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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을 모은 사람들]“경제 흐름 따라 주식·부동산 번갈아 투자”

[10억을 모은 사람들]“경제 흐름 따라 주식·부동산 번갈아 투자”

김민철 과장은 평소 경제신문의 추천 경매물건 난을 눈여겨본다. 사진은 경매물건 현황 조사서를 보는 입찰자들.
IMF 직후인 1998년 초, 당시 건설회사 대리였던 김민철(가명·38)씨는 아내의 명예퇴직금 3천5백만원의 운용 방법을 놓고 작은 실랑이를 벌였다. 증권회사에 근무했던 아내는 주식으로 돈을 까먹은 사람을 숱하게 본 탓인지 안전한 예금에 넣자고 주장했다. 반면 김씨는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에 따른 주가 폭락이므로 지금은 주식을 살 때”라는 입장이었다. 팽팽히 대립했지만 결국 김씨가 이겼다. 그 돈으로 김씨는 SBS(서울방송)·한국기술투자·대한해운 주식을 샀다. 주가는 그의 기대 이상으로 올라 20배에 가까운 투자수익을 남겼다. 단 한 번의 의사결정으로 인생 역전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의사결정의 이면에는 6년여의 경제신문과 잡지 읽기가 숨겨져 있다.

빚 내서 주식하면 안 돼 지난 92년 한 건설회사의 대구지사에서 근무했던 김씨는 7개월 후 서울로 발령을 받았다. 그의 수중에 있는 돈이라곤 26만원이 전부였다. 전세집을 구할 형편이 안 돼 그는 하숙생활을 시작했다. 하숙비 내고 가끔 고향인 대구를 다녀오고 친구들 만나다 보면 남는 돈이 없었다. 대학생활을 할 때는 몰랐던 돈의 존재를 절감했던 시기다. “서울에서 살려면 돈이 있어야 합니다. 돈이 없으니 전혀 사람 구실을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재테크에 관심을 갖게 됐죠.” 이런 생활이 반복되는 와중에 그는 선배의 소개로 만난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하게 된다. 막상 결혼을 하더라도 문제였다.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도와준 것은 결혼비용이 전부였다. 그래서 자신과 아내의 명의로 전세금 3천3백만원을 전액 대출받아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15평짜리 연립을 얻었다. 94년 12월의 일이다. 이 때까지만 해도 맞벌이 생활을 하면서 차곡차곡 은행 이자를 갚아나가는 게 재테크의 전부였다. 하지만 그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사회생활과 더불어 구독하기 시작한 경제신문과 경제주간지를 퇴근 후 집에서 숙독했다. 매일 꼼꼼히 읽다 보니 경제 흐름이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6년간 경제신문과 경제주간지를 읽은 결과가 바로 98년 초의 주식투자였던 것이다. “재테크를 하기 위해 따로 공부하는 것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신문과 잡지는 열심히 봤습니다. 이렇게 6년 정도 했더니 경제에 대한 감(感)이 생기더군요." 주식으로 종잣돈이 생기자 그는 본격적인 재테크에 나섰다. 이번에는 부동산이었다. 부동산 시세를 자세히 들여다 보니 주가는 IMF 이전 수준을 회복했지만 부동산은 그렇지 못했다. 그는 부동산이 꿈틀거리기 전 단계라는 판단이 들었다. “공적자금이 투입되면서 통화량이 엄청 늘어났더군요. 시중에 돈이 많아지면 금리가 낮아지고 실물자산인 부동산값이 오른다는 것은 하나의 상식에 속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주식을 일부 처분해 집을 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아내는 반대하고 나섰다. 더 이상 집값이 오를 것 같지 않은데 굳이 집을 왜 사느냐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는 밀어붙였다. 종잣돈은 마련됐고 문제는 어느 부동산을 사느냐였다. 그는 부동산 투자 정보도 주식과 마찬가지로 신문에서 얻었다. 한 경제신문의 ‘부동산 재테크 코너’에 실린 서울 한강변 투자전망에 대한 기사에 주목했다. 기사의 요지는 ‘앞으로는 한강 조망이 가능한 부동산이 투자 유망하다’는 것이다. 한강변 아파트에 사는 한 가정주부가 우울증으로 자살한 사건도 주의 깊게 살폈다. “강변에 살면 주부들이 우울증에 걸린다는 기사도 나오고 투자 유망하다는 기사도 나왔습니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강변’이라는 게 하나의 테마로 등장한 것에 주목했습니다.” 그래서 98년 10월께 재개발 가능성이 높은 서울 금호동의 연립주택을 1억1천5백만원에 매입했다. 지금 이 연립의 시세는 1억6천만원으로 약 5천만원 오른 상태다. 재개발로 아파트를 배정받으면 아파트에 입주에 살 생각이었지만 그는 전략을 수정하게 된다. “재개발 투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조합원이 늘어난다는 사실을 몰랐죠. 조합원이 많아지니 당초 32평을 기대했는데 24평밖에 받을 수 없다고 하더군요. 아파트에 살려면 최소 32평이 돼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크더라도 이사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거든요.” 그래서 다시 아파트를 찾아 나섰다. 이번에는 경매였다. 경매는 처음이었지만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탓에 권리 분석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경매 사이트와 신문의 추천 경매 물건을 꾸준히 살폈다.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아파트가 눈에 들어 왔다. 아내의 직장 근처라 경매만 받으면 출퇴근도 편할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현장을 방문해 보니 세들어 사는 임차인이 없어 세입자를 내보내야 하는 명도문제도 없을 것 같았다. 수중에 있던 현금 5천만원과 은행의 경락자금 대출을 받아 1억6천8백만원에 낙찰을 받았다. 첫 경매치곤 대성공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변호사 사무실로부터 전화가 왔다. 당초 살던 임차인이 소송을 걸었다며 집을 비운 기간 동안 이자를 달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제도가 바뀌었지만 2년 전만 해도 임차인이 경매를 넣을 경우 임차인은 집을 비워줘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임차인이 집을 비운 기간 동안의 이자를 낙찰자인 저에게 달라고 했던 거죠.” 그는 이에 당황하지 않고 법 조문을 조목조목 따져봤다. 따져본 후 이자를 줄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이는 경매와 별개의 사건이니 다시 소송하라고 답변을 한 후 집을 비워 달라는 명도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명도 소송을 취하하는 조건으로 임차인과 합의한 후 2001년 6월에 입주를 했다. 현재 이 아파트의 가격은 낙찰가의 두 배 이상인 3억5천만∼3억7천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세 번의 투자로 10억원에 가까운 재산을 모았지만 그에게도 실패의 경험은 있다. 98년 초 대대적인 벤처 붐을 타고 그는 주식으로 번 돈을 상당 부분 벤처주식에 투자했다. 엔젤로 참여하고 장외주식도 매입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일부 자금은 회수했지만 아예 회사가 망해 날린 돈도 많다. 그는 이 과정에서 많을 걸 배웠다고 말한다. “내재가치 분석 없이 열기에 도취해 투자를 해선 절대 돈을 벌 수 없다는 걸 알았죠. 그나마 저는 다행입니다. 빚을 내지도 않았고 그 동안 주식으로 벌었던 돈으로 샀으니까요.” 그는 절대 주식은 빚을 내서 투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데 남의 돈으로 했다가 손실을 두 배로 떠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식과 종잣돈은 재테크의 두 축 최근 그는 금호동 연립을 내놓았다. 부동산 중개업소에서는 더 오를 가능성이 높은데 왜 파느냐고 얘기하지만 그는 이미 팔기로 결심한 상태다. “늘 머리 속에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봅니다. 운이 좋아서 주식과 부동산으로 돈을 벌었지만 금리가 여기서 더 오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금리 상승은 부동산에 치명적이거든요.” 당분간 금리 상승은 없을 것이라는 데 자신도 의견을 같이 하지만 만일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집을 판다는 것이다. 시장 상황이 불확실하다는 점도 그가 현금화의 필요성을 느끼는 이유다. “기회는 또 오는 법이거든요. 어느 정도 수익이 났으니 포트폴리오를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벤처 투자의 경험으로 얻은 경험이죠.” 그는 최근 부동산에 대한 지식을 더 쌓기 위해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단순한 인맥 형성을 위한 경영대학원보다는 인맥과 지식 모두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부동산 대학원을 선택했다. 거기서 그는 대학원 동료들과 땅도 보러다니고 부동산에 대한 얘기를 많이 나눈다. “샐러리맨들은 정보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의 인적 네트워크를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정보도 얻고 투자를 할 수 있거든요." 그는 샐러리맨이 재테크로 성공하려면 ‘지식과 종잣돈과 인적 네트워크’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세 가지만 있으면 큰 부자는 아니더라도 경제적 불편함 없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김민철 과장의 10억 만들기 과정 1992년 대학 졸업 후 건설회사 입사, 7개월 후 서울 발령 1994년 3천3백만원 대출받아 서울 송파구 방이동 15평 연립 전세 입주 1998년 아내 명예퇴직금 3천5백만원 주식 투자, 20배 투자 수익 1998년 보유 주식 일부 팔아 서울 금호동 재개발 지분 1억1천5백만원에 매입(현 시세 1억6천만원) 2001년 서울 강동구 고덕동 32평 아파트 1억6천8백만원에 경매로 매입(현 시세 3억5천만∼3억7천만원) 2003년 현재 은행 예금 등 현금자산 6천만원 주식 투자 원금 3억2천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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