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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공세 펼치는 김정일

유화공세 펼치는 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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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해안은 꽃게철만 되면 긴장감이 감돈다. 남북한 어선들은 매년 6월 이 별미의 갑각류를 경쟁적으로 포획하기 위해 사실상의 국경인 북방한계선을 넘어 충돌을 무릅쓴다. 1999년 이 안개 자욱한 어로 한계선을 둘러싼 대결에서 남한의 구축함은 북한 경비정 두척을 격침시켜 북한 해군 여러명이 전사했다. 2002년 발생한 유사한 충돌에선 북한 함정의 발포로 남측도 6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올 시즌 들어 북한은 ‘꽃게 전쟁’의 재발을 막기를 바라고 있다. 지난 5월 26일 금강산 초대소에서 한국전 이래 최초로 열린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을 위한”(남측 수석대표인 박정화 합참 작전차장의 표현) 제1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이 한 예다. 앞서 열린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북측 대표단은 뜻밖에 장성급 회담 개최에 동의함으로써 남측 대표단을 놀라게 했다. 6시간에 걸친 회담 후 양측은 남북 서해 함대사령부간 직통전화 설치, 경비함정간 공용주파수 설정 및 1주 후 후속 회담 개최에 합의했다.

큰 의미의 돌파구는 아니라 할지라도 장성급 회담은 북한이 요즘 취하고 있는 더 폭넓은 의미에서의 지역적 유화 공세 중 한가지 요소다. 이라크 사태에 휘말린 미국이 11월 대선 이전에 한반도에서 새로운 이니셔티브를 내놓을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북한은 아시아 인접국들에 좋은 인상을 심어줌으로써 그같은 외교적 공백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남한과의 군사회담 개최 외에 최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방북까지 허용했다. 고이즈미의 방북 중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한의 비밀 핵 개발 계획의 재동결 가능성을 어렴풋이 시사했다. 북한의 핵 개발 동결은 2002년 북한이 비밀 농축우라늄 계획의 존재를 시인한 뒤 미국과 그 우방들이 줄곧 요구해온 사항이다. 김정일은 또 맹방인 중국의 지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지난 4월 몸소 베이징 방문길에 올랐다.

김정일의 이같은 외교적 행보의 배경은 무엇일까. 북한은 핵 문제에 대한 후속 회담에 앞서 미 우방들의 결의를 누그러뜨리는 한편 만신창이가 된 경제 재건에 필요한 금전적 지원과 기술, 시장 접근 등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크다. 몬터레이 국제연구소의 수석 연구원 대니얼 A. 핑크스턴은 “경제 개방 욕구가 북한의 외교적 의제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은 특히 북한의 이같은 제스처를 환영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최근 대통령직 복귀로 한국 정치는 전에 비해 ‘왼쪽’으로 이동해 북한측에 크게 유리한 상황이다. 북한이 리비아에 우라늄을 판매했다는 최근의 폭로조차도 국민 대다수가 북한의 핵 개발 위협이 과장됐다고 믿는 한국에선 머릿기사가 되지 못했다. 노대통령은 또 대북 관광사업에 대한 수백만달러의 정부 보조금을 다시 지원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는 현대아산의 육·해로를 통한 북한 관광사업을 지원해왔고 이를 통해 북한은 1년에 수천만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었다.

한국은 또 개성공단 부근의 지뢰 제거를 위해 1천6백만달러를 북한에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또 지난주 노대통령은 2000년 평양 남북 정상회담의 대가로 약 5억달러를 현대를 통해 북한에 지원한 혐의로 유죄가 선고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 6명에 대한 사면을 단행했다. 세종연구소의 백학순 남북한관계연구실장은 “노대통령은 이같은 호기를 이용하려는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 것”이라며 “두 지도자간 또 한차례의 정상회담 개최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사실 보수적인 한나라당조차 4·15 총선에서 크게 패한 후 기존 입장을 누그러뜨렸을 뿐 아니라 북한을 더 이상 ‘괴뢰정권’으로 부르지도 않는다.

북한의 외교적 공세는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로 환대를 받았다. 참의원 선거가 7월로 다가온 가운데 고이즈미는 70년대 납북된 일본인들의 자녀들을 데리고 돌아옴으로써 자신의 지지도 상승을 바랐다. 김정일은 납치된 그들의 어린 자녀 5명의 귀국을 허용함으로써 유화 제스처를 보였을 뿐 아니라 핵 문제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다.

마이니치(每日)신문에 따르면 고이즈미는 김정일에게 리비아처럼 자발적으로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가했으나 김정일은 “그러나 리비아는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져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김정일은 자신의 목표는 ‘핵무기 없는’ 한반도를 만드는 것이라며 “만일 우리가 핵 개발을 동결하면 사찰 허용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말했다. 김정일 자신이 핵 동결과 사찰 문제를 꺼낸 점은 그가 그 두가지를 모두 고려 중이란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김정일이 일본에 유화 제스처를 보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양국간 외교 관계 정상화에 뒤이을, 많게는 1백억달러에 이르는 식민통치 배상금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핵 문제를 언급함으로써 “북한은 고이즈미를 통해 미국측에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는 야마모토 이치타(山本一太) 참의원 의원은 “김정일은 미국이 입장을 누그러뜨리고 북한 정권의 생존을 보장해주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김정일은 중국에는 다른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불과 1년 전 북한은 핵 능력을 갖췄음을 공공연히 시사함으로써 중국으로 하여금 공포감을 갖게 했을 뿐 아니라, 만일 사실로 확인될 경우 중국과 지척지간에 있는 평양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선제 공격을 초래했을지도 모를 도발을 감행했었다. 그 후 북한은 어조를 누그러뜨려 왔다. 게다가 중국과 북한의 보도에 따르면 김정일은 지난 4월 비공식적인 중국 방문을 통해 중국이 “인내와 유연성을 갖고” 주최하는 후속 핵 협상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데” 동의했다. 그 맹세의 대가로 김정일은 중국으로부터 5천만달러의 긴급 지원을 이끌어냈고, 협력 강화를 통해 더욱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그같은 믿음이 현실로 나타날 지는 장담할 수 없다. 북한의 유화 공세는 김정일 정권이 미국의 의혹을 불식시키고 핵 개발을 중단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할 경우 양국 외교 관계를 크게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은 가까운 장래에 미국과 협정을 맺을 가망이 없는 상황에선 그같은 유화 제스처가 이 지역에서의 이미지 개선에 도움을 준다고 결론지은 것 같다. 북한의 유화 공세는 인접국들과의 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꽃게를 둘러싼 전쟁만큼은 막을 수 있을지 모른다.

With B. J. LEE in Seoul and
HIDEKO TAKAYAMA in Tok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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