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현대차…코로나19 백신 리더십, 메르스 때와 다르다
과거 전염병 사태 시 경제 회복에 집중…팬데믹 상황 백신 개발·투자 적극
오랜 시간 노력해온 바이오 사업 결실로 백신 투자 자신감 생겨
재계 총수들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리더십이 부각되고 있다. 과거 사스(2002년), 메르스(2015년)와는 비교가 안 되는 비상 경제시국에 총수들이 적극 나서고 있다.
우선 ‘코로나19 백신 특사’로 관심이 집중 되는 총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지난 8월 13일 가석방 이후 줄곧 역할론이 부각된 가운데, 해외 출장을 통해 현장 경영을 공식 재개할 것이라는 소식에 기대감이 고조됐다. 미국 뉴욕 모더나 본사 등을 방문해 코로나19 백신 공급 확대 방안을 논의할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모더나 최고경영진과 이 부회장이 화상회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의 미국행에 대한 관측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모더나의 코로나 백신을 위탁생산(CMO)을 맡기로 한 것과 연관이 깊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올해 3분기부터 미국 이외의 시장으로 백신 수억 회 분량의 바이알(유리병) 무균충전·라벨링·포장 등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 백신 중 일부 물량을 국내로 돌리거나 공급 시기를 앞당기는 방안 등이 논의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기대감은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시민단체 등이 이 부회장의 ‘취업제한 중 경영활동’에 반대하는 상황을 두고 부담을 느낀 터라 미국행이 사실상 불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의 백신 관련 공식 일정은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 부회장이 앞서 2018년 출소 이후에도 거의 매달 해외 출장길에 오른 만큼 이번에도 출국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으나 아직 삼성 측은 구체적인 공식입장을 내고 있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경영진들 일정은 사실상 기업의 보안 사항”이라며 “각 회사 간의 거래 계약 관계도 있어서 한쪽에서 미리 말할 수 없는 부분 등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있을 듯하다”고 말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백신 외교 행보도 눈길을 끈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을 지원하기 위해 4대 그룹 총수 중 유일하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자격으로 방미 길에 올랐다. 최 회장은 이번 한미 간 배터리, 반도체 협력뿐만 아니라 백신 외교에도 적극 나섰다. 최 회장의 백신 외교는 SK바이오사이언스와 관련 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보건복지부-SK바이오사이언스-노바백스 간에 코로나19 백신을 비롯한 백신의 개발 및 생산에 대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최 회장은 “양사는 현재 협력 관계를 넘어 코로나 변이주 백신 확보, 독감과 코로나 콤보 백신 등을 개발해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협력을 추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의 SK바이오사이언스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최 회장은 지난해 10월과 올해 초 문재인 대통령의 SK바이오사이언스 연구소와 공장을 방문했을 때 동석해 백신 개발 진행 상항을 함께 점검했다. 또 지난 4월 화상회의를 통해 SK바이오사이언스 백신 개발 담당자들을 직접 격려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해 아스트라제네카와 CMO 및 노바백스와 위탁개발생산(CDMO) 계약을 체결했다. 최근에는 백신 CMO를 넘어 국산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한층 다가서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 GBP510이 국내 업체 최초로 임상 3상에 진입해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감염병 백신 개발에 새롭게 관심을 내비친 총수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다. 최근 정몽구 명예회장은 글로벌 감염병 백신 개발을 위해 고려대에 사재 100억원을 기부했다.
기부금은 '정몽구 백신혁신센터'를 운영할 고려대의료원에 전달돼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감염병 예방과 치료를 위한 국산 백신 개발과 연구 인프라 확충 등에 사용된다. 이는 정 명예회장이 평소 강조해 온 사회공헌 철학의 일환이다. 정 명예회장은 "현대차그룹을 성원해준 국민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국산 백신 개발에 기여할 백신혁신센터에 기부하게 됐다"며 "감염병을 극복해 건강과 행복을 되찾는 데 조금이나마 힘이 되기를 바란다"고 기탁 취지를 밝혔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재계 총수가 백신에 대해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은 그동안 투자했던 바이오사업이 오랜 시간 끝에 결실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직전 전염병 사태인 메르스 때에도 재계는 내수 침체 극복 등을 위해 동참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직접적인 치료제나 백신을 해법으로 내세우지는 않았다. 오랜 기간 투자와 연구개발(R&D)이 있었기에 현재가 가능한 것이다. 현대그룹도 최근 바이오·헬스케어 분야에 관심을 보이지만 삼성이나 SK 같은 경우 오래전부터 관심을 보여 온 제약·바이오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
삼성의 바이오 사업은 2010년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5대 신수종 사업으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이 부회장이 이어 온 것이다. 이 부회장 역시 바이오를 4대 미래 성장 사업으로 낙점하고 2018년 8월 2020년까지 추가로 180조원을 투자하고 4만명을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삼성의 바이오 사업은 10년 전 뿌린 씨앗이 결실을 보고 있다. 그 결과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생산설비 기준 세계 1위의 바이오 CMO 기업으로 우뚝 섰다. 현재 mRNA 원료의약품(DS) 생산을 위해 준비 중이며, 세포·유전자치료제 CDMO에도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위해 5~6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SK그룹의 바이오 사업도 경영진의 오랜 뚝심 덕분에 가능했다. “30년 앞을 내다보고 투자하라”는 최종현 SK 선대회장은 1993년 신약연구개발 프로젝트팀을 꾸렸다. 선대 회장의 뜻을 이어 최 회장이 1998년부터 제약·바이오 사업을 키워왔다. SK의 백신 사업은 지난 2001년 SK케미칼이 동신제약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최 회장은 2002년 "2030년 이후에는 바이오 사업을 그룹의 중심축 중 하나로 세운다"며 투자를 이어왔다. 이후 SK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 2018년 7월 SK케미칼 백신 사업부문의 분할로 탄생했다. 팬데믹 이전까지 SK바이오사이언스는 국내 백신업계 2인자였다. 하지만 코로나19 백신 CMO 등에 힘입어 2분기 매출액 1446억원, 영업이익 662억원으로 출범 후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재계 총수들의 코로나19 백신 리더십이나 역할론에 대해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재계 관계자는 “백신은 국가 대 국가도 걸려 있고 여러 가지 변수들이 많기 때문에 잘 될 수도 있지만 잘못될 수도 있다”며 “너무 총수 한 사람의 리더십이나 역할론이 부각되다 보면 나중에 잘못되거나 했을 때 그 책임이 쏠리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승훈 기자 lee.seung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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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코로나19 백신 특사’로 관심이 집중 되는 총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지난 8월 13일 가석방 이후 줄곧 역할론이 부각된 가운데, 해외 출장을 통해 현장 경영을 공식 재개할 것이라는 소식에 기대감이 고조됐다. 미국 뉴욕 모더나 본사 등을 방문해 코로나19 백신 공급 확대 방안을 논의할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모더나 최고경영진과 이 부회장이 화상회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의 미국행에 대한 관측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모더나의 코로나 백신을 위탁생산(CMO)을 맡기로 한 것과 연관이 깊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올해 3분기부터 미국 이외의 시장으로 백신 수억 회 분량의 바이알(유리병) 무균충전·라벨링·포장 등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 백신 중 일부 물량을 국내로 돌리거나 공급 시기를 앞당기는 방안 등이 논의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기대감은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시민단체 등이 이 부회장의 ‘취업제한 중 경영활동’에 반대하는 상황을 두고 부담을 느낀 터라 미국행이 사실상 불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의 백신 관련 공식 일정은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 부회장이 앞서 2018년 출소 이후에도 거의 매달 해외 출장길에 오른 만큼 이번에도 출국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으나 아직 삼성 측은 구체적인 공식입장을 내고 있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경영진들 일정은 사실상 기업의 보안 사항”이라며 “각 회사 간의 거래 계약 관계도 있어서 한쪽에서 미리 말할 수 없는 부분 등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있을 듯하다”고 말했다.
최태원 회장, 정부 백신 외교에 적극 참여 눈길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보건복지부-SK바이오사이언스-노바백스 간에 코로나19 백신을 비롯한 백신의 개발 및 생산에 대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최 회장은 “양사는 현재 협력 관계를 넘어 코로나 변이주 백신 확보, 독감과 코로나 콤보 백신 등을 개발해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협력을 추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의 SK바이오사이언스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최 회장은 지난해 10월과 올해 초 문재인 대통령의 SK바이오사이언스 연구소와 공장을 방문했을 때 동석해 백신 개발 진행 상항을 함께 점검했다. 또 지난 4월 화상회의를 통해 SK바이오사이언스 백신 개발 담당자들을 직접 격려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해 아스트라제네카와 CMO 및 노바백스와 위탁개발생산(CDMO) 계약을 체결했다. 최근에는 백신 CMO를 넘어 국산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한층 다가서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 GBP510이 국내 업체 최초로 임상 3상에 진입해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현대차그룹 백신 개발 기부 ‘쾌척’
기부금은 '정몽구 백신혁신센터'를 운영할 고려대의료원에 전달돼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감염병 예방과 치료를 위한 국산 백신 개발과 연구 인프라 확충 등에 사용된다. 이는 정 명예회장이 평소 강조해 온 사회공헌 철학의 일환이다. 정 명예회장은 "현대차그룹을 성원해준 국민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국산 백신 개발에 기여할 백신혁신센터에 기부하게 됐다"며 "감염병을 극복해 건강과 행복을 되찾는 데 조금이나마 힘이 되기를 바란다"고 기탁 취지를 밝혔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재계 총수가 백신에 대해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은 그동안 투자했던 바이오사업이 오랜 시간 끝에 결실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직전 전염병 사태인 메르스 때에도 재계는 내수 침체 극복 등을 위해 동참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직접적인 치료제나 백신을 해법으로 내세우지는 않았다. 오랜 기간 투자와 연구개발(R&D)이 있었기에 현재가 가능한 것이다. 현대그룹도 최근 바이오·헬스케어 분야에 관심을 보이지만 삼성이나 SK 같은 경우 오래전부터 관심을 보여 온 제약·바이오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
삼성의 바이오 사업은 2010년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5대 신수종 사업으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이 부회장이 이어 온 것이다. 이 부회장 역시 바이오를 4대 미래 성장 사업으로 낙점하고 2018년 8월 2020년까지 추가로 180조원을 투자하고 4만명을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삼성의 바이오 사업은 10년 전 뿌린 씨앗이 결실을 보고 있다. 그 결과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생산설비 기준 세계 1위의 바이오 CMO 기업으로 우뚝 섰다. 현재 mRNA 원료의약품(DS) 생산을 위해 준비 중이며, 세포·유전자치료제 CDMO에도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위해 5~6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SK그룹의 바이오 사업도 경영진의 오랜 뚝심 덕분에 가능했다. “30년 앞을 내다보고 투자하라”는 최종현 SK 선대회장은 1993년 신약연구개발 프로젝트팀을 꾸렸다. 선대 회장의 뜻을 이어 최 회장이 1998년부터 제약·바이오 사업을 키워왔다. SK의 백신 사업은 지난 2001년 SK케미칼이 동신제약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최 회장은 2002년 "2030년 이후에는 바이오 사업을 그룹의 중심축 중 하나로 세운다"며 투자를 이어왔다. 이후 SK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 2018년 7월 SK케미칼 백신 사업부문의 분할로 탄생했다. 팬데믹 이전까지 SK바이오사이언스는 국내 백신업계 2인자였다. 하지만 코로나19 백신 CMO 등에 힘입어 2분기 매출액 1446억원, 영업이익 662억원으로 출범 후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재계 총수들의 코로나19 백신 리더십이나 역할론에 대해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재계 관계자는 “백신은 국가 대 국가도 걸려 있고 여러 가지 변수들이 많기 때문에 잘 될 수도 있지만 잘못될 수도 있다”며 “너무 총수 한 사람의 리더십이나 역할론이 부각되다 보면 나중에 잘못되거나 했을 때 그 책임이 쏠리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승훈 기자 lee.seung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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