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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에 막힌 유전자 변형 농작물…돈도 기술도 美로 간다

[다시 불거진 GMO 논란]②
유전자 변형 생물체 개발사, 美서 기회 찾아
우리나라 평가 심사 까다로워…상업화 요원
유전자 가위 기술 적용 작물과 구분도 필요
“정부의 R&D 지원 및 상업화 지원 일관돼야”

가뭄으로 마른 농지에 물을 주는 농부 [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선모은 기자] 농촌진흥청이 최근 미국 농업 기업 심플로트의 갈변 없는 감자를 심사하며 수입 승인 ‘적합’ 판정을 내렸다. 이와 관련해 유전자 변형 생물체를 둘러싼 논란에 다시 불이 붙었다. 특히 유전자 변형 기술을 연구해 온 학계에서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유전자 변형 기술의 연구개발(R&D)을 지원하면서도 정작 심사와 승인에 깐깐한 잣대를 들이댔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개발한 유전자 변형 기술이 상용화되지 못했고 해당 기술을 개발한 연구자 다수가 미국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유전자 변형 생물체의 수입에 반발하고 있지만, 이번 승인이 향후 연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지도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효연 제주대 교수는 ‘제초제 저항성 잔디’를 들고 미국으로 향할 계획이다. 이 잔디는 우리나라에서 유전자 변형 생물체로 재배 승인을 신청한 1호 작물이다. 이 교수가 제초제 저항성 잔디를 개발한 것은 2000년. 이 교수는 잔디의 유전자를 변형해 제초제를 뿌려도 죽지 않는 잔디를 개발했다. 통상 잡초를 죽이기 위해서는 여러 종류의 잡초를 죽이는 제초제를 다양하게 사용한다. 하지만 이 교수가 개발한 제초제 저항성 잔디는 제초제의 독성에 강하다는 장점이 있다. 잔디를 관리하는 사업장에서 제초제 저항성 잔디를 심으면 특정 잡초를 죽이는 제초제가 아닌 일반적인 제초제를 사용해도 되기 때문에 관리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교수는 제초제 저항성 잔디를 개발한 지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재배해도 된다는 허가를 받지 못했다. 유전자 변형 생물체의 평가 심사를 담당하는 여러 부처에서 이 교수에게 여러 차례 보완 자료를 요청하고도 심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 이 교수는 사실상 제초제 저항성 잔디를 우리나라에서 먼저 상용화하기 힘들다고 보고 미국 승인을 오랜 기간 준비해 왔다.

그런데 국내에서 갈변 없는 감자 수입 승인 절차가 한 단계 진척 되는 상황을 맞았다. 우리나라에 유전자 변형 생물체를 들여오려면 해양수산부·환경부·농림축산식품부·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의 평가 심사를 거쳐야 한다. 이 중 미국 농업 기업 심플로트의 갈변 없는 감자가 해양수산부, 환경부에 이어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농촌진흥청의 평가 심사를 최근 통과했다. 이 감자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평가 심사도 통과하면 식탁에 오르게 된다. 이에 학계에서는 정부의 평가 심사 기준이 일관되지 못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제초제 저항성 잔디처럼 수백건의 유전자 변형 생물체가 승인 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기업과 해외 기업에 다른 기준을 들이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번에 농촌진흥청의 평가 심사를 통과한 갈변 없는 감자는 우리나라 기업도 충분히 개발할 수 있는 작물이라고 학계에서는 설명한다. 미국 심플로트의 유전자 변형 감자는 ‘갈변’이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런 특성의 감자는 우리나라 바이오 기업인 툴젠이 앞서 개발한 바 있다. 툴젠이 유전자 가위 기술로 개발한 갈변 억제 감자 이야기다. 툴젠은 2022년 미국 농무부로부터 이 감자를 일반 작물로 판매할 수 있는 허가도 받았다. 툴젠은 유전자 가위라는 특수한 기술로 갈변 억제 감자를 개발했는데, 미국에서는 이런 작물과 유전자 변형 생물체를 구분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기술로 개발한 감자도 유전자 변형 생물체로 보고 있어 판매나 재배 등을 할 수 없다. 

정부 지원 받은 '가뭄 저항성 벼' 규제 장벽 못넘어

정부가 R&D 측면에서는 유전자 변형 생물체의 상업화를 목표로 삼으면서도 정작 평가 심사 단계에서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양도 서울대 교수가 개발한 가뭄 저항성 벼는 정부가 농산업의 국가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한 R&D 사업으로 1000억원 규모의 비용을 지원받았다. 이를 통해 추위나 가뭄 등 열악한 환경을 잘 견디는 트레할로스 벼를 개발했다. 혹독한 자연환경에서 서식하는 작물에서 발견되는 트레할로스라는 유전자를 활용한 새로운 벼 품종이다. 하지만 최 교수도 상용화의 벽에 막혀 이 벼 품종을 인도의 농업 기업에 넘겼다.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고서 기술을 개발했지만, 이런 자금 투입과 R&D 노력이 우리나라 농산업의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못한 셈이다.

학계에서는 유전자 가위와 같은 신기술이 적용된 작물은 유전자 변형 생물체라는 큰 틀과 구분해야 한다고도 지적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전물질이 일부 변형된 농작물을 모두 유전자 변형 생물체로 보고 있어 신기술을 개발, 육성하기에 한계가 많아서다. 특히 유전자 가위 기술은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앞서는 기술이기도 하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신약 개발에도 쓰이는 신기술이라 정부가 산업 육성 측면에서 유전자 변형 생물체에 대한 규제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유전자 변형 생물체를 연구하는 한 학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에 유전자 변형 기술이 없는 게 아니”라며 “정부가 유전자 변형 생물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인 분위기만 고려해선 안 되며 R&D 지원과 상업화 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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