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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레버 '맛내기' 연구 총력

유니레버 '맛내기' 연구 총력

유니레버가 운영 중인 270억 달러 규모의 식료품 사업부문은 다른 부문과 마찬가지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혁신에 성공한다면 성장궤도로 다시 올라서게 될 것이다.
렌데르트 베스도르프(Leendert Wesdorp·44) 박사는 케첩에 누구보다도 관심이 많다. 네덜란드인 화공학자로 마가린과 식물유 스프레드 전문가인 그는 로테르담 인근에 있는 유니레버(Unilever)의 식품연구소에서 개발팀을 이끌고 있다.

케첩은 토마토·설탕·식초로 만들어지는데 연구진은 이런 케첩을 순수 토마토와 똑같은 영양분이 들어 있는 식품으로 만들 생각이다.

첫 시도는 토마토 맛이 너무 나는 조미료로 끝났다. 농도는 땅콩버터와 비슷했다. 베스도르프는 이제 토마토에 함유된 자연 효소로 영양가 있는 케첩을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이 케첩은 유니레버가 해외 슈퍼마켓에서 판매하는 헬만(Hellmann) 브랜드 같은 매력을 지니고 있다. 베스도르프는 “맛이 환상적”이라고 자랑했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어떻게 적정 가격에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유니레버로서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 유니레버는 영국과 네덜란드에 각각 본사를 두고 있다. 지난해 매출이 480억 달러에 이른 유니레버는 올해 예상 순이익 증가율을 두자리 수에서 한자리 수로 낮췄다. 식료품 부문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56%다. 경쟁사 크래프트(Kraft)·네슬레·(Nestle)·다논(Danone)처럼 유니레버도 할인·저가 브랜드의 도전으로 타격받고 있다. 대규모 식료품 제조업체들은 원료비 상승에도 불구하고 제품가격을 연간 1% 올릴 수 있는 게 고작이다. 80~90년대 이들 업체는 저렴한 원료비와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으로 한때 잘나갔다.

또 다른 골칫거리로 비만과 치르는 전쟁을 꼽을 수 있다. 정크푸드가 담배와 같이 악마로 취급당하는 것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 배상 소송, 광고 제한, 식품업체를 겨냥한 과세는 흔한 일이다.

유니레버의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유니레버는 공동 회장 앤터니 부르크만스(Antony Burgmans)와 최근 사임한 니얼 피츠제럴드(Niall FitzGerald) 체제 아래 지난 5년 동안 수백 개 식품·개인용품을 퇴출시키고 400개 브랜드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전환했다. 그 결과 영업이익률은 몇 %포인트 상승했지만 지난해 식료품 매출이 3% 감소했다. 지난해 북미 시장에서 유니레버의 슬림 패스트(Slim-Fast) 셰이크 매출은 21% 줄었다. 다이어트 열풍으로 소비자들이 탄수화물을 기피했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아이스크림 등 냉동식품 매출도 하락했다.

유니레버는 광고·홍보 지출을 늘릴 생각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성장을 부추기기 위해서는 경쟁사와 차별화한 신제품이 있어야 한다. 해마다 수프나 아이스크림에 몇 가지 맛을 추가하는 것만으로 매출 감소 행진이 멈출 리 없다. 유니레버가 영양을 개선하기 위해 애쓰면서 참신한 대박 제품 찾기에 혈안이 돼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요즘에는 마케팅 부서가 시장조사에 한층 깊숙이 관여한다. 라벨에 표기되는 건강 관련 문구를 둘러싸고 연구진과 토론하기도 한다. 유니레버의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10년 전 1.9%에서 현재 2.5%로 높아졌다. 베스도르프는 “시장에서 돋보이려면 기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식품업계의 획기적인 기술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1810년 영국의 한 상인이 깡통 특허를 획득했다. 이로써 식료품을 보관할 수 있는 기간이 늘었다. 하지만 1858년 미국 코네티컷주에 사는 한 사내가 깡통따개 특허를 얻은 뒤에야 비로소 통조림이 널리 보급됐다. 클래런스 버즈아이(Clarence Birdseye)는 1923년 냉동채소로 식품혁명을 일으키고 40년대에는 냉장법까지 찾아냈다. 7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니레버도 여러 신기술 탄생에 한몫했다.

올해 초반 스위스에서 비만 회의가 개최됐다. 부르크만스는 회의에서 2차대전 직후 영국 정부가 어린이 영양실조를 얼마나 우려했는지 들려줬다. 당시 생선은 풍부했지만 아동들이 비린내 때문에 먹지 않으려 했다. 유니레버는 청어나 대구에 빵가루를 입히고 애들이 먹기 쉽도록 조그맣게 네모꼴로 잘랐다. 널리 알려지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해서 유니레버는 문명발전에 이바지하게 된 것이다.

60년대 초반 유니레버는 네덜란드 의료계의 요청으로 버터의 대체품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베스도르프는 네덜란드 소비자들이 건강에 더 좋은 식물성 기름을 한동안 기피했다고 들려줬다. 설사를 유발하는 것으로 잘못 알았기 때문이다. 마침내 5년간의 연구 끝에 기발한 신제품이 탄생했다. 소량의 특수 지방으로 식물성 기름이 버터와 달리 포화 지방산은 없지만 버터 같은 고체가 된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1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비켈(Becel)이다.
유니레버의 식료품 가운데 33%는 베스도르프가 이끄는 연구소에서 탄생한다.

연구소에서 450명의 과학자·내과의·심리학자·요리사가 날마다 현미경, 질량분석계, 공업용 오븐과 씨름한다. 화두는 여러 가지다. 스코틀랜드의 아이들에게 채소를 더 많이 먹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더 맛있는 저지방 마요네즈를 만들 수 없을까. 눅눅하지 않은 과일 쿠키를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까.

베스도르프는 특허에서부터 연구개발비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대 식료품업체인 네슬레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는 미국에 저탄수화물 제품군을 선보인 최초의 대형 식품업체가 유니레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유니레버의 이점은 한결같이 단명으로 끝났다. 과거 식품업체들은 슈퍼마켓에 비켈 같은 제품을 진열하기까지 20년이 걸렸다. 그러나 지금은 기껏해야 4년이다. 게다가 특허가 만료된 다음날 모방 제품이 등장한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애널리스트 마이클 스타이브는 혁신이라지만 상당수가 단순한 모방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일례로 유니레버는 네슬레와 다논이 장악하고 있는 유제품과 생수 시장에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모두 비슷비슷한 제품이라 제조업체들은 마케팅에 더 많은 돈을 쏟아부어야 한다.

작은 변화로 새로운 시장을 열 수도 있다. 단순한 올리브유였던 베르톨리(Bertolli)가 지금은 스프레드겮努틒드레싱에 들어간다. 베르톨리 샌드위치는 유럽의 주유소에서 판매되고 있다. 습기로부터 빵을 보호하는 특허기술 덕이다.

베르톨리 샌드위치의 매출은 지난 3년 동안 매년 10% 성장해 6억 달러에 달한다. 립턴(Lipton)은 300억 달러 규모의 뜨거운 홍차 시장에서 판매됐던 제품이다. 금융업체 ABN암로(ABN Amro)에 따르면 유니레버는 저온 기술을 들고 4,300억 달러의 음료수 시장으로 진출했다. 현재 양적 측면에서 세계 최고의 차 음료이자 세계 3위의 비알코올 음료가 립턴이다.

유니레버 연구소는 지난 5년간 아이스크림을 그야말로 크림처럼 부드럽게 만드는 특성에 대해 연구했다. 마침내 한 가지를 알게 됐다. 지방 방울의 표면이 맛과 농도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지방 방울 속은 칼로리만 늘릴 뿐 맛이나 구조와 무관했다. 연구진은 방울 속을 제거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했다. 한 가지 해결책은 방울을 단백질처럼 건강에 좋은 물질로 채우는 것이다.

또 다른 해법이 방울 크기를 90% 줄이고 수는 늘리는 것이다. 그러면 전체 표면적은 증가하게 된다. 이처럼 새로운 브레이어스(Breyers) 아이스크림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2년이 더 걸렸다. 유니레버는 연간 성장률 2%에 불과한 아이스크림 시장에서 ‘건강’ 아이스크림만 판매하는 틈새시장으로 이동해 해마다 9%씩 성장하고 있다.

앳킨스(Atkins) 다이어트 열기, 소비변화, 규제 당국의 태도 등으로 식품업체들은 연구개발을 영양에 집중해야 했다. 네슬레는 10억 달러의 연구비 중 20%를 영양에 쏟아붓고 있다. 연구인력 600명 가운데 절반이 영양에 매달린다.

유니레버는 지난 6월 투자자들에게 새로 출범시킬 ‘생명력(Vitality)’ 캠페인을 소개했다. 유니레버의 건강연구소 소장 게르트 마이어(Gert Meijer)는 내년 전제품의 소금·지방·설탕 함량을 재평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일부 유기농, 즉 건강 식품이 다른 제품군보다 잘 팔리고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맛이다. 마이어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지방과 소금을 좋아하게 돼 있다고 말한다. 유니레버가 진퇴양난에 놓인 것도 그 때문이다. 유니레버만 제품에서 지방과 소금을 제거할 경우 단기적으로 홍보효과가 높아지고 건강식품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의 구매도 급증할지 모른다. 하지만 마이어는 “다이어트가 지속되는 것은 며칠뿐”이라며 “맛보다 건강에 초점을 맞추면 장기적으로 시장점유율이 떨어지게 마련”이라고 귀띔했다.

해법은 건강에 좋은 제품을 찾아내기 위해 맛까지 손보는 것이다. 유니레버는 지난 5년간 인간의 미각세포를 복제하는 효모세포 연구에 매달렸다. 그리고 식품의 성분들이 미각세포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관찰했다. 요즘 연구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일례로 구연산 같은 성분들이 제품의 짠맛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베스도르프는 좌절감에 대해 함구했다. 실패한 연구결과가 나중에 다른 결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베스도르프는 연구진의 가장 큰 어려움은 제품 상용화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현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는 과일 쿠키다. 소비자들은 쿠키라면 무엇보다 바삭바삭한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과일과 채소는 수분 함량이 높다. 따라서 과일 쿠키가 오랫동안 바삭바삭한 맛을 유지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사과를 냉장고에 장기간 보관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일단 껍질을 깎으면 몇 분만에 별로 먹고 싶지 않은 갈색이 된다. 연구진은 사과 껍질을 대체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나섰다. 쿠키가 눅눅해지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해서다. 연구진은 0.1초 동안 쿠키에 6,000기압 이상의 압력을 가해 변색 박테리아까지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베스도르프는 과일 쿠키 개발에 성공할 경우 연간 5억 달러 이상 매출을 올릴 것으로 내다봤다. 과일 쿠키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연구원들은 이번 프로젝트를 세계 스낵 시장(규모 4,300억 달러)의 ‘성배(聖杯)’라고 부른다. 하지만 아직 두 기술을 결합하지 못하고 있다. 신선한 사과가 들어 있는 바삭바삭한 쿠키를 아직 선보이지 못한 것이다. 유니레버는 당분간 사과 쿠키보다 초콜릿 쿠키 판매에 더 신경을 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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