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사냥꾼에서 게임체인저로…韓 사모펀드 급성장
[한국의 사모펀드]①
지난 20여년간 사모펀드 2곳→1094곳
투자기회 제공‧기업 구조조정 역할 톡톡
[이코노미스트 마켓in 김윤주 기자] “사모펀드? 돈만 밝히는 곳 아닌가요.”
사모펀드(PEF)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기업사냥꾼’의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이다.하지만 한국에서 PEF가 태동한지 20여년이 지난 지금 ‘게임체인저’로 거듭나고 있다. 자본력과 정보력을 바탕으로 기업을 인수해 경영을 효율화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함께 고민하며 기업가치를 높이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의 전략상 떼어내야하는 사업부를 PEF가 받아주기도 하고, 몸값이 비싸 매각이 쉽지 않은 매물을 PEF가 연합해서 인수하는가 하면, 세컨더리 시장을 통해 PEF끼리 매물을 사고팔기도 하면서 경제 선순환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다.
韓 PEF, 20여년 새 500배 ‘폭풍성장’
1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2년 3분기 말 기준 기관전용 사모펀드 수는 1094개다. 2004년 당시 2개 펀드로 시작해, 현재는 500배 이상 늘었다. 2004년 당시 4000억원으로 시작한 약정액 또한 현재 124조3000억원으로 300배 이상 커졌다.
국내 PEF는 제도 마련, 개선과 함께 성장했다. 2004년 말 간접투자자산 운용업법(간투법) 개정으로 PEF가 처음 탄생했다. 당시 외환위기 이후 들어온 외국계 자본을 견제하려는 취지가 컸다. 이후 2009년에는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전문투자형 사모펀드가 허용되는 등 제도의 골격이 잡혔다.
이후 2015년 사모펀드 시장 활성화 정책이 나오면서 시장이 급성장했다. 당시 금융위원회는 사모펀드 투자 한도를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낮추고 운용사 설립 기준을 인가에서 등록으로, 펀드 설립은 사전등록에서 사후보고로 간소화했다.
2019년에는 라임‧옵티머스로 대표되는 ‘사모펀드 사태’가 터지면서 사모펀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색안경’이 짙어졌다. 경영참여형이 아닌 헤지펀드형에서 사고가 났지만, '사모펀드'라는 이름으로 묶여 탐욕의 대명사로 함께 매도되기도 했다.
당국은 2021년10월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규제를 손질했다. 투자자에 따라 일반 사모펀드와 기관전용 사모펀드로 구분해 상이한 규제를 부과하는 체제로 전환했다. 현재 사모펀드 시장 성장의 근간이 되는 것이 바로 기관전용 사모펀드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PE 시장은 제도 도입의 취지에 부응하는 발전과정을 밟아온 것으로 평가된다”면서 “외형적 성장 및 운용의 질, 경쟁구도 및 기업‧산업구조 기여 측면도 개선됐다”고 분석했다. 이어 박 연구위원은 “2021년 10월 시행된 사모펀드 제도개선으로 국내 기관전용 사모펀드는 글로벌 PE 시장의 기준에 부합하는 투자대상과 운용 자율성을 확보했다”고도 진단했다.
위기 기업 ‘해결사’ 사모펀드 순기능
PEF는 한때 ‘기업사냥꾼’이라는 비난을 받아 왔지만, 최근 들어 자본력과 정보력을 바탕으로 곤경에 처한 기업의 해결사 역할을 하고 있다. PEF는 투자자에게 새로운 투자 기회를, 기업에게는 성장을 위한 자본제공의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기업가치 제고나 기업 구조조정, 고용창출 등의 순기능을 이끌어낼 수 있다.
실제로 PEF는 자본시장의 각종 인수‧합병(M&A)을 주도하고 있다. PEF는 코로나19 사태로 하늘길이 막혀 경쟁력을 잃은 항공사의 구원투수로 등판하기도 했다. 지난 2020년 한앤컴퍼니가 대한항공의 알짜사업으로 꼽히는 기내식·기내판매사업부를 9906억원에 인수했다. 이외에도 2021년 JKL파트너스는 티웨이항공에 약 800억원을 투자한 뒤, 2022년 217억원을 추가 투입했다. 올해 1월에는 VIG파트너스가 1100억원에 이스타항공 지분을 모두 얻었다.
사모펀드에 인수되면서 경영 효율화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2012년 버거킹을 사들인 VIG파트너스는 매장 수를 늘리고 다양한 광고와 프로모션을 꾀해 소비자와의 접점을 늘렸다. 이후 VIG는 버거킹을 2016년 글로벌 사모펀드인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에 2100억원에 매각하면서 상당한 투자차익을 남겼다.
PEF 업계 관계자는 “사모펀드가 투자한 기업의 가치를 본질적으로 높여야 매각할 때에도 좋은 값어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 아니겠냐”면서 “기업 이사회에 참여해 경영 효율화 등의 방안을 내놓으며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고 주주권리 획득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PEF와 경쟁 심화…입지 높이려면
국내 PEF는 글로벌 PEF와도 경쟁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 최고 부자 1위에 김병주 MBK파트너스의 회장이 이름을 올리면서, 국내 사모펀드의 자본력이 다시 한번 눈길을 끌었다. MBK파트너스 지난해 6월 기준 운용자산이 256억 달러(약 32조원)로, 동북아시아 최대 사모펀드이자 세계 5위권 운용사다.
전문가들은 국내 PEF와 글로벌 PEF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반도체 및 IT 기반의 미래지향적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이 적절한 투자처로 떠오르면서, 해외 PEF의 국내 시장 진출도 활발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은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외국계 PEF의 투자금액 증가 폭이 국내 PEF 투자금액 증가 폭보다 높다”면서 “고금리와 경기침체 지속으로 트랙레코드가 부족한 신생·중소형 사모운용사의 난항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이어 고 연구원은 “이 가운데 대규모 블라인드 펀드 결성이 가능한 대형사 및 외국계 운용사 위주로 사모펀드 시장이 재편될 것”이라며 “사모운용사는 투자 대상 및 사업 다각화 등 차별화된 시장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용린 연구위원은 지난해 열린 ‘사모펀드 시장 육성과 투자자 보호 방안’ 세미나에서 국내 PEF의 추후 과제로 운용사(GP)의 운용역량 강화와 출자자(LP)의 GP 검증 기능 강화 등을 꼽았다.
박 위원은 “피투자기업의 우수한 성과창출과 해외투자 확대, 국내 PE 브랜드의 정립, 글로벌 출자자 유치 등 운용역량을 개선해야 한다”며 “LP는 성과분석 방법론의 활용과 국내 PE 벤치마크 지수 설정 등으로 운용사를 검증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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