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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지나가되… 코로나19의 ‘역설’

이 또한 지나가되… 코로나19의 ‘역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사울(Saul)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다. 그때가 대략 BC 11세기 초. 여러 부족을 정복하고 막강한 힘을 과시한 사울 왕은 후계자로 다윗(David)을 지목한다. 다윗은 베들레헴 출신 이새(Jesse)의 여덟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이새는 교회나 성당 스테인드글라스에 새겨진 ‘이새의 나무’로 알려져 있는데,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그 나뭇가지에 여호와가 강림한 것이 ‘예수(Jesus)’라고 믿는다.

이새가 아들 덕분에 더 유명해진 일화가 있다. 어린 양치기 다윗이 앙숙인 이웃 나라 필리스티아(Philistia, 오늘날의 팔레스타인)의 장수 골리앗을 물리친 이야기다. 대충 불곰 크기의 거인 골리앗의 이마에 돌멩이를 던져 쓰러뜨린 뒤 칼로 목을 베었다고 전한다. 다윗은 이스라엘을 재통일하여 왕이 되고, 다윗의 골리앗 제압은 그리스도의 이스라엘 입성을 예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 날 다윗 왕은 궁중 세공인에게 이런 명령을 내렸다. “나를 위해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어다오. 반지에는 내가 큰 승리를 거두어 기쁨을 억제하지 못할 때, 그것을 차분하게 다스릴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도록 하라. 또한 내가 큰 절망에 빠졌을 때는 용기를 줄 수 있는 내용도 함께 담아야 한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게 해줄 ‘수신(修身)’의 글귀가 새겨진 반지 하나를 만들도록 명령한 것이다. 배움이 모자란 세공인은 다윗왕의 지시를 받들만한 글귀를 생각다 못해 지혜로운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서 한 말씀 부탁했다. 그러자 솔로몬은 세공인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준다.

“이 글귀를 반지에 넣으시오.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 승리에 도취한 순간에도 이 글을 보게 되면 전하께서는 자만심을 가라앉히실 수 있을 것이요, 또한 절망 중에도 이 글을 본다면 큰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역자(譯者)에 따라 ‘Soon it shall also come to pass’라고도 씀)



소중한 것들이 네 눈앞에서 사라져 갈 때
그 힘겨운 순간마다 그대의 마음에 말하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And Dearest Things are Swept from Sight Forever,
Say to Your Heart Each Trying Hour :
“This, Too, Shall Pass Away”


이 글귀를 집어넣어 쓴 19세기 미국의 여류시인이자 음악가 렌터 윌슨 스미스(Lanta Wilson Smith)의 시(詩)를 통해 우리는 3000년 전 솔로몬의 지혜를 접해본다.

올해 94살의 고령인 엘리자베스(2세) 영국 여왕은 신종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과 관련해 불안해하는 영국인들을 격려하면서 “후세가 우리를 매우 강인한 사람들로 기억할 것(Those who come after us will say the Britons of this generation were as strong as any)”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여전히 더 견뎌야겠지만 더 나은 시간이 돌아올 것”이라며 “친구와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4월 5일 저녁 템스 강변의 윈저 성에서 BBC방송을 통해 녹화 방영한 대국민 특별담화에서 여왕은 현 시기를 “어떤 사람들에게는 슬픔이 있었고, 많은 이들에게 경제적 어려움이 닥쳤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모두의 삶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온 혼돈의 시기”라고 규정하면서 자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예전과 다른 사회, 전화위복 계기 삼아야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지구촌을 강타하면서 전 세계인이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차제에 두려움과 공포보다는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고맙고 소중하게 여길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동안의 내 생활이 너무 번잡하고 수선스럽진 않았는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그 많고 많았던 회식이나 술자리 없이도 일상은 잘 굴러가고 있다는 점도 새삼 재확인하지 않았던가.

아울러 자신의 안전을 뒤로하고 환자들을 돌보느라 밤낮을 잊고 땀 흘리는 의료인들과 격리된 이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하는 자원봉사자들을 보면서 남에게 소홀했던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해본다. 경제성만을 추구하며 환경을 훼손하거나 생태계를 교란한 것이 이번 사태를 몰고 온 간접 원인이 될 수 있었음을 인정하고 함께 반성하는 모습도 역력하다.

전화위복의 계기 삼아 ‘코로나19의 역설’을 짚어보자. 잠시 멈추어가니 공기가 깨끗해졌다. 전 세계의 대기질(大氣質)이 확연하게 좋아졌다는 보고가 있다. 특히 유럽 각국의 대기질이 예전보다 아주 깨끗해져 지구가 되살아나고 있다니 참으로 기막힌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도 예년보다 미세먼지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가 있다.

유럽우주기구(ESA)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중국과 우리나라의 대기질 상태를 위성으로 촬영한 영상을 보면, 오염도가 개선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한 각종 봉쇄 조치로 공장 가동이 멈추고 차량과 사람들의 통행이 뚝 끊기면서 대기오염물질 발생이 줄었기 때문이다.

강력한 환경규제를 바탕으로 상품성이 개선된 전기차들이 지속적으로 출시될 전망이란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한 단기적인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나,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고 난 이후 가장 빠르게 회복하는 업종은 반영구적인 2차 전지(電池)가 될 것”이라며 올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유럽의 전기차 수요 확대를 근거로 2차 전지를 추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병원을 찾는 사람이 크게 줄고 있다. 이런 상황은 병원들의 경영지표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대한병원협회가 지난 3월 전국 병원 98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코로나19 사태가 악화하면서 입원환자 수가 평균 26.44%나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환자 수가 줄어 병원 경영이 어려워진 데는 다른 시각도 있다.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3개월여에 걸쳐 시행된 마스크 쓰기와 손 씻기 등 예방조치가 국민 사이에 일상으로 자리하면서 잔병치레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 심지어는 이전보다 몸이 건강해져 병원 나들이가 뜸해졌다는 보고까지 나오고 있다.

이쯤 해서 생전에 법정 스님이 한 말씀이 새삼 떠오른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받아들이라.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 정영수 칼럼니스트(전 중앙일보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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