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상사 인수 냉가슴 앓는 이랜드
국제상사 인수 냉가슴 앓는 이랜드
이랜드는 지난해 6월 우리은행이 실시한 공개입찰에 참여해 국제상사 주식 224만주와 전환사채(CB) 600억원 어치를 500억원에 사들였다. 이랜드는 11월에 주식으로 바꾼 CB를 포함해 국제상사 지분 45.2%를 보유하게 됐다. 이와 함께 약 50억원을 더 들여 국제상사 주식을 장내에서 매입해 지분을 51.8%로 늘렸다.
이랜드는 이후 국제상사와 관할법원인 창원지법에 국제상사 경영 계획을 제출했다. 이랜드는 “프로스펙스를 국내 스포츠 브랜드 파워 1위로 육성하고 중국시장 선점을 통해 세계 5위권 브랜드로 키우기 위한 경영 청사진과 법정관리 조기 종결 방안 등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이랜드가 국제상사 주식을 인수한 지 8개월이 지났지만 이랜드는 국제상사의 경영권에는 한발짝도 다가서지 못했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국제상사가 법정관리 중이기 때문이다. 회사정리법은 법정관리 기업의 주주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으며 배당도 받을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제상사는 1998년 9월 최종부도를 맞아 99년 1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법정관리는 2010년종결될예정이었다.
그럼 이랜드는 국제상사의 회사정리 절차가 조기에 종결될 가능성을 보고 미리 들어간 걸까? 법정관리 기업은 정리계획상 주요 채권을 차질 없이 갚아 나가고 총자산을 총부채보다 안정적으로 많게 유지해나가면 조기에 회사정리절차에서 벗어날 수 있다.
국제상사는 2000년 채무 재조정 이후 흑자를 내왔다. 총자산도 그해부터 총부채보다 많아졌다. 기업구조조정 전문가들은 그러나 “국제상사는 어디까지나 법정관리 조기 졸업을 위한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였다”고 설명했다. 국제상사의 지난해 9월 말 부채비율은 426%로, 상장사 평균인 110%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었다.
이랜드가 국제상사의 대주주라는 점은 법정관리를 예정보다 일찍 탈피하는 데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변수였다. 서울지방법원은 ‘회사정리실무’ 자료에서 “인수 희망자가 시장에서 정리회사의 기존 주식을 매집하는 것은 주식의 귀속 주체만 변동될 뿐, 정리회사의 재무구조 개선 또는 정리채무의 변제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더구나 이랜드는 국제상사의 법정관리 종결을 신청하지도 못하는 처지였다. 회사정리절차 종결 신청은 관리인이나 신고한 정리채권자 또는 정리담보권자만 할 수 있다.
법원은 2000년 이후 법정관리 조기 종결 방안으로 유상증자를 통한 제3자 매각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즉, 기업가치에 상당하는 자금을 투입해 채무를 조기에 갚도록 제3자에게 다량의 신주를 배정하는 것을 ‘최선의 정리회사 M&A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기아자동차와 아시아자동차의 법정관리가 이런 방식으로 조기에 종결됐고, 2001년에는 삼미특수강, 신호스틸, 유원건설 등 14개의 정리회사가 법정관리를 조기 졸업했다. 2002년엔 미도파, 쌍방울 등 19개 기업을 유상증자를 통한 M&A 방식으로 정상화했다.
이랜드 구주 매입, 국제상사에 자금 유입 없어
기업구조조정 시장의 한 관계자는 “이랜드가 우리은행한테서 주식을 사들인 것은 법원이 승인한 M&A가 아닌 사적인 계약에 지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이 관계자는 “법원이 권하는 유상증자의 경우 증자대금으로 자본이 확충되고 채무도 변제되는 반면 이랜드의 주식 매입은 그런 효과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법정관리 기업 가운데 100억~200억원만 들이면 주식을 100% 사들일 수 있는 곳이 많지만, 이런 사정 때문에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랜드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국제상사 주식을 매입했을까? 이랜드의 최고재무책임자(CF0)인 조희상 이랜드시스템스 대표이사 상무의 설명을 들어보자. “국제상사의 회사정리계획안에는 2002년 안에 용산 빌딩을 매각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용산 빌딩 매각 대금으로 정리채권과 정리담보권을 갚고 국제상사 법정관리를 2003년 상반기까지 마무리지은 뒤 경영할 생각이었다.” 그는 법정관리 중인 회사의 주식을 사들이고 그 회사 자산을 매각해 부채를 갚는 것이 ‘선진 M&A 기법’이라고 주장했다. 국제상사의 채무는 정리채권 2,100억원, 정리담보권 960억원 등 3,000여억원에 이른다.
이런 방식은 법원이 밝힌 ‘모범답안’과는 거리가 멀다. 인수 대상 회사에 신규자본을 투입하기는 커녕 그 회사의 자산을 팔아치워 부채를 털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상사는 지난해 건물을 매각하지 않았다. 이랜드의 ‘노림수’가 빗나간 셈이다. 기업구조조정 전문가들은 “이랜드가 경영권 문제에 대해 너무 낙관적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제상사 이지수 관리인은 건물 임대료 수입이 안정적으로 들어오는 데다 회사 경영수지가 개선돼 변제능력이 생겼기 때문에 매각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랜드는 이 관리인이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은 것이라며 반발했다. ‘회사정리실무’에서는 ‘관리인은 정리계획상 매각하도록 예정된 자산을 예상 매각연도 이전에 적정한 가격으로 매각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제상사의 한 관계자는 “회사정리계획안에서 건물 매각은 채무변제가 어려울 때 자구방안으로 들어 있던 것”이라며 “회사정리계획안은 여건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변경이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자구 방안은 하나의 예정사항일 뿐이며, 부동산 시장 상황이나 경영개선의 정도에 따라 매각기한을 넘기거나 매각을 유보하는 기업이 많다는 설명이다. 그는 “담보권자는 건물 매각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지만 주주는 그럴 권리가 없다”고 덧붙였다.
경영권을 둘러싼 법적 공방 속에서 국제상사는 새 주인을 찾아 나섰다. 1월 18일 기업매각 공고를 낸 것. 국제상사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포함한 방식으로 외부 자본을 유치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제상사는 3월 28일까지 1차투자제안서를 접수하고 4월9일 인수후보자를 선정한 뒤, 실사 등을 거쳐 5월 16일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국제상사 관계자는 “현재 기업가치는 수천억원으로 평가되고 있다”며 “제3자 매각이 성사되면 대규모로 유입된 자금으로 채무를 앞당겨 갚아 우량기업으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매각 일정이 마무리되면 이랜드는 2대주주로 밀려난다.
유상증자를 위해 국제상사는 지난해 10월 법원의 허가를 받아 정관을 개정, 수권자본금을 기존 2,000억원에서 4,000억원으로 증액했다. 이랜드는 이에 맞서 창원지법에 정관변경 취소를 위한 특별항고와 신주발행금지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정관변경과 관련해 이랜드는 “정관을 고치려면 정리계획을 변경해야 하는데, 정리계획 변경은 50% 넘는 주주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제상사는 “2000년 3월 3차 수정된 회사정리계획에 정리절차 기간 중 정관변경의 필요가 있을 때에는 관리인이 법원 허가를 받으면 된다고 명시돼 있다”고 밝혔다. 창원지법은 특별항고를 기각했고, 이랜드는 부산고법에 즉시항고를 제기했다. 국제상사는‘신주발행은 주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주주 이외에 채권자와 협력업체 등의 이익을 함께 고려할 때 유상증자가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국제상사 투자 실패로 이랜드가 큰 충격을 받는 건 아니다. 이랜드는 최근 수년간 흑자를 이어와, 여유 자금이 4,000여억원에 이른다. 국제상사 주식 인수에 들인 돈은 550억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법정관리 기업 M&A의 ‘ABC’도 모른 채 덤벼든 미숙함은 한동안 이랜드를 따라다닐 것이다.
| |
|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청강문화산업대학교, '日 웹툰시장 진출전략 세미나' 진행
2‘오너 4세’ 허서홍, GS리테일 이끈다…“신성장동력 창출 기대”
3곽튜브, 부산까지 가서 "감칠 맛이…" 동공 커진 까닭은
4'믿을맨' 홍순기, GS 부회장 내정...리테일 대표엔 허서홍 부사장
5고현정에게 '모래시계'는…미스코리아 뒷얘기 공개
6학연·혈연 다 동원했다며…백종원 '진정성' 보여줄까
7분당·일산·평촌 등 13개 구역 3만6000가구 재건축 추진
8박현호♥은가은, 궁합 봤더니 "올해 은가은 사주에…"
9우리금융, 글로벌 ESG 보고서 경진대회서 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