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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기업을 이끄는 사람들] 한국을 세계 게임 허브로

[중견기업을 이끄는 사람들] 한국을 세계 게임 허브로

▶ 1961년 전북 완주 生·이리고·광운대 전자계산학·LG소프트 콘텐트사업팀장·한빛소프트 사장·한국게임산업협회 회장(2005년 4월~)·한빛소프트 회장(2006년 1월~)

한빛소프트의 온라인게임 매출에서 해외 비중이 절반을 넘어섰다. 김영만 회장은 요즘 일정의 3분의 2를 해외에서 보낸다. ‘글로벌 게임업체’로 키우려는 김 회장의 꿈도 가까워지고 있다.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전문건설회관. 이 건물 25층에 한빛소프트 본사가 있다. 한빛소프트는 매달 한 차례 3층 국제회의실에서 조회를 연다. 월례조회에는 마포구 노고산동의 고객지원센터 근무인원 등 모두 200여 명이 참석한다. 9월 4일 월례조회엔 새로 개발한 게임의 사내 시연 행사가 곁들여졌다. 김영만(45) 한빛소프트 회장의 인사말에 이어 김 회장과 박춘구(47) 사장이 각각 두 명씩 팀을 이뤄 ‘그루브 파티’ 시합을 벌였다. 그루브 파티는 비보이(B-Boy) 춤을 위주로 구성한 댄스 경연 게임. 노래 박자에 정확히 맞춰 춤 동작을 구사할수록 높은 점수를 얻는다. 임직원들이 프로젝터로 비친 대형 화면을 지켜보는 가운데 한 차례 연습한 뒤 본 게임이 치러졌다. 승리는 간발의 차이로 김 회장 팀에게 돌아갔다. 박 사장은 전 임직원에게 아이스크림을 돌렸다. “연배에 비해 게임을 쉽게 익히고 잘하세요.” 김 회장과 한 팀으로 승리를 거둔 온라인사업부 김정옥 대리의 평이다. 김 대리는 “게임을 보고 평가하는 안목도 남다르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김 회장은 “LG소프트에서 게임 개발자로 일하던 1990년대부터 밤새 게임하고 분석하곤 했으니 ‘게임 1세대’라고 할 수 있죠”라며 웃었다. 김 회장은 게임 1세대이자 게임 유통시장을 개척한 인물이다. 그는 LG소프트 연구소에서 일하다 영업부서로 옮겼다. 소프트웨어를 이해하는 영업 인력의 부족에서 오는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마음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당시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던 선택”이었지만 이는 그에게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영업부서에서 그는 스타크래프트의 가능성을 내다보고 제작사 블리자드(Blizzard)의 모회사인 비벤디(Vivendi) 그룹과 3만 장 이상 판매 계약을 맺었다. 98년 4월부터 영업에 들어가 그해 말까지 11만4,000장을 팔았다. 판매량 3만 장이면 히트작으로 꼽히던 상황에서 대단한 실적이었다. 시장에선 ‘이 정도면 스타크래프트가 다 팔린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그는 동의하지 않았다. 99년 1월 LG소프트에서 분사해 한빛소프트를 세웠다. LG소프트 입사동기인 박춘구 사장을 비롯해 7명이 그와 함께 나섰다. 현재 김 회장은 회사 지분을 20.4%, 박 사장은 15.1%를 갖고 있다. 그는 시장을 한 번 더 깜짝 놀라게 했다. 99년에 무려 118만 장의 스타크래프트를 판매했다. 2000년 판매량은 줄었지만 여전히 기록적인 수준인 70만 장을 기록했다. 지난해까지 7년 동안 누적 판매량은 모두 388만 장에 이른다. 디아블로2가 스타크래프트의 파죽지세를 이었다. 2000년 6월 출시된 디아블로2는 1년 만에 100만 장, 4개월 뒤에 200만 장 판매량을 돌파했다. 2000년에 434억원이었던 매출이 2001년에 약 두 배인 827억원으로 급증했다. 순이익은 101억원에서 140억원으로 늘었다. 연달아 성공을 거두자 기대치가 한껏 높아졌다. 김 회장은 블리자드의 후속작인 워크래프트3 판매수량을 최대한 높게 잡아 계약했다.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2의 성공을 지켜본 다른 회사들이 경쟁을 벌인 탓도 있었지만 너무 높은 수준이었다”고 김 회장은 술회했다. 시기도 불리했다. 한빛소프트의 마케팅 노력은 2002년 월드컵 열기에 휩쓸려 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판매를 아주 못한 건 아니에요. 지금까지 70만 장 이상 팔았으니까요.” 워크래프트3에서 입은 타격으로 한빛소프트는 2003년부터 2년 연속 큰 폭 적자를 기록했다. 한빛소프트는 지난해 매출 497억원에 소폭이나마 26억원 순이익으로 돌아섰다.

온라인게임 해외 매출이 절반 넘어 지난해 몸을 추스른 한빛소프트가 올해 들어 도약에 나섰다. 매출을 상반기에 282억원 올렸고, 연간으로는 약 6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20% 이상 키울 것으로 전망된다. 성장엔진은 해외에 장착했다. 김 회장은 “해외 쪽이 굉장히 잘 되고 있다”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한빛소프트는 현재 골프게임 팡야를 비롯한 5개 게임을 해외 44개국에 서비스한다. 지난해 주력인 온라인게임 사업부문에서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앞질렀다. 온라인게임은 한빛소프트 전체 매출의 약 60%를 기여한다. 한빛소프트의 온라인게임으로는 그루브 파티·팡야·그라나도 에스파다 등이 있다. 온라인게임은 게임 회사의 서버에 접속해야만 즐길 수 있는 종류를 말한다. 반면 PC네트워크 게임은 인터넷 외에 다른 네트워크나 오프라인 PC에서도 돌아간다. 스타크래프트·디아블로2·워크래프트 등이 대표적인 PC네트워크 게임이다. 영화 산업에 제작사와 배급사가 있듯이 게임 산업에는 개발사와 퍼블리셔가 있다. 한빛소프트를 비롯한 퍼블리셔는 게임 콘텐트를 확보해 이를 소비자에게 판매하고 운영하는 전문업체를 뜻한다. 한빛소프트는 자체적으로 게임을 개발하기도 하고 조이임팩트·IMC게임즈 등 자회사에도 개발을 맡긴다. 한빛소프트는 다른 회사에서 개발한 게임도 잇달아 성공적으로 유통시켰다. “국내에서 우리처럼 외부 회사 제품으로 성공체험을 가진 곳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러면 개발사들이 왜 한빛소프트를 찾느냐. 우리가 잘해 주는 게 없으면 한 번 거래하고 끝날 수 있잖아요. 개발사와 잘 협업해 오면서 신뢰를 쌓은 덕인 것 같습니다.” 한빛소프트는 2002년부터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섰다. 차이나 텔레콤(China Telecom·中國電信)과 합작회사 해피 디지털(Happy Digital·成都歡樂數碼信息技術)을 설립한 것. 2004년에는 일본 히타치(日立)와 함께 일본에 한빛 유비쿼터스 엔터테인먼트(Hanbit Ubiquitous Entertainment)를 세웠다. 올해 들어선 플래그십 스튜디오(Flagshipstudios)와 핑제로(Ping0)를 합작 설립하며 미국에도 진출했다. 올해를 글로벌 퍼블리셔로 도약하는 원년으로 선언한 김 회장은 요즘 일정의 3분의 2 이상을 해외에서 보낸다. 해외 영업에서 굵직한 사안은 직접 찾아가 파트너와 입장을 조율한다. 일본 현지법인 사장을 겸하고 있는 그는 한 달에 한 번은 일본에서 일을 챙긴다. 해외 영업의 성과는 앞으로도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올해 안에 팡야가 유럽에서, 그라나도 에스파다는 12개국에서 상용화될 예정이다. 내년 전망은 더 밝다. 한빛소프트는 올해 말 베타테스트(소프트웨어 출시를 앞둔 시험 서비스)를 거쳐 내년에 서비스 예정인 헬게이트: 런던(Hellgate: London)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헬게이트는 세계에서 가장 역량이 뛰어난 개임 개발자 중 한 사람인 빌 로퍼(Bill Roper)의 작품이다. 로퍼는 스타크래프트·디아블로 등 블리자드 최고 성공작들의 제작에 참여하거나 총책임을 맡았으며 2003년에 플래그십 스튜디오를 차려 독립했다. 한빛소프트는 헬게이트에 대해 아시아 시장에서는 온라인·오프라인 판권을, 핑0는 아시아 이외 지역에서의 온라인 판권을 확보했다.

새 게임 헬게이트 4,500만 달러 계약 헬게이트는 악마의 공격으로 폐허가 된 2030년의 런던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게임. 접속할 때마다 배경이 바뀌어 게이머가 계속 흥미를 갖도록 한 점이 특징이다. 한빛소프트 관계자는 “디아블로2도 배경이 바뀌었지만 2차원이었고, 3차원 게임에서는 헬게이트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아직 선보이지도 않았지만 헬게이트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뜨겁다. 한빛소프트는 중국에 3,500만 달러, 동남아 8개국에 1,000만 달러에 공급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한빛소프트는 이 금액을 상용화 이후 3년에 걸쳐 받는다. 또 현지 매출액의 21%가 로열티로 들어온다.
한빛소프트가 4,500만 달러 전액을 챙기는 것은 아니다. 개발사인 플래그십 스튜디오에 판권료를 지불해야 한다. 한빛소프트는 판권을 얼마에 샀는지는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굿모닝신한증권 최경진 선임연구원은 “한빛소프트의 내년 매출이 올해보다 67.9% 불어난 1,014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헬게이트 판권 확보와 관련해 김 회장은 “로퍼 대표가 나를 믿고 좋은 조건에 줬다”며 고마워했다. 두 사람은 96년에 처음 만나 10년간 친분과 신뢰를 쌓았다. 김 회장은 “로퍼 대표가 그동안 우리의 마케팅 활동과 실적을 죽 봐 왔다”며 “퍼블리셔로서의 능력과 개발 회사와 서로 윈윈 하는 장기적인 전략에 대해 믿음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게임업체에 없는 한빛소프트만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완구 사업이다. 파워레인저 등 캐릭터 완구가 매출의 약 30%를 차지한다. 김 회장은 앞으로는 게임과 연계해 완구 사업을 키워 나가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캐릭터 완구가 기존에는 애니메이션 같은 데 나오는 주인공 위주였는데, 온라인게임 캐릭터도 성장할 겁니다. 애니메이션은 예컨대 54편이라면 6개월에 다 끝나잖아요. 반면 온라인게임은 한 번 성공하면 5년은 서비스돼 라이프사이클이 훨씬 길어요. 그루브 파티처럼 10대 연령층을 겨냥한 게임이 성공하면 캐릭터를 완구로 만들 생각입니다.” 조이임팩트의 박윤석 이사는 “김 회장이 큰 부분을 맡겨 놓으면서도 세부 사항을 속속들이 파악한다”고 일하는 스타일을 전했다. 박 이사는 한빛소프트 IR팀장으로 일하다 최근 조이임팩트의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옮겼다. LG소프트 재경부서에서 일하며 김 회장을 처음 만났고, 한빛소프트엔 창업 1년 뒤에 합류했다. “영업맨은 회계나 채권 관리를 잘 모르기 쉽고 특히 김 회장은 공대 출신이어서 더 약했는데, 엄청나게 공부하고 물어보더니 결산 때 부실채권이 하나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더군요.” 김 회장은 2002년엔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면접 날이 부산 행사와 겹쳤어요. 비행기로 서울에 와서 면접한 뒤 다시 오후에 부산에 내려갔죠. 대학원장님께서 ‘기업 경영하면서 일반대학원을 다닐 수 있겠느냐고 물으시더군요. 쉽진 않겠지만 오늘 같은 마음이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씀드렸죠.” 그는 교양과목 수업일수가 부족해 F학점을 받았고 그래서 2년 반 만에 졸업했다. “대학 때 컴퓨터공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논문 쓰기는 어렵지 않았어요.” 논문 주제는 게임 배경화면을 효율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는 게임 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사행성 게임이다 게임중독이다 해서 전체 게임 시장이 위축될까봐 걱정됩니다. 어디 가든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이, 게임은 힙합이나 비보이처럼 하나의 문화 코드입니다. 요즘 청소년이 게임을 즐기는 것이나 전에 나팔바지에 머리를 기르던 것과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김 회장의 두 아들은 중학교 3학년과 1학년이다. “애들 엄마가 게임을 많이 한다고 나무라면 ‘아버지 회사 게임하는데 왜 반대하느냐’고 그래요. 하하.” 그는 오히려 아들들에게 새로 준비하는 게임을 건네준다. “베타 테스터가 집에 있는 셈이죠. 하하하.” 김 회장은 2001년 상반기엔 고려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을 이수했다. 그는 ‘게임 산업 발전을 위한 퍼블리셔의 역할’이란 논문으로 51기 최우수논문상을 받았다. 이 논문에서 그는 “한국에도 제대로 된 퍼블리셔가 만들어질 경우 많은 효과가 기대된다”며 그 중 하나로 “퍼블리셔와 게임개발업체와의 적극적 제휴를 통한 해외 수출 및 서비스로 인한 무역수지 개선효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5년 전 이 구상을 바야흐로 실현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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