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를 볼모로 한 이란의 도박
석유를 볼모로 한 이란의 도박
Why Iran Is Driving Oil Up 5월 초 샤흐푸르 마다니는 평면 디지털 TV를 사려고 테헤란 좀후리 거리의 전자상가들을 누비고 다녔다. 소니사의 산뜻한 신형 TV를 사거나 혹은 마누라에게 냉장고를 사줄 돈은 충분했다. 단지 선택의 갈등만 있었다. 농업부 소속 회계 담당 공무원인 마다니는 지난달 봉급이 올랐고 3월에는 상여금도 받았다. “오랜만에 큰 돈을 만져봤다. 대형 화면으로 축구 경기를 보면 정말로 재미있다”고 그는 말했다. 선택하기가 고민스러울 정도로 가정용 오락기기들도 다양하다. 좀후리 거리에는 말레이시아제 DVD 플레이어, 일제 음향기기, 중국제 VCR 등이 수북이 쌓여 있다. 이란인들이 수십년 만에 맞이한 소비자 천국인 셈이다. 물론 오일 달러 덕분이다. 엄청난 석유 수익 때문에 사람들을 행복하게 혹은 조용하게(혹은 그 둘 다) 만드는 각종 제품이 풍부해졌다. 이란 정부는 수입 규제를 완화하고, 봉급과 연금은 올렸다. 또 이맘 호메이니 재단 같은 자선단체들을 통해 특별 구호품을 나눠줬다. 이란인들에게 그 같은 현금 투입은 일종의 약물 주사나 같다. 국제 석유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지난해에만 500억 달러가 이란으로 유입됐다. 이란 정부의 풍성한 재정 지출은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중독 현상도 일으켰다. 이란의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질병’이라고까지 표현한다. 분명한 사실은 이란 정권이 지속적인 고유가 정책에 병리적으로 집착하면서 각종 위기의 핵심 요인이 됐다는 점이다. 이란의 핵개발 프로그램을 둘러싼 유엔에서의 대결부터 석유 가격의 폭등까지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그런 위기를 부추긴다. 고유가에는 많은 요인이 있다. 하지만 이란의 석유 수익 의존도가 커지는 현상이 주된 요인으로 보인다. 세계 석유 시장은 수급 상황이 극도로 빡빡하다. 세계적으로 하루에 소비되는 석유는 약 8500만 배럴이다. 이는 전 세계가 땅속에서 퍼올리는 원유량과 엇비슷한 규모다. 파리에 있는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석유 공급 문제 전문가인 데이비드 파이프는 “우리는 ‘저스트 인 타임’(입하 재료를 즉시 사용하는 재고관리 방식) 생산 역량의 시대에서 살아간다”고 말했다. 석유 공급에 차질(혹은 그럴 가능성)을 야기하는 사건이라도 발생하면 거래업자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유가는 치솟게 된다. 멕시코만의 허리케인, 나이지리아의 게릴라, 라틴아메리카의 대중영합주의적 정치 행태, 이라크에서의 전쟁과 파괴행위 등은 모두 유가를 현기증 나게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2001년 말 배럴당 20달러도 안 되던 유가는 현재 배럴당 70달러를 넘는다. 그러나 유가를 급등시킬 능력에서 이란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란은 세계에서 둘째로 많다고 입증된 원유 매장고를 갖고 있으며, 보통 하루에 약 250만 배럴을 수출한다. 그런 공급량을 감소시킬 우려가 있는 대결 상황을 생각해 보라. 예컨대 유엔의 이란 제재설, 이란의 보복에 관한 풍문, 전쟁 소문 등이다. 이 모두는 지난해 8월 아마디네자드가 집권해 이란의 핵개발 프로그램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한 이래 국제사회에 나돈 얘기다. 석유 시장이 안절부절 못한다고 놀랄 일은 아니다. 이란의 이웃 나라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를 보자. 사우디아라비아는 입증된 원유 매장고가 세계 1위며, 현재 하루에 약 960만 배럴을 생산한다. 사우디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상당량은 이란 남부 해안을 따라 있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수출된다. 쿠웨이트·바레인·카타르·아랍에미리트에서 생산되는 석유도 마찬가지다. 이런 원유 공급 국가들이나 공급 루트를 위협할 경우 석유 시장은 정말로 펄쩍 뛰게 된다. 일례로 몇 주 전 미국의 위협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이란의 무스타파 푸르모하마디 내무장관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는 에너지 자원이 풍부하다.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에너지 루트 중 하나를 통제한다. 만일 그들(미국)이 다른 방안을 사용하기 원한다면 이란의 잠재력도 그들보다 작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테헤란 측의 수사(修辭)는 계산된 것이다. 이란은 고유가라는 방패 뒤에서 핵 프로그램을 추진해 왔고, 지금까지는 그 정책이 먹혀들어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란산 석유를 보이콧하자고 제안한 나라는 여태까지 미국을 포함해 단 한 나라도 없다. 그리고 미국은 군사력 사용 방안을 배제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그 방안을 안보리에 상정하지도 않았다. 이란의 집권 이슬람 성직자들(그들의 최우선적 관심사는 정권의 생존이다)은 결국엔 석유 방패를 핵무기 방패로 대체할 수 있다는 데 승부를 걸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도 석유 수익금은 계속 유입된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그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위험한 도박이다. 이란의 석유 산업은 오랫동안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데다 미국의 경제 제재로 엉망이 됐다. 지난해부터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생산 할당량도 채우지 못했다. 게다가 정유시설이 너무 낙후돼 있어 소비하는 휘발유의 절반 가량을 수입해야 한다. 이란 정부는 석유 수익금을 새로운 생산시설 건설에 재투자하기보다 정치적 목적의 민생 보조금을 풍부하게 나눠줘 일반 대중을 매수하기를 선호한다(그런 점에서는 다른 산유국들의 부패한 집권 엘리트들과 똑같다). 그런 식으로 석유 값에 정부 보조금이 붙다 보니 이란인들은 1ℓ에 겨우 10센트 정도만 지불한다. 그러고는 석유를 원하는 대로 사용(혹은 남용)한다. 테헤란의 파키스탄 거리에 있는 한 셀프서비스 주유소에서 손님인 파리드 에샤기는 자기 자동차에 주유를 하다가 0.5ℓ 정도의 기름을 땅바닥에 흘렸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반문했다. “우리 나라에는 기름이 엄청나게 많은데 그 정도 낭비한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가 있소?” 경제전문가 사이에드 라일라즈에 따르면 이란에 돈이 남아돌다 보니 이란의 외환 지출은 1997년 200억 달러에서 올해 500억 달러로 늘었다. 이미 만연된 부정부패를 단속하려는 노력은 줄어들었다. 정부 감사관들이 과거에는 1000만 달러 이상의 거래를 모두 조사했지만 지금은 그 기준선이 5000만 달러로 완화됐다고 라일라즈는 지적한다. 외국 제품 수입이 늘면서 국내 제조업은 쇠퇴해 간다. 민영화 노력은 본질적으로 중단됐다. 정부가 노후화한 국영 기업들에 정치적인 목적의 보조금을 더 많이 지급하기 때문이다. 많은 진보 인사의 시각에서 볼 때 가장 나쁜 점은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국민 대중의 상당수를 매수해 반체제운동을 질식시키고 민주화를 좌절시킨다는 측면이다. 석유 가격이 떨어지면 이는 곧바로 이란 정권의 최대 약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유가가 배럴당 40달러 미만으로 하락하면 이란 경제가 혼란에 빠진다”고 라일라즈는 지적했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불안한 중동 정세 덕분에 유가 인상에 의존하는 주장이 통한다. 그리고 샤푸르 마다니는 봉급을 올려준 대통령이 고맙기만 하다. 마다니는 그 돈으로 결국 아내에게 새 냉장고를 사주기로 결정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아마디네자드에게 투표하지 않았다. 하지만 국민의 복지를 생각하는 대통령은 그가 처음인 듯하다.” 많은 마약 중독자도 마약 밀매상이 자신들을 염려한다고 생각한다. 장병걸 cbg58@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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