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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워’ 즐겁게 보셨나요?

‘디 워’ 즐겁게 보셨나요?

영화 한 편이 이처럼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나. 극장은 밀려드는 관객 때문에, 인터넷은 패를 나눈 갑론을박으로 법석이다. 엉터리 줄거리 때문에 몰입이 안 된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훌륭한 컴퓨터 그래픽(CG) 덕에 충분히 재미를 느꼈다는 사람도 있다. 개봉 열하루째인 지난 11일 영화 ‘디 워’(감독 심형래)의 누적관객은 512만 명을 넘어섰다. 논쟁의 주제는 작품을 넘어선다. 코미디언 출신 감독의 성공이 눈물겹다는 동정론이 나오는 한편 애국심에 호소하는 마케팅으로 왜곡된 흥행가도를 달린다는 비판이 뒤섞인다. 영화 끝에 한국적 SF영화를 세계에 알리겠다는 사명감 어린 감독의 편지가 아리랑을 배경음악 삼아 흘러나온다. 용이 승천하자마자 너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통에 심 감독도 영화에 출연했나 싶은 착각이 들 정도다. 애국심 마케팅 운운은 여기서 비롯됐다. ‘디 워’를 보고 난 직후 머릿속에 떠오른 한 줄의 평은 “‘영구’ 같은 시나리오에 ‘반지의 제왕’ 같은 CG”였다. 흔히 ‘디 워’류의 재난영화는 등장인물이 원인 모를 재앙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관객도 긴장에 빠져든다. 그런 다음 원인이 밝혀지고 주인공이 세상 구원에 나선다. 그러나 ‘디 워’는 처음부터 이무기 설화를 친절하게 설명한다. 마치 ‘영구’의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순진한 직설로 극적 긴장을 빼앗아 버린다. 그런데도 관객은 왜 ‘디 워’에 열광할까. “솔직히 줄거리는 엉터리다. 하지만 CG로 충분히 만회됐다. 7000원이 아깝지 않다”고 영화를 보고 나온 한 대학생은 말했다. CG 전문가인 차명진 OCN 영상미술팀 매니저도 “이무기가 용으로 변하는 장면은 지금까지 못 본 기술이다. 기술과 예술 모두 뛰어났다”고 말했다. CG의 재미가 줄거리의 허술함을 극복했다고 할까. 상업영화가 돈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재미를 준다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물론 뛰어난 마케팅 전략도 흥행의 큰 이유다. 여하튼 재미가 없다는 비평가들의 평가에 관객은 재미가 있다고 반박한 셈이다. 이렇게 엇갈린 반응은 어쩌면 영화장르의 혼동에 그 이유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영화평론가인 유지나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SF(과학영화)와 SFX(특수효과)를 구분하지 않는다. 특수효과만 쓰면 모두 SF라고 하는데 (‘디 워’ 같은) 괴수물과 SF는 엄연히 다른 장르”라고 말했다. “그냥 괴수물이라고 하면 되는데 심 감독이 자꾸 한국 SF의 신기원이라는 식으로 주장해 논란이 불거졌다”고 김봉석 영화평론가도 말했다. 재미만 있으면 SF인지 괴수물인지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는 관객들은 “한국 대표 SF”라는 심 감독의 주장에 거부감이 없었다. 하지만 평단은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괴수물에 너무 엄밀한 잣대를 들이댔는지 모른다. “사실 ‘디 워’ 같은 괴수물은 이야기의 완성도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김봉석씨는 말했다. 훌륭한 CG를 얹은 괴수영화가 처음 등장해 어른아이 구분 없이 관객들이 재미를 느꼈다. 비평가들은 그 가능성을 간과했다. “우리나라는 공포물이나 괴수물 같은 장르영화의 이해가 낮다. 영화를 예술성의 잣대로 보는 데에 익숙하다”고 김봉석씨는 말했다. 평론은 “괴수영화도 SF 못지 않은 번듯한 영화의 한 장르”이며 “‘디 워’는 SF가 아니라 괴수영화로서 나름의 훌륭한 요소를 갖췄다”고 말했어야 하지 않을까. 심형래 감독도 진정한 SF에 열망이 있다면 ‘디 워’ 같은 영화는 더 이상 찍지 말아야 한다. CG가 나오는 장면을 제외하면 온통 촌스러운 화면에다가 이야기 구조도 엉터리인 SF에 어떤 성인관객이 연거푸 돈을 지불하겠는가. CG 기술에 두 번의 열광은 없다. 애국심을 자극해 국민적 응원을 받아내는 전략도 거듭 사용하면 반감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어쨌든 충무로는 미국시장 1500개 스크린에 걸릴 ‘디 워’의 행보에 주목한다. “만약 성공하면 충무로의 제작환경이 상당부분 바뀔지 모른다. 지금까지 내수시장에만 주목했지만 ‘디 워’가 성공하면 외국시장을 목표로 한 영화제작이 본격화될지 모른다”고 영화제작자협회 회장을 역임한 김형준 다인필름 대표는 기대했다. 한편 출판계가 일찍이 어린이 시장을 개척해 세계에서 책을 가장 안 읽기로 유명한 한국에서 그나마 연명을 해 나가는 현실을 감안할 때 영화계가 무궁무진한 어린이 시장에 눈길조차 돌리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 ‘디 워’의 재미와 흥행이 한국 영화계에 던진 의미는 바로 엄마손을 잡고 극장을 찾은 아이들에게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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