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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적이 사회불안 야기한다”

“미국의 적이 사회불안 야기한다”

이란 전역 휩쓰는 시위가 핵협정 무시하고 제재를 재개하려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복안에 찬물 끼얹어
이란인들이 다시 거리로 뛰쳐나와 신정 정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이란 사태가 이처럼 혼돈으로 치달으리라고는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28일 시아파 최고의 성지로 테헤란에서 동쪽으로 850㎞가량 떨어진 이란 제2의 도시 마슈하드에서 처음 시위가 발생했다. 시민 수천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에 항의했다. 조직되지 않고 자발적으로 시작됐지만 시위는 곧바로 이란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심상찮은 사태로 변했다. 급기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표적이 됐다. 지난 30년 동안 이란인이 신정 정권에 반기를 들고 벌인 3번째의 대규모 시위였다.

이처럼 급발전하는 이란 위기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이래 미국이 처음 겪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소유하는 플로리다 주의 휴양시설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골프를 치며 감세안 통과(지금까지 트럼프 정부가 유일하게 성공한 법 제정으로 12월 22일 서명했다)를 자축하던 중 이란 시위 소식을 들었다. 트럼프 정부나 미국의 정보기관들도 그런 혼돈을 예기치 못했다고 한 국가안보 담당관리가 전했다.트럼프 대통령의 본능적인 반응은 이란인들의 시위를 지지하는 것이었다. 곧바로 행동에 나선 그는 12월 31일 ‘이란에서 큰 시위가 발생했다’는 트윗을 띄웠다. ‘이란 국민이 자신들의 부를 강탈당하고 있으며 그 돈이 테러에 낭비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고 있다. 그들이 더는 당하지 않을 것 같다. 미국은 인권침해가 있는지 예의주시한다.’

이란 거대기업 에이코에 초점을 맞춘 트럼프 정부의 ‘스마트 제재’는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이 주도한다. / 사진:AP-NEWSIS
사실 놀라운 반응은 아니었다. 트럼프는 대선 후보 때나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도 전임자 버락 오바마의 정책과 거리를 두려고 애썼다(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뒤 전임자 조지 W. 부시의 정책을 무시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정부에서 이뤄진 이란 핵합의가 잘못됐다고 비난했을 뿐 아니라 2009년 이란 대선 부정선거 의혹에 따른 민주화 운동인 ‘녹색 혁명’ 초기에 오바마 정부가 이란인들의 시위를 지지하지 않은 것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시위 관련 첫 트윗은 크게 고심할 필요가 없이 나올 수 있었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시위가 계속되면서 트럼프 정부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해야 했다. 지금도 그 문제가 트럼프 정부의 골칫거리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 정부의 이란 정책을 뒤엎으려고 하는 찰라에 그런 위기가 터졌기 때문이다.

2015년 7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 5개국과 독일은 이란과 핵협정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이란은 농축우라늄·플루토늄 생산을 중단하고 유엔은 이란 제재를 풀기로 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핵협정을 준수하지 않고 있다며 이란 핵협정 준수에 대한 ‘불인증’을 발표했다. 그러면서도 협정을 파기하거나 제재를 재부과하는 대신 핵협정의 일부를 재협상하도록 이란에 압력을 가하는 데 유럽 동맹국들의 도움을 받으려 했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은 그 아이디어를 거부했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향후 1년 뒤 핵무기를 배치할 수 있다고 판단될 시점에서 이란 제재를 재개하는 초당적인 법안을 의회가 통과시키지 않는다면 합의를 완전히 파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이란의 혼돈 상황이 트럼프 정부의 계산을 바꿔 놓을 수 있다. 이란 정부가 어느 때보다 더 강경하게 시위를 진압한다면 백악관은 의회가 정부의 뜻대로 이란 제재 재부과 법안을 쉽게 통과시킬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트럼프 팀은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에 사태가 어떻게 발전하는지 보고 싶어 한다.경제도 백악관의 접근법에서 중요한 사안이다. 국무부의 한 관리는 이란인의 시위를 촉발한 이슈를 감안하면 고통스러운 제재의 재개는 “우리가 제 발등을 찍는 격”이라고 말했다. 시위에 참가한 일반 시민에게 고스란히 피해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시위자들은 더 격분하고 이란 정부는 쏟아지는 비판의 화살을 미국 쪽으로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트럼프 정부는 이란 정권과 긴밀하게 연관된 개인이나 기업만을 표적으로 제재를 재개하는 방안을 강구하려 한다.

지난 1월 4일 이란 마슈하드에서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우는 친정부 시위대. / 사진:AP-NEWSIS
트럼프 정부는 지난해 12월 그런 절차를 시작했다. 재무부가 이란 정예군 혁명수비대를 대상으로 제재에 들어갔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이끄는 이란 대응팀은 이제 단일 기업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석유와 천연가스부터 통신과 금융까지 모든 분야에서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는 지주회사 에이코를 가리킨다. 기업 가치 950억 달러인 에이코는 궁극적으로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지시를 받는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이란의 핵프로그램을 저지하기 위해 에이코를 비롯해 이란 정부의 소유로 판단되는 여러 기업을 제재했지만 이란이 핵 협정에 서명하면서 제재를 풀었다.

그런 특정 표적을 겨냥한 제제 외엔 뾰족한 방안이 없다고 트럼프 정부 관리들은 인정한다. 게다가 이란 정권이 시위의 강경 진압을 비교적 자제하는 분위기다. 지난 1월 5일 기준으로 21명이 시위 진압 군경과의 충돌에서 사망했다. 희생자 대다수는 시위자였다. 그러나 만약 이란 정부가 2009년 ‘녹색혁명’ 때처럼, 아니 그보다 더 심하게 1989년 중국 정부가 톈안먼 시위 때 그랬던 것처럼,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진압에 나선다면 미국은 이란을 상대로 전면적인 경제 제재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시위가 이란의 근로계층을 포함한 일반 시민의 경제적 어려움에서 촉발됐지만 경제제재로 그들이 피해를 입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게 백악관과 고위 관리들의 입장이다. 뉴욕 소재 싱크탱크인 미국 외교협회(CFR)의 이란 분석가 레이 타케이는 “트럼프 정부 관리들은 정치적으로 취할 수밖에 없는 조치가 소수의 표적을 겨냥한 ‘스마트한’ 제재의 발목을 잡는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지금까지 트럼프 정부는 신중하게도 ‘정권 교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지난여름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의회 청문회에서 “백악관은 이란 내부에서 평화로운 정부 이양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들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는 이번 이란 시위가 틸러슨 장관의 발언과 일치한다고 지적한다. 많은 이란인이 지도부의 평화로운 교체를 열망한다는 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시위의 배후로 ‘외세’를 지목했다(왼쪽).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정책 설계자 중 한 명인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은 이란에 우호적이지 않다. / 사진:AP-NEWSIS
트럼프 정부는 이란 시위자들이 통신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텔레그램이나 인스타그램 등 이란인이 널리 사용하는 SNS가 그 예다(이란 정권은 그런 SNS 서비스를 차단했다). 그러나 트럼프 팀은 이란 정부의 전복을 추구하진 않는다고 강조한다. 한 정부 자문역은 “그들은 이란이 이라크 식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트럼프 정부는 그런 정책을 추진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러나 시위가 일어나기 전 미국 국방부는 중동 지역에서 이슬람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의 팽창주의를 막을 방안을 모색했다. 수니파 동맹국들을 지지한 미국의 전통적인 역할로 되돌아가는 정책의 일환이었다. 지난해 12월 초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이란과 전면적인 군사 충돌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예멘·시리아·이라크 같은 나라에서 이란을 견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매티스 장관은 이란 문제를 둘러싸고 오바마 정부 관리들과 마찰을 빚으면서 2013년 미국 중부군 사령관에서 물러났으며, 그 후에도 오바마 정부의 최대 외교 치적으로 꼽히는 이란과의 관계정상화를 두고 “중동 지역 안정을 해치는 주요 위협”이라고 비판했다).

분석가들은 중동 지역의 패권을 다투는 이 투쟁에서 트럼프 정부가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워싱턴 D.C. 소재 싱크탱크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마이클 루빈 연구원은 해외에서 전투에 참여한 이란 군인들의 죽음에 대한 미국의 간접적인 책임도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 8년에 걸친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이 이라크를 지원했을 때보다 이란인의 반미 감정을 더 증폭시킨 적은 현대사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란 군인 중 전사자가 늘기 시작하고 이란 정부가 그 탓을 미국으로 돌린다면 지금 트럼프 정부가 이란 시위자들을 격려함으로써 생겨난 이란 국민의 미국에 대한 호감이 곧바로 사라질 것이다.”이번 이란 위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길잡이가 되는 매티스 국방장관과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란에 우호적인 인물이 아니다. 그들은 이란이 훈련시킨 민병대와 이란에서 제조된 급조폭발물(IED)이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의 목숨을 앗아갈 때 그 현장에 있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정책을 설계한 당사자로서 그들은 이번이 뜻을 펼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란 정부는 즉시 이번 시위의 배후를 ‘외세’로 지목했다.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도 “외국의 적이 사회불안을 야기한다”고 비난했고, 혁명수비대 총사령관과 보수 언론은 “적대적인 정보기관의 책략”이라며 “시위대가 외국의 지휘와 지원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말하는 ‘적대적인 외세’는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그들은 그런 음모와 관련된 근거를 제시하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그런 증거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란 정부 외부에선 이란 전역으로 번지는 분노가 국내 경제난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란의 시위대가 가장 자주 제기하는 불만 중 하나는 역설적이지만 ‘이란 우선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이란 정권으로선 뜻밖일 것이다. 시위대는 정부가 국가 예산과 자원을 해외 군사작전에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미국도 그 메시지를 지지한다. 트럼프 대통령을 둘러싼 미군 수뇌부는 이란 정부가 국민의 그런 요구에 굴복할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현재로선 매티스 장관과 맥매스터 보좌관이 트럼프 정부의 이란 정책을 주도하고, 틸러슨 국무장관은 유럽 동맹국들에 그와 관련된 진행 상황을 알리며 협조를 구하는 역할 분담이 이뤄진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까지 이란 사태에 대해 터무니없는 트윗을 띄우거나 우발적인 즉흥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1월 초 이란에서 정정 불안이 심화되는 상황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1년을 지낸 백악관의 내막을 신랄하게 파헤친 책 ‘화염과 분노’에 온통 정신을 빼앗긴 듯했다. 아무도 공개적으로 말하진 않겠지만 어쩌면 그게 차라리 나을지 모른다.

- 빌 파월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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