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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외교 앞서 핑퐁 외교 있었다

음악 외교 앞서 핑퐁 외교 있었다

필하모닉 외교에 앞서 핑퐁 외교가 있었다. 1971년 미국 탁구대표팀 선수 아홉 명이 중국의 초대를 받았다. 이들은 1949년 중국에 공산당 정권이 들어선 뒤 처음으로 입국이 허용된 미국인이었다. 당시 23세로 여자대표팀 간판선수였던 코니 스위리스가 그 여행을 회상했다. 나고야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마지막 날 우리 모두는 중국의 제안에 깜짝 놀랐다. 중국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거라고는 역사책과 텔레비전 뉴스에 나온 사실뿐이었고, 그것도 기근·폭력·인권침해 등 대체로 좋지 못한 내용들이었다. 대표선수 두 명이 가기 싫다고 빠졌지만 나는 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초청한 손님이니 잘 대접해 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도쿄를 떠나기 전 미국대사관에서 우리 여권을 가져가더니 중국여행을 금지한다는 조항을 검은색으로 지웠다. 그 순간 이건 보통 여행과는 다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모습은 너무 튀었다. 거리의 중국인들은 한결같이 제복차림이었다. 회색이나 청색 바지에 칼라가 달린 인민복을 입었고, 우리는 제각기 청바지·점퍼·티셔츠 등 미국인다운 복장이었다. 캘리포니아 출신의 19세 청년 글렌 코원은 색이 얼룩덜룩한 청바지에 람보처럼 이마에 빨간 띠를 두르고 베이징 시내를 활보했다. 어린 학생들이 그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거리에는 2륜 자전거, 3륜 자전거, 인력거가 가득했다. 어느 공장을 방문했는데 근로자들이 벽돌을 네트 삼아 테이블에서 탁구를 쳤다. 베이징 교외의 시골에서는 남자들이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방식대로 소에 쟁기를 지워 논을 갈았다. 그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음식이었다. 식사는 보통 8~10가지 코스로 진행됐는데 하루에 너더댓 번이나 했다. 처음에는 무슨 음식이냐고 물었지만 상어 위장 수프라든가 닭발 수프라든가 원숭이 머리라는 말을 들은 뒤로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때론 전혀 알고 싶지 않은 때도 있었다. 물론 긴장감은 있었다. 방문 첫날 본 어느 상점의 유리창에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세계 인민이여, 미제 침략자와 그들의 주구를 쳐부수자!’ 나중에 관람한 오페라의 줄거리는 공산주의가 자본주의를 물리친다는 교훈인 듯했다. 마오쩌둥 주석의 사진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한 호텔 로비에는 높이가 3m가 넘는 그의 조상이 서 있었다. 그가 산꼭대기 구름 속에 있는 사진을 걸어놓은 호텔도 있었다. 인민들이 성경처럼 떠받드는 그의 빨간색 어록을 도처에서 보고 있었다. 우리는 1만8000명을 수용하는 실내 경기장에서 경기를 했다. 중국 선수들의 기량은 세계 최고였지만 몇 게임은 우리에게 져 줬다. 탁구가 우리의 틈을 좁혔다. 우리는 중국 선수들에게 미국 대사관이 준비한 만년필을 선물했고, 그들은 우리에게 붉은 깃발을 건넸다. 나중에 선수단이 저우언라이 총리를 만났을 때 글렌 코원은 히피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청년은 진실을 추구하고 그 탐구에서 갖가지 변화가 나오게 마련”이라고 총리가 눈빛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집으로 돌아온 뒤로 마음이 놓이고 기분이 좋아졌지만 너무나 피곤했다. 모든 단체와 언론이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난 몇 십 년이 지나기까지 우리 대표팀의 여행이 몰고 온 파장을 온전히 깨닫지 못했다. 어느 날 우리 아들이 고등학교 역사책에서 내 사진을 발견했다. 만리장성 앞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그 35주년을 기념해 중국을 다시 방문한 2006년 나는 당시 우리가 서구에서 온 단체 여행자 이상이었음을 깨달았다. 우리가 바로 그런 여행을 가능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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