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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보급률 ‘모순의 미학’

주택보급률 ‘모순의 미학’

정부가 주택공급 정책의 기준이자 지표로 삼는게 주택보급률이다. 하지만 주택보급률이 이미 오래 전에 통계로서의 가치를 잃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11월 말에 사상 최초로 ‘주택보급률 1백%’라는 큰 업적을 달성할 것이란 정부쪽 소식통에도 불구하고 주택보급률을 둘러싼 논란이 가시지 않고 있다. 사실 주택보급률의 고무줄식 통계나 주택보급률의 ‘허와 실’을 따지는 논란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이는 지금까지 정부의 주택정책이 질적인 부분보다 지나치게 양적인 증가만을 고집해 왔기 때문에 생겨난 이상현상이다. 우리나라 주택 관련 법률의 근간이 되는 행정법이 주택공급을 ‘촉진한다’는 의미의 ‘주택건설촉진법’이라는 사실만 봐도 정부의 주택 가구 수에 대한 맹목적인 의지를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정책은 그 수혜 대상과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이에 따라 정부가 주택공급 정책의 기준이자 지표로 삼는 게 바로 주택보급률이다. 건설교통부는 주택보급률을 잣대로 매년 임대아파트 등의 공급 규모를 책정해 왔고, 주택 정책의 실제 성과가 이 정도까지 왔다는 홍보를 할 때도 주택보급률을 제시했다. 주택보급률이 정확한 통계로서의 가치를 잃고 정부의 입맛에 따라 정책의 얼굴 마담으로 전락한 것이다.

▶공급 우선시하는 주택보급률=그렇다면 주택보급률의 계산은 과연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까? 내년도 1조5천6백12억원의 예산이 배정된 건교부 주택정책의 지표를 계산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리나라 총 주택 수를 총 가구 수로 나누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총 주택 수와 총 가구 수의 범위를 과연 어디까지로 정할 것인가이다. 여기서 주택보급률이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것은 5년마다 한 번씩 실시하는 통계청의 인구센서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방문조사 통계인 만큼 인구센서스의 주택 수와 가구 수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알고 보면 무시할 수 없는 허점이 의외로 많다. 주택보급률은 당연히 분자인 주택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높아진다. 그런데 인구센서스의 주택 수는 여러 가구가 살고 있는 단독주택과 다가구주택·상가주택 등을 모두 소유자 중심의 주택 한 채로 계산하고 있다. 조사 원칙부터가 정확한 통계자료로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실제로 1990년대 이후 다가구주택 건설이 유난히 많았던 서울 지역은 정확한 주택 수를 잡아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주택보급률의 분모가 되는 인구센서스의 가구 수 통계에도 문제가 있긴 마찬가지다. 인구센서스상 가구 개념은 혈연으로 구성된 일반 가구만을 뜻해, 일인 가구나 비혈연 가구·외국인 가구 등은 모두 배제한다. 핵가족화와 독신 가구가 크게 늘고 있는 최근의 사회적 변화와 갈수록 증가세인 외국인 가구를 전혀 수용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주택보급률은 산출의 근거가 되는 분자와 분모 모두 정확한 수치가 아니다. 당연히 주택보급률도 주택 수와 가구 수의 산정 방식에 따라 뒤죽박죽될 수밖에 없다. 대한주택공사 주택도시연구원의 임서환·진미윤 연구원이 이달 초 발표한 ‘새로운 주택정책 지표의 모색’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인구센서스 당시 주택보급률은 96.2%이며, 2001년도 건설교통부의 추정 주택보급률은 98.3%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가구 수 조사에서 제외한 일인 가구가 많은 지역의 보급률은 이보다 훨씬 낮아질 수 있고, 다가구주택과 오피스텔 등 주택 이외의 거처 수가 많은 지역의 경우 보급률이 반대로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이 보고서는 가구 수에 혈연 가구 외에 일인 가구나 비혈연 가구를 포함할 경우 주택보급률이 96.2%에서 80.2%로 크게 감소한다는 견해도 내놓고 있다. 임서환 주택도시연구원 연구원은 “주택 수를 가구 수로 나눈 주택보급률이라는 개념은 주택공급만을 우선시하는 세계 유일의 통계지표”라면서 “주택 수와 가구 수의 반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보급률을 정부의 정책지표로 삼는 것은 상식밖의 발상”이라고 비판한다.

▶질 따지는 대체 통계 나와야=상황이 이렇다 보니 양을 우선시한 현행 주택보급률을 대체할 수 있는 통계가 하루빨리 만들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주택공급이 일정 목표를 달성한 만큼 지금부터라도 주택의 질적인 면까지 보여줄 수 있는 통계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주택보급률 외에 1인당 주택 면적이나 건축 경과년수·주거시설 수준 등을 통계화하는 작업이 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윤주현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현행 주택보급률은 주택보급률이 1백%를 넘어서는 시점인 2005년 이후에는 정책 지표로서 의미를 상실할 것”이라며 “그 이전에 주거복지 개념의 통계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향후 주택시장이 신규 공급보다는 리모델링 등 기존 주택의 관리를 통한 주거 수준 향상으로 재편될 것”이라며 “주거상태와 주거복지를 만족할 수 있는 정책이 수립되려면 최저 주거기준 등의 통계를 명확히 해 정책의 수혜대상부터 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건교부가 지난 2000년부터 최저 주거기준 미달 가구를 조사하고 있는 만큼 국민주택기금의 일부를 예산으로 배정해 정부 차원의 설문조사와 표본조사를 실시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으로 꼽힌다. 한편 집값 안정을 위한 주거비 부담 지표도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이미 시행키로 한 통계청 차원의 주택 매매가 및 전세가 상승률 조사는 물론 주택 가격이 가계소득에 비해 얼마나 높은지를 볼 수 있는 연 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PIR지수)과 월 소득 대비 임대료비율(RIR) 등도 추가로 조사해야 한다는 의견이 높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 소장은 “2001년의 경우 전체 공급 물량 중 수요가 많은 아파트 공급비율은 46%에 그쳤다”면서 “주택보급률이 1백%를 넘으면 소득 수준에 맞는 주택 수요를 예측해 적절한 유형의 주택을 공급하므로써 주택 가격도 일정부분 조절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현행 주택보급률로 대변되는 관련 통계는 질적인 제고와 더불어 주택 가격과 같은 민감한 분야로까지 확대 재생산되야 한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선진국에서는=주택보급률이 1백%가 넘어 1백10∼1백20%대에 달하는 미국·일본·프랑스·영국 같은 선진국의 경우 주택보급률과 집값의 상관관계는 무엇일까? 주택보급률이 1백%가 넘으면 집값이 안정되면서 내리는 것일까? 우문처럼 들리지만, 현실적으로는 궁금한 대목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얘기하면 주택보급률 1백%와 집값은 전혀 ‘무관’하다. 또한 집값은 주택보급률이 아닌 경기와 밀접하게 연관되면서 등락을 거듭한다는 게 주택전문가들의 얘기다. 주택보급률이 1백%가 넘는다 해도 집값은 더 오를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더 내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올해 미국의 집값이 크게 오른 게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 연방주택사업감독청(OFHEO)이 최근 발표한 2002년 주택가격지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1일부터 올해 6월30일까지 1년간 주택가격 상승률이 가장 높은 지역은 워싱턴D.C.로 15.23% 올랐고, 2위는 로드아일랜드주로 12.72%, 3위는 메인주로 10.96%였다. 뉴욕시는 11.05%가 올랐다. 김성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보급률이 1백%를 넘은 선진국의 경우 집값은 구매력과 직결돼 있다”고 하면서 “일본 동경 집값이 예전의 3분의 1 수준으로 폭락한 게 대표적인 예”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도 보급률 1백%를 넘으면 투기바람이 전보다는 더 적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그는 또한 “보급률 1백%가 넘더라도 중장기적인 주택가격 안정을 꾀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임대주택을 일정부분 보유해야 한다”면서 “선진국의 경우 임대주택비율이 5∼10%선인 데 반해 우리는 3% 미만”이라고 지적한다. 김현아 박사(한국건설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는 “선진국에서는 우리와 같은 주택보급률이란 지표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대신 인구 1천명당 주택호수를 따진다”고 말한다. 선진국의 경우 1천명당 평균 4백25호 정도 된다. 반면 우리가 2백50호 수준. 우리가 주택보급률 1백%라 해도 앞으로 주택이 더 많이 공급돼야 할 것으로 그는 내다본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 소장은 “20∼30년에 주택보급률 1백%를 달성한 미국·영국·일본·프랑스 같은 선진국의 경우 주택가격은 공가율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말한다. 공가율이 높으면 주택가격이 내려가고, 공가율이 낮으면 주택가격이 올라가는 식이다. 서울의 빌딩 임대료가 등락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기본적으로 어느 사회나 공가(빈집)는 있는데, 우리나라도 현재 6∼7%는 빈집을 갖고 있다. 주택보급률이 1백%가 넘어도 5∼10%대의 공가율이 발생하고, 공가율 비율의 등락에 따라서 가격도 오르내린다는 설명. 김소장은 특히 “보급률 1배%가 넘으면 우리의 주택가격이 안정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시각”이라고 하면서 “영국 같은 선진국이 대표적인 경우인데, 한 해에 20∼30%씩 등락을 하는 게 예사”라고 전한다. 선진국의 예를 봐서 우리의 집값 변동은 오히려 지금부터라고 봐도 틀리지 않다고 말한다. 선진국의 경우 5년 내지 10년 주기로 집값이 등락을 해왔다는 설명이다. 윤주현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주택보급률이 1백%가 넘는 선진국이라고 해도 항상 지역별로 집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는 미스매치가 일어나면서 집값이 변동을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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