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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연장 아직은 그림의 떡 임금피크제 도입도 해결책

정년 연장 아직은 그림의 떡 임금피크제 도입도 해결책

정년 이전에 기업에서 쫓겨나는 조기 퇴직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고용불안은 외환위기 이후에 가속화됐다. 연금을 받기 전 나이인 60세 이전에, 심지어 40대에도 원하지 않는 퇴직을 한다. 그런데 노인이 되면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소득인 국민연금을 받을 때까지 조기 퇴직자들은 이른바 ‘제2의 백수’ 생활을 10년 넘게 해야 한다. 청년 백수가 ‘제1의 백수’라면, 조직 퇴직자들은 연금을 받을 때까지 돈 한푼 나오는 곳이 없는 사실상 ‘제2의 백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이 같은 ‘제2의 백수’ 생활자 대책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 조기 퇴직 대책으로 거론되고 있는 제도로는 먼저 정년 연장을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민간기업에 정년 연장을 강요할 수는 없다. 따라서 정년 연장을 유도하는 임금피크제도 중요한 방안 중 하나다. 이 외에 ‘제2의 백수들’이 공적연금(국민연금 등)을 받기 전에 돈을 받게 해주는 보완적인 연금제도 등이 있을 수 있다. 이 제도들의 현실적인 적용 방안을 살펴보자. 먼저 우리의 고용 실태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02년 5월부터 7월까지 실시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기업 중 정년제를 운영하고 있는 곳은 76.2%다. 주로 대기업들이 정년제를 시행하고 있다. 중소기업 중 정년제를 운용하는 곳은 50% 선이다. 기업들이 명예퇴직자를 선정할 때 사용하는 기준은 근속연수(68.4%)가 가장 많다. 그 다음은 연령(55.5%), 성별(21.9%) 순이었다. 연령을 명예퇴직 기준으로 고려한 경우 몇 세 이상을 기준으로 하였는가에 대한 조사도 있다. 50세 이상이 25%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은 40세 이상이 12.6%, 55세 이상이 10.2% 순이었다. 고령자고용촉진법에서는 정년을 60세로 하도록 정하고 있지만 강제성은 없다. 이렇다 보니 많은 노동자가 고용불안 상태에 있다. 따라서 각종 정년 연장 방안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정부는 기업체들에 임금피크제 도입을 권하면서 보조금이란 당근을 내놓고 있다.

임금 삭감 대신 고용기간 연장 실제 정년 연장의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검토되고 있는 게 바로 임금피크제다. 이는 연공, 직급 서열에 따라 누진되어 증가하는 임금 수준을 일정 시기에 도달하면 삭감하는 대신 고용 기간을 연장(혹은 재고용)하는 제도다. 정년을 보장하거나 1년가량 늘리는 대신, 일정 연령 이상이 되면 연봉을 기존의 절반 수준까지 연차적으로 줄여나가는 것이 골자다. 2003년 7월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신용보증기금의 경우를 보자. 58세 정년을 기준으로 55∼56세까지는 피크임금의 75%, 57세 55%, 58세 35%를 지급하고 있다. 정년 보장을 이유로 아직 정년이 되지도 않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한 것이다. 대표적 사용자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 측은 “임금피크제가 고용안정을 통한 인적자원 경쟁력 강화, 임금 절감, 신규고용 촉진 등의 효과가 있다”며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노동자단체는 임금피크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임금피크제 도입은 고령 노동자의 정년 보장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노동자들의 정년을 단축시킨다는 얘기다. 임금피크제는 우리나라와 일본 등에서 보완방안으로 모색되고 있다. 연공서열식의 경직된 임금체계 때문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위해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 제도가 고임금 직종인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도입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이 제도는 외환위기 이후 불어닥친 금융권의 고용불안 현상을 완화해줬다. 임금피크제가 경제적 효과를 가지려면 대기업·제조업체로 확산돼야 한다. 하지만 노동조합의 힘이 강력한 대기업에서는 정년이 준수되고 있고 연공서열형 임금체계가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대기업 노동자 입장에서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이유가 거의 없는 셈이다. 노동부는 임금피크제의 도입을 촉진시키기 위해 올해 4월부터 보전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최소 55세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기업에 다니는 근로자들에게 분기별로 돈을 주고 있다. 임금 삭감액의 50% 범위 내에서 분기별로 최대 150만원까지 보전수당을 지급한다. 연봉 4680만원 이상의 고소득자는 지원 대상에서 빠진다. 예산은 100억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고용보험에서 이 돈이 충당된다. 하지만 정부 정책이 실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임금피크제는 어디까지 노사합의에 의한 자율적인 제도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기업 구조조정을 지연시킬 수도 있다. 기업이 정부 제도를 악용할 소지도 많다. 정년제를 시행하고 있는 기업들이 정부보조금을 받기 위해 거짓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도 있다. 정부가 사후관리를 철저히 하겠다고 하겠지만 행정력이 미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임금피크제는 현재 조기 퇴직, 정년 연장과 관련된 문제를 푸는 방법이 될 수는 있지만,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일은 아니다. 이번에는 조기 퇴직자들, 즉 제2의 백수들이 국민연금을 받기 전에 돈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부분연금제도’에 대해 알아보자. 현재 국내 조기 퇴직자의 소득 유지를 위한 제도로는 고용보험이 있다. 하지만 고용보험은 수급기간이 많아야 9개월에 불과하기에 제2의 백수들에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유럽 국가들은 중고령자의 실업이 오래전에 사회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으로 각종 연금제도를 도입,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제도가 바로 이 ‘부분연금제도’이다. 부분연금제도(partial pension system)란 근로시간을 점차 단축하게 하고, 그에 따른 소득 상실분을 연금으로 보충해주는 방식이다. 독일, 스웨덴, 오스트리아, 덴마크 등에서 공적연금과는 별도로 운영한다.

‘백수’문제는 개인이 해결 독일의 부분연금제를 보자. 조기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부분연금을 선택하면 그는 자신의 조기노령연금을 기준으로 일정 비율의 돈을 부분연금으로 받을 수 있다. 이 돈을 받으면서 완전노령연금을 받기 전까지 점진적으로 근로기간을 단축하면서 퇴직 때까지 일을 더 할 수 있다. 이러한 부분연금제도가 도입된 것은 고령자 고용촉진을 위해서다. 유럽의 경우 80년대까지만 해도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령자의 조기 퇴직을 정책적으로 유도했다. 그러나 ‘제2의 백수’문제가 불거졌다. 그러자 독일 등은 부분연금제도를 내놓으며 고령자들의 고용 촉진에 나선 것이다. 그런데 이들 국가와 우리나라는 제2 백수 문제를 다루는데 현실적인 차이점이 있다. 유럽에서는 제2의 백수에 해당하는 고령자들이 일을 하라는 뜻에서 이런 대책을 내놓았다. 우리는 다르다. 우리 기업들이 고령자 고용을 꺼리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원인이 유럽과 우리나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런데 동일한 대책을 내놓은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우리나라도 이미 조기노령연금제도가 있다. 10년 이상 국민연금에 돈을 낸 사람은 55세 이후가 되면 조기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그 연금 돈의 크기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60세부터 정식으로 받는 금액의 75~95%를 받는다. 그렇다면 55세 연령대의 사람들이 제대로 쓸 수가 없다. 55세는 자녀에 대한 교육비 지출이 계속되고 있고 부모 부양 부담도 있는 나이다. 그렇다고 해서 국민연금 제도조차 제대로 운용을 못 하는 우리나라가 별도로 연금제도(부분연금제도 등)를 만든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 따라서 개인들이 자율적으로 사적인 연금제도를 활용해 개인 재정을 보완하는 게 불가피하다. 여기에서 검토 가능한 것이 지난해 말부터 도입된 기업의 퇴직연금제도다. 이는 현행 법정 퇴직일시금을 연금으로 바꾸어 받을 수 있다. 이는 55세부터 받을 수 있기에 ‘제2의 백수’기간에 돈을 받을 수 있는 대책으로 현실적인 검토가 가능하다. 평생직장 시대가 아닌 평생직업 시대로 전환되는 시기에서 50대 ‘제2의 백수’의 소득은 원칙적으로 국가·기업보다는 개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20대 입사 시점부터 은퇴 후 소득 설계를 스스로 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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