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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 위협하는 석유 국수주의

세계경제 위협하는 석유 국수주의


베네수엘라, 잘나가는 서구 기업 내쫓아 생산량 감소 불 보듯 지난 5월 1일 베네수엘라 정부는 유전 국유화 정책에 따라 오리노코강 일대의 민간 유전 통제권을 넘겨받았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 셰브론, 코노코필립스, 엑손모빌, 토털, 스타토일 등 서구 에너지 기업의 개발 참여는 줄어들고 중국 국영 석유회사인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CNPC)의 탐사·생산 비중이 훨씬 높아진다고 발표했다. 이런 변화는 세계 석유시장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세계 석유의 약 80%는 국영기업이 지배한다. 그중 브라질의 페트로브라스,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 같은 기업은 세계적 수준이다. 그런 곳에서는 생산이 계속 증가한다. 그러나 CNPC를 비롯한 거대 국영기업 대부분은 이번에 베네수엘라에서 쫓겨나는 다국적기업보다 경영 기준이 훨씬 낮다. 주로 정치적 개입 탓이다. 국영기업의 비효율적 관료주의는 너무 느리고 무능력하기 때문에 기록적인 수익을 노후한 유전 현대화에 재투자하지 못한다. 국영 석유기업 경영자나 정치인은 고유가 덕분에 현금이 넘쳐나면서 모두 부패했을지 모른다. 그 결과 이란·이라크·멕시코 등 많은 산유국은 매장량은 엄청난 데도 생산이 줄어든다. 러시아와 쿠웨이트도 악습을 고치지 않는 한 생산 정체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들 국가는 세계 석유 매장량의 3분의 1 이상을 보유했다. 베네수엘라에선 1997년 330만 배럴이던 하루 생산량이 현재 240만 배럴로 급감했다. 전 세계 공급량의 3%를 넘는 양이다. 베네수엘라가 기존의 생산 수준을 유지하려면 거대한 오리노코 중유 벨트가 종합적으로 개발돼야 한다. 중유 생산은 매우 복잡한 작업이다. 경영자들은 대규모 투자를 끌어들여야 하고, 첨단 기술도 활용해야 한다. 불행히도 베네수엘라의 국영 석유기업 페트롤레오스 데 베네수엘라(PDVSA)는 그런 능력이 없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집권 이후 PDVSA의 직원을 대폭 줄였다. 대략 2만 명이 해직됐다. 심각한 파업이 일어난 후에는 노련한 관리자들도 일부 쫓겨났다. 부실경영뿐만 아니라 석유 수입의 정치적 전용(轉用)으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석유 수입은 국내에선 경제 보조금으로 , 해외에선 친선 도모에 쓰인다. 국내용 지출 중 일부는 빈곤층 지원 등 합법적 용도에 쓰이지만 국가 경제는 파탄으로 치닫는다. 베네수엘라가 정부 예산 균형을 맞추려면 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선을 유지해야 한다. 차베스가 특히 고유가를 활용해 국리민복을 꾀하려는 태도는 전혀 하자가 없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유능한 민간기업을 쫓아내고 CNPC처럼 능력이 떨어지는 국영기업만 편애한다면 결국 비용만 늘어나고 생산은 줄어드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지척의 거리에 있는 미국시장을 무시하고 원유를 중국으로 수송하는 조치도 쉽게 납득이 안 간다. 유조선으로 석유를 실어나르려면 엄청난 비용이 든다. 파나마 운하는 폭이 너무 좁아 유조선 통과도 어렵다. 게다가 중국은 상당량의 중유를 처리하거나 이로 인한 환경 피해를 줄일 정유시설도 없다. 베네수엘라는 점차 뚜렷해지는 한 가지 세계 조류를 상징한다. 고유가가 전례없는 자원민족주의를 촉발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런 상황을 중국이 적극 활용하는 태도는 충분히 납득이 간다. 정치인들은 종종 다국적기업에 요구되는 투명성과 책임성을 따지려 하지 않는다. 중국은 상대국에 당혹스러운 의문을 제기하지도 않는다. 수단의 다르푸르 사태가 좋은 예다. 중국은 그곳에서 석유를 얻는 대가로 대규모 학살을 눈감아줬다. 자원민족주의는 세계 경제에 재앙이 될지 모른다. 물론 세계에 석유가 고갈되는 일은 없겠지만 석유업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국영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는다면 생산 능력은 고갈된다. 이미 석유업계는 몇 년 전에 비해 훨씬 더 쪼개졌다. 많은 자원을 가진 나라들은 단지 돈을 벌기보다는 세계 경제를 고려해 자국의 원유를 개발할 의무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급증하는 아시아의 수요를 따라잡기 어렵다. 권력자가 석유로 막대한 부를 독점하는 관행이 만연할수록 국내 정세는 훨씬 더 불안해진다. 나이지리아의 최근 선거가 좋은 예다. 미국은 베네수엘라 정부에 영향력이 없다. 그러나 미국의 정책은 차베스의 취향에 딱 들어맞는 듯하다. 미국은 소비를 장려하고, 생산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이런 정책은 지속 불가능하다. 미국은 다른 선진국들이 모두 그랬듯 너무 늦기 전에 수요를 효과적으로 조절하고 동시에 재래식 에너지 자원과 재생가능 자원을 통한 생산을 모두 늘려야 한다. 미국 정치인들은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 안 그러면 차베스와 같은 지도자와 그들의 파괴적인 정책에 놀아나게 될지 모른다. [필자는 워싱턴 DC에 본부를 둔 PFC에너지사의 회장이며 각국 정부와 국제 에너지 회사의 자문에 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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