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브랜드 넘어 Cool 브랜드 되다
Big 브랜드 넘어 Cool 브랜드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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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시스(Genesis)에 대한 관심은 생각보다 뜨겁지 않았다. 출시 1년 전부터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판매를 불과 두 달여 앞두고 있던 6월 중순이었지만 “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를 들어봤느냐?”는 질문에 “yes”라고 대답한 사람은 없었다.
비록 LA거리에서 만난 4~5명의 미국인이었지만 결과는 그랬다. 40년 기업 현대차의 제품과 마케팅의 결정체인 제네시스는 미국시장을 겨냥한 모델이다. 아직 출시 전이기는 했지만 미국에서는 제네시스의 존재를 아는 사람을 만나기는 어려웠다.
거대한 미국시장에서 제네시스는 물론 현대차의 존재도 미미했다. 지난 6월 월간 최대를 기록했던 현대차의 판매대수는 5만33대였다. 현대차와 한국에서는 자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이다. 점유율 기준으로 4.2%를 달성했다.
실제 차를 타고 캘리포니아 해안가에 남북으로 이어진 5번 고속도로를 3~4시간 달리다 보면 현대차를 3~4대 볼 수 있다. 딱 시장 점유율만큼이다. 보이는 것은 주로 쏘나타와 싼타페, 아반떼였다. ‘H’자에 관심이 많은 한국인이 아니라면 알 수도 없는 정도다. 아직 현대차는 미국에서 그 정도의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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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엑셀’은 86년 12월, 미 경제 주간지 ‘포춘(Fortune)’의 ‘1986년 미국 10대 상품(Best Product #10)’에 선정되는 등 초기에 ‘현대차 붐’을 일으켰다.
하지만 급격한 판매증가에 따른 정비망 부족과 철저한 품질관리 미흡으로 미국 진출 초기, 미국 언론에 문제점이 자주 오르내리며 브랜드 이미지 추락이라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다.
급기야 지난 93년 현대차의 첫 해외 생산공장이었던 캐나다 부르몽 공장이 북미지역 소비자들의 외면으로 문을 닫는 사태를 겪게 된다. 이후 현대차는 미국시장에서 싸구려 차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토크쇼에 웃음거리로 등장하기도 했다. 중형차를 팔았지만 가격은 일본의 소형차 수준에 그친 적도 많았다. 그런 현대차가 불과 22년 만에 대당 3만 달러가 넘는 럭셔리카 시장에 진입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운이 좋아서 된 일은 아니다. 현대차는 1990년 처음으로 누적판매 100만 대를 돌파한 이후 지난해에는 누적 판매 500만 대를 넘어섰다. 특히 2000년 현대차그룹이 독립하면서 변화가 가속됐다.
업계 최초로 10년 10만 마일 보증 프로그램을 도입했고 2002년에는 현대·기아 캘리포니아 디자인 & 기술연구소를 완공했다.
2003년에는 북미 디자인센터를 준공해 미국에 맞는 디자인과 품질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고 2005년에는 앨라배마에 공장을 세워 현지 생산체제를 갖췄다.
이런 노력의 결과, 현대차는 그동안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일본차들과 품질 면에서 대등하거나 일부 앞선 결과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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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출시 전 이미 미국 소비자들의 성향을 면밀히 조사해 제품을 기획했다. 총 1130명의 미국 전문가와 일반인들이 제네시스의 품질과 제품 포지셔닝, 가격을 조정하고, 개선하는 데 참여했다.
현대차는 연간 300만 대 이상의 차를 팔고, 그중 100만 대 이상을 해외에 판다. 해외 판매량의 절반에 가까운 45만 대를 미국시장에 팔 정도로 미국시장 비중도 크다. 현지 공장까지 가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 사람들에게 현대차는 아직 그저 그런 브랜드다. 일본은 다르다. 도요타·혼다·닛산이 없는 미국의 도로는 상상하기 힘들다. 렉서스를 비롯해 인피니티, 아큐라 등 고급 브랜드들도 안착했다.
일본 고급차들과 한판 승부 벌인다
현대차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현대차미국법인(HMA)의 조엘 이와닉(Joel Ewanick) 마케팅 담당 부사장은 “그게 제네시스가 세상에 나오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차를 살 때 2~3개 브랜드를 놓고 고민한다. 그동안 현대차는 2~3개 밖에 있었다. 하지만 제네시스가 출시되면 사람들은 현대차를 2~3개 안에 두고 고민하기 시작할 것이다.”
도요타의 렉서스, 닛산의 인피니티도 그런 역할을 했다. 혼다의 아큐라 역시 독일차 못지않은 기술력을 선보임으로써 ‘싸고 좋은 차’라는 일본차 이미지를 ‘품질 좋고 믿을 만한 차’로 바꿔놨다.
80년대 후반에 시작된 일본차들의 품질 경쟁은 미국시장에서 일본차들의 성장을 더 가속화했다. 현대차도 제네시스를 통해 같은 효과를 노리고 있다.
김종은 현대차미국법인장은 “제네시스가 미국시장에 나오면 소비자들도 고급차 품질에 대한 생각이 바뀔 것”이라고 자신했다.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차를 선보임으로써 미국 소비자들에게 현대차의 실력을 보여 주겠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한국 본사도 같다. 현대차 측은 “제네시스 자체로 큰 수익을 내기보다 전후방 연계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제네시스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경우 현대차 브랜드 이미지가 올라가는 것과 소비자들에게 현대차의 품질력을 확신시키는 등 효과가 클 것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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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현대차가 제네시스에 기대하는 바는 한결같다. 성공적인 론칭을 통해 현대차의 이미지를 올리고, 미국시장에서도 더 이상 ‘값싸고 좋은 차’가 아니라 ‘값을 치를 만한 좋은 차’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현대차가 제네시스를 출시하며 염두에 두는 것은 1989년 도요타의 렉서스 출시다. 렉서스를 통해 도요타는 미국인들에게 고급차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미국시장에 본격 출시 후 결과를 봐야겠지만 긍정적인 신호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우선 제네시스의 중고차 값이 높게 나왔다.
미국의 중고차 값은 단순히 시장에서 수요과 공급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3년 후 잔존가치를 평가하는 기관인 ALG(Automotive Lease Guide)에서 제네시스의 잔존가치를 최소 49%에서 최대 52%까지 평가했다. 이는 벤츠, BMW, 렉서스 등 기존 프리미엄카의 47~48%대보다 높은 수치다.
그만큼 제네시스의 품질이 뛰어나다는 얘기이고, 3년 후 중고차 값도 보장된다는 얘기다. 리스로 많이 사는 고급차의 경우 잔존가치가 높을수록 리스료도 싸진다. 당연히 소비자들이 이런 차를 선택하게 된다.
컨슈머리포트, JD파워 등 신뢰도 높은 자동차 품질 평가 기관에서 현대차의 순위는 상승 기류를 타고 있다. 덕분에 현대차에 대한 이미지도 많이 개선됐다. 현장에서도 이런 변화를 느낄 수 있다.
LA에서 현대차 딜러를 하고 있는 체리 와터 LAX현대 총괄매니저는 “제네시스 판매가 시작되기도 전이지만 나에게 직접 제네시스에 대해 물어온 사람이 10명이나 된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또 “이제 베벌리힐스에서도 현대차를 자신 있게 탈 수 있다.
제네시스는 현대라는 브랜드를 더욱 멋있게(cool)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크라이슬러, 닷지와 함께 현대차 딜러를 겸하고 있는 돈 라마르 사장도 “지금 같은 고유가에 현대차는 강력한 이점이 있다”면서 “이 값에 이런 차를 만들 수 있는 곳은 현대뿐”이라고 말했다.
제네시스로 브랜드 인지도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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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부터 한인사회에, 9월부터는 미국 주류 시장에 광고를 내보낼 계획이다. 이미 지난 2월 4일 수퍼보울 결승전에서 600만 달러의 광고료를 들여 3쿼터와 4쿼터에 30초짜리 광고 두 편을 내보냈다. 초당 광고료로 10만 달러가 든 셈이다.
TV 광고 외에도 시승행사와 딜러 트레이닝 등 각종 체험 마케팅을 준비하고 있다. 일부는 이미 지난 2월부터 시작했다. 데이비드 주코브스키(David Zuchowski) 부사장은 “영화배우, 고위 공무원, 은행장, 정치인 등 영향력 있는 사람이 주요 체험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제네시스의 고객층은 명확하다. 이와닉 부사장은 제네시스의 주 타깃 고객에 대해 “자기 집을 소유하고 연간 9만 달러 정도의 소득이 있으며 40대 중반의 기업가나 기업의 중역”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사람들 중 60%는 남자일 가능성이 크고, 기혼자가 80%, 70% 이상은 대졸자”라고 설명했다.
본격 출시에 앞서 총 100여 대의 제네시스로 미국 15개 주요 도시에서 론칭 행사도 열 계획이다. 또 39개 대도시에 시승차도 배치한다. 이처럼 제네시스 마케팅에 들어가는 돈만 총 8000만 달러에 달한다.
주코브스키 부사장은 “현대의 다른 어떤 차도 이렇게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현대차의 송민규 해외영업 북미팀 차장은 “제네시스를 통해 현대가 추구하는 것은 브랜드 인지도 향상이지 대박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많은 돈을 투입해서라도 현대차의 실력을 제대로 알릴 수 있으면 된다는 얘기다.
미디어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미국 주요 자동차 전문지인 카 앤 드라이버(CAR AND DRIVER), 모터트렌드(MOTOR TREND), 로드 앤 트랙(ROAD & TRACK), 오토모빌 매거진(Automobile Magazine) 등은 최신호에 미국시장 본격 판매를 앞두고 있는 제네시스의 시승 소감과 탁월한 성능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제네시스가 현대차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최초의 후륜구동 럭셔리 모델이라고 소개하며, 기존 유럽과 일본 명차를 능가하는 성능과 품질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특히 미국 최대 자동차 전문지인 카 앤 드라이버는 “후발 주자인 현대차가 렉서스를 능가하는 럭셔리 모델을 출시했다(The Korean upstart tries to pull a luxury rabbit out of the Lexus top hat. And pretty much does.)”며 “1989년 렉서스의 신화가 재현될 것 같다(It looks like 1989 all over again)”고 제네시스의 성공 가능성을 보도했다.
모든 상황이 다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특히 올해 들어 미국 경기가 급속히 나빠지고, 고유가로 인해 자동차 구매 심리가 위축되고 있다. 하지만 시장점유율이 고작 4~5%대인 현대차에 이런 변화의 시기는 오히려 기회일 수 있다.
김종은 법인장도 “이런 혼란기가 오히려 현대엔 성장할 기회”라고 말했다. 그는 내년에 제네시스 3만 대, 제네시스 쿠페 3만 대 등 총 6만 대 판매를 자신했다.
대당 4999달러짜리 값싼 소형차만 만들던 현대차는 이제 4만 달러짜리 차도 만드는 세계 판매 순위 6위의 대기업으로 거듭났다. 그동안 현대는 ‘큰(big) 브랜드’로 성장했지만 ‘멋진(cool) 브랜드’로 가지는 못했다. 현대차는 제네시스가 전환점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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