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국제상사 4년 전쟁
이랜드-국제상사 4년 전쟁
투기냐? 투자냐? 치열한 공방 두 회사 간 분쟁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2년 6월 이랜드는 법정관리에 들어간 국제상사의 주채권자인 우리은행의 공개입찰로 국제상사 주식 224만 주와 전환사채(CB) 600억원어치를 500억원에 사들였다. 전환사채를 포함해 국제상사 지분 45.2%를 보유하게 된 이랜드는 50억원가량을 더 들여 국제상사 주식을 장내에서 매입, 지분을 51.8%로 늘리면서 대주주가 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이랜드는 조속한 시일에 국제상사가 법정관리를 졸업할 거라는 기대감을 품었다. 이 당시 이랜드가 창원지법에 제출한 경영계획서에도 ‘이랜드의 꿈’이 담겨 있다. “프로스펙스를 국내 스포츠 브랜드 파워 1위로 육성하고 중국시장 선점을 통해 세계 5위권 브랜드로 키울 것이며, 법정관리 조기 종결을 통해 경영 정상화를 도모하겠다.” 이랜드는 국제상사의 정리계획을 검토하면서 국제상사가 다른 법정관리 기업과 달리 유상증자를 통한 제3자 매각이 아닌 부동산 매각과 영업이익으로 법정관리를 끝낼 수 있다는 데 희망을 걸었다. 그런데 국제상사는 2002년 10월 창원지법의 허가를 받아 정관을 변경했다. 수권자본금을 4000만 주에서 8000만 주로 늘린 것이다. 이 시점부터 이랜드와 국제상사 간의 분쟁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랜드는 한 달 뒤 국제상사 정관 변경에 관한 허가 결정 취소에 대한 특별항고를 창원지법에 제출했다. 창원지법은 특별항고를 기각했으며 이랜드는 부산고등법원에 즉시 항고했다. 이랜드는 이어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창원지법에 제출했지만 국제상사는 굴하지 않았다. 2003년 1월 31일 제3자 M&A를 위한 기업 매각 공고를 낸 것이다. 이랜드는 용산 사옥 매각 자금으로 정리채무를 변제하고 국제상사를 일으키는 데 힘을 쏟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국제상사 측은 이를 곱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투자’가 아닌‘투기’ 세력으로 규정한 것이다. 자체 자본력이 부족한 이랜드가 국제상사를 인수할 경우 용산사옥 매각을 통한 투자금 회수가 충분히 예상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랜드는 2004년 4월 국제상사 측의 반발이 심해지자 신규 자금 3000억원을 투입하고 용산 사옥을 매각하지 않겠다는 제안을 했지만 국제상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제상사 관계자는 “상황에 따라 입장을 자주 바꾸는 이랜드의 태도를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국제상사의 대주주가 된 이후 지금까지 총 10여 차례에 걸친 투자 제안 변경을 해온 이랜드를 믿기 어렵다는 게 국제상사의 입장이다. 소모적인 분쟁은 손실을 낳는다. 이랜드와 국제상사 양사 모두 지난 4년간의 분쟁으로 입은 경제적 손실은 수천억원대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랜드 관계자는 “500억원을 투자해 인수한 국제상사를 2년 내 4000억원대 매출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며 “소송으로 인한 기회비용과 이미지 훼손 가치까지 따지면 4년간 손실액은 수천억원대를 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장기 분쟁에 손실만 수천억 대 이에 대해선 국제상사 측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제3자 매각이 빨리 이뤄져 국제상사에 신규 자본이 들어왔다면 브랜드 가치도 높아지고 지금쯤이면 정상 궤도에 올라있지 않았겠느냐는 주장이다. 실제 국제상사는 주력 브랜드인 프로스펙스의 시장 점유율이 93년 1위에서 2005년 3위로 추락하는 등 갈수록 시장에서의 입지가 약해지고 있다.
이랜드, “안 되면 대법원까지 갈 생각” 국제상사 측은 이랜드의 브랜드 관리 능력에 대해서도 불신하고 있다. 2005년 기준으로 이랜드는 총 12개의 브랜드에서 2356억원의 매출(브랜드별 매출액 평균 196억원)을 올리는 데 비해 국제상사는 프로스펙스 한 개 매출만 1517억원을 올렸다. 2005년 이랜드 매출액 2356억원 중 독일 라이선스 브랜드인 푸마의 매출액 1058억원을 제외한 기타 브랜드의 매출은 브랜드당 118억원에 불과하다는 것. 이런 점에서 프로스펙스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이랜드의 주장에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게 국제상사 측 설명이다. 게다가 저가 브랜드를 고수하는 이랜드가 프로스펙스를 가져가면 브랜드 가치가 떨어질 위험에 대해서도 국제상사 측에서는 우려하고 있다. 이랜드개발의 권순문 대표는 13일 서울 여의도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권 대표는 이 자리에서 국제상사의 조속한 정상화 및 국가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국제상사와 인수계약을 체결한 E1에 공동 인수 제안을 했다. 국제상사를 E1과 공동으로 경영하되 프로스펙스 등 영업 전반은 이랜드가 맡겠다는 내용이었다. 경영권 위기를 느낀 이랜드의 조급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랜드의 제안에 대해 E1 측은 “대주주이기 때문에 경영권을 가져가야 한다는 전제에서 시작된 공동 인수 제안은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E1이 국제상사를 인수한 배경은 스포츠브랜드인 프로스펙스를 가지고 있는 국제상사가 2004년부터 표방한 회사의 브랜드 비전(삶의 에너지를 제공하는 기업)에 합치된다는 이유였다. E1은 프로스펙스의 유통망을 통해 스포츠 레저사업 진출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다. 채권단의 출자전환 주식을 취득해 대주주 지위를 차지한 이랜드와 회사정리법에 의한 정리절차를 거친 E1의 희비가 엇갈리는 대목이다. 국제상사의 한 간부는 “이랜드와의 오랜 법적 공방에서 지쳤다”며 “국제상사 대부분의 임직원은 E1이 합리적 경영으로 회사를 회생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하루빨리 회사가 살아나길 바라는 심정뿐”이라고 토로했다. 이랜드는 “국제상사 인수 포기는 있을 수 없다”며 “우리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대법원까지 가겠다”고 밝혔다. 분쟁의 끝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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