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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한주의 시네 파일] 영화 역사의 흐름 바꾼 블록버스터

[곽한주의 시네 파일] 영화 역사의 흐름 바꾼 블록버스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죠스> 이후 대작 영화라 불리는 ‘블록버스터’가 속속 등장했다. 국내 영화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크게 흥행했던 <디워> 와 <화려한 휴가> 도 모두 블록버스터다.
대중이 좋아하는 영화를 살펴보면 블록버스터가 다수를 차지한다. 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지난해의 국내 영화 흥행 실적이 발표됐다. 문화민족주의 논쟁까지 불러 일으켰던 심형래 감독의 SF 괴물 영화 <디워> 가 1위에 올랐고, 2위는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화려한 휴가> 가 차지했다. 그간의 한국 영화 우세 경향을 재확인시켜 주는 듯하지만 한국 영화의 영광은 정확히 거기까지였다. 이후 차트는 할리우드 영화 차지다. 로봇 액션영화 <트랜스포머> 가 전국 관객 724만 명을 동원해 외화의 흥행기록을 갈아치우며 3위에 오른 것을 비롯해 4위 <캐리비안의 해적: 흑진주의 저주> , 5위 <스파이더맨 3> , 6위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 7위 <다이하드 4.0> 등 할리우드 대작들이 줄줄이 톱 10에 올랐다. 할리우드 영화가 약진하면서 60%를 넘나들던 한국 영화의 관객 점유율은 50.8%로 뚝 떨어졌다. 지난해 여실히 위세를 증명한 할리우드 대작 영화를 우리는 블록버스터(blockbuster)라고 부른다. 이 단어의 유래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2차대전 당시 도시의 블록 전체를 날려 버릴 정도로 큰 위력을 발휘했던 폭탄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연극의 메카 뉴욕 브로드웨이의 블록 내 다른 상영작들을 망하게 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끈 화제작을 의미한다는 설이 유력하다. 어쨌거나 블록버스터는 거대한 예산을 들여 대규모 흥행을 하는 작품을 가리키는 영화 용어로 정착했다. 영화계에 블록버스터란 용어가 등장한 것은 1975년이다. 당시 신예 감독이었던 스티븐 스필버그는 피터 블래티의 베스트셀러를 바탕으로 <죠스> 를 만들었다. 거대한 식인 백상어와 인간의 사투를 흥미진진하게 그린 이 공포 스릴러는 사상 최초로 북미에서만 1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면서 블록버스터로 불렸다. 이 용어를 확실히 정착시킨 것은 <스타워즈> 의 공로다. 흥행 영화의 귀재 조지 루카스는 77년 <스타워즈> 시리즈의 첫 번째 영화를 내놓는다. 당시로는 획기적인 컴퓨터 그래픽 기술(CG)을 이용해 은하계를 넘나드는 우주전쟁을 박진감 있게 그린 SF 판타지로 <죠스> 를 능가하는 흥행 실적을 기록하며 선풍을 불러 일으켰다. 이 두 편의 영화가 할리우드의 미래를, 나아가서는 영화의 미래를 바꿔 놨다. 이후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들은 너도나도 블록버스터를 노리며 대작 영화 제작에 매달렸다. 연간 블록버스터 두세 편만 히트시키면 여타 자잘한 영화에 신경 쓸 필요없이 한 해 장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영화 예술을 선도하던 할리우드는 거대 자본의 투기장으로 변모했고, 블록버스터 멘털리티(blockbuster mentality)는 이런 할리우드의 새 모습을 설명하는 핵심 용어가 됐다. 블록버스터가 단지 투입된 제작비의 규모만을 의미한다면 별다른 관심을 기울일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규모 제작 관행은 영화의 내용, 형식 그리고 마케팅과 배급 방식에도 일정한 경향성을 만들어낸다. ‘크게 투자해야 크게 먹는다’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의 사업 논리를 충실히 따름으로써 블록버스터는 나름의 특징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좋아할 만한 영화를 선보이기 위해 블록버스터는 무엇보다도 스펙터클에 치중한다. 마케팅 비용을 제외하고 제작비로만 2억 달러를 쓴 <타이타닉> (제임스 카메론 감독·1997년)은 1,700만 갤런 규모의 초대형 물 탱크에서 실물 크기의 거대한 호화 여객선이 두 동강 나며 침몰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스파이더맨> 이나 <해리 포터> 시리즈는 최첨단 CG를 동원해 주인공이 하늘을 날며 괴물과 싸우는 등 환상적인 장면을 박진감 있게 보여준다. 이처럼 블록버스터는 흔히 다른 영화나 다른 오락거리에서는 볼 수 없는 압도적인 스펙터클로 승부한다. 블록버스터에 슈퍼 히로가 자주 등장하고 판타지 모험물이 주종을 이루는 것도 이 때문이다. 블록버스터가 볼거리에 치중할수록 이야기는 빈약해지기 쉽다. 많은 비평가들이 블록버스터가 영화의 전반적인 수준을 끌어내렸다고 혹평해 왔다. 블록버스터에서 섬세하고 진지한 이야기나 도전적인 형식 등 영화 예술적 요소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많은 관객에게 어필하려다 보니 대중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대중 친화적 영화로 흐를 수밖에 없다. 물론 블록버스터 중에는 <반지의 제왕> 3부작처럼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성공한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속편 제작이 흔한 것도 블록버스터의 특징이다. 대규모 제작비를 쏟아 붓다 보니 흥행을 보장하기 위해 히트한 전작의 주인공과 세트를 그대로 끌어다 쓰는 것이다. <스타워즈> , <스파이더맨> , <캐리비안의 해적> , <해리 포터> , <다이하드> , <슈렉> , <주라기 공원> 등 크게 히트한 블록버스터의 상당수가 속편이다. 심지어 프리퀄(prequel)이라 불리는 전편도 나오고 있다. <스타워즈> 는 에피소드 4~6편이 먼저 제작돼 흥행한 뒤 에피소드 1~3편이 나왔다. 배트맨의 기원을 설명하는 <배트맨 비긴스> 도 프리퀄의 예다. 블록버스터는 이벤트 영화(event movie)라고도 불린다. 배급사는 대대적인 사전 마케팅 공세를 벌여 관객의 기대감을 고조시키고 최대한 많은 극장에서 동시 개봉한다. ‘과연 알려진 만큼 대단한가’를 확인하러 너도나도 영화관으로 몰려가게 된다. 그래서 블록버스터의 개봉은 일종의 문화적 사건이 된다. 역대 흥행 성적 리스트에서 알 수 있듯이 블록버스터는 기본적으로 할리우드적인 현상이다. 블록버스터급 대형 영화를 제작해서 흥행시킬 수 있는 자본과 기술, 노하우를 가진 곳은 현재 할리우드밖에 없다. 중국이나 인도가 잠재력을 갖고 있으나 아직 전 세계에서 통하는 블록버스터를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라 불리는 우리의 대작 영화도 제작 규모나 흥행 면에서 할리우드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놀라운 스펙터클을 선사하지만 영화의 다양성과 예술성을 저해하는 블록버스터-블록버스터는 애증이 교차하는 대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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