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무덤 찾았나?
예수의 무덤 찾았나?
1980년 발견된 동굴‘타이타닉’의 캐머런 감독이 TV 다큐로 제작해 뜨거운 논란 예루살렘, 그 유서깊은 성지의 주택은 사람의 뼈 위에 세워졌다. 수천 년 동안 수백 세대에 걸쳐 유대인, 이슬람교 신자, 그리고 기독교인의 시신이 예루살렘의 바위 투성이 땅에 묻혔다. 토바 브라하는 자신의 아파트 옆에 장미로 둘러싸인 아담한 콘크리트 부지가 고대 유대인의 묘지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예루살렘 도처에 워낙 무덤이 많으니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그녀는 말했다. 안식일을 맞아 양팔에 식료품을 잔뜩 든 귀갓길에 브라하는 그 묘지가 꽤 종교적인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는 말을 웃어넘겼다. 관광객들에게 자잘한 기념품이나 팔아 목돈을 마련해 볼까라고 그녀는 농담했다. 아니면 집값이 치솟을지도. 이번주 디스커버리 채널은 종교서적 출판사 하퍼샌프란시스코와 함께 ‘예수 가족의 무덤(The Jesus Family Tomb)’이라는 TV 다큐멘터리와 책을 발표했다. 이스트 탈피요트라는 평범한 교외에 위치한 토바 브라하의 아파트 옆 묘지가 다름 아니라 예수의 가족 묏자리라는 주장이 주된 내용이다. 저명한 TV 감독 심차 자코보비치가 진두지휘하고 ‘타이타닉’을 감독한 제임스 캐머런이 제작한 ‘예수 가족의 무덤’은 1980년 발굴된 1세기 유대인 무덤 동굴과 그 안에서 나온 뼈 상자 10개, 다시 말해 유골함 이야기를 매끄럽고 긴장감있게 풀어낸다. 자코보비치는 통계학자, 고고학자, 역사학자, DNA 전문가, 로봇 카메라 기술자, 묘비명 학자, 그리고 뉴욕주 롱아일랜드 과학수사(CSI)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예수, 성모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와 덜 알려진 그들 친척의 뼈가 한때 이 동굴 안에 합장됐다는 가설이다. 자코보비치와 이 프로젝트를 논의한 프린스턴 신학교의 제임스 찰스워스는 흥미를 보였다. “[이 뼈가] 예수 문중에 속한다는 주장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 자코보비치는 자칭 자신의 ‘재발견’이 일으킨 신학적, 역사적 논란의 의미에도 태연자약한 모습이다. “사람들은 믿고 싶은 내용을 믿게 마련”이라고 그는 말했다. 반대 주장도 만만치 않다. “심차의 주장은 전혀 신빙성이 없다”고 조 지아스는 말했다. 지아스는 1972년부터 97년까지 예루살렘의 록펠러 박물관에서 인류학과 고고학 학예사로 일했고 직접 탈피요트의 유골함에 번호를 매겼다. “자코보비치는 성경을 제멋대로 이용한다…. 캐머런이라는 작자를 끌여들여서 말이다. 그가 만든 영화가 ‘타이타닉’이라나 뭐라나. 그런 사람이 고고학에 관해 뭘 알겠나? 난 고고학자지만, 만약에 내가 뇌수술에 관한 책을 쓴다면 다들 ‘이 사람 뭐야?’라고 할 거다. 사람들은 신비로운 계시와 불가사의한 기적에 끌리게 마련이다. 이런 프로젝트는 고고학을 웃음거리로 만든다.” 이에 대해 캐머런은 이렇게 응수했다. “고고학자나 성경학자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 난 영화 제작자다. 이 가설이 설득력 있다고 믿는다. 그 정도 말할 근거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아는 이야기는 이렇다. 1980년 한 금요일 오후 건설업자들이 한 고대 무덤을 파냈다. 여기까지는 그저그런 이야기다. 80년대 예루살렘에서는 건설 열풍이 일었다. 수백 개의 무덤을 파헤쳤고 거기서 수천 개의 유골함이 나왔다. 1세기 나사렛 예수의 시대에 부유한 유대인 가족은 유대 땅 언덕에 무덤 동굴을 만들고 가족의 유해를 유골함에 담아 동굴에 보관했다. 그 시체가 부패했을 무렵 가족들은 시신의 뼈를 상자에 담아 벽감(壁龕)에 안치했다. 몇 세대 지나 동굴이 유골함으로 가득차게 되자 가족들은 두세 구, 심지어 여섯 구의 시신에서 나온 뼈를 한 상자에 몰아넣어 자리를 만들었다. 오늘날 이스라엘에는 1세기 유골함이 워낙 도처에 널려 있어 정원이나 거실에서 화분으로 흔히 사용된다. 흔하디 흔한 무덤이었지만 탈피요트의 건설업자들은 할 일을 했다. 즉시 작업을 멈추고 이스라엘의 고대 유산을 보호·관리하고 록펠러 박물관을 운영하는 정부기구 이스라엘고대유물관리국(IAA)에 연락했다. 그 주 안식일(토요일) 다음날인 일요일 IAA 고고학자팀이 발굴작업에 나섰다. 건설업자들의 압박 때문에 고고학자들은 신속히 일을 마쳐야 했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고 최대한 많이 기록하려 애썼다”고 당시 신참 조사원으로 작업에 참가했던 고고학자 시먼 깁슨이 말했다. “일각을 다투는 일이었다. 치수를 재고 급히 적었다…. 피난가듯 서둘러야 했다.” 깁슨에 따르면 동굴에 남겨진 유골은 종교당국에 넘겨졌고 당국은 유대법에 따라 재매장했다. 10개의 유골함은 따로 IAA 창고로 옮겨졌다. 그중 6개는 비문, 즉 일종의 표식이 있어 가족들이 어떤 유골함에 누구의 뼈가 담겼는지 알아보도록 했다. 자코보비치는 그 표식이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다고 봤다.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탈피요트 무덤의 유골함에 새겨진 이름은 다음과 같다. 예수-요셉의 아들, 마리아, 마리아메네, 마태, 유다-예수의 아들, 요세-요셉의 애칭. 고고학자 아모스 클로너가 작성한 공식 보고서는 이 발견에 특별히 주목할 점이 없다고 썼다. 보고서는 서력 기원(C. E) 초창기에 한 유대인 가정이 3, 4세대에 걸쳐 이 동굴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고대에 이미 손상된 무덤으로, 유골함에 써있는 이름은 1세기에 흔했다(일례로 당시 예루살렘 여성 4분의 1이 미리엄이나 미리엄에서 파생된 이름을 썼다). 보고서에는 가족 관계에 관한 추측은 없었다. 또 수많은 기독교인이 2000년 넘도록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아나시어 하늘에 오르셨다”고 믿는 예수와 비문 이름 간의 연관성도 언급하지 않았다. 지아스는 발굴한 유골함을 창고 선반에 올려놨고, (1996년 BBC가 촬영왔을 때를 제외하고) 20년 넘도록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 클로네는 동굴 무덤이 지금도 흔하다고 했다. “이는 대표적 유대인 동굴 무덤의 큰 형태다. 유골함에 쓰인 이름은 매우 흔하거나 거기서 파생된 이름이다.” 예수 가족과 이름이 비슷한 현상은 “우연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자코보비치는 강력하게 반박한다. 성서의 역사에 관심이 많고, 관찰력이 뛰어난 유대인 자코보비치는 2002년 유골함에 매료됐다. 다른 유골함에 관한 또 다른 디스커버리 프로그램을 제작하던 중이었다. 그 유골함에는 ‘요셉의 아들이자 예수의 형제 야고보’라고 쓰여 있었다. 고고학자들이 “본래 자리에서” 발견했다 해서 믿을 만하다고 인정된 탈피요트 유골함과 달리, 이 야고보 상자는 골동품 판매상, 오데드 골란을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출처가 확실하지 않았지만 자코보비치와 다수의 학자는 이 야고보 상자가 나사렛 예수의 유품을 찾는 최초의 실질적이고 확실한 고리라고 생각했다. 그 디스커버리 프로그램이 방영된 후 각 매체에 소개됐다. 그러다가 IAA가 개입해 유골함에 쓰인 야고보의 이름이 가짜이고 골란이 위조범이라고 판정했다. 골란의 위조와 관련된 재판은 현재 이스라엘에서 진행 중이다. 그는 혐의를 부인한다. 자코보비치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유골함에 쓰인 야고보의 이름이 진짜라고 여전히 믿는다. 탈피요트 상자 조사에도 정열적으로 달려들었다. 자코보비치는 야고보 유골함을 조사하던 중 IAA의 창고에서 문제의 유골함들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리고 단지에 쓰인 글씨와 더 조사할 가치가 없다는 IAA 판정에 놀랐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IAA는 “점들을 연결해 전체 그림을 보려 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에서는 정치와 종교, 그리고 고고학이 불가분의 관계다.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견해는 무엇이든 환영받지 못한다. 또 누군가 예수의 유골을 발견했다는 주장을 기독교인이 반가워할 턱이 없다. 그러나 자코보비치는 세평에 연연하지 않는다. 캐머런의 도움으로 그는 디스커버리의 후원과 350만 달러의 경비를 얻었다. 자코보비치가 내세우는 근거는 네 가지다. 우선, 최근 성경을 연구한 논문에서 막달라 마리아(Mary Magdalene)의 진짜 이름이 마리아메네(Mariamene)였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마리아메네는 미리엄에서 파생된 이름으로 1세기에 흔했다. 다음으로, DNA 검사 결과 예수와 막달라의 유골함에서 채취한 미세한 유골 흔적이 최소한 모계 쪽으로는 관련 없다는 점이 드러났다. 예수와 막달라가 결혼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세 번째로 탈피요트 유골 상자에 낀 녹청(수 세기 동안 쌓인 미네랄 층)이 야고보 상자와 일치한다. 증명이 가능하다면 이 ‘발견’은 복잡하지만, 자코보비치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근거다. 이는 야고보의 유골 상자가 원래 탈피요트 동굴에 있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그는 말했다. 야고보 상자의 기원을 묻는 질문에 답이 되는 셈이다. 또한 그 동굴 무덤이 예수 가족의 무덤일 확률도 높아진다. 마가복음은 예수에게 4형제가 있었다고 전한다. 그중 두 명의 이름(요셉과 야고보)이 탈피요트 동굴 무덤에서 발견됐다. 야고보 상자와 탈피요트 동굴 무덤의 연관성을 ‘입증’하려고 자코보비치가 사용한 기법은 ‘녹청 지문 채취술’이다. 자코보비치와 그의 공저자인 찰스 펠레그리노[캐머런의 ‘타이타닉호의 유령들(Ghosts of the Titanic)’ 저술을 도운 과학자]가 이 프로젝트용으로 만든 기술이다. 자코보비치와 펠레그리노는 탈피요트의 유골함에서 나온 미네랄 성분의 파편과 야고보 상자의 파편을 비교하고, CSI 전문가의 도움으로 이를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한 후 둘이 일치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확실히 알기는 불가능하다. 진보적인 연구회 ‘예수 세미나’의 지도자이자 ‘예수 발굴(Excavating Jesus)’의 저자 존 도미니크 크로산에게는 초기 침입에 관한 의문이 가장 크다. “누가 언제 동굴 무덤을 파괴했고, 거기서 어떤 이유로 무슨 일을 했을까?” 자코보비치 주장의 네 번째 부분은 통계적인 내용이다. 개인적으로 그는 탈피요트의 유골 단지에 쓰인 이름이 흔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프린스턴 신학교의 찰스워즈는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1세기 때 똑같은 이름의 사람에게 보낸 편지를 소장했는데 역시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제3자가 발견했다고 한다. 하지만 구체적 특성을 가진 같은 이름이 한 장소에 등장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토론토 대학 통계학자 안드레이 포이어버거가 확률을 제시했다. 그 동굴이 예수 가족의 무덤일 확률은 600대 1이라는 추측이다. 육감, 그리고 여전히 현존하는 역사 기록 중 예수의 삶을 가장 잘 묘사한 성경은 자코보비치의 주장을 반박한다. 4개 복음서 모두 예수가 안식일 전날 밤 십자가에 못 박혔고, 그리스도의 12사도가 일요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동굴 무덤은 텅 비어 있었다고 전한다. “신약성서는 이 부분에서 매우 명확하다”고 바나드 대학의 앨런 시갈 종교학 교수는 말했다. “예수는 자신의 무덤이 아닌 묘지에 놓였고, 그 뒤 부활한 후 무엇도 남지 않았다.” 자코보비치의 시나리오가 맞으려면, 누군가 안식일에 주검을 날라서 일요일 새벽이 되기 전까지 새로운 가족 동굴 무덤 안에 몰래 내려놨어야 한다. 시갈은 계속 반론을 제기한다. “예수의 가족이 나사렛 출신이라면 왜 예루살렘 외곽에 동굴 무덤을 뒀겠나? 또 그들이 가난했다면 무슨 이유로 동굴 무덤을 가졌을까?” 만약 이곳이 예수, 마리아, 야고보의 무덤이라면, 예로부터 받아들여졌고 학자들도 인정한 세계 도처의 다른 신성한 무덤은 뭔가? 가톨릭 교회는 마리아의 무덤으로 두 곳을 인정한다. 하나는 예루살렘의 마리아 영면교회 아래에, 다른 하나는 에베소(소아시아 서부의 옛 도시)에 있다. AD 328년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묘지였고 그가 부활한 장소가 예루살렘의 성묘교회에 있는 반석 위라고 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샬럿)의 성경학자이자 학계에서 자코보비치의 주장을 지지하는 제임스 테이버는 지난해 출판된 책을 통해 사페드 지역의 한 도시 근처에서 예수의 무덤을 탐색해 찾아냈다고 주장했다. 자코보비치는 독불장군이며, 스스로 인디애나 존스가 된 사람이다. 그는 이 이야기가 드러나면서 많은 이유로 비난받을 가능성이 크다. 인정도 못 받고 적은 수입만으로도 수십 년 동안 모래를 파헤쳐 온 고고학자들은 그를 ‘다빈치 코드’의 저자 댄 브라운이 띄운 흐름을 탄 기회주의자라고 부르리라 예상된다(그 소설을 토대로 만든 영화는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가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의 유해가 ‘유다, 예수의 아들’이라 쓰인 유골함에 보관됐다고 가정한다). 호기심 많은 그의 친구들은 추가적인 연구를 촉구할 전망이다. 토바 브라하는 어쩌면 순례자들의 방문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 순례자들은 그 오래전 예루살렘에서 새벽에 예수의 시신이 안치됐던 동굴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진 이래 인류를 당혹케 한 동시에 영감을 준 질문의 답을 찾는 사람들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