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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땅' 터키를 가다] ‘형제의 땅’ 터키를 주목하라

['기회의 땅' 터키를 가다] ‘형제의 땅’ 터키를 주목하라

2월 1일 오전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 위치한 국가기획원(SPO) 건물. 한국개발연구원(KDI)과 SPO 측이 지난해 말부터 함께 진행해 온 ‘한-터키 지식공유 사업’의 중간 보고회가 열렸다. 한-터키 지식공유 사업은 전세계에서 유례없이 짧은 기간에 고도 성장을 이뤄낸 한국 경제 발전의 노하우를 터키 측에 전수해 주는 정부 차원의 프로그램이다. KDI 측은 현재 터키뿐만 아니라 라오스에서도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이날 한국에서는 좌승희 서울대 초빙교수를 비롯해 이원영 서울대 초빙교수한양대 교수·박진 KDI 교수·윤용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원·고영선 KDI 선임연구원 등이 참여했고, 터키에서는 SPO와 과학기술부 등의 관료들이 참석했다.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이원영 교수는 한국이 1970?0년대 펼쳤던 과학기술 정책을 자세히 소개했다. 이 교수는 이어 “산업구조나 정보기술(IT) 산업의 발전 현황에 있어 지금 터키는 한국의 80년대와 유사하다”며 “터키가 IT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한국의 80년대 경제모델을 참고한다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에 이어 터키 측에서도 터키의 과학 기술과 관련 산업에 대한 정책을 소개했다. 모두 발표가 끝나자 터키 측 참가자들의 질문들이 쏟아졌다. “산업자원부와 과학기술부의 역할은 어떻게 나눠지나”·'세계화는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나"·"우리 정부가 그런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얼마 정도 걸릴 것으로 보는가” 등 질문과 답변이 30분 넘게 이어졌다. 다음날 좌승희 박사와 윤용 교수가 진행한 ‘민간 부문 발전을 위한 정부 정책’에 대한 발표도 마찬가지였다. 도시-농촌 간 심각한 경제 불균형을 겪고 있는 터키 관료들에게 과거 한국이 벌인 새마을 운동은 관심의 초점이 됐다. 특히 새마을 운동 때 정부가 농가의 개혁의지를 북돋워 주기 위해 인센티브를 적절하게 활용해서 성공을 거뒀다는 사실에 모두가 흥미로워 했다. 터키 측의 발표는 현실을 과장하기보다는, 현재 터키 정부가 가지고 있는 고민을 그대로 보여줬다. 정치와 경제의 현주소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KDI 팀에게 자문을 구하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SPO의 한 관료는 “한국이 60년대 초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실시한 것처럼 터키 역시 60년대 초에 경제 발전 계획을 시작했다”며 “그런데 왜 우리는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할 정도였다. 세미나에 참석한 터키 관료들은 대부분 젊고 열정적이었다. 모든 과정이 영어로 진행됐지만, 참석자 대부분 막힘없이 자유롭게 영어를 구사했다. SPO의 전략전문가 술레이만 알라타는 “터키에서 가장 선망받는 직업이 바로 공무원”이라며 “입사할 때 높은 경쟁률은 물론 시험에도 합격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영어에 능통하다”고 밝혔다. SPO의 무랏 알리지(Murat Alici) 국장은 “과거 한국의 발전 모습이 터키와 닮았다는 데 놀라울 뿐”이라며 “앞으로 실무적으로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으리라 본다”고 소감을 밝혔다. 중간 보고회를 주도한 좌승희 교수는 “짧은 기간에 급성장한 한국의 경제 발전 모델이 이제 막 성장 단계에 있는 터키에는 매력적인 모델이 될 것”이라며 “이런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가 터키에 더 우호적인 이미지를 심어 준다면 무역 교류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터키는 중동 진출의 전진기지” 외국인 투자가들도 터키 인구와 현재의 경제 성장 추세를 바탕으로 수년 내 내수시장 규모가 급팽창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현재 터키 경제를 이끌고 있는 산업은 자동차·전자·섬유·건설 등이다. 이 중 자동차 회사는 총 17개사. 세계 주요 자동차 메이커가 거의 모두 진출해 있을 만큼 유망하다.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지속적인 성장세를 나타낼 것으로 기대된다. 또 유럽의 생산기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전자산업 또한 투자 유망산업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지난해 한국의 대(對) 터키 투자액은 약 4억 달러, 무역 규모는 약 30억 달러에 불과하다. 특히 대터키 수출은 29억 달러에 달하지만 수입은 1억 달러로 무역역조가 심각한 편이다. 현지에 진출해 있는 국내 기업은 현대자동차와 LG전자·삼성전자·삼성전기·현대종합상사·삼성물산·카스 등이다. 이 중에서 터키에 공장을 두고 있는 곳은 현대자동차와 LG전자뿐이다. 하지만 두 군데 모두 현지 기업과 합작한 형태로 진출해 있다. 현지 진출한 한국 기업인들은 과연 터키를 어떻게 생각할까. 대부분 터키를 중동과 중앙아시아로 진출하는 발판 역할을 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아르세릭 LG 손병옥 부사장은 “합작법인을 통해 세운 에어컨 공장은 유럽과 중동 시장을 공략하는 전진기지”라며 “터키에서는 우리가 직접 들어가지 못하는 이라크 바이어도 쉽게 만날 수 있어 중동과 중앙아시아 공략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카스의 박경영 터키지사장은 “유럽 전역으로 저울을 수출하는 데 터키만큼 지리적으로 유리한 나라는 없다”고 뽀杉? 삼성물산의 최원일 과장은 “2001년 외환위기 이후 그동안은 회복단계였던 것 같다”며 “앞으로는 터키 땅에서도 본격적인 진검 승부가 벌어지리라 보여진다”고 말했다. 우수한 노동력도 장점으로 꼽았다. 이스탄불에서 120km 떨어진 이즈밋에 있는 현대자동차 터키공장에서 만난 이영택 공장장은 “급여 수준이 상당히 높은 편이고 노동력 질도 우수한 편”이라며 “한국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이창성 지사장은 “노조와 관련한 법규도 사용자 위주로 돼 있다”며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노동 유연성은 뛰어나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경제에 대한 불안감도 숨기지 않았다. 삼성전자의 이 지사장은 “완전히 경제가 회복됐다고 하지만 언제 다시 경제 위기를 겪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라며 “법인 설립은 좀더 시간을 두고 고려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무원들의 늑장 대응과 각종 규제 등은 여전히 고쳐야 할 문제로 꼽았다. 카스의 박 지점장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공인받아야 할 문서가 너무 많고 처리 속도가 느리다”며 “운전 면허를 따는 데만 8개월이 걸렸을 정도”라고 밝혔다. 삼성물산의 최 과장은 “새로운 사업을 하려면 아무래도 시장 개척 차원에서 자료들이 필요한데 그런 인프라가 전혀 없다”며 “중국이나 인도만 가더라도 최소한 시장점유율과 관련된 자료는 받을 수 있는데 여긴 그런 것조차 없다”고 말했다. 현대차 이 공장장은 “공장 LPG 가스를 사용하는데 10시반쯤 시청에서 연락이 와서 오전 11시부터 공급을 끊겠다고 통보받았다”며 “공정 단계에 차가 있어 두 시간 정도만 미뤄 달라고 사정해도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하릴 이브라힘 악차 국가기획원 차관보 인터뷰

“모든 정책 개혁의 중심은 경제”
“지금은 국민이 정부의 정책을 가이드하고 있다. 2001년 경제 위기는 터키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알려줬다. 그 전에도 여러 차례 금융 위기를 겪었지만 2001년 위기는 실질 경제 분야에도 큰 타격을 끼쳤다. 그 이후 국민은 무엇보다 경제가 중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하릴 이브라힘 악차 국가기획원 차관보는 2001년 외환 위기 이후 모든 정책 방향의 기본은 ‘경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SPO가 한국의 경제발전 모델을 배우는 것도 이와 일맥상통한다”며 “한국이 이른 시간 내 고도 경제 성장을 이뤘던 것처럼 우리도 하루빨리 경제가 한 단계 더 성장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U 가입에 대해서도 긍정적이었다. 그는 “EU 가입 협상이 시작되면 경제 등 그동안 잘못 정착된 정책들의 개혁에 박차를 가하게 될 것”이라며 “2002년 이후 정착되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MF) 프로그램과 맞물릴 때 경제는 한 단계 더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의 안정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그는 “2002년 사상 처음으로 단일 정당에 의해 정부가 구성됐다”며 “앞으로 일관성을 가지고 경제 개혁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 전망도 낙관적이었다. 그는 “앞으로 5년 동안 국내총생산(GDP) 평균 성장률은 6% 정도는 될 것으로 본다”며 “높은 수치는 아니더라도 IMF와 EU가 요구하는 구조 개혁을 함께 추진하는 것을 고려한다면 긍정적인 수치”라고 밝혔다. 최근 일어난 오일쇼크도 터키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확신했다. 그는 “최근 에너지를 둘러싼 분위기가 터키에 긍정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며 “터키가 가진 지리적인 이점에 중앙아시아와 중동 국가들 간 문화적 동질감으로 엄청난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우랄 아크불루트 중동공과대 총장 인터뷰

“유라시아 지식 허브 꿈꾼다”
앙카라 시내에서 7km 정도 거리에 있는 중동공과대 입구는 여느 한국의 대학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서자 상황은 달랐다. 차를 타고 진입로를 지나는 데만 한참이 걸렸다. 대학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캠퍼스 땅만 총 1만1,000헥타르라고 했다. 한국에서 제일 크다는 서울대보다 13배나 큰 규모의 캠퍼스였다. 넓이뿐만이 아니었다. 내부에 들어서자 규모 못지 않게 첨단 기자재를 갖춘 실험실들과 강의실 등은 터키뿐 아니라 그 지역 최고의 대학으로 손꼽힐 만했다. 공대로 출발해 최근 종합대학의 면모를 갖춘 이 대학은 1956년 설립 때부터 모든 강의를 영어로 진행했다. 그래서 교육 과정도 실질적으로 5년제다. 이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박종이 씨는 “입학하자마자 1년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영어만 배운다”며 “1년 후 치러지는 영어시험에 떨어져 1년 더 영어 공부를 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우랄 아크불루트 총장은 “우리 대학은 터키뿐 아니라 중앙아시아를 포함한 이 일대의 지식 허브”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 대학에서 공부한 외국인들은 그 나라에 돌아가면 대부분 그 나라 산업을 선도하는 리딩 그룹이 된다”며 “친터키 성향을 가질 그들이 정책 입안에 영향을 미칠 때 터키의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중동공과대의 외국인 학생 비중은 2,000명 정도로 학생들 수준은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는 최고라는 설명이다. 그는 “터키 경제가 한걸음 더 올라서기 위해서는 제조업 위주에서 IT로 산업구조를 바꿔야 한다”며 “우리 대학이야말로 IT산업으로 가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캠퍼스 내 산학 연합도 활발하다. 터키 대학 중 캠퍼스 내에 처음으로 테크노 파크를 세워 지금은 160개 회사가 들어서 있다. 그는 “우리 대학을 보면 터키 경제를 낙관 할수 있을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터키를 말한다 - 권영재 駐터키 대사 기고

한민족과 뿌리 같은 ‘형제의 나라’
터키 민족은 알타이어를 쓰는 몽골리안으로, 한민족과 같은 뿌리의 동질성을 갖고 있다. 한국전에 참전해 혈맹의 우방이 됨으로써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부를 만큼 각별한 호감을 가지고 있다. 2002년도 서울월드컵 때 터키팀에 보여 줬던 우리 국민의 열렬한 터키 사랑을 기억하는 터키인들도 많다. 터키민족은 중앙아시아의 알타이산맥 주변에서 발생해 흉노족, 돌궐족으로 불렸던 동양 유목민족으로 BC 7세기경부터 민족이동을 개시했다. 이들이 오늘날 터키땅 아나톨리아 반도(소아시아 반도)에 도달하기까지 약 2,000년이 소요됐다. 오랜 세월 투쟁의 민족이동을 하는 동안 여러 민족과 충돌하며 피가 섞였고, 이슬람교를 국교로 받아들여 종교적·문화적으로 중동화됐다. 서기 1299년 터키의 장수인 오스만이 오늘날 부르사란 도시에 수도를 정하고 최초의 터키 국가를 건립했다. 1453년에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 유럽땅에 위치한 콘스탄티노플성을 함락함으로써 약 1,100년 역사를 지닌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킨다. 오스만제국은 계속해서 영토를 확장, 1600년대 말경까지 유럽·중동·아프리카 3대륙에 걸친 대제국을 형성, 눈부신 번성과 위용을 떨쳤다. 그 후 1800년대 말경에 들어서서 황실의 부패와 사치, 권력다툼으로 국력이 쇠퇴하고 각 식민지에서 반란과 영토 상실 등 제국의 권위가 실추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오스만제국의 황제는 패전으로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고 실추된 제국의 권위를 회복해볼 야망으로 독일 측에 가담한다. 그러나 독일의 패전으로 독일과 함께 전범국이 된다. 3대륙에 걸친 제국의 영토는 독립되거나 승전열강에게 모두 빼앗기고, 터키의 본토인 아나톨리아 반도까지 위협받게 됐다. 풍전등화 같은 국가의 운명 앞에서 무기력한 황제의 모습을 본 당시 오스만제국 군대의 군단장이었던 케말 파샤는 황제와 결별을 선언하고 앙카라로 가서 터키 국민을 규합해 연합군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시작했다. 그는 1922년 약 4년간에 걸친 독립전쟁에서 연합군을 격퇴하고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적군을 모두 내쫓는 기적적인 쾌거를 이룩했다. 이듬해에 초대 대통령이 된 파샤는 타고난 카리스마와 정치지도력으로 이슬람 종교를 세속화시키고 터키를 의회민주주의 국가로 거듭 태어나게 만들었다. 15년 동안 민주주의 개혁정치를 실시하던 파샤 대통령은 1938년 57세에 병으로 사망했으며, 터키 의회는 그를 국부(Ataturk)로 추앙했다. 오늘날도 터키 국민의 아타튜르크에 대한 존경심과 그를 중심으로 한 구심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파샤 대통령의 사망 후 아직 의회민주주의가 완전히 성숙되지 않은 터키는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대두와 국가전복 기도 등으로 60?0?0년 총 세 번에 걸친 군(軍)의 정치개입을 맞게 된다. 그때마다 터키군은 정권 탈취에 목적을 두지 않고 신속하게 민정이양을 하고 군 본연의 임무로 복귀해 터키 국민으로부터 두터운 신뢰와 존경을 받았다. 80년 세 번째 군사개입 이후 오늘날까지, 더 이상 군의 정치개입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고, 10년 단위 쿠데타 징크스가 없어졌다. 그러나 그 후에도 터키 정부는 고질적인 연립내각 구성,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 대두 등으로 혼란을 겪으면서 2001년도에 경제 위기를 맞게 된다. 당시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9.4%,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70%라는 최악의 상황을 겪었으며, 그 여파로 오늘날까지 어려움을 면치 못하고 있다. 당시 정국사태 악화에 대한 책임을 지고 2002년 11월 내각이 총사퇴하고 조기총선을 실시했다. 총선 결과 지금의 에르도간 수상의 정의개발당이 국민의 절대지지를 받고 과반수 집권을 해 정치적·사회적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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