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들의 결혼을 둘러싼 뜨거운 논쟁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둘러싼 뜨거운 논쟁
The War Over Gay Marriage
2001년 어느 겨울날 16년 된 레즈비언 커플 줄리와 힐러리는 어린 딸 애니를 위해 비틀스의 ‘All You Need Is Love’를 틀었다. 힐러리는 애니에게 아는 사람들 중에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 이름을 말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애니는 엄마들의 결혼한 친구들(모두 이성애자) 이름을 줄줄이 댔다. “그럼, 애니의 엄마들은?” 힐러리가 이렇게 묻자 애니는 “사랑한다면 결혼을 해야죠”라고 대답했다.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고 힐러리는 그 순간을 회고했다. 그후 줄리와 힐러리는 혼인 신고를 위해 매사추세츠 주정부 공중보건과를 찾았다.
줄리는 잘 될 거라고 확신했지만 힐러리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수갑을 차고 끌려가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힐러리는 돌이켰다. 혈액검사 결과와 30달러를 든 채 두 사람은 초조한 심정으로 민원 창구에 신청서를 요청했다. 그러나 담당 직원은 “혼인 신고를 하려면 부군 되실 분들을 데려 오세요”라고 했다. 힐러리와 줄리는 책임자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담당 직원은 정중하게 “두분은 결혼할 수가 없어요. 저희로서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방법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게이·레즈비언을 옹호하는 사람들’(GLAD)의 도움으로 힐러리와 줄리는 결혼할 권리를 인정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조만간 매사추세츠주 대법원은 그에 대한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미국의 각급 법원들은 지금까지 한번도 동성간의 결혼을 인정한 적이 없다. 그러나 최근 힐러리와 줄리를 비롯, 결혼·입양·직장생활·복지혜택 수혜 등에서 이성애자와 동등한 권리를 인정받고자 하거나 혹은 단지 존중받기를 원하는 미국의 모든 동성애자들에게 연방 대법원으로부터 낭보가 날아들었다.
연방 대법원의 2002∼2003년 회기 마지막날인 지난 6월 26일 이뤄진 ‘로렌스 대 텍사스’ 재판의 결과는 사실 전혀 뜻밖의 것은 아니었다. 5년 전 휴스턴의 한 아파트에서 남자 동성애 커플인 타이런 가너와 존 게데스 로렌스가 동성 성행위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고 벌금 2백달러를 물었다. 그 후 가너와 로렌스는 연방 대법원에 텍사스주의 동성 성행위 금지법에 대한 위헌 심판을 제청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6월 26일 연방 대법관들은 6 대 3으로 이 법을 위헌으로 판결했다. 어떤 의미에서 연방 대법원은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인식 변화를 이제야 따라잡고 있다. 1986년 ‘바워스 대 하드윅’ 재판에서 연방 대법원이 조지아주의 동성 성행위 금지법을 합헌으로 인정했을 당시 이와 동일한 법이 입법된 주는 25개에 달했다. 17년이 지난 현재 4개 주만이 그런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9개 주는 금지법이 있지만 거의 시행되지 않고 있다).
이번 결정은 연방 대법원이 극적인 입장 전환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관측통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는 한편 향후 미국 동성애자들의 지위가 영구히 바뀔 것이라는 기대를 낳고 있다.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은 연방 대법원에서 대법관들이 내린 다수 의견을 발표하며 동성애자들도 “사생활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고 선언했다. 그의 조용한 목소리에는 긴장감이 묻어 있었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의미심장했다.
케네디는 수정헌법 제14조 ‘정당한 절차’ 조항에 따라 동성애자들이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천명했다. “주(州)는 개인적인 성행위를 범죄로 규정함으로써 동성애자들의 품위를 훼손하고 그들의 운명을 통제할 수 없다”고 케네디는 말했다. 그의 판결이 낭독될 때 몇몇 동성애 인권운동가들과 변호사들은 숨죽여 눈물을 흘렸다.
‘로렌스’ 재판에 대한 케네디 대법관의 판결은 “지난 1백년간 가장 의미심장한 양대 판결 중 하나”라고 에모리대 법학자이자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전기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 데이비드 개로는 지적했다. 그는 “대법원이 지금까지 발표한 다수 의견 가운데 가장 진보적인 것이었다.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낙태를 합법화시킨 1973년의 ‘로 대 웨이드’ 재판보다 더욱 기념비적인 사건일 것”이라고 말했다. 개로는 이번 판결은 적어도 상징적 의미에서 공립학교의 흑백 분리정책을 부당하다고 선언한 1954년의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재판과 같은 반열의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로렌스’ 재판의 파장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기까지는 몇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브라운’ 재판 후 10년이 지나도록 미국 남부의 일부 학교가 분리정책을 고수했던 것처럼 동성애자들에게 이성애자들과 동등한 법적 권한을 부여하려는 노력은 동성애를 여전히 도덕적 일탈로 간주하는 많은 사람들과 단체들의 거센 저항에 부닥칠 것이다. 앞으로 수년간 동성애자의 결혼과 입양, 입대와 취직을 둘러싼 법정 공방이 여기저기에서 들끓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로렌스’ 판결이 연방 대법원 내부에서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동성애에 대한 인식 변화를 상징하는 이정표가 되리라는 점이다.
1986년 연방 대법원이 ‘바워스’ 재판에 대해 판결을 내릴 때 바이런 화이트 대법관은 동성애자도 자기 집에서 성행위를 할 헌법상의 권리가 있다는 주장을 일축했다. 대법관들의 다수 의견을 정리한 판결문에서 화이트는 그런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크게 변했다. 이번 판결에서 동성 성행위 금지법을 위헌이라고 한 대법관 6명 중 4명이 공화당 출신 대통령들에 의해 임용된 보수파 판사들이라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케네디·데이비드 수터·존 폴 스티븐스는 모두 동성애자들의 사생활권을 인정했고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은 이성애자의 비정상적인 성행위는 용인하면서 동성간 성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제한된 견해를 고수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법관들의 견해는 여론과 상당히 합치한다. 미국인 10명 중 6명은 합의 하에 이뤄지는 성인 동성애자들의 성행위를 합법적 행위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베테랑 동성애자 인권운동가는 대법관들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이번 판결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람다 법적 방어·교육기금’의 케빈 카스카트는 1984년 이래 동성애자들의 권리 옹호를 위해 힘써온 변호사 가운데 한사람이다. 과거에 그는 ‘혐오감 요소’(이성애자들이 동성애 행동에 대해 느끼는 반감)와 싸워야 했다. 카스카트는 “케네디 대법관의 판결은 혐오감 요소를 갖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17년 전 판결에 영향을 미쳤던 혐오감 요소에 대한 사과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법관 중 한명은 여전히 역겨워했다. 안토닌 스칼리아 대법관은 매섭고 날카로운 음성으로 반대 의견을 읽어 나갔다. 그는 “동료들이 문화 전쟁에서 한쪽 편을 들고 있다. 대법관의 다수가 동성애를 옹호하는 쪽으로 거의 기울었다. 대다수 미국인들은 대놓고 동성애 행위를 하는 사람이 자기 사업 파트너가 되거나 자녀의 보이스카우트 단장이나 학교 선생님, 혹은 자기집 하숙생이 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스칼리아는 이번의 다수 의견이 ‘현 사회질서에 중대한 혼란’을 가져올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가 도덕을 법으로 통제할 권한이 있는가 하는데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스칼리아는 이번 판결은 동성간 결혼 문제와는 관계없다는 대법관 다수의 의견을 지적하면서 비웃었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스칼리아의 질책은 인상적이기는 했지만 적어도 단기적으로 볼 때 그것은 법적·정치적 현실을 과장한 것이기도 했다. 동성애자들도 이제는 어느 정도 헌법상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로렌스 판결로 동성애자들도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를 새로 갖게 됐다는 의미)를 주장할 수 있게 됐지만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정당한 국가 및 주의 이익’이 걸려 있는 경우 이런 권리들을 무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국가로서는 무엇보다 안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군에서의 사생활 보호는 무시될 수 있는 것이다.
또 미 국방부가 동성애자들에 대해 ‘묻지도 말고 스스로 밝히지도 말라’는 정책을 고수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리고 케네디 대법관의 말처럼 이성간의 결혼 같은 ‘전통 제도’를 고수함으로써 국가가 얻는 이익이 동성애자들의 ‘품위를 손상받지 않을 권리’보다 우위에 설 수도 있다. 로렌스 판결 이후 동성애자들은 더이상 범죄자로 불리지 않게 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정상인’들과 똑같은 권리들을 누릴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최근 미국 대법원은 ‘주정부의 권리’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연방주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여론이 강할 경우에는 주정부가 자체적으로 법을 제정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여기에는 정치적인 문제가 개입되지 않을 수 없다. 일부 보수단체는 로렌스 판결에 격분했다. ‘전통 가치 연합’의 회장인 루 셸던 목사는 “‘정치적으로 올바른’(politically correct: 인종·성 차별을 배제하자는 주의를 말한다) 대법관들이 날뛴다고 해서 시민들이 자신의 신앙이 짓밟히도록 가만히 앉아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연방 대법원에 공석이 생기면 새 대법관 임용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질 것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현재의 대법원에는 유대교·기독교 규범을 따르는 대법관이 없다. 우리는 우리편이 누구인지, 누구를 교체해야 할지 안다”고 셸던은 말했다. ‘미국을 우려하는 여성들’의 회장 샌디 라이어스는 도덕적인 대결전을 예상한다. 그녀는 “우리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있다”고 말했다. 스칼리아 대법관을 포함한 일부 보수파들은 로렌스 재판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중혼·근친상간·매춘을 금지하는 법을 손상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론 앞으로도 각 주정부는 여성·미성년자를 착취하거나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성적 행위를 금할 수 있다. 그러나 합법적인 동성 성행위에 대한 우려는 곧바로 대통령 선거의 이슈가 될 전망이다. 백악관은 최근 로렌스 판결에 대한 방어에 나섰다.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동성애자의 권리는 각 주가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고 얼버무렸다. 부시의 정치고문들은 동성애자 유권자들이나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부시의 지지기반이 됐던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을 소외시키는 것을 두려워한다.
보수 단체인 문화와 가정 연구소의 밥 나이트 소장은 “부시 행정부의 관리들은 수백만표를 던져준 보수주의 운동가들보다 동성애자 운동가들이 더 나은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동성애자 권리를 둘러싼 싸움은 2004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내분을 일으킬 수 있는 ‘쐐기 이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도 여론보다 앞서가기를 원치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동성애자 권리를 둘러싼 싸움은 지방이나 주 차원에서 치러질 것이다. 그 싸움은 오래 끌 것이며 심한 반발이 따를 수도 있다. 주요 쟁점을 살펴보면:
동성애자 혼인: 지금은 동성애자 커플들이 결혼 서약 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고 뉴욕 타임스지 결혼란에도 동성애자 커플의 사진이 실리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어떤 주도 동성애자 결혼을 인정하거나 허용하지 않는다(교회의 경우 몇몇 종파는 동성 결혼을 지지하고 일부 종파는 강력히 반대한다). 미국의 주 가운데 버몬트가 동성 결혼에 대해 일반 결혼과 같은 권리와 의무를 상당 부분 부여하는 ‘시민 결합’(civil unions)에 가장 근접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결혼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순전히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다. 매사추세츠·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몇개 주는 법적으로 동성 결혼을 인정하는 쪽으로 서서히 다가가는 듯하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는 그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힘이 더 강하다. 약 37개 주와 연방정부는 결혼이 이성간에만 이뤄지는 것으로 정의하고 타 주에서의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결혼법 방어’ 정책을 채택했다.
이제는 로렌스 판결로 인해 이런 규정에 대한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6월 11일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한 법원은 동성 결혼에 대해 합법적이라고 판결했다(네덜란드·벨기에에서도 합법이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최근 열린 ‘동성애자 긍지’ 축제 기간 중 결혼허가청은 근무시간을 연장했다. 결혼 허가를 신청한 첫 2백쌍 가운데 12쌍이 국경을 건너온 미국인들이었다. 법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캐나다의 결혼 허가증을 받은 동성애 커플이 미국에서 인정될 수 있는지에 관해 의견이 양분되고 있다. 그러나 동성애자 결혼 문제가 앞으로 몇년 내는 아닐지 몰라도 머지않아 연방 대법원으로 올라갈 것으로 확신한다.
그때가 되면 대법원은 대통령 선거 결과를 따를 가능성이 높다. ‘미국적 가치’의 회장이며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적이 있는 게리 바우어는 공화당이 2004년 대선에서 동성애자 결혼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공화당의 ‘가정 가치’ 운동가들은 당을 지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반면 부시가 동성애에 대해 관대하게 비친다면 그는 자유주의자와 공화당 온건파들의 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입양과 자녀 부양권: 대다수 주는 독신 동성애자들의 자녀 입양을 허용한다. 동성애자들에 의해 양육된 아이들도 정상적인 부모들에 의해 양육된 아이들과 다를 바 없으며 그 아이가 동성애자가 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동성애자의 자녀 입양에 대한 거부 반응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래도 동성 커플에 자녀 입양권을 허용하는 주는 11개에 불과하다. 나머지 주들은 내부적으로 서로 상충되는 법을 갖고 있다. 1977년 애니타 브라이언트의 ‘어린이 구하기’ 캠페인의 영향을 받은 플로리다주에서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동성애자들은 자녀를 입양할 수 없다.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개념에 근거한 그 법은 로렌스 판결 후 개정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로렌스 판결의 가장 즉각적인 영향은 양육권 싸움에서 나올 것이다. 버지니아주의 한 판사는 한 레즈비언의 법정 진술에서 그녀의 동성애 행위를 자세히 설명하도록 요구한 다음 그녀의 행위가 부도덕하기 때문에 자녀 양육권을 가질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제 그런 추론은 위헌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다.
직장·학교·군에서의 동성애자: 대기업들은 이미 대세를 수용했다. 1992년에는 포천지 선정 5백대 기업 가운데 한 회사만이 동성애자 파트너들에게 혜택을 주었지만 지금은 그런 회사가 1백97개에 이른다. 그중 50대 기업이 27개다. 과거에는 거액의 에이즈 치료비를 떠안게 된다고 근거없이 우려한 일류 기업들이 이제는 동성애자 직원들을 서로 데려가려고 경쟁하고 있는 추세다.
반면 학교와 군의 동성애자 수용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리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동성애자·일반인 동맹’ 결성을 지지했다가는 보복이나 괴롭힘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그런데도 미국 전역에 약 1천7백개의 동성애 관용 지지 클럽이 결성됐다). 미 국방부는 군에서 동성애자를 공식적으로 수용하면 ‘부대 결속’이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묻지도 말고 스스로 밝히지도 말라’는 군 동성애 정책의 근간이 되는 법적 근거 가운데 일부는 신빙성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대법원은 군 문제에 관여하기를 원치 않는다.
앞으로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차별적인 법을 뒤집기 위해 20년 동안 노력해온 동성애자 변호사 연맹은 대세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람다 기금의 변호사인 수전 소머는 얼마 전 뉴저지주의 동성 결혼 금지법을 폐지하기 위해 제기된 소송의 재판에 나갔다. 그녀는 “로렌스 판결이 여기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법정에 걸어 들어갈 때 강력한 우리편이 있다고 느낀다. 바워스 대 하드윅의 판결이 동성애자들의 품위를 해쳤다는 케네디 대법관의 말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다.
람다 기금은 동성애자 가족이 지역사회에 유익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마을회관 모임을 개최함으로써 여론의 반발을 무마하려고 애쓰고 있다. 신디 메니긴(45)은 “마을회관 모임에서 ‘우리도 남들과 다를 바 없다. 중산층이며 교외에서 거주하는 따분한 커플’이라고 사람들에게 설명한다”고 말했다. 그녀와 동성 파트너 모린 킬리언(45), 그리고 자녀들인 조슈아(10)·세라(8)는 뉴저지주에서 합법적인 가정으로 인정받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
그녀는 “예쁘고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들을 보면 우리를 단란한 가정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도 자녀들을 갖고 있는 한 가정이며 나는 축구 코치를 하고 사진을 찍는 평범한 사람이고, 모린은 동네에서 제일 가는 디저트 요리사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러면 모린과 신디가 동성애 커플이라는 사실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보스턴에서도 진보적 동네인 자메이카 플레인에서 사는 줄리와 힐러리 굿리지(힐러리의 조모 성을 공동으로 채택했다. ‘긍정적’으로 들린다는 이유 때문이었다)는 가끔씩 고등학생들이 몰려와 차에 오줌을 깔기며 ‘다이크’(Dyke!: 동성애자라는 뜻의 비속어)라고 외치는 것만 제외하면 동네에서 부부로 인정받고 있다. 줄리는 얼마 전 딸 애니에게 로렌스 판결을 설명해주었다.
줄리는 “동성애 행위에 관해 말하지 않고 설명해야 했다. 애니는 아직 7년하고 9개월밖에 안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그녀는 애니에게 “어제 미국 연방 대법원이 아주 중요한 판결을 내렸단다. 동성애자들이 서로 사랑해도 좋다고 말했거든”이라고 말해주었다. 애니는 “그것 괜찮은데”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애니는 아직도 부모들이 결혼하기를 원한다.
With T. TRENT GEGAX,
DEBRA ROSENBERG, PAT WINGERT, MARK MILLER, STUART TAYLOR JR., MARTHA BRANT, TAMARA LIPPER,
JOHN BARRY, REBECCA SINDERBRAND, SARAH CHILDRESS and JULIE SCEL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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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어느 겨울날 16년 된 레즈비언 커플 줄리와 힐러리는 어린 딸 애니를 위해 비틀스의 ‘All You Need Is Love’를 틀었다. 힐러리는 애니에게 아는 사람들 중에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 이름을 말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애니는 엄마들의 결혼한 친구들(모두 이성애자) 이름을 줄줄이 댔다. “그럼, 애니의 엄마들은?” 힐러리가 이렇게 묻자 애니는 “사랑한다면 결혼을 해야죠”라고 대답했다.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고 힐러리는 그 순간을 회고했다. 그후 줄리와 힐러리는 혼인 신고를 위해 매사추세츠 주정부 공중보건과를 찾았다.
줄리는 잘 될 거라고 확신했지만 힐러리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수갑을 차고 끌려가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힐러리는 돌이켰다. 혈액검사 결과와 30달러를 든 채 두 사람은 초조한 심정으로 민원 창구에 신청서를 요청했다. 그러나 담당 직원은 “혼인 신고를 하려면 부군 되실 분들을 데려 오세요”라고 했다. 힐러리와 줄리는 책임자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담당 직원은 정중하게 “두분은 결혼할 수가 없어요. 저희로서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방법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게이·레즈비언을 옹호하는 사람들’(GLAD)의 도움으로 힐러리와 줄리는 결혼할 권리를 인정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조만간 매사추세츠주 대법원은 그에 대한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미국의 각급 법원들은 지금까지 한번도 동성간의 결혼을 인정한 적이 없다. 그러나 최근 힐러리와 줄리를 비롯, 결혼·입양·직장생활·복지혜택 수혜 등에서 이성애자와 동등한 권리를 인정받고자 하거나 혹은 단지 존중받기를 원하는 미국의 모든 동성애자들에게 연방 대법원으로부터 낭보가 날아들었다.
연방 대법원의 2002∼2003년 회기 마지막날인 지난 6월 26일 이뤄진 ‘로렌스 대 텍사스’ 재판의 결과는 사실 전혀 뜻밖의 것은 아니었다. 5년 전 휴스턴의 한 아파트에서 남자 동성애 커플인 타이런 가너와 존 게데스 로렌스가 동성 성행위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고 벌금 2백달러를 물었다. 그 후 가너와 로렌스는 연방 대법원에 텍사스주의 동성 성행위 금지법에 대한 위헌 심판을 제청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6월 26일 연방 대법관들은 6 대 3으로 이 법을 위헌으로 판결했다. 어떤 의미에서 연방 대법원은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인식 변화를 이제야 따라잡고 있다. 1986년 ‘바워스 대 하드윅’ 재판에서 연방 대법원이 조지아주의 동성 성행위 금지법을 합헌으로 인정했을 당시 이와 동일한 법이 입법된 주는 25개에 달했다. 17년이 지난 현재 4개 주만이 그런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9개 주는 금지법이 있지만 거의 시행되지 않고 있다).
이번 결정은 연방 대법원이 극적인 입장 전환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관측통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는 한편 향후 미국 동성애자들의 지위가 영구히 바뀔 것이라는 기대를 낳고 있다.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은 연방 대법원에서 대법관들이 내린 다수 의견을 발표하며 동성애자들도 “사생활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고 선언했다. 그의 조용한 목소리에는 긴장감이 묻어 있었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의미심장했다.
케네디는 수정헌법 제14조 ‘정당한 절차’ 조항에 따라 동성애자들이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천명했다. “주(州)는 개인적인 성행위를 범죄로 규정함으로써 동성애자들의 품위를 훼손하고 그들의 운명을 통제할 수 없다”고 케네디는 말했다. 그의 판결이 낭독될 때 몇몇 동성애 인권운동가들과 변호사들은 숨죽여 눈물을 흘렸다.
‘로렌스’ 재판에 대한 케네디 대법관의 판결은 “지난 1백년간 가장 의미심장한 양대 판결 중 하나”라고 에모리대 법학자이자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전기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 데이비드 개로는 지적했다. 그는 “대법원이 지금까지 발표한 다수 의견 가운데 가장 진보적인 것이었다.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낙태를 합법화시킨 1973년의 ‘로 대 웨이드’ 재판보다 더욱 기념비적인 사건일 것”이라고 말했다. 개로는 이번 판결은 적어도 상징적 의미에서 공립학교의 흑백 분리정책을 부당하다고 선언한 1954년의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재판과 같은 반열의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로렌스’ 재판의 파장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기까지는 몇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브라운’ 재판 후 10년이 지나도록 미국 남부의 일부 학교가 분리정책을 고수했던 것처럼 동성애자들에게 이성애자들과 동등한 법적 권한을 부여하려는 노력은 동성애를 여전히 도덕적 일탈로 간주하는 많은 사람들과 단체들의 거센 저항에 부닥칠 것이다. 앞으로 수년간 동성애자의 결혼과 입양, 입대와 취직을 둘러싼 법정 공방이 여기저기에서 들끓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로렌스’ 판결이 연방 대법원 내부에서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동성애에 대한 인식 변화를 상징하는 이정표가 되리라는 점이다.
1986년 연방 대법원이 ‘바워스’ 재판에 대해 판결을 내릴 때 바이런 화이트 대법관은 동성애자도 자기 집에서 성행위를 할 헌법상의 권리가 있다는 주장을 일축했다. 대법관들의 다수 의견을 정리한 판결문에서 화이트는 그런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크게 변했다. 이번 판결에서 동성 성행위 금지법을 위헌이라고 한 대법관 6명 중 4명이 공화당 출신 대통령들에 의해 임용된 보수파 판사들이라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케네디·데이비드 수터·존 폴 스티븐스는 모두 동성애자들의 사생활권을 인정했고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은 이성애자의 비정상적인 성행위는 용인하면서 동성간 성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제한된 견해를 고수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법관들의 견해는 여론과 상당히 합치한다. 미국인 10명 중 6명은 합의 하에 이뤄지는 성인 동성애자들의 성행위를 합법적 행위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베테랑 동성애자 인권운동가는 대법관들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이번 판결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람다 법적 방어·교육기금’의 케빈 카스카트는 1984년 이래 동성애자들의 권리 옹호를 위해 힘써온 변호사 가운데 한사람이다. 과거에 그는 ‘혐오감 요소’(이성애자들이 동성애 행동에 대해 느끼는 반감)와 싸워야 했다. 카스카트는 “케네디 대법관의 판결은 혐오감 요소를 갖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17년 전 판결에 영향을 미쳤던 혐오감 요소에 대한 사과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법관 중 한명은 여전히 역겨워했다. 안토닌 스칼리아 대법관은 매섭고 날카로운 음성으로 반대 의견을 읽어 나갔다. 그는 “동료들이 문화 전쟁에서 한쪽 편을 들고 있다. 대법관의 다수가 동성애를 옹호하는 쪽으로 거의 기울었다. 대다수 미국인들은 대놓고 동성애 행위를 하는 사람이 자기 사업 파트너가 되거나 자녀의 보이스카우트 단장이나 학교 선생님, 혹은 자기집 하숙생이 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스칼리아는 이번의 다수 의견이 ‘현 사회질서에 중대한 혼란’을 가져올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가 도덕을 법으로 통제할 권한이 있는가 하는데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스칼리아는 이번 판결은 동성간 결혼 문제와는 관계없다는 대법관 다수의 의견을 지적하면서 비웃었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스칼리아의 질책은 인상적이기는 했지만 적어도 단기적으로 볼 때 그것은 법적·정치적 현실을 과장한 것이기도 했다. 동성애자들도 이제는 어느 정도 헌법상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로렌스 판결로 동성애자들도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를 새로 갖게 됐다는 의미)를 주장할 수 있게 됐지만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정당한 국가 및 주의 이익’이 걸려 있는 경우 이런 권리들을 무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국가로서는 무엇보다 안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군에서의 사생활 보호는 무시될 수 있는 것이다.
또 미 국방부가 동성애자들에 대해 ‘묻지도 말고 스스로 밝히지도 말라’는 정책을 고수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리고 케네디 대법관의 말처럼 이성간의 결혼 같은 ‘전통 제도’를 고수함으로써 국가가 얻는 이익이 동성애자들의 ‘품위를 손상받지 않을 권리’보다 우위에 설 수도 있다. 로렌스 판결 이후 동성애자들은 더이상 범죄자로 불리지 않게 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정상인’들과 똑같은 권리들을 누릴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최근 미국 대법원은 ‘주정부의 권리’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연방주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여론이 강할 경우에는 주정부가 자체적으로 법을 제정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여기에는 정치적인 문제가 개입되지 않을 수 없다. 일부 보수단체는 로렌스 판결에 격분했다. ‘전통 가치 연합’의 회장인 루 셸던 목사는 “‘정치적으로 올바른’(politically correct: 인종·성 차별을 배제하자는 주의를 말한다) 대법관들이 날뛴다고 해서 시민들이 자신의 신앙이 짓밟히도록 가만히 앉아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연방 대법원에 공석이 생기면 새 대법관 임용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질 것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현재의 대법원에는 유대교·기독교 규범을 따르는 대법관이 없다. 우리는 우리편이 누구인지, 누구를 교체해야 할지 안다”고 셸던은 말했다. ‘미국을 우려하는 여성들’의 회장 샌디 라이어스는 도덕적인 대결전을 예상한다. 그녀는 “우리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있다”고 말했다. 스칼리아 대법관을 포함한 일부 보수파들은 로렌스 재판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중혼·근친상간·매춘을 금지하는 법을 손상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론 앞으로도 각 주정부는 여성·미성년자를 착취하거나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성적 행위를 금할 수 있다. 그러나 합법적인 동성 성행위에 대한 우려는 곧바로 대통령 선거의 이슈가 될 전망이다. 백악관은 최근 로렌스 판결에 대한 방어에 나섰다.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동성애자의 권리는 각 주가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고 얼버무렸다. 부시의 정치고문들은 동성애자 유권자들이나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부시의 지지기반이 됐던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을 소외시키는 것을 두려워한다.
보수 단체인 문화와 가정 연구소의 밥 나이트 소장은 “부시 행정부의 관리들은 수백만표를 던져준 보수주의 운동가들보다 동성애자 운동가들이 더 나은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동성애자 권리를 둘러싼 싸움은 2004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내분을 일으킬 수 있는 ‘쐐기 이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도 여론보다 앞서가기를 원치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동성애자 권리를 둘러싼 싸움은 지방이나 주 차원에서 치러질 것이다. 그 싸움은 오래 끌 것이며 심한 반발이 따를 수도 있다. 주요 쟁점을 살펴보면:
동성애자 혼인: 지금은 동성애자 커플들이 결혼 서약 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고 뉴욕 타임스지 결혼란에도 동성애자 커플의 사진이 실리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어떤 주도 동성애자 결혼을 인정하거나 허용하지 않는다(교회의 경우 몇몇 종파는 동성 결혼을 지지하고 일부 종파는 강력히 반대한다). 미국의 주 가운데 버몬트가 동성 결혼에 대해 일반 결혼과 같은 권리와 의무를 상당 부분 부여하는 ‘시민 결합’(civil unions)에 가장 근접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결혼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순전히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다. 매사추세츠·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몇개 주는 법적으로 동성 결혼을 인정하는 쪽으로 서서히 다가가는 듯하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는 그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힘이 더 강하다. 약 37개 주와 연방정부는 결혼이 이성간에만 이뤄지는 것으로 정의하고 타 주에서의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결혼법 방어’ 정책을 채택했다.
이제는 로렌스 판결로 인해 이런 규정에 대한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6월 11일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한 법원은 동성 결혼에 대해 합법적이라고 판결했다(네덜란드·벨기에에서도 합법이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최근 열린 ‘동성애자 긍지’ 축제 기간 중 결혼허가청은 근무시간을 연장했다. 결혼 허가를 신청한 첫 2백쌍 가운데 12쌍이 국경을 건너온 미국인들이었다. 법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캐나다의 결혼 허가증을 받은 동성애 커플이 미국에서 인정될 수 있는지에 관해 의견이 양분되고 있다. 그러나 동성애자 결혼 문제가 앞으로 몇년 내는 아닐지 몰라도 머지않아 연방 대법원으로 올라갈 것으로 확신한다.
그때가 되면 대법원은 대통령 선거 결과를 따를 가능성이 높다. ‘미국적 가치’의 회장이며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적이 있는 게리 바우어는 공화당이 2004년 대선에서 동성애자 결혼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공화당의 ‘가정 가치’ 운동가들은 당을 지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반면 부시가 동성애에 대해 관대하게 비친다면 그는 자유주의자와 공화당 온건파들의 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입양과 자녀 부양권: 대다수 주는 독신 동성애자들의 자녀 입양을 허용한다. 동성애자들에 의해 양육된 아이들도 정상적인 부모들에 의해 양육된 아이들과 다를 바 없으며 그 아이가 동성애자가 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동성애자의 자녀 입양에 대한 거부 반응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래도 동성 커플에 자녀 입양권을 허용하는 주는 11개에 불과하다. 나머지 주들은 내부적으로 서로 상충되는 법을 갖고 있다. 1977년 애니타 브라이언트의 ‘어린이 구하기’ 캠페인의 영향을 받은 플로리다주에서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동성애자들은 자녀를 입양할 수 없다.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개념에 근거한 그 법은 로렌스 판결 후 개정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로렌스 판결의 가장 즉각적인 영향은 양육권 싸움에서 나올 것이다. 버지니아주의 한 판사는 한 레즈비언의 법정 진술에서 그녀의 동성애 행위를 자세히 설명하도록 요구한 다음 그녀의 행위가 부도덕하기 때문에 자녀 양육권을 가질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제 그런 추론은 위헌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다.
직장·학교·군에서의 동성애자: 대기업들은 이미 대세를 수용했다. 1992년에는 포천지 선정 5백대 기업 가운데 한 회사만이 동성애자 파트너들에게 혜택을 주었지만 지금은 그런 회사가 1백97개에 이른다. 그중 50대 기업이 27개다. 과거에는 거액의 에이즈 치료비를 떠안게 된다고 근거없이 우려한 일류 기업들이 이제는 동성애자 직원들을 서로 데려가려고 경쟁하고 있는 추세다.
반면 학교와 군의 동성애자 수용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리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동성애자·일반인 동맹’ 결성을 지지했다가는 보복이나 괴롭힘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그런데도 미국 전역에 약 1천7백개의 동성애 관용 지지 클럽이 결성됐다). 미 국방부는 군에서 동성애자를 공식적으로 수용하면 ‘부대 결속’이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묻지도 말고 스스로 밝히지도 말라’는 군 동성애 정책의 근간이 되는 법적 근거 가운데 일부는 신빙성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대법원은 군 문제에 관여하기를 원치 않는다.
앞으로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차별적인 법을 뒤집기 위해 20년 동안 노력해온 동성애자 변호사 연맹은 대세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람다 기금의 변호사인 수전 소머는 얼마 전 뉴저지주의 동성 결혼 금지법을 폐지하기 위해 제기된 소송의 재판에 나갔다. 그녀는 “로렌스 판결이 여기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법정에 걸어 들어갈 때 강력한 우리편이 있다고 느낀다. 바워스 대 하드윅의 판결이 동성애자들의 품위를 해쳤다는 케네디 대법관의 말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다.
람다 기금은 동성애자 가족이 지역사회에 유익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마을회관 모임을 개최함으로써 여론의 반발을 무마하려고 애쓰고 있다. 신디 메니긴(45)은 “마을회관 모임에서 ‘우리도 남들과 다를 바 없다. 중산층이며 교외에서 거주하는 따분한 커플’이라고 사람들에게 설명한다”고 말했다. 그녀와 동성 파트너 모린 킬리언(45), 그리고 자녀들인 조슈아(10)·세라(8)는 뉴저지주에서 합법적인 가정으로 인정받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
그녀는 “예쁘고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들을 보면 우리를 단란한 가정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도 자녀들을 갖고 있는 한 가정이며 나는 축구 코치를 하고 사진을 찍는 평범한 사람이고, 모린은 동네에서 제일 가는 디저트 요리사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러면 모린과 신디가 동성애 커플이라는 사실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보스턴에서도 진보적 동네인 자메이카 플레인에서 사는 줄리와 힐러리 굿리지(힐러리의 조모 성을 공동으로 채택했다. ‘긍정적’으로 들린다는 이유 때문이었다)는 가끔씩 고등학생들이 몰려와 차에 오줌을 깔기며 ‘다이크’(Dyke!: 동성애자라는 뜻의 비속어)라고 외치는 것만 제외하면 동네에서 부부로 인정받고 있다. 줄리는 얼마 전 딸 애니에게 로렌스 판결을 설명해주었다.
줄리는 “동성애 행위에 관해 말하지 않고 설명해야 했다. 애니는 아직 7년하고 9개월밖에 안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그녀는 애니에게 “어제 미국 연방 대법원이 아주 중요한 판결을 내렸단다. 동성애자들이 서로 사랑해도 좋다고 말했거든”이라고 말해주었다. 애니는 “그것 괜찮은데”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애니는 아직도 부모들이 결혼하기를 원한다.
With T. TRENT GEGAX,
DEBRA ROSENBERG, PAT WINGERT, MARK MILLER, STUART TAYLOR JR., MARTHA BRANT, TAMARA LIPPER,
JOHN BARRY, REBECCA SINDERBRAND, SARAH CHILDRESS and JULIE SCEL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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