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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가 걸러낸 물빛이 아이의 눈빛과 만나다

바위가 걸러낸 물빛이 아이의 눈빛과 만나다

삼척에서 동해로 가는 길은 온통 보랏빛 노래다. 길 한쪽은 벌개미취가, 다른 쪽은 목화꽃을 닮은 부용화가 화들짝 피어 있다. 그 꽃길을 무장무장 달리면서 오늘도 어떤 길목에서 또 어떤 삶과 자연을 만날까 설렘이 앞서온다.
우선 삼척에서 꼭 들러가야 할 곳은 죽서루다. 38번 국도 환선굴 표지판을 따라가면 나오는데, 안내표시가 허술해 자칫 놓치기 쉬우니 잘 살펴봐야 한다. 죽서루는 오십천 위로 깎아지른 듯한 벼랑 위에 세워진 보기 드문 건물이다. 관동8경 중 제1경으로 꼽힌다. 누각에 오르면 마치 선계(仙界)의 경지에 오른 듯하다. 그래서인지 예로부터 이 곳의 비경을 담은 절절한 시(詩)가 수백편이나 전해내려 온다고 한다.

그간 조용한 여행지를 찾아다녔는데, 무릉계곡에 다다를 즈음이 되니 여름 휴가를 지내려는 사람들과 마주쳐 가는 곳마다 인산인해다. 무릉계곡은 42번 국도 정선 방향으로 가다보면 표지판이 나온다. 무릉계곡은 강원도 동해시 삼화동의 두타산(1천3백53m)과 청옥산(1천4백4m) 사이에 이어진 맵시있는 골짜기다. 즐비하게 늘어선 식당들을 지나고 나면 계곡물이 빠른 속도로 물길을 토해낸다.
무릉계곡은 암반으로 뒤덮여 있어 물빛이 더욱 깨끗하다. 상수원 보호구역인지라 도우미들은 목청을 돋우며 물속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막는다. 하지만 어쩌랴. 개구쟁이들은 이미 암반에서 미끄럼을 타기 시작했고, 덩달아 부모들도 발목을 담그며 신바람이 났다.

두타산 무릉계곡이 시작되는 무릉반의 넓은 암반이 어찌나 크던지 놀랍기만 하다. 족히 수백명은 앉을 만한 큰 반석이다. 학소대·옥류동·선녀탕을 지나 쌍폭과 용추폭포에 이르면 이 곳의 아름다움은 절정에 이른다. 쌍폭은 각각 20여m의 거대한 물줄기가 좌우에서 굉음을 토하며 쏟아져 내려오고, 왼쪽 반달계곡에서 떨어지는 3단 폭포와 오른쪽 용추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만나 절경을 연출한다.

다만 밑으로 내려가보기에는 위험하고, 위에서 내려다봐야 하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용추폭포는 그 아름다움이 전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한여름을 예서 보낸 셈이다. 시원한 바닷바람, 솔바람. 여기까지 달려오면서 여름더위를 느끼지 못했으니 피서는 잘 했다고 봐야 할 터다. 그런 저런 생각을 하며 도착한 곳이 삼화사(三和寺)다. 땀을 뻘뻘 흘려가며 상류 폭포까지 도달했는데 후회스럽지 않다. 기암괴석의 봉우리와 푸른 못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만나는 사람마다 감탄사를 연발한다.

이어 애국가에서 아침을 여는 배경으로 등장해 누구에게나 익숙해진 동해의 풍경 추암에 들렀다. 동해시 북평동 남부 추암리 마을 앞 1백50m의 백사장을 여행할 때면 언제나 거치는 곳인데 갈 때마다 새롭다. 파도가 촛대바위에 부딪히는 모습이 장관을 이루고, 그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이 비경으로 알려져 있다. 칼바위·형제바위 등 갖가지 형태의 바위들이 아기자기하게 솟아 있어 모양을 꼽아보는 재미가 모도록하다.

동해시에 다다를 즈음 또 하나의 보너스 여행지가 있다. 몇년 전 아파트 공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다는 천곡동굴이다. 삼척과 동해는 동굴이 많기로 유명하지만 힘 안들이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천곡동굴뿐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바로 들어갔는데 시원한 바람이 그간 흘린 땀을 모두 가져가 버린다. 4억~5억년 전에 생성된 석회암 천연동굴(총길이 1천4백m)로 한국에서 유일하게 시내 중심부에 있다.
그리곤 1968년도 사랑과 배신을 소재로 한국 영화의 한 획을 그었던 ‘미워도 다시 한번’의 촬영지 묵호항을 더듬어갔다. 대부분 다른 도시에는 등대로 가는 이정표가 없는데 묵호에는 영화 때문인지 이정표가 있다. 영화 속 장면들이 비각에 담겨져 있어 감회가 새롭다. 문희·신영균·전계현과 아역배우였던 김정훈 등 당시의 얼굴들이 생생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땅거미가 지고 어둠이 찾아들었다. 보름 즈음인지라 행운처럼 달은 휘영청 돋아 올랐다. 게다가 강릉으로 가는 길, 정동진에서 안인까지의 7번 국도는 아름답기로 소문난 길 아닌가. 바다와 하늘의 접점 위로 달은 푸르스름한 빛을 마구 쏟아내고, 그 아래 아름답게 뚫린 길을 달리고 있자니 그 감동은 뭐라 표현할 길이 없다. 마침 알고 있는 소설가의 아내가 자주 쓰던 말이 떠올랐다. ‘이 순간이 생애의 마지막일지라도 후회가 없을 것 같다’라던. 강릉·속초를 거쳐 고성군 통일전망대에서 7번 국도는 끝이 난다. 휴전선에 가로막혀 더이상 올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여행가·for NWK)

■주요 통과지역:삼척∼동해∼정동진∼강릉 이번 호로 ‘국도로 가는 국토 기행’ 연재를 마칩니다.



맛집을 찾아서



시원한 육수의 감자옹심이

감자를 많이 먹으면 나처럼 피부가 고와져.” 강릉시 임당동 토속음식 전문점 ‘강릉감자옹심이집’(033-648-0340) 김순자(69) 할머니는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한번 만져보라고 하면서 감자 예찬부터 늘어놓는다. 정말로 매끈한 피부가 10년은 젊어 보인다.
옹심이를 만들어 팔기 시작한지 19년 되었다는 할머니에게 편안히 쉬고 싶을 나이에 음식점을 시작한 이유를 물었더니 대답이 흥미롭다. “나? ‘고도리’치다가 장사를 시작했어”라며 “동네사람들이 ‘고도리’치다가 성공한 사람 나밖에 없대”라고 호방하게 웃어 제친다.

사연은 이렇다. 젊은 시절 쌀가게를 운영했는데 장사가 시원치 않더란다. 동네 사랑방이었던 터라 하릴없는 사람들이 모여앉아 10원짜리 고스톱을 치고 놀았다고 한다. 이방저방 10여명씩 되는 사람들이 끼니 때가 되면 자장면을 시켜먹곤 했는데, 어느날 3백원이나 하는 자장면 값이 무척 아까운 생각이 들더라고. 가만히 생각하니 열그릇이면 3천원인데 당시는 큰 돈이었다.

벼농사가 무척 힘든 강원도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감자를 주식으로 먹곤했던 터라 감자요리는 뭐든지 자신있었고, 자장면 값에 감자옹심이를 만들어 제공하기로 했던 것. 원래 음식솜씨 좋기로 유명했던 친정어머니 손끝맛을 그대로 물려받은지라 금방 소문이 났다. 옆 건물 다방 아가씨가 찾아오고, 하숙생 친구들도 우르르 몰려와 끼니를 때우고 가고…. 그때부터 정식으로 식당을 내서 어느새 강릉의 유명한 토속음식점으로 자리를 잡았다.

화학조미료를 전혀 안 넣고 멸치·다시마·조개·양파 등으로 낸 육수맛이 어찌나 시원하던지 국물 한방울 남기지 않고 훌훌 다 마시게 된다. 순옹심이 5천원. 옹심이 칼국수는 4천원이다. 감자를 직접 갈아서 만든 부드러운 맛이 일품인 감자송편도 별미다. 1인분 3천원. 특히나 이 집은 누가 주인인지 손님인지 모를 정도로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함께 거들며 옹심이를 빚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음식맛도 맛이지만 강원도 인심까지 느껴져 더욱 맛깔스런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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