현 회장도 그랬다. CJ는 이 회장 ‘1인 체제’였다. 그룹 전반을 꿰뚫고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이재현 회장뿐이었다. CJ 그룹의 한 임원이 “CJ 성장의 8할은 이 회장의 몫”이라고 말할 정도다.
이재현 회장은 1997년 삼성그룹에서 법적 분리한 CJ(당시 제일제당)를 완전히 다른 기업으로 바꿔놨다. 설탕·밀가루·식용유를 만들던 회사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대표 생활·문화기업으로 변신했다. 분리 당시 2조원이던 그룹 매출은 현재 13~14배로 늘었다. 회장에 취임한 2002년 4조원이던 자산 규모는 24조원으로 불었다. CJ는 9개 상장사, 63개 비상장 계열사를 둔 재계 15위 그룹으로 컸다. 그런 까닭에 20013년 7월 탈세·횡령·배임 혐의로 이 회장이 구속됐을 때 CJ 안팎에선 ‘이재현 없는 CJ’를 걱정했다. 잡스와 이재현은 달랐다. 잡스는 괴팍했고, 이재현은 온화했다. 더 큰 차이가 있다. 잡스가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잡스 없는 애플의 미래’를 우려하는 내외신 기사가 넘쳤다. 하지만 잡스는 자신이 없어도 되는 애플을 이미 만들어 놨다. 후계자도 낙점해 놓고 있었다. 최고운영책임자(COO)였던 팀 쿡이다. ‘팀 쿡의 애플’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재현 회장은 달랐다. 젊고(1960년생) 자신감에 차 있던 그는 2인자를 키우지 않았다. 두 자녀는 어렸다. 승계는 먼 얘기였다. 아버지(이맹희 전 회장)의 영향 때문인지, 누나(이미경 CJ 부회장)와 동생(이재환 재산커뮤니케이션 대표)과도 권력을 나누지 않았다. 그리고 이재현 회장이 자리를 비운 560여 일. CJ는 오너 1인 체제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
1월 7일. ‘이미경 부회장이 경영에서 손을 뗀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부회장은 이재현 회장이 구속된 후 1년 6개월 동안 CJ그룹의 ‘사실상 CEO’ 역할을 해왔다. CJ 측은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을 부인했다. CJ그룹의 최고위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경영에서 물러나는 것은 아니고, 신병 치료 차 미국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며 “지금도 전화로 경영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CJ 임직원들의 말은 다르다. 한 임원은 “모친인 손복남 고문의 권유로 사실상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것”이라며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 ‘사정’에 대해선 함구했다. 다른 계열사의 임원은 “이미경 부회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미국으로 가면서 내부에서 퇴진 얘기가 나돌았다”고 전했다. 미국 시민권자인 이 부회장은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주 라구나비치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J 측의 해명대로 이 부회장의 퇴진이 사실이 아니라 해도 우리나라 기업 문화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누가 ‘감히’ 사실도 아닌 오너 일가의 퇴진을 외부에 발설할 수 있겠는가? 이런 얘기가 나도는 자체가 CJ의 요즘 상황을 말해주는 것이다.
동생을 대신해 경영 전반에 나선 ‘이미경 부회장 체제’는 불안 했다. 이재현 회장의 부재 직후 CJ는 이 회장의 외삼촌인 손경식 CJ 회장, 이미경 부회장, 2013년 3월 영입된 이채욱 CJ 부회장, 대상 출신으로 2007년 CJ에 합류한 김철하 CJ제일제당 대표로 구성된 그룹경영위원회를 발족했다. 하지만 오너 일가 2명, 전문경영인 2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도 이재현 회장의 공백을 제대로 메우지 못했다는 것이 내외부의 평가다. CJ그룹은 이미경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온갖 잡음이 밖으로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외부에서 영입된 인사들과 기존 CJ 임원들 간의 갈등이 심했다고 한다. 그 중심에는 이 부회장이 직접 영입한 노희영 전 부사장이 있었다. CJ 관계자들에 따르면 브랜드 전략 고문으로 영입된 그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월권 논란’을 일으켰다. 이미경 부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CJ의 한 임원은 “노 전 부사장이 이 부회장과 독대하며 인사까지 개입한다는 얘기가 파다했다”고 전했다. 이재현 회장 구속 넉 달 후에 있었던 인사는 조직이 동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 인사에서 이재현 회장의 최측근으로 불렸던 이관훈 CJ(주) 대표가 예우 임원으로 물러나고 그룹경영위원회에서도 빠졌다. 이 회장의 신임이 두터웠던 조성형 인사팀장(부사장)도 좌천됐다. 조 전 부사장은 지난해 6월 매일유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회장 구속 직후 대외관리 업무를 맡았던 권인태 부사장 역시 보직을 받지 못하자 SPC그룹으로 이직했다. CJ(주) 사업팀장이었던 윤경림 부사장은 계열사인 CJ헬로비전 경영지원총괄로 발령받은 후 사표를 냈다. 윤 전 부사장은 KT로 자리를 옮겼다. 대신 그 해 7월 신설된 미래전략실장(부사장)에 박성훈 전 보스톤컨설팅그룹 파트너가 선임됐다. 이후 맥킨지·보스톤·AT커니 컨설턴트 출신들이 대거 영입됐다. CJ의 한 임원은 “당시 CJ가 이미경 부회장, 그리고 노희영 고문의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얘기가 많았다”고 전했다. 그는 “이 부회장 쪽으로 말을 갈아탄 일부 임원들이 당시 인사에서 주요 포스트로 승진하면서 실무진들이 혼란을 겪었다”고 했다.
이해 할 수 없는 일도 있었다. 지난해 6월 그룹 내 논란의 정점이었던 노희영 당시 고문이 조세 포탈 혐의로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당시 CJ그룹 안팎에서는 ‘노 고문이 물러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얼마 후 노 고문은 CJ제일제당의 최고마케팅책임자 겸 부사장 발령을 받았다. 당시 CJ 관계자는 “아무리 (오너의) 최측근이라지만 검찰 조사를 받으면 옷을 벗고 물러나는 것이 관례인데, 더 막강한 권력을 쥐게 된 꼴”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CJ가 이렇게 까지 망가질 줄은 몰랐다”는 말까지 했다. CJ 내부 여론도 들끓었다고 한다.
이 부회장에게는 이 인사가 화근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재현 회장이 있었더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연이어 벌어지면서 CJ의 경영 난맥상에 대한 우려가 증폭됐다. CJ 관계자는 “오래 전부터 경영에 깊숙이 관여해 왔고, 이 부회장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손복남 고문도 그때를 전후로 생각이 바뀐 것 같다”고 전했다. 결국 지난해 9월에 검찰이 노희영 전 부사장을 조세 포탈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고, 노 전 부사장은 직후 사표를 냈다. 이때부터 CJ 내 기류가 다시 바뀌었다는 것이 CJ 관계자들의 얘기다. CJ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초에 이 부회장이 병 치료를 위해 미국에 갔을 때도 이미 사표를 낸 노 전 부사장이 수행한 것으로 안다”며 “노 전 부사장에 의존도가 너무 컸다”고 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20일 만에 귀국 했을 때 상황은 이미 정리가 됐다. 노 전 부사장이 영입을 주도했던 컨설턴트 출신 임원들은 대부분 물러났다. 이 부회장은 얼마 뒤 다시 미국으로 출국했다.
지난해 12월 인사는 이런 분위기가 그대로 반영됐다. 이채욱 부회장과 CJ대한통운에서 호흡을 맞춰본 신현재 부사장이 지주사 경영총괄에 선임됐다. 경영총괄은 그룹경영위원회의 실무를 맡는 핵심 자리다. 또한 이재현 회장의 비서팀장을 지냈던 김홍기 부사장이 지주사 인사총괄 부사장에 오르고, 이미경 부회장 사람으로 분류된 이준영 CJ 인사팀장(부사장)은 계열사인 CJ헬로비전 경영지원총괄로 자리를 옮겼다. CJ그룹의 자중지란은 어느 정도 해결의 가닥을 잡은 분위기다. 하지만 지난 1년 6개월은 CJ그룹에 많은 고민을 안겼다. CJ그룹에는 오너 공백을 빠르게 수습하고 조직을 정비할 인물이 없었다. 이미경 부회장은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사업에는 밝았지만, 그룹 전체를 장악할 능력에는 한계를 드러냈다. 일부 측근과 외부 컨설턴트 출신들에게 의존하다 오히려 휘둘렸다는 평이 많다. 그룹경영위원회 역시 그룹 내 혼란을 완벽히 정리하지 못했다. 사외이사·감사위원들도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는 이재현 회장의 경영·인사 스타일과도 관련이 깊다. CJ는 다른 대기업과 유독 다른 점이 하나 있다. 계열사 대표에 ‘바이스(vice)’가 많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국내 주요 대기업 계열사의 대표이사 직위는 대부분 ‘사장’이다. 대표에 걸맞은 직위와 권한을 주고 책임 경영을 하도록 하는 게 정착됐다. 하지만 CJ 계열사 중 부회장이 대표이사를 맡는 CJ(주)와 CJ대한통운을 제외하고 대표이사 직위가 사장인 곳은 CJ제일제당 한 곳뿐이다. 9개 상장 계열사만 봐도 임직원 1만8302명 중 사장은 1명뿐이다.
좀 더 자세히 보자. 지주사인 CJ(주)는 이재현 회장과 손경식 회장, 이채욱 부회장이 공동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사장은 없고 부사장(대우 포함)만 9명이다. 지난해 12월 중순 CJ 경영총괄에 선임된 신현재씨 역시 부사장이다. CJ 계열사 중 가장 임직원 수가 많은 CJ제일제당은 유일하게 대표이사(김철하)가 사장인 곳이다. 임원 74명 중 부사장은 4명, 부사장 대우가 9명이다. 지난해 말 인사 때 CJ대한통운 공동대표 겸 국내부문장을 맡은 손관수씨 역시 직위는 부사장이다. 이미경 부회장이 비등기 부회장으로 있는 CJ E&M의 강석희·김성수 대표도 마찬가지다. 이밖에 CJ헬로비전 김진석 대표, 변동식 CJ오쇼핑 대표, 서정 CJ CGV 대표, 강신호 CJ프레시웨이 대표, 유병철 CJ씨푸드 대표 등도 부사장이다. 이에 대해 CJ그룹 관계자는 “오너인 이 회장이 그룹 내 모든 결정을 해왔기 때문에 고위직 임원을 최대한 적게 둬야 관리가 용이하고 지휘가 잘 된다고 본 것 같다”고 해석했다. 유명무실한 사외이사들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 계열사 임원은 “그룹이 투자도 제대로 못하고, 경영 분란이 있는 사이 사외이사들은 도대체 어디서 뭘 했느”고 성토했다. 그럴 만도 하다. CJ그룹의 사외이사 중에는 이른바 거물급이 많다. 고위 관료와 법관 출신이 전체 사외이사의 60%에 달한다(9개 상장사 기준). 국내 30대 그룹 평균(37%, CEO스코어)보다 훨씬 높다. 하지만 지난 1년 6개월 동안 이들이 CJ의 경영 안정에 기여했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사외이사들의 면면을 보자. CJ(주)의 사외이사는 4명이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때 법무부장관과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김성호 건국대 석좌교수, 강대형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이재현 회장과 고려대 법학과 동문인 이상돈 고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KBS 보도본부장을 지낸 김종율 목원대 교수다. 이들 중 3명(강대형·김성호·김종율)은 감사위원도 겸임하고 있다. 또한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와 보상위원회 역시 사외이사들이 맡고 있다. 사외이사 4명은 지난해 이사회 의결사항을 모두 ‘찬성’했다.
CJ제일제당 역시 사외이사가 4명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 서울지방국세청장을 지낸 김갑순씨 등이 사외이사로 활동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최정표 건국대 교수도 사외이사다. 이들 사외이사들도 감사위원을 겸임하고 있다. 이들 역시 지난해 이사회의결사항에 대해 대부분 찬성했거나 불참한 것으로 나타났다.
CJ E&M은 사외이사 3명이 모두 관료 출신이자 감사위원을 함께 맡고 있다.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사업을 하는 CJ E&M에는 박양우 전 문화관광부 차관, 인천지법 부장판사출신의 박혜식 율촌 변호사,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 출신인 김기태 김앤장 고문이 사외이사다. 이들 역시 2013~2014년 이사회 의결 사항에 단 한 번도 반대 의견을 내지 않았다. CJ대한통운의 사외이사에는 이기호 전 노동부 장관, 추병직 전 건설교통부 장관, 최찬묵 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방희석 중앙대 교수(전 인천항망공사 항만위원장)가 포진해 있다. 대한통운 역시 이들 4명이 사외이사와 감사위원,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 보상위원회를 맡고있다. CJ오쇼핑에도 거물급 사외이사가 있다. 검찰총장 출신의 김종빈 화우 고문변호사, 대전지방국세청장을 지낸 김재천씨가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으로 있다. 2~3년 동안 사외이사를 맡아온 이들은 그동안 단 한 번도 이사회 의결에 반대 의견을 낸 적이 없다. 주선희 전 헌법재판관과 형태근 전 방통위 상임위원, 채경수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은 CJ 헬로비전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을 맡고 있다.
이밖에 대전지방국세청장을 지낸 박차석 세무법인 신화 회장(CG CGV), 이강연 전 관세청 차장(CJ프레시웨이) 등 많은 거물이 CJ의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2013~2014년 CJ 각 계열사의 의결사항 중 사외이사들이 반대 의견을 낸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다. 특히 9개 상장사 사외이사 28명 중 25명이 감사위원을 겸임하고 있다. 국내 상법이 감사위원회의 3분의 2 이상은 사외이사가 맡도록 하고 있지만, CJ는 겸임 비율은 특히 높다. 견제와 감시 기능을 상실한 사외이사 제도의 면면이 고스란히 드러난 곳이 CJ다. 이미경 부회장 체제가 사실상 실패로 끝나면서 이제 관심은 CJ의 향후 경영 구도에 모인다.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이재현 회장은 형집행이 정지된 상태에서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2월 말 또는 3월 초쯤 상고심이 열릴 예정인데, 상당 기간 경영 복귀는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때문에 이 회장 복귀 전까지 조직을 이끌 새로운 구심점이 필요한 시점이다. CJ그룹은 이 회장이 구속된 2013년 수천억원의 투자를 집행하지 못했다. 핵심 상장 계열사 9곳 중 7곳은 영업이익이 대폭 줄었다. 지난해에는 일부 계열사 주가가 폭등하면서 9개 상장사 시가 총액이 전년 대비 21% 증가했지만, 그룹 매출은 전년 대비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정했던 투자를 집행하지 못하면서 투자 규모 역시 2011년 수준인 1조9000억원에 그쳤다는 것이 CJ 측 설명이다.
현재로서는 이채욱 부회장이 구심점이 돼 CJ를 이끄는 것이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다. 일각에선 이재현 회장의 사위인 정종환(35)씨나 동생인 이재환(53) 재산커뮤니케이션즈 대표에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이들이 CJ그룹 경영 전면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CJ 관계자들의 얘기다. 이재환 대표는 한때 CJ 상무로 재직했으나, 2009년 이후 CJ CGV 등의 광고를 대행하는 재산커뮤니케이션즈 대표만 맡고 있다. 2008년 이 회장의 장녀인 경후씨와 결혼한 정종환씨 역시 그룹을 이끌기엔 경험이 부족하다. 그는 현재 CJ아메리카에서 근무 중이다. 이 회장의 자녀가 나설 가능성도 희박하다. CJ오쇼핑 과장으로 근무 중인 이경후씨(30)나 CJ제일제당 사원인 아들 이선호(25)씨 모두 경영 전면에 나서기는 아직 어리다. 다만, 이 회장이 선호씨에게 CJ올리브네트웍스 지분을 증여하는 등 경영 승계 작업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당분간 전문경영인 체제로 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인데, 이 역시 쉽지는 않다. 전문경영인이 오너를 대신해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고 CJ의 큰 그림을 그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평이 많다. CJ는 이재현 회장이 그룹의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와 관련, 손경식 CJ 회장은 1월 5일 열린 ‘2015년 경제계 신년 인사회’에 참석한 후 “(이재현 회장 부재로) 어렵지만 해 나가고 있다”며 “2월쯤 능력 위주로 필요한 사람을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인사 결과가 CJ그룹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재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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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회장은 1997년 삼성그룹에서 법적 분리한 CJ(당시 제일제당)를 완전히 다른 기업으로 바꿔놨다. 설탕·밀가루·식용유를 만들던 회사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대표 생활·문화기업으로 변신했다. 분리 당시 2조원이던 그룹 매출은 현재 13~14배로 늘었다. 회장에 취임한 2002년 4조원이던 자산 규모는 24조원으로 불었다. CJ는 9개 상장사, 63개 비상장 계열사를 둔 재계 15위 그룹으로 컸다. 그런 까닭에 20013년 7월 탈세·횡령·배임 혐의로 이 회장이 구속됐을 때 CJ 안팎에선 ‘이재현 없는 CJ’를 걱정했다.
스티브 잡스와 닮은 듯 달라
이재현 회장은 달랐다. 젊고(1960년생) 자신감에 차 있던 그는 2인자를 키우지 않았다. 두 자녀는 어렸다. 승계는 먼 얘기였다. 아버지(이맹희 전 회장)의 영향 때문인지, 누나(이미경 CJ 부회장)와 동생(이재환 재산커뮤니케이션 대표)과도 권력을 나누지 않았다. 그리고 이재현 회장이 자리를 비운 560여 일. CJ는 오너 1인 체제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
1월 7일. ‘이미경 부회장이 경영에서 손을 뗀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부회장은 이재현 회장이 구속된 후 1년 6개월 동안 CJ그룹의 ‘사실상 CEO’ 역할을 해왔다. CJ 측은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을 부인했다. CJ그룹의 최고위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경영에서 물러나는 것은 아니고, 신병 치료 차 미국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며 “지금도 전화로 경영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CJ 임직원들의 말은 다르다. 한 임원은 “모친인 손복남 고문의 권유로 사실상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것”이라며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 ‘사정’에 대해선 함구했다. 다른 계열사의 임원은 “이미경 부회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미국으로 가면서 내부에서 퇴진 얘기가 나돌았다”고 전했다. 미국 시민권자인 이 부회장은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주 라구나비치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J 측의 해명대로 이 부회장의 퇴진이 사실이 아니라 해도 우리나라 기업 문화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누가 ‘감히’ 사실도 아닌 오너 일가의 퇴진을 외부에 발설할 수 있겠는가? 이런 얘기가 나도는 자체가 CJ의 요즘 상황을 말해주는 것이다.
동생을 대신해 경영 전반에 나선 ‘이미경 부회장 체제’는 불안 했다. 이재현 회장의 부재 직후 CJ는 이 회장의 외삼촌인 손경식 CJ 회장, 이미경 부회장, 2013년 3월 영입된 이채욱 CJ 부회장, 대상 출신으로 2007년 CJ에 합류한 김철하 CJ제일제당 대표로 구성된 그룹경영위원회를 발족했다. 하지만 오너 일가 2명, 전문경영인 2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도 이재현 회장의 공백을 제대로 메우지 못했다는 것이 내외부의 평가다.
이미경 부회장 측근 인사와 기존 임원들 갈등
이해 할 수 없는 일도 있었다. 지난해 6월 그룹 내 논란의 정점이었던 노희영 당시 고문이 조세 포탈 혐의로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당시 CJ그룹 안팎에서는 ‘노 고문이 물러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얼마 후 노 고문은 CJ제일제당의 최고마케팅책임자 겸 부사장 발령을 받았다. 당시 CJ 관계자는 “아무리 (오너의) 최측근이라지만 검찰 조사를 받으면 옷을 벗고 물러나는 것이 관례인데, 더 막강한 권력을 쥐게 된 꼴”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CJ가 이렇게 까지 망가질 줄은 몰랐다”는 말까지 했다. CJ 내부 여론도 들끓었다고 한다.
이 부회장에게는 이 인사가 화근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재현 회장이 있었더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연이어 벌어지면서 CJ의 경영 난맥상에 대한 우려가 증폭됐다. CJ 관계자는 “오래 전부터 경영에 깊숙이 관여해 왔고, 이 부회장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손복남 고문도 그때를 전후로 생각이 바뀐 것 같다”고 전했다. 결국 지난해 9월에 검찰이 노희영 전 부사장을 조세 포탈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고, 노 전 부사장은 직후 사표를 냈다. 이때부터 CJ 내 기류가 다시 바뀌었다는 것이 CJ 관계자들의 얘기다. CJ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초에 이 부회장이 병 치료를 위해 미국에 갔을 때도 이미 사표를 낸 노 전 부사장이 수행한 것으로 안다”며 “노 전 부사장에 의존도가 너무 컸다”고 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20일 만에 귀국 했을 때 상황은 이미 정리가 됐다. 노 전 부사장이 영입을 주도했던 컨설턴트 출신 임원들은 대부분 물러났다. 이 부회장은 얼마 뒤 다시 미국으로 출국했다.
지난해 12월 인사는 이런 분위기가 그대로 반영됐다. 이채욱 부회장과 CJ대한통운에서 호흡을 맞춰본 신현재 부사장이 지주사 경영총괄에 선임됐다. 경영총괄은 그룹경영위원회의 실무를 맡는 핵심 자리다. 또한 이재현 회장의 비서팀장을 지냈던 김홍기 부사장이 지주사 인사총괄 부사장에 오르고, 이미경 부회장 사람으로 분류된 이준영 CJ 인사팀장(부사장)은 계열사인 CJ헬로비전 경영지원총괄로 자리를 옮겼다.
상장사 임직원 1만8302명 중 사장은 1명
이는 이재현 회장의 경영·인사 스타일과도 관련이 깊다. CJ는 다른 대기업과 유독 다른 점이 하나 있다. 계열사 대표에 ‘바이스(vice)’가 많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국내 주요 대기업 계열사의 대표이사 직위는 대부분 ‘사장’이다. 대표에 걸맞은 직위와 권한을 주고 책임 경영을 하도록 하는 게 정착됐다. 하지만 CJ 계열사 중 부회장이 대표이사를 맡는 CJ(주)와 CJ대한통운을 제외하고 대표이사 직위가 사장인 곳은 CJ제일제당 한 곳뿐이다. 9개 상장 계열사만 봐도 임직원 1만8302명 중 사장은 1명뿐이다.
좀 더 자세히 보자. 지주사인 CJ(주)는 이재현 회장과 손경식 회장, 이채욱 부회장이 공동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사장은 없고 부사장(대우 포함)만 9명이다. 지난해 12월 중순 CJ 경영총괄에 선임된 신현재씨 역시 부사장이다. CJ 계열사 중 가장 임직원 수가 많은 CJ제일제당은 유일하게 대표이사(김철하)가 사장인 곳이다. 임원 74명 중 부사장은 4명, 부사장 대우가 9명이다. 지난해 말 인사 때 CJ대한통운 공동대표 겸 국내부문장을 맡은 손관수씨 역시 직위는 부사장이다. 이미경 부회장이 비등기 부회장으로 있는 CJ E&M의 강석희·김성수 대표도 마찬가지다. 이밖에 CJ헬로비전 김진석 대표, 변동식 CJ오쇼핑 대표, 서정 CJ CGV 대표, 강신호 CJ프레시웨이 대표, 유병철 CJ씨푸드 대표 등도 부사장이다. 이에 대해 CJ그룹 관계자는 “오너인 이 회장이 그룹 내 모든 결정을 해왔기 때문에 고위직 임원을 최대한 적게 둬야 관리가 용이하고 지휘가 잘 된다고 본 것 같다”고 해석했다.
사외이사 대부분 고위 관료와 법관 출신
CJ제일제당 역시 사외이사가 4명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 서울지방국세청장을 지낸 김갑순씨 등이 사외이사로 활동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최정표 건국대 교수도 사외이사다. 이들 사외이사들도 감사위원을 겸임하고 있다. 이들 역시 지난해 이사회의결사항에 대해 대부분 찬성했거나 불참한 것으로 나타났다.
CJ E&M은 사외이사 3명이 모두 관료 출신이자 감사위원을 함께 맡고 있다.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사업을 하는 CJ E&M에는 박양우 전 문화관광부 차관, 인천지법 부장판사출신의 박혜식 율촌 변호사,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 출신인 김기태 김앤장 고문이 사외이사다. 이들 역시 2013~2014년 이사회 의결 사항에 단 한 번도 반대 의견을 내지 않았다. CJ대한통운의 사외이사에는 이기호 전 노동부 장관, 추병직 전 건설교통부 장관, 최찬묵 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방희석 중앙대 교수(전 인천항망공사 항만위원장)가 포진해 있다. 대한통운 역시 이들 4명이 사외이사와 감사위원,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 보상위원회를 맡고있다. CJ오쇼핑에도 거물급 사외이사가 있다. 검찰총장 출신의 김종빈 화우 고문변호사, 대전지방국세청장을 지낸 김재천씨가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으로 있다. 2~3년 동안 사외이사를 맡아온 이들은 그동안 단 한 번도 이사회 의결에 반대 의견을 낸 적이 없다. 주선희 전 헌법재판관과 형태근 전 방통위 상임위원, 채경수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은 CJ 헬로비전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을 맡고 있다.
이밖에 대전지방국세청장을 지낸 박차석 세무법인 신화 회장(CG CGV), 이강연 전 관세청 차장(CJ프레시웨이) 등 많은 거물이 CJ의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2013~2014년 CJ 각 계열사의 의결사항 중 사외이사들이 반대 의견을 낸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다. 특히 9개 상장사 사외이사 28명 중 25명이 감사위원을 겸임하고 있다. 국내 상법이 감사위원회의 3분의 2 이상은 사외이사가 맡도록 하고 있지만, CJ는 겸임 비율은 특히 높다. 견제와 감시 기능을 상실한 사외이사 제도의 면면이 고스란히 드러난 곳이 CJ다.
2월 예정인 ‘능력 위주 인사’ 결과에 촉각
현재로서는 이채욱 부회장이 구심점이 돼 CJ를 이끄는 것이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다. 일각에선 이재현 회장의 사위인 정종환(35)씨나 동생인 이재환(53) 재산커뮤니케이션즈 대표에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이들이 CJ그룹 경영 전면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CJ 관계자들의 얘기다. 이재환 대표는 한때 CJ 상무로 재직했으나, 2009년 이후 CJ CGV 등의 광고를 대행하는 재산커뮤니케이션즈 대표만 맡고 있다. 2008년 이 회장의 장녀인 경후씨와 결혼한 정종환씨 역시 그룹을 이끌기엔 경험이 부족하다. 그는 현재 CJ아메리카에서 근무 중이다. 이 회장의 자녀가 나설 가능성도 희박하다. CJ오쇼핑 과장으로 근무 중인 이경후씨(30)나 CJ제일제당 사원인 아들 이선호(25)씨 모두 경영 전면에 나서기는 아직 어리다. 다만, 이 회장이 선호씨에게 CJ올리브네트웍스 지분을 증여하는 등 경영 승계 작업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당분간 전문경영인 체제로 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인데, 이 역시 쉽지는 않다. 전문경영인이 오너를 대신해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고 CJ의 큰 그림을 그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평이 많다. CJ는 이재현 회장이 그룹의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와 관련, 손경식 CJ 회장은 1월 5일 열린 ‘2015년 경제계 신년 인사회’에 참석한 후 “(이재현 회장 부재로) 어렵지만 해 나가고 있다”며 “2월쯤 능력 위주로 필요한 사람을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인사 결과가 CJ그룹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재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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