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캘리포니아 와인이 최고로 뽑히던 날

캘리포니아 와인이 최고로 뽑히던 날

The Day California Won First Prize

1972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프랑스 방문 때였다. 파리의 와인 구매상 스티븐 스퍼리어라는 젊은 영국인이 주프랑스 영국 대사관 국빈 만찬에 쓸 부르고뉴 스타일의 백포도주 다섯 상자를 영국 햄블던에 있는 한 포도원으로부터 구입했다. 만찬이 시작되기 직전 스퍼리어는 와인 수입이 안 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프랑스 세관 목록에 영국 와인이 들어 있지 않다는 설명이었다.

해협 건너 저편에서 영국인들이 포도밭을 가꾸다니 프랑스인들이 얼마나 우스웠을까! 물론 미국에서도 포도 재배가 가능하지만 겨우 젤리나 만들어 먹으려고 그러려니 하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어쨌든 그로부터 4년 후, 스퍼리어는 프랑스 친구들에게 자기가 아는 캘리포니아 와인을 맛보게 해주겠다고 생각했다. 맛 비교를 위해 부르고뉴와 보르도산 와인 몇 병을 섞어서 들여보냈다.

아마도 이것이 본격적인 시음회에서 캘리포니아 와인과 프랑스 와인이 겨룬 최초의 계기였을지 모른다. 소믈리에, 요리사, 와인 제조업자, 와인 품평가 등으로 구성된 9명의 프랑스인 심판이 자리했다. 프랑스인들이 어떤지 잘 아는 스퍼리어는 와인을 라벨이 없는 병에 옮겨 따랐다. 이들이 외국산 와인에 대해 공정한 판정을 내리길 기대하기는 무리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수입 와인이 이길 것으로 기대하거나, 이기기를 바라서 그러지는 않았다. 스퍼리어는 자기 가게에서도 캘리포니아 와인은 팔지 않았다.

그날의 판정 결과는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왔다. 그러다 최근 당시 현장에 있었던 유일한 언론인인 미국인 조지 M 테이버가 신간 ‘파리의 판결’’(Judgment of Paris)에 유쾌하고도 명쾌하게 그날의 판정 결과를 기술했다. 프랑스 심판관들은 당시 명성을 떨치던 뫼르소 샤르메를 제치고 마이크 그리치가 캘리포니아에서 제조한 1973년산 샤토 몽텔리나를 최고의 샤르도네로 뽑았다. 적포도주 중에서는 나파 밸리의 1973년산 ‘스택스 리프’(Stag’s Leap)가 샤토 무통 로실드를 근소한 차이로 눌렀다.

25년 뒤 로버트 M 파커 주니어는 “그 일로 프랑스 와인의 우수성에 대한 신화가 깨졌다”고 썼다. 샤를마뉴 대제가 밟지 않은 땅에서도 훌륭한 포도가 자랄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캘리포니아뿐 아니라 거의 전 세계적으로 포도 붐이 일어났다. 스퍼리어의 실험이 ‘마릴린 메를로’와 ‘레드 트럭 레드’(98쪽 기사 참조)의 앞길을 닦은 셈이다. 스퍼리어가 그 결과를 미리 알았더라면 그때 라벨을 떼지 않고 그냥 두었을지 모른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SOOP, 스트리머와 함께하는 자선행사 숲트리머’s 플리마켓 18일 개최

2넥슨 ‘데이브 더 다이버’, ‘고질라’ 컬래버 콘텐츠 5월 23일 공개

3토스뱅크, 비과세종합저축 적용 계좌 6만좌 돌파

4수출입銀, 캄보디아 지방도로 개선사업에 EDCF 1.2억달러 제공

5CJ올리브네트웍스, ‘라이프스타일 혁신 기업’으로 변신 꾀한다

6‘굴종 외교’ 비판까지 나온 라인야후 사태…네이버 ‘경영권 유지’ 가닥

7김호중, ‘뺑소니’ 후 집 아닌 호텔로…음주측정 회피 정황

8격리 종료 앞둔 푸바오…“대나무·옥수수빵 잘 먹어”

9경찰, '뺑소니 후 운전자 바꿔치기 의혹' 김호중 압수수색

실시간 뉴스

1SOOP, 스트리머와 함께하는 자선행사 숲트리머’s 플리마켓 18일 개최

2넥슨 ‘데이브 더 다이버’, ‘고질라’ 컬래버 콘텐츠 5월 23일 공개

3토스뱅크, 비과세종합저축 적용 계좌 6만좌 돌파

4수출입銀, 캄보디아 지방도로 개선사업에 EDCF 1.2억달러 제공

5CJ올리브네트웍스, ‘라이프스타일 혁신 기업’으로 변신 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