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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법 개정 논란] ‘재산권 침해-소급입법’이 문제

[금산법 개정 논란] ‘재산권 침해-소급입법’이 문제

'금융산업의 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하 금산법)’ 개정이 난항이다. 정부·여당·야당 등이 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첨예한 의견 대립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재정경제위원회는 법안심사소위를 수차례나 열었지만 제대로 논의하지도 못했다. 금산법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분리돼야 한다는 원칙 아래 1997년 제정됐다. ‘금융업체 자본은 결국 고객의 돈인데, 오너가 마음대로 이 자금을 지렛대 삼아 많은 계열회사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는 게 이 법의 취지다. 그런데 금산법 논란의 한가운데에는 삼성그룹이 있다. 정부와 여당, 민주노동당은 “삼성그룹이 금산법을 어기고 있다”며 개정안을 만들어 제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융 계열사인 삼성카드와 삼성생명이 각각 삼성전자와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5% 이상 갖고 있기 때문이다. 금산법은 5%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은 삼성그룹의 금융 계열사가 비금융 계열사 지분을 초과 취득한 시기가 이 법이 제정되기 이전의 일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법의 ‘소급 적용’이라는 지적이다. 일부 의원은 “금산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렇다 보니 법 개정을 둘러싸고 ‘삼성 죽이기’니 ‘삼성 편들기’니 하는 말들이 난무한다. 그런데 근본적인 문제는 시장경제원리가 무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논리보다는 정치논리가 앞선다는 지적이다. 이 법이 정치 협상거리로 전락되고 있는 형국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금산법 개정안이 시장경제원리에 적합한지 아닌지만을 놓고 쟁점별로 살펴본다.
재산권 보장은 ‘시장경제원리’의 핵심

▶삼성은 금사법이 여당안대로 개정될 경우 헌법 소원까지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지난 10월 11일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최도석 삼성전자 사장.

시장경제원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재산권 보장이다. 만약 재산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누구도 애써 자신의 부를 축적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힘있는 자에게 재산을 빼앗긴다면 사람들은 애써 재산을 모으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구별하는 첫째 기준이 바로 재산권 보장 여부다. 삼성생명과 삼성카드가 보유한 주식의 의결권을 행사하거나 또는 이를 처분할지 말지는 그 회사의 고유 권한이다. 즉 헌법이 보장한 재산권이다. 따라서 여당의 개정안처럼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의 의결권을 제한하거나, 삼성카드가 보유한 삼성에버랜드 주식을 강제로 팔도록 하는 것은 재산권 침해에 해당된다. 일각에서는 “주식의 강제 매각은 돈까지 빼앗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재산권 침해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거래란 쌍방의 자발적인 의사가 있어야 한다. 자발적 거래라야 서로 이익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한쪽이 손해를 본다면 거래는 이뤄지지 않는다. 그런데 강제 매각은 당사자가 원치 않는 거래로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강제 매각은 재산권 침해로 본다.
소급입법 논란 삼성생명은 이 법이 제정되기 전에 삼성전자 주식을 취득했다. 당시 의결권 제한 규정은 없었다. 따라서 여당의 개정안은 과거에 일어난 행위를 소급해서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법의 기본 중의 기본은 ‘불소급의 원칙’이다. 소급입법으로 처벌하면 사회적으로 어떤 파장이 있을까? 정권이 바뀔 때마다 법을 동원해 보복할 수 있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증폭된다. 사람들은 법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불확실성 사회에서는 기업이 거래를 줄일 것이며, 나아가 투자도 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시장경제원리는 법치주의가 기본이다. 국민이 경제활동을 하는데 법은 예측 가능해야 한다. 모든 구성원에게 평등하게 법이 적용돼야 한다. 특정집단만을 차별 적용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금산법 개정안은 특정 목적을 가지고 특정 집단을 차별하는 법으로 볼 수밖에 없다.
산업자본과 금융자본 분리는 좋은가? 규제론자들은 “금융업체가 고객 돈으로 계열사 주식을 사 지배하고 있다며 이는 고객의 재산권 침해 행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금융업체는 계약을 통해 고객이 맡긴 돈을 운용해 높은 수익률을 내는 것이 주임무다. 계약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수익률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소비자들은 언제든지 다른 회사로 간다. 소비자들은 삼성생명이 그룹 계열사에 투자한 것을 알면서도 돈을 계속 맡기고 있는 셈이다. 이는 삼성생명이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고객이 맡긴 돈을 그룹 계열사에 투자하는 것을 고객의 재산권 침해로 볼 수 없다. 또 정부·여당은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가 우리 경제에 이롭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독일과 일본은 두 자본을 분리하지 않고 있다. 물론 미국은 분리한다. 이런 해외 사례를 볼 때 두 자본을 분리시키는 것이 우리 경제에 이로운지 아닌지는 명확하지 않다. 문제는 금융업체가 그룹 계열사에 투자하는 것이 고객의 수익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가 여부다. 만약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면 고객들은 이익이다. 하지만 손해를 봤다면 고객들은 돈을 빼 다른 금융사에 맡길 것이다. 따라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하는 것이 좋은지 나쁜지는 소비자가 판단할 몫이다.
국내 자본의 역차별 금산법의 주식 소유한도 제한은 국내 자본에만 해당된다. 외국 자본은 어떤 규제도 없다. 따라서 외국 자본은 국내 기업의 주식을 10%, 20%, 혹은 그 이상도 살 수 있다. 예를 들어 30% 이상의 주식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아무런 제약이 없고 의결권도 행사한다. 알리안츠·스탠더드 차터드·론스타·씨티은행·템플턴 자산 등 외국자본이 국내에 진출해 공격적인 영업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산업자본·금융자본 가리지 않고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곳이면 투자한다. 또 인수합병(M&A)에도 규제가 없어 쉽게 참여한다. 반면 국내 자본은 산업자본과 금융자본 분리라는 이유로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투자할 수 없다. 규제로 인해 M&A에도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자본 역차별은 국내 자본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지배구조에는 정답이 없다 여당은 삼성의 지배구조가 잘못돼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법 개정을 통해 이를 개선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한 기업의 지배구조를 평가하는 것은 관료나 정치인의 몫이 아니다. 따라서 정부가 삼성의 지배구조를 바꾸려는 이유는 반기업 혹은 반재벌 정서다. 삼성전자의 지배구조가 어떠해야 하는지,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얼마나 보유해야 하는지는 주주나 소비자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회사가 이윤을 내서 주주나 소비자에게 얼마나 이익을 주느냐다. 기업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이익을 내고 주주와 소비자에게 만족을 주려고 노력한다. 그렇지 않은 기업은 투자자와 소비자로부터 외면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은 이미 세계 기업과 경쟁하고 있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술개발을 통해 값싸고 품질 좋은 제품 생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금산법과 같은 규제로 소모적이고 낭비적인 비용을 지출하게 된다면 우리 기업의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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