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과 업자 ‘은밀한 내통’
공무원과 업자 ‘은밀한 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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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받은 공무원은 거의 없어 이 같은 사례는 또 있다. 올 초에 불거진 광주광역시 세하지구 택지개발 정보유출 사건은 한편의 블랙 코미디다. 당초 광주시는 늘어나는 아파트 수요에 대처하기 위해, 2006년 9월 광주 서구 세하·벽진·매월동 일대 28만4000평에 아파트 6000가구를 공급할 계획으로 택지개발 예정지구 지정을 건설교통부에 신청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같은 해 10월 개발사업 초안이 사전에 유출됐다. 이때부터 이 지역 토지거래가 갑자기 늘었다. 거래량이 늘면서 땅값도 당연히 뛰었다. 평당 20만원 하던 게 100만원까지 뛰었다. 땅을 가진 이들은 보상금을 더 받으려고 엉터리 건물을 짓고, 나무를 심으면서 ‘보험’을 들었다. 보상을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한 불법행위들이다. 그러자 경찰은 개발도면과 관련된 공무원, 부동산 업자들을 대상으로 사전 정보 유출에 대한 수사에 나섰다. 박광태 광주 시장도 시 간부회의에서 “도면이 유출돼 부동산 투기의 수단이 된다면 아예 택지개발 사업을 중단해버려라”고 큰소리 치기도 했다. 문제가 점점 커지자 광주시는 아예 지난 1월 택지개발 사업 중단을 선언해버렸다. 필요한 개발사업이 사전 정보 유출로 백지화되면서 애꿎은 서민들이 피해를 본 전형적 사례다. 부동산 전문가 A씨는 “개발정보의 사전 유출은 확실하지만, 정보 유출자는 찾지 못했다는 점이나, 개발정보가 사전 유출됐어도 처벌 받은 공무원이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이나, 모두 웃기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A씨는 “개발정보 사전 유출은 그 흐름이 매우 은밀하기 때문에, 이를 밝혀내는 게 쉽지 않다”고 밝혔다. 흔히 말하는, 공무원과 부동산업자의 유착, 공무원 사전 투기 같은 것을 적발한다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성규 환경정의 사무처장은 “2001년께 판교에 땅 투기를 했다는 고위 인사들이 많다는 소문을 듣고, 500만원을 들여 판교 일대 등기부등본을 떼봤지만, 특정한 유력인사가 땅 투기를 했다는 것을 조사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만일 공직자가 땅 투기를 했다면 모두 차명으로 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부동산 전문가 B씨는 “부동산연구개발포럼, 산업교육원 같은 이름을 붙인 부동산연구투자모임이 적지 않은 숫자인데, 이 모임들은 자주 외부강사를 초청해 강의를 연다”고 소개한다. 이들 모임은 투자자나 건설업자, 중개업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자주 한다. 이들은 특히 요즘 한창 눈길을 끄는 상가투자, 재건축, 재개발 투자, 도시계획에 대한 세미나도 연다. 그런데 문제는 강사 중에 부동산 실무를 담당하는 시청·구청 공무원이 끼어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불거진 ‘서울시 공무원 건’도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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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강의하면서 정보 흘려” 박철 LBA부동산 전무는 “이 같은 연구투자모임의 경우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적어도 서울 시내에 몇십 개는 족히 될 것”이라고 밝혔다. 숫자가 많은 이유는 간단하다. 투자의 핵심은 정보이기 때문이다. 박철 전무는 “재건축·재개발의 경우, 남보다 빨리 정보를 입수해 초기에 투자하면 2~3배를 남기는 것은 일도 아니다”고 말했다. 부동산 전문가 C씨는 “각 대학에 있는 정규 부동산 대학원 중 ‘일부’도 이 같은 정보 흐름 고리 중 하나”라고 진단한다. 그는 “부동산 대학원 과정을 밟는 이들은 대개 부동산개발업자, 중개업자, 건설업자 같은 사람들이고, 재건축과 재개발, 도시계획에 대한 강의를 하는 이들 중에는 시청이나 구청의 실무 담당 공무원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강의하다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를 흘리는 경우도 꽤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동산 전문가 D씨는 ‘일부’ 대학 부설 부동산 전문가 이수 과정도 눈여겨보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재개발, 재건축과정, 부동산 고위전문가 과정 같은 곳에 가면 부동산 실무 공무원이 직접 와서 강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들을 통해서도 개발정보가 새어 나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과천블루스』의 저자 이경호(60) 전 산업자원부 서기관은 정부와 연구기관 사이에 용역을 주고받으면서 사전에 개발정보가 유출되는 경우가 많다고 진단한다. 업계 사정에 밝은 부동산 전문가 A씨는 “솔직히 말해 개발정보를 쥐고 있는 공무원이나, 공무원들의 용역의뢰를 받는 연구원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남보다 먼저 개발 예정 지역을 알고 지인들을 통해 투자할 수도 있다는 것은 상식 아니냐”고 전한다. 실제 공무원들이 사전 정보 유출을 통해 몰래 투기하다가 적발되는 경우도 심심찮다. 경기도 분당경찰서는 2005년 12월 성남 판교지구 인근 대장동 개발정보를 이용해 개발에 따른 보상수익을 노리고 위장전입한 혐의(주민등록법 위반)로 관할 동장 이모씨 등 공무원 7명을 포함해 137명을 불구속 입건하기도 했다. 이경호 전 서기관은 책에서 “졸부, 투기꾼, 공무원들은 5년 전부터 판교가 신도시 개발 예정지라는 걸 알고 미리 땅을 구입했다. 장관이 신도시 개발 정책을 발표할 때 그 지역은 이미 정부 고위직, 직원 친인척, 투기꾼, 복부인, 건설사들이 땅 구입을 완료한 상태”라고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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