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회장 부자 무엇을 했기에…] 물려줄 持分 모자라자 ‘무리수’
[정회장 부자 무엇을 했기에…] 물려줄 持分 모자라자 ‘무리수’
2002년 6월 12일. 현대모비스는 이사회를 열어 전장업체인 본텍(옛 기아전자, 올 초 현대오토넷과 합병)과 합병 건을 처리할 계획이었다. 합병 비율은 3∼4대 1. 당시 현대모비스 주가가 2만5000원대였는데 본텍의 가치는 7만5000∼10만원으로 평가됐다. 계획대로 진행됐다면 본텍 지분 30%를 가지고 있던 정의선(37) 기아자동차 사장(당시 전무)은 모비스 주식 1∼2%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현대모비스는 순환 출자로 엮여 있는 현대차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모비스-본텍의 합병을 앞두고 정의선 사장은 대학 시절 은사를 찾아갔다. ‘재벌 저격수’로 유명한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였다. 이 자리에서 정 사장은 “교수님, 정말 합병하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바라던 대답을 듣지 못했다. 오히려 “김상조 교수(한성대·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가 벼르고 있다. 차라리 액면가로 합병하는 게 어떠냐”는 충고를 듣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결국 12일로 예정됐던 현대모비스 이사회는 보름여를 앞두고 ‘없었던 일’이 됐다. 이때부터 현대차그룹의 후계구도를 둘러싼 세간의 여론이 따가워졌다.
본텍 합병 전에 장하성 교수 만나 정몽구 회장 부자가 이렇게 ‘무리수’를 두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 회장의 장남이자 그룹의 후계자인 정의선 사장에게 물려줄 ‘지분’이 적기 때문이다. 바로 삼성그룹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삼성의 3세 지분 승계에서 핵심은 ‘세금’ 문제였다. 후계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는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60억원을 상속받아 이를 기반으로 삼성의 핵심 계열사 지분을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납부한 세금은 60억원에 대한 증여세 16억원에 불과했다. ‘이재용식(式) 재테크’의 핵심은 세(稅)테크였다.
그런데 정몽구 회장은 세금 문제가 아니다. 정 회장이 보유한 현대차·현대모비스·글로비스 등 상장기업의 주식 평가액은 2조500억원가량. 30억원 이상 증여하거나 상속할 경우 50%의 세금을 내야 하는 현행법상 이 주식이 고스란히 정의선 사장에게 넘겨진다면 그의 지분은 1조원대로 줄어든다. 이런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세금 낼 재산을 따로 마련해 두거나 물려받은 주식을 처분하면 된다. 그런데 주식을 처분하면 모비스⇒현대차⇒기아차로 이어지는 소유지배구조에 위협을 받는다. 정 회장 부자와 현대차그룹은 ‘제3의 방법’을 선택했다. 바로 비상장사를 통한 재산 증식이다. 엄밀한 의미에서는 ‘계열사 재산 빼돌리기’다. 현대차·기아차·모비스 등의 물류부문을 전담하는 글로비스(옛 한국로지텍)가 이 악역을 맡았다. 여기에 김재록 전 인베스투스글로벌 회장의 비자금 문제까지 겹쳤다. 사실 이런 우려는 3∼4년 전부터 제기돼 왔다. 모비스-본텍의 합병이 무산되고 글로비스·엠코 등 정 회장 부자가 출자한 계열사가 늘어나면서 학계와 증권가에서는 “정 사장의 재산을 증식시킬 수 있는 또 다른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문제 제기를 했다. 재벌 소유지배구조 연구가인 김진방 인하대 교수는 “(비상장사를 이용한 오너의 자산 부풀리기가) 고도의 수법은 아니다. 비밀리에 집행해줄 사람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고 꼬집었다. 글로비스는 설립 때부터 현대차그룹이 성장하면서 기업 가치가 커질 것으로 전망됐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초기 30억원을 출자한 정 회장 부자는 글로비스를 통해 1조원대 차익을 남겼다. 4월 7일 현재 정 사장이 보유한 글로비스 주식 평가액은 4800억원대에 이른다. 정 사장의 투자는 ‘미다스의 손’과 같았다. 2000년 지분 20%를 투자한 시스템통합(SI) 회사인 오토에버시스템즈(옛 오토에버닷컴)는 연매출 3000억원에 이르는 알토란 같은 회사가 됐다. 건설 계열사인 엠코 역시 주목할 회사. 2002년 설립된 이 회사는 그룹 내 건설 물량을 싹쓸이하면서 2004년 4000억원대 매출을 올렸다. 엠코 지분 25.06%를 가진 정 사장으로선 이번 사태만 없었다면 느긋하게 그 성장을 지켜봤을 것이다. 실패해도 ‘상처’는 크지 않았다. 정 사장은 닷컴 열풍이 한창이던 2000년, 위성영상정보를 판매하는 이-에이치디닷컴을 설립해 인터넷 사업에 뛰어들었다. 사업이 부진하자 이 회사는 계열사인 위스코에 인수됐다. ‘비자금 관계 회사’로 조사받고 있는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CRC)도 세간의 관심거리다. 검찰은 지난 4일 윈앤윈21·큐캐피탈파트너스·문화창업투자·씨앤씨캐피탈 등 5개 CRC 회사 및 창투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정몽구 회장이 도피성 미국 출장 길에 오른 이틀 뒤였다.
“1원에 사서 100원에 팔았으니…” “소리 소문 없이 잘한다. 그리고 (잘한다는 업자들은 모두 그랬는데) 탈도 없다. 이런 회사가 진짜 선수 아니냐.” CRC 업계에서 3∼4년 전부터 나돌던 윈앤윈21에 대한 소문이다. ‘선수들도 인정하는 선수’였다는 것이다. 1999년 설립된 윈앤윈21은 SNG21(옛 삼표제작소)·CKF(옛 천광실업)·지코 등 굵직한 인수 건을 성사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2003년엔 1800억원을 들여 서울 강남의 KTB 사옥, 여의도 하나증권 사옥을 한꺼번에 인수하는 ‘괴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삼표제작소는 정 사장의 장인인 정도원 전 강원산업 회장(현 삼표산업 회장)이 경영하던 회사다. 강원산업이 부도나면서 현대차 계열의 현대제철로 주인이 바뀌었으나 2001년 5월 윈앤윈21로 넘어간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 회사가 이렇게 많은 인수합병(M&A)을 성사시키면서 금융 차입금을 거의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윈앤윈21의 강선일(44) 사장은 대학 졸업 후 경기도 안산 소재의 터보엔지니어링을 경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터보엔지니어링은 연매출 10억원대의 소규모 금형회사. 업계 관계자는 “크고 작은 M&A를 성공시켰지만 뒷말이 없는 것으로 봐서 ‘다른 백그라운드’가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한두 명의 ‘물주’가 따로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강 사장이 정 회장의 사돈 회사를 인수하면서 현대차 일가에서 주목받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CRC 회사들의 활약(?)이 돋보인 것은 현대차가 부품회사인 위아(옛 기아중공업)를 인수하는 과정에서다. 위아는 98년 기아그룹이 침몰하면서 화의신청을 했고 계열 분리됐다. 이때 위아를 인수한 회사가 한국프랜지와 윈앤윈21이다. 한국프랜지는 정의선 사장의 고모부인 김영주 명예회장이 경영하는 자동차 부품회사. 프랜지는 위아 지분 44%를, 윈앤윈21은 46%를 주당 1원에 샀다. 윈앤윈21의 지분은 큐캐피탈을 거쳐 현대차그룹에 주당 100원에 넘어갔다. 그러나 2000년 당시 위아는 매출 6675억원에 순이익 611억원을 올린 우량기업이었다. 시장에서 “지극히 비정상적인 거래”라는 말이 나왔다. 본텍 역시 큐캐피탈을 거쳐 정의선 사장에게 지분이 넘겨졌다. 가격도 같다. 큐캐피탈이 주당 1원에, 정 사장은 주당 100원에 본텍 주식을 사들였다. 본텍에 투자한 15억원을 종자돈으로 정 사장은 모비스 주주가 되기를 바랐다. 카스코(옛 기아정기)는 기아⇒프랜지·한신상호저축은행(윈앤윈21의 자회사)⇒모비스로 대주주가 바뀌면서 현대차 계열로 편입됐다. 한신상호저축은행은 지금도 카스코 지분 9.5%를 가지고 있다. CRC 회사들에 ‘헐값’ 매각된 옛 기아 계열사들은 현대차그룹의 지원으로 빠르게 정상화됐고, 당연히(?) 이들의 종착역은 현대차그룹이었다.
‘문화 창투’에도 의혹의 눈초리 이런 의혹에 대해 유종훈(55) 큐캐피탈 사장의 당시 답변은 아주 간결했다. “(주당 1원에 사서 100원에 팔았으니) 우리도 많이 먹었다”는 것이다. 현대자동차·현대증권 등에서 주로 국제부·기업금융 업무를 맡았던 유 사장은 99년 큐캐피탈을 만들어 독립했다. “현대차의 편법적인 계열사 부풀리기에 동조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당시 유 사장은 “굳이 구분하자면 나는 정세영의 사람이지, 정몽구의 사람이 아니다”며 “현대차에 이롭게 한 거래이기도 했지만 큐캐피탈에도 득이 되는 거래였다”고 강조했다. ‘정세영의 사람’이라는 것은 그가 정세영 회장이 현대자동차를 경영하던 시절 근무했다는 의미다. 문화창투에도 의혹의 시선이 모인다. 87년 설립된 이 회사의 모체는 아신창업투자다. 나중에 코미트창투로(99년), 다시 문화창투로(2002년) 이름을 바꿨지만 원래는 기아그룹 계열사였다. 기아 계열에서 분리된 후 이 회사는 투자자금 상당 부분을 현대차그룹에 의존해 왔다. 현대캐피탈·울산종합금융 등으로부터 100억원대 자금을 유치한 바 있으며, 한때 현대차가 이 회사 사채를 인수해주기도 했다. 이 회사의 김운태(51) 사장은 주로 증권사에 근무하다 코미트창투에 합류했으며, 이 회사의 주요 주주는 윤현수(53) 전 문화창투 사장이다. 윤씨는 서갑수 한국기술투자 회장, 유종훈 사장 등과 함께 ‘벌처펀드 3인방’으로 불린 인물이다. 그는 코미트창투를 ‘CRC 1호’로 등록시켜 한때 주가를 높였으나 프리챌 불법 대출에 연루돼 구속되고 만다. 이런 편법 M&A 과정에서 나오는 이름이 김재록 전 인베스투스글로벌 회장이다. 채동욱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은 “(옛 기아 계열사가 현대차그룹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들과 김씨가 연관돼 있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의 부실채권 매각 업무 과정을 김씨가 대표로 있던 아서앤더슨에 위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황상 KAMCO의 부실채권 매각⇒CRC 회사들의 옛 기아계열사 인수⇒현대차그룹 편입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김씨가 ‘총괄 지휘’를 맡았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채동욱 수사기획관은 “밥을 열심히 짓고 있다. 현대차 수사는 뜸이 들기만 기다리는 상태”라며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음을 시사했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문제는 더 복잡해질 수 있다. 글로비스 금고에서 나온 비자금 입·출금 명부 때문이다. 검찰은 이 장부를 “첫 번째 수확물”이라고 강조했다. 세간에서는 “이를 통해 현대차그룹이 해외에 숨겨둔 ‘검은머리 펀드’가 밝혀질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회사 돈을 빼돌려서 오너 일가의 주식을 샀다는 추측이다. 사태가 여기까지 번지면 정 회장 부자의 앞날은 더욱 어두워진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가 관계자는 “이렇게 되면 정몽구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손을 떼는 것은 물론 형사처벌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 부자가 선택한 ‘재테크 카드’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향후 엠코 등의 비상장사를 이용한 지분 늘리기는 엄청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정 회장 부자가 그룹의 지배권을 상실하는 ‘사태’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정 회장의 지분이 흔들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현대차 측은 글로비스 등 편법 승계 의혹을 받고 있는 계열사 지분을 처분, 사회에 헌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형적인 ‘삼성 따라하기’다. 이건희 회장은 ‘X파일 논란’을 8000억원대 사재 출연으로 잠재운 전례가 있다. 일부에서는 정 사장 측이 글로비스 지분을 포함해 5000억원대의 사재 출연을 할 것이라고 점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엔 사재 출연이 ‘만능’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럴 때 정 사장의 은사는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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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텍 합병 전에 장하성 교수 만나 정몽구 회장 부자가 이렇게 ‘무리수’를 두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 회장의 장남이자 그룹의 후계자인 정의선 사장에게 물려줄 ‘지분’이 적기 때문이다. 바로 삼성그룹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삼성의 3세 지분 승계에서 핵심은 ‘세금’ 문제였다. 후계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는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60억원을 상속받아 이를 기반으로 삼성의 핵심 계열사 지분을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납부한 세금은 60억원에 대한 증여세 16억원에 불과했다. ‘이재용식(式) 재테크’의 핵심은 세(稅)테크였다.
“1원에 사서 100원에 팔았으니…” “소리 소문 없이 잘한다. 그리고 (잘한다는 업자들은 모두 그랬는데) 탈도 없다. 이런 회사가 진짜 선수 아니냐.” CRC 업계에서 3∼4년 전부터 나돌던 윈앤윈21에 대한 소문이다. ‘선수들도 인정하는 선수’였다는 것이다. 1999년 설립된 윈앤윈21은 SNG21(옛 삼표제작소)·CKF(옛 천광실업)·지코 등 굵직한 인수 건을 성사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2003년엔 1800억원을 들여 서울 강남의 KTB 사옥, 여의도 하나증권 사옥을 한꺼번에 인수하는 ‘괴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삼표제작소는 정 사장의 장인인 정도원 전 강원산업 회장(현 삼표산업 회장)이 경영하던 회사다. 강원산업이 부도나면서 현대차 계열의 현대제철로 주인이 바뀌었으나 2001년 5월 윈앤윈21로 넘어간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 회사가 이렇게 많은 인수합병(M&A)을 성사시키면서 금융 차입금을 거의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윈앤윈21의 강선일(44) 사장은 대학 졸업 후 경기도 안산 소재의 터보엔지니어링을 경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터보엔지니어링은 연매출 10억원대의 소규모 금형회사. 업계 관계자는 “크고 작은 M&A를 성공시켰지만 뒷말이 없는 것으로 봐서 ‘다른 백그라운드’가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한두 명의 ‘물주’가 따로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강 사장이 정 회장의 사돈 회사를 인수하면서 현대차 일가에서 주목받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CRC 회사들의 활약(?)이 돋보인 것은 현대차가 부품회사인 위아(옛 기아중공업)를 인수하는 과정에서다. 위아는 98년 기아그룹이 침몰하면서 화의신청을 했고 계열 분리됐다. 이때 위아를 인수한 회사가 한국프랜지와 윈앤윈21이다. 한국프랜지는 정의선 사장의 고모부인 김영주 명예회장이 경영하는 자동차 부품회사. 프랜지는 위아 지분 44%를, 윈앤윈21은 46%를 주당 1원에 샀다. 윈앤윈21의 지분은 큐캐피탈을 거쳐 현대차그룹에 주당 100원에 넘어갔다. 그러나 2000년 당시 위아는 매출 6675억원에 순이익 611억원을 올린 우량기업이었다. 시장에서 “지극히 비정상적인 거래”라는 말이 나왔다. 본텍 역시 큐캐피탈을 거쳐 정의선 사장에게 지분이 넘겨졌다. 가격도 같다. 큐캐피탈이 주당 1원에, 정 사장은 주당 100원에 본텍 주식을 사들였다. 본텍에 투자한 15억원을 종자돈으로 정 사장은 모비스 주주가 되기를 바랐다. 카스코(옛 기아정기)는 기아⇒프랜지·한신상호저축은행(윈앤윈21의 자회사)⇒모비스로 대주주가 바뀌면서 현대차 계열로 편입됐다. 한신상호저축은행은 지금도 카스코 지분 9.5%를 가지고 있다. CRC 회사들에 ‘헐값’ 매각된 옛 기아 계열사들은 현대차그룹의 지원으로 빠르게 정상화됐고, 당연히(?) 이들의 종착역은 현대차그룹이었다.
‘문화 창투’에도 의혹의 눈초리 이런 의혹에 대해 유종훈(55) 큐캐피탈 사장의 당시 답변은 아주 간결했다. “(주당 1원에 사서 100원에 팔았으니) 우리도 많이 먹었다”는 것이다. 현대자동차·현대증권 등에서 주로 국제부·기업금융 업무를 맡았던 유 사장은 99년 큐캐피탈을 만들어 독립했다. “현대차의 편법적인 계열사 부풀리기에 동조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당시 유 사장은 “굳이 구분하자면 나는 정세영의 사람이지, 정몽구의 사람이 아니다”며 “현대차에 이롭게 한 거래이기도 했지만 큐캐피탈에도 득이 되는 거래였다”고 강조했다. ‘정세영의 사람’이라는 것은 그가 정세영 회장이 현대자동차를 경영하던 시절 근무했다는 의미다. 문화창투에도 의혹의 시선이 모인다. 87년 설립된 이 회사의 모체는 아신창업투자다. 나중에 코미트창투로(99년), 다시 문화창투로(2002년) 이름을 바꿨지만 원래는 기아그룹 계열사였다. 기아 계열에서 분리된 후 이 회사는 투자자금 상당 부분을 현대차그룹에 의존해 왔다. 현대캐피탈·울산종합금융 등으로부터 100억원대 자금을 유치한 바 있으며, 한때 현대차가 이 회사 사채를 인수해주기도 했다. 이 회사의 김운태(51) 사장은 주로 증권사에 근무하다 코미트창투에 합류했으며, 이 회사의 주요 주주는 윤현수(53) 전 문화창투 사장이다. 윤씨는 서갑수 한국기술투자 회장, 유종훈 사장 등과 함께 ‘벌처펀드 3인방’으로 불린 인물이다. 그는 코미트창투를 ‘CRC 1호’로 등록시켜 한때 주가를 높였으나 프리챌 불법 대출에 연루돼 구속되고 만다. 이런 편법 M&A 과정에서 나오는 이름이 김재록 전 인베스투스글로벌 회장이다. 채동욱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은 “(옛 기아 계열사가 현대차그룹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들과 김씨가 연관돼 있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의 부실채권 매각 업무 과정을 김씨가 대표로 있던 아서앤더슨에 위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황상 KAMCO의 부실채권 매각⇒CRC 회사들의 옛 기아계열사 인수⇒현대차그룹 편입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김씨가 ‘총괄 지휘’를 맡았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채동욱 수사기획관은 “밥을 열심히 짓고 있다. 현대차 수사는 뜸이 들기만 기다리는 상태”라며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음을 시사했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문제는 더 복잡해질 수 있다. 글로비스 금고에서 나온 비자금 입·출금 명부 때문이다. 검찰은 이 장부를 “첫 번째 수확물”이라고 강조했다. 세간에서는 “이를 통해 현대차그룹이 해외에 숨겨둔 ‘검은머리 펀드’가 밝혀질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회사 돈을 빼돌려서 오너 일가의 주식을 샀다는 추측이다. 사태가 여기까지 번지면 정 회장 부자의 앞날은 더욱 어두워진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가 관계자는 “이렇게 되면 정몽구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손을 떼는 것은 물론 형사처벌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 부자가 선택한 ‘재테크 카드’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향후 엠코 등의 비상장사를 이용한 지분 늘리기는 엄청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정 회장 부자가 그룹의 지배권을 상실하는 ‘사태’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정 회장의 지분이 흔들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현대차 측은 글로비스 등 편법 승계 의혹을 받고 있는 계열사 지분을 처분, 사회에 헌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형적인 ‘삼성 따라하기’다. 이건희 회장은 ‘X파일 논란’을 8000억원대 사재 출연으로 잠재운 전례가 있다. 일부에서는 정 사장 측이 글로비스 지분을 포함해 5000억원대의 사재 출연을 할 것이라고 점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엔 사재 출연이 ‘만능’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럴 때 정 사장의 은사는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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