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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국제상사 4년 전쟁

이랜드-국제상사 4년 전쟁

"4년 전 정리계획을 믿고 출자전환 채권을 고가에 낙찰받은 지배주주의 권리는 보호돼야 한다. 대주주를 무시한 국제상사의 제3자 M&A 시도는 명분이 없다.”(이랜드) “우린 철저하게 회사정리법에 입각한 절차를 밟았을 뿐이다. 적대적 M&A로 접근하고, 브랜드 관리 능력도 없는 이랜드에 경영권을 뺏길 수 없다.”(국제상사) 이랜드와 국제상사의 분쟁이 올해로 4년째 계속되고 있다. 대주주로서의 권리를 내세우는 이랜드와 적대적 M&A로 접근한 기업에 경영권을 줄 수 없다는 국제상사 측의 대립은 해를 거듭해도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분쟁은 지난 7월 18일 국제상사 정리법원인 창원지방법원이 국제상사 M&A를 위한 제3자 매각 대상자로 E1(구 LG칼텍스가스)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전환점을 맞았다. E1은 총 8551억원의 국제상사 인수대금 중 4501억원을 유상증자에 쏟아부어 지분 74.1%를 차지, 국제상사의 최대주주가 됐다. E1이 국제상사 인수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지 3년 만의 일이다. 이랜드 그룹을 포함한 기존 주주들이 갖고 있는 주식은 회사정리법에 규정된 권리보호조항에 따라 유상감자를 하면 정리법원이 정한 금액(액면가 5000원)에 해당하는 금전적 보상을 받되 해당 주식은 전량 소각된다. 국제상사의 대주주였던 이랜드의 주권도 사실상 소멸하게 되는 것이다. 이랜드는 7월 18일 바로 법원의 결정에 불복하고 정리계획안 인가 여부를 부산고법에 항고한 상태다. 동시에 창원지법에는 수행 중지 신청을 냈지만 이 건은 20일 기각됐다. 서울 용산에 있는 국제상사 본사 1층 로비 정면에는 지금도 ‘이랜드 경영권 인수 반대’라고 쓰인 색 바랜 플래카드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다. 이 플래카드는 2003년 국제상사 비상대책위원회가 붙여 놓은 것이다. “오죽했으면 법정관리 기업의 직원들이 제발 제3자 매각을 해달라고 매달리겠는가? 이랜드만 방해를 안 했다면 국제상사는 벌써 정상 경영을 하고 있을 것이다. E1이 최대주주가 돼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으니 일단 한시름 놓은 셈이다.” 20일 국제상사 본사에서 만난 한 비대위 직원의 푸념이다. 국제상사 직원들은 이랜드에 대한 분을 아직도 삭이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투기냐? 투자냐? 치열한 공방 두 회사 간 분쟁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2년 6월 이랜드는 법정관리에 들어간 국제상사의 주채권자인 우리은행의 공개입찰로 국제상사 주식 224만 주와 전환사채(CB) 600억원어치를 500억원에 사들였다. 전환사채를 포함해 국제상사 지분 45.2%를 보유하게 된 이랜드는 50억원가량을 더 들여 국제상사 주식을 장내에서 매입, 지분을 51.8%로 늘리면서 대주주가 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이랜드는 조속한 시일에 국제상사가 법정관리를 졸업할 거라는 기대감을 품었다. 이 당시 이랜드가 창원지법에 제출한 경영계획서에도 ‘이랜드의 꿈’이 담겨 있다. “프로스펙스를 국내 스포츠 브랜드 파워 1위로 육성하고 중국시장 선점을 통해 세계 5위권 브랜드로 키울 것이며, 법정관리 조기 종결을 통해 경영 정상화를 도모하겠다.” 이랜드는 국제상사의 정리계획을 검토하면서 국제상사가 다른 법정관리 기업과 달리 유상증자를 통한 제3자 매각이 아닌 부동산 매각과 영업이익으로 법정관리를 끝낼 수 있다는 데 희망을 걸었다. 그런데 국제상사는 2002년 10월 창원지법의 허가를 받아 정관을 변경했다. 수권자본금을 4000만 주에서 8000만 주로 늘린 것이다. 이 시점부터 이랜드와 국제상사 간의 분쟁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랜드는 한 달 뒤 국제상사 정관 변경에 관한 허가 결정 취소에 대한 특별항고를 창원지법에 제출했다. 창원지법은 특별항고를 기각했으며 이랜드는 부산고등법원에 즉시 항고했다. 이랜드는 이어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창원지법에 제출했지만 국제상사는 굴하지 않았다. 2003년 1월 31일 제3자 M&A를 위한 기업 매각 공고를 낸 것이다. 이랜드는 용산 사옥 매각 자금으로 정리채무를 변제하고 국제상사를 일으키는 데 힘을 쏟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국제상사 측은 이를 곱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투자’가 아닌‘투기’ 세력으로 규정한 것이다. 자체 자본력이 부족한 이랜드가 국제상사를 인수할 경우 용산사옥 매각을 통한 투자금 회수가 충분히 예상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랜드는 2004년 4월 국제상사 측의 반발이 심해지자 신규 자금 3000억원을 투입하고 용산 사옥을 매각하지 않겠다는 제안을 했지만 국제상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제상사 관계자는 “상황에 따라 입장을 자주 바꾸는 이랜드의 태도를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국제상사의 대주주가 된 이후 지금까지 총 10여 차례에 걸친 투자 제안 변경을 해온 이랜드를 믿기 어렵다는 게 국제상사의 입장이다. 소모적인 분쟁은 손실을 낳는다. 이랜드와 국제상사 양사 모두 지난 4년간의 분쟁으로 입은 경제적 손실은 수천억원대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랜드 관계자는 “500억원을 투자해 인수한 국제상사를 2년 내 4000억원대 매출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며 “소송으로 인한 기회비용과 이미지 훼손 가치까지 따지면 4년간 손실액은 수천억원대를 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장기 분쟁에 손실만 수천억 대 이에 대해선 국제상사 측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제3자 매각이 빨리 이뤄져 국제상사에 신규 자본이 들어왔다면 브랜드 가치도 높아지고 지금쯤이면 정상 궤도에 올라있지 않았겠느냐는 주장이다. 실제 국제상사는 주력 브랜드인 프로스펙스의 시장 점유율이 93년 1위에서 2005년 3위로 추락하는 등 갈수록 시장에서의 입지가 약해지고 있다.
창원지법은 최근 “국제상사의 지속 가능성을 검토한 결과 2009년부터는 정리채무를 일부 변제할 수 없게 되고, 2010년까지는 500억원 이상의 정리채무를 변제할 수 없게 돼 회사 정리 절차를 조속하게 종결하지 못할 경우 국제상사의 경영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창원지법이 제3자 매각을 서두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원은 2000년 이후 법정관리 조기 종결 방안으로 유상증자를 통한 제3자 매각을 적극 권장하고 있지만 이랜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리 회사의 제3자 M&A 방식은 기존 주주에 대해 회사 파탄의 책임을 물을 때 불가피하게 활용되는 방식이다. 지배주주로 있는 이랜드개발은 국제상사의 부실과는 무관하다. 국제상사 정상화에 필요한 자금조달 능력과 의사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구주주에 의한 회사의 정상화가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했다.” 법정관리 기업이라 해도 상법에 의한 주식회사의 본질적인 특성이 적용되기 때문에 회사에 대한 소유권은 주주에게 귀속된다는 것이 이랜드의 입장이다. 하지만 회사정리법엔 법정관리 기업의 주주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으며 배당도 받을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M&A의 귀재로 주목받던 이랜드가 법정관리 기업인 국제상사를 인수해 냉가슴을 앓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2003년 국제상사는 이랜드 인수를 반대한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전 직원 사직서를 창원지법에 제출했다. 전 직원 급여에서 3%씩을 공제해 이랜드 경영권 반대 신문광고를 대문짝만하게 내기도 했다. 국제상사가 이랜드에 대해 필사적으로 거부감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 국제상사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랜드는 우리은행에서 주식을 매각할 때 정리법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리은행이 보유한 주식을 취득했다. 정리법원 및 회사의 이해를 전혀 구하지 않고 경영권 인수, 정리 채무 변제, 정리절차 종결 등을 언론에 제멋대로 공표한 것은 국제상사를 살리기 위한 것이 아닌 적대적 M&A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이랜드는 이 주장에 대해 “경영권 인수를 언론에 공표한 것은 우리 의지가 아니었다”며 반박했다. 국제상사 측은 이랜드의 자본력에 대해서도 신뢰하지 못하고 있었다. 국제상사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최근 까르푸를 인수한 이랜드월드의 경우 영업외 수익 1530억원(2005년 기준)에는 유형자산처분이익 1190억원이 포함돼 있다. 이는 M&A 피인수 회사인 뉴코아의 부동산 매각에 따른 차액 1186억원이 반영된 것”이라며 “만일 부동산 매각이 없었을 경우 이랜드그룹의 연결 당기순이익은 적자다. 이런 상황에서 이랜드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실제 이랜드의 M&A 자금 조달 방법 및 조달 자금 상환 방법을 보면 ‘단기 차익→경영권 인수→영업용 중요 자산 매각 →차입자금 상환’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자칫 투기적 세력이라는 오해를 받을 만하다. 최근에는 이랜드와 뉴코아, 까르푸 노조가 단합해 ‘이랜드와 까르푸 합병을 용인하지 않겠다’고 반발하고 있어 국제상사의 주장이 아예 설득력이 없지는 않은 대목이다. 까르푸 인수를 위해 빌린 돈이 너무 많아 이랜드 그룹 전체의 도산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랜드는 지난 4월 한국까르푸를 약 1조7500억원에 인수했다. 이 중 뉴코아가 2000억원, 건설업체인 이랜드월드가 1000억원을 부담했으며, 나머지 1조4500억원은 우리은행과 국민은행에서 자금을 조달했다.

이랜드, “안 되면 대법원까지 갈 생각” 국제상사 측은 이랜드의 브랜드 관리 능력에 대해서도 불신하고 있다. 2005년 기준으로 이랜드는 총 12개의 브랜드에서 2356억원의 매출(브랜드별 매출액 평균 196억원)을 올리는 데 비해 국제상사는 프로스펙스 한 개 매출만 1517억원을 올렸다. 2005년 이랜드 매출액 2356억원 중 독일 라이선스 브랜드인 푸마의 매출액 1058억원을 제외한 기타 브랜드의 매출은 브랜드당 118억원에 불과하다는 것. 이런 점에서 프로스펙스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이랜드의 주장에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게 국제상사 측 설명이다. 게다가 저가 브랜드를 고수하는 이랜드가 프로스펙스를 가져가면 브랜드 가치가 떨어질 위험에 대해서도 국제상사 측에서는 우려하고 있다. 이랜드개발의 권순문 대표는 13일 서울 여의도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권 대표는 이 자리에서 국제상사의 조속한 정상화 및 국가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국제상사와 인수계약을 체결한 E1에 공동 인수 제안을 했다. 국제상사를 E1과 공동으로 경영하되 프로스펙스 등 영업 전반은 이랜드가 맡겠다는 내용이었다. 경영권 위기를 느낀 이랜드의 조급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랜드의 제안에 대해 E1 측은 “대주주이기 때문에 경영권을 가져가야 한다는 전제에서 시작된 공동 인수 제안은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E1이 국제상사를 인수한 배경은 스포츠브랜드인 프로스펙스를 가지고 있는 국제상사가 2004년부터 표방한 회사의 브랜드 비전(삶의 에너지를 제공하는 기업)에 합치된다는 이유였다. E1은 프로스펙스의 유통망을 통해 스포츠 레저사업 진출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다. 채권단의 출자전환 주식을 취득해 대주주 지위를 차지한 이랜드와 회사정리법에 의한 정리절차를 거친 E1의 희비가 엇갈리는 대목이다. 국제상사의 한 간부는 “이랜드와의 오랜 법적 공방에서 지쳤다”며 “국제상사 대부분의 임직원은 E1이 합리적 경영으로 회사를 회생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하루빨리 회사가 살아나길 바라는 심정뿐”이라고 토로했다. 이랜드는 “국제상사 인수 포기는 있을 수 없다”며 “우리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대법원까지 가겠다”고 밝혔다. 분쟁의 끝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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