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실패한’ 대통령 부시를 위한 변명

‘실패한’ 대통령 부시를 위한 변명

요즘 미국 대선 레이스에서는 거의 매일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와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의 지지도가 엎치락뒤치락한다. 그에 비해 몇 달 동안, 아니 몇 년이 흘러도 변함없이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는 수치가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지지도다. 40% 아래의 지지도가 지속된 지 연속 23개월째다(현재 32%). 그가 어떤 행동을 하든,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미국인들은 부시가 실패한 대통령이라고 확정 지은 듯하다. 그래서 매케인과 오바마는 저마다 부시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겠다며 기염을 토한다. 오바마는 당연히 미국의 대외 정책에 완전히 새로운 접근법을 도입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부시가 몸담고 있는 공화당의 후보인 매케인조차 여러 이슈에서 부시 행정부 정책을 벗어 던지겠다고 말했다. 매케인이 부시를 만난 지도 두 달이 넘는다. 기자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은 모금행사에서의 만남이 마지막이었다. 미국 대외 정책의 전면적인 수정은 당연한 일로 만시지탄의 느낌이 든다. 가장 비근한 예가 부시의 기본 철학인 ‘세계적인 테러와 전쟁’이다. 충분한 사전 검토가 없었을뿐더러 실행에서도 실수가 되풀이되다 보니 수십 년은 아니더라도 수년은 치러야 할 의도치 않은 비용이 발생했다. 그러나 부시의 모든 정책을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중요한 현실을 간과하는 어리석은 태도다. 물론 부시 행정부는 도처에서 들끓는 분노의 표적이 됐다. 미국 민주당만이 아니라 공화당, 무소속, 외국 국가들, 심지어 화성인(?)들까지도 그를 비난하고 나섰다. 그러나 지금의 부시 행정부가 반드시 그런 비난을 받아야 마땅한지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부시 행정부가 가장 큰 원성을 부른 외교 정책은 대부분 부시 대통령 임기 1기(2001~2004년)에 추진된 것들이다. 이라크 침공, 국제협정·외교·다자간 협상의 거부가 대표적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이런 정책의 다수가 수정 또는 폐기되거나 번복됐다. 하지만 그런 노선 수정이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졌다. 비판자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이유 중 일부도 그것이다. 또 종종 은밀하게 이뤄졌다. 실수 인정은 둘째 치더라도 반성의 흔적조차 비치지 않는다. 단지 기존 정책이 먹히지 않아 바꾼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유가 뭐든, 또 어떤 경로를 거쳤든 간에, 지금 부시 행정부의 외교 정책은 과거보다는 더 사리에 맞고, 온건하며, 대세에 부응한다. 차기 대통령은 여러 문제에서 그 정책들을 뒤집기보다는 유지하는 편이 바람직할지 모른다. 그동안 부시 행정부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먼저 세계은행 총재 임명 건을 생각해 보자. 처음 부시는 폴 울포위츠를 선택했다. 네오콘의 거두일 뿐 아니라 경제 문외한이다. 울포위츠는 얼마 못 가 스캔들로 도중하차했다. 그러자 부시는 그 자리에 이념적으로 편향되지 않은 인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자격이 충분하고 신망이 높은 로버트 졸릭이 낙점을 받았다. 그 외에도 달라진 점이 많다. 한때 딕 체니 부통령이 좌지우지하던 분야를 지금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스티븐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 행크 폴슨 재무장관이 주도한다. 모두 실용주의자들이다. 물론 이런 변화가 다른 모든 분야로 확대되지 않았고, 대개는 너무 미미하고 늦게 일어났다. 그러나 외교 정책의 여러 핵심 분야에서 중도노선으로의 이동이 있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가장 뚜렷한 변화가 드러난 것은 이라크다. 많은 사람(여론조사 응답자의 절대 다수)에게 이라크전은 부시의 대실패로 간주된다. 부시 행정부가 2003년과 2004년 이라크에서 엄청난 실수를 잇따라 범했다는 사실은 거의 모두가 인정한다. 너무 적은 병력으로 침공을 감행했고, 이라크 군과 관료조직, 국영 공장들을 해체했다. 또 민간인 수만 명을 구속했고, 그중 일부를 부당하게 대우하고 고문을 서슴지 않았으며, 감지되는 모든 위협에 과도한 무력을 사용했다. 그 결과는 혼란이었다. 분노와 소외감에서 총을 들고 나선 수니파, 심기가 뒤틀려 좌불안석인 시아파, 저항세력, 지하드 테러 운동, 종파 간의 유혈 반목의 확산으로 이라크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게다가 다른 국가들도 이라크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이라크를 침공하고 점령하면서 이웃 아랍국가들의 이해를 먼저 구하지 않았고, 그런 행동이 국제적으로 정당성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국제적인 위기를 불러들이는 완벽한 조건이었다. 상황은 갈수록 악화됐다. 거의 모두가 미국의 이라크 전략이 먹히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도 부시 행정부는 몇 년 동안이나 같은 정책을 고집했다. 그러나 2005년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부시 행정부도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더 나은 시아파 지도자를 물색하거나 바트당의 잔재 청산 과정을 늦추는 등 단편적이고 점진적인 노력이었다. 이라크에 주둔하던 몇몇 미국 관리가 독자적인 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잘마이 칼리자드 이라크 주재 미국 대사는 2006년 수니파 지도자들과 민병대의 협조를 구하기 시작했다. 본국의 상사들이 그들을 테러리스트라고 줄기차게 비난하는데도 개의치 않았다. 이라크 주둔 미군 장성들도 자신들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고 전술적인 수정 노선을 지지했다. 안바르의 부족장들이 알카에다를 몰아내는 데 적극 협조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미군의 대규모 증파 직전에 수니 각성파가 생겨난 것도 그 같은 노력의 산물이다. 2006년 초 부시는 보수 성향의 위클리 스탠더드지 편집장 프레드 반스에게 이라크에서 새로운 접근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해임되고 대대적인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한 인물이 들어앉아 새로운 정치적, 군사적 전략을 마련한 것은 2006년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참패한 뒤였다. 이라크에서 미국의 정책 변화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미국은 수니파에게 우호적인 정책을 펴면서 과거에 잡아들였던 수니파 전사들을 적극 지원했다. 또 시아파를 저항세력의 영향력에서 해방시켰다. 또 미국은 이라크에 순수하고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건설하겠다는 꿈을 접고 일자리 창출을 위해 이라크 국영기업들을 살리려 애썼다. 또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접근법을 도입했다. 이웃 국가들을 설득해 이라크 바그다드에 대사관을 개설하고, 이라크 안정에 도움을 주도록 했다. 이런 노력이 이라크의 참담한 현실을 바꾸지는 못했다. 대부분 전문직 종사자인 250만 명이 이라크 국외로 탈출했고, 수많은 지역을 저항세력이 장악하고 있다. 법질서의 파괴와 부패가 만연하고, 이슬람 신정주의자들이 아직도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2005년에 비하면 부시 행정부는 확실히 올바른 길로 들어섰다. 이제 아프가니스탄을 보자. 부시 행정부가 테러와 전쟁을 치르면서 가장 중요한 전선인 이곳을 잘못 다뤘다는 사실이 뚜렷이 드러난다. 오바마는 아프간에 쏟아 부어야 할 미국의 시간과 에너지, 병력과 자원이 엉뚱하게 이라크로 잘못 투입됐다고 비판한다. 매우 적확한 지적이다. 그러나 오바마가 말하는 것은 2003년의 부시 정책이다. 현재 부시가 아프간에서 추진하는 정책은 그렇게 무력하지 않다. 게이츠 국방장관도 오바마처럼 아프간에 병력 증파를 거론한다. 그러나 미군 병력이 부족한 게 문제의 전부가 아니다. 유럽 국가들이 충분한 병력을 파견하지 않았고, 또 그들은 아프간에 파병된 병력에도 터무니없는 몸사리기를 강요한다. 아프간은 그 자체적으로 매우 복잡한 나라다. 영토의 대부분이 산악지대이기 때문에 중앙 정부에 의해 효율적으로 통치된 적이 없다. 문맹률과 실업률이 매우 높고, 파슈툰족의 민족주의가 이슬람 극단주의와 뒤섞여 있는 곳이다. 병력을 더 많이 투입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보는 학자와 현지 정치인이 적지 않다. 특히 탈레반의 배후 기지가 파키스탄 국경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는 이 지역에 대한 지출을 크게 늘렸다. 2003년에는 미국이 재건과 아프간 군 창설을 위해 7억3700만 달러를 썼다. 반면 2007년의 지출액은 100억 달러였다. 북한은 어떤가?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U턴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시는 취임한 지 얼마 안 돼 콜린 파월 국무장관을 질책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협상하려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정책을 지속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005년 7월 이후로 부시는 클린턴과 아주 유사한 정책을 추진했다. 사실 클린턴보다 훨씬 더 다자적인 접근법이었다. 4개국을 추가로 협상 테이블에 앉혀 6자회담을 개시했다. 중국을 끌어들인 것이 핵심이었다. 북한에 진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부시는 처음에는 북한을 악의 축의 일부로 규정했지만 지금은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삭제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경제원조를 제공한다. 이제 악의 축의 셋째 국가인 이란을 보자. 부시 행정부는 이란에 대한 정책도 크게 바꿨다. 군사 행동, 다시 말해 이란 핵시설의 공습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불만이 많지만 부시의 생각은 달랐다. 부시 행정부의 노력은 외교와 다자간 협력에 주안점을 두기로 했다. 부시 2기 대부분 동안 이란 정책의 핵심 실무자는 니컬러스 번스 국무차관이었다. 네오콘들이 불신하는 베테랑 외교관이다. 지난달에는 국무부 고위 간부 중 한 명인 윌리엄 번스(니컬러스와는 인척관계가 아니다)가 유럽인들과 함께 이란 협상대표를 만났다. 미국이 실제로 참석한 이란 협상은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부시 행정부의 외교가 적극성과 야망이 결여돼 있다는 시각이 많다. 직접적인 협상 제의가 더 대담한 시도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특효약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제안은 헛수고가 될 가능성이 크다. 협상을 통한 해결의 주된 장애물은 이란인들의 의도와 의심, 그리고 이란 사회의 기능장애다. 부시 행정부 정책의 전반적인 취지는 이제 올바른 길로 나아가고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부시는 취임 초기에 클린턴 식의 평화 중재자 역할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무간섭주의를 채택했다. 그래서 적대감이 증폭되고 상황이 악화됐다. 모든 당사자가 무책임한 정책을 추진해도 어쩔 수 없었다. 경솔한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이 대표적인 예였다. 그 결과 이스라엘의 입지가 약화됐고, 레바논이 초토화됐으며, 헤즈볼라가 득세했다. 그러나 올 들어 부시는 그 협상 과정에 직접 뛰어들었다. 아나폴리스에서 회담을 주재했다.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이 협상의 최종 목표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 회담 이후 라이스 국무장관은 팔레스타인을 수차례 방문했다. 이 모든 노력이 아직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7년이나 늦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올바른 접근법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누굴지 뻔하다. 불만에 찬 보수 강경파는 여러 분야, 특히 북한, 이란, 이스라엘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정책에 낙담해 왔다. 초강경파이며 부시 행정부에서 유엔대사를 지낸 존 볼턴은 공개적으로 ‘배신’을 들먹인다. 윌리엄 번스가 유럽-이란 핵협상에 합류하자 볼턴은 국무부가 “오바마 행정부에 순조롭게 정권을 이양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듯하다”고 꼬집었다(오바마는 오래전부터 미국과 이란의 협상을 지지했다). 볼턴은 부시의 북한 정책 변경을 ‘항복’으로 묘사하며, 부시를 지미 카터와 빌 클린턴에 견주었다. 부시가 이렇게 여러 분야에서 획기적으로 노선을 변경했다는 지적은 전적으로 옳다. 하지만 나는 그를 비난하기보다는 칭찬하고 싶다. 다른 분야의 노선 변경은 큰 반발을 사지 않았다. 부시 행정부는 초기에 극빈국 원조에 무관심한 보수주의의 전형을 보여주려고 애쓰는 듯했다. 특히 그 돈이 에이즈 치료에 들어갈 때는 더 강경하게 거부했다. 첫 2년 동안 부시 행정부가 세계적인 에이즈 퇴치 프로그램에 쓴 돈은 매년 10억 달러에도 못 미쳤다. 그러나 올해 미국은 거의 60억 달러를 쓰며, 그 대부분을 아프리카에 투입할 계획이다. 부시의 간판 프로그램인 PEPFAR(에이즈 퇴치를 위한 긴급 구호계획)은 초당적인 노력의 성공 사례가 됐다(물론 예산의 일부는 ‘금욕 프로그램’에 할당돼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이 프로그램의 효과가 희석되기는 한다). 부시의 에이즈 예방과 원조 노력은 예상치 않았던 사람들의 호감도 샀다. 록그룹 U2의 리더이자 사회운동가인 보노, 아일랜드 출신의 록가수로 에이즈 퇴치 운동을 벌이는 밥 겔도프 등. 그리고 아프간과 이라크 침공에 비판적이었던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마저도 “조지 부시는 빌 클린턴보다 아프리카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했다”고 격찬했다. 아프리카의 정치적인 그림은 좀 더 복잡하다. 부시는 수단의 남과 북 사이에 평화를 중재하려고 막후에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 대통령 특사도 파견했다. 다르푸르에도 비슷한 시도를 했다(성과는 거의 없었지만 대부분 부시 행정부의 탓은 아니다). 그러나 좀 더 넓게 보면 부시 행정부는 테러 위협에 지나치게 치중해 왔다. 에티오피아에서 적도기니에 이르기까지 알카에다와 싸우겠다고 주장하는 모든 나라에 원조와 군사 지원을 제공했다. 냉전의 서글픈 재현 현상도 나타났다. 부시는 특별한 이득도 없이, 단지 세계적인 테러와의 전쟁을 거론한다는 이유만으로 파렴치한 독재자들과 동맹을 맺었다. 테러에 대한 집착으로 부시 행정부는 새롭게 태동한 세계 질서에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지 못했다. 그것이 내가 말하는 ‘나머지 국가들의 부상(the rise of the rest)’이다. 중국, 인도, 러시아, 브라질 등 신흥경제국만이 아니라 남아공, 나이지리아, 멕시코, 카자흐스탄 같은 지역 맹주들의 경제적, 정치적 힘의 증대를 말한다. 일부의 경우 그들의 정책은 서로 다르고 일관성이 없다. 러시아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몇몇 중요한 사례에서는 그들은 아주 합당한 전략을 채택했다. 그중 가장 중요한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과 미국의 양자 관계가 21세기에 가장 중요한 국제관계가 될 것이 분명하다. 부시는 이 문제에서 초기에는 잘하지 못했다. 선거운동 중 CNN의 대담 진행자 래리 킹이 클린턴의 외교 정책에서 벗어나려는 가장 중요한 이슈가 뭔가라고 묻자 부시는 중국이라고 말했다. “클린턴은 중국과의 관계를 전략적 파트너십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전략적인 경쟁 관계로 재규정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부시 행정부는 초기에 네오콘들과 국방부 전략가들이 바랐던 대로 중국에 대립적인 노선을 채택했다. 2001년 4월 부시의 대통령 취임 4개월째에 미국의 정찰기가 중국의 하이난 섬에서 약 110㎞ 떨어진 해상의 상공에서 중국 전투기와 충돌해 비상착륙했다. 중국은 미국 미행기가 중국의 영공을 침입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그곳이 국제 공역(international airspace)이라고 반박했다. 결국 미국은 정찰기 기체와 승무원들을 송환 받으려고 중국과 협상했다. 보수파들의 불만도 무시한 채 부시는 중국 측에 ‘두 가지 사과의 편지’를 보냈다. 부시는 그 편지에서 그 사고 자체와, 중국인 전투기 조종사의 죽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뜻을 신중한 표현으로 전했다. 그때부터 부시 행정부의 중국 정책은 관계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중국을 어느 정도까지 기존의 세계 질서에 끌어들일 수 있다면 미래의 평화와 안정에 크게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부시는 전 세계에 민주주의를 전파한다는 원대한 구상에도 불구하고 중국과의 관계에서는 매우 실용적인 노선을 택했다. 중국 정부에 가장 중요한 문제인 대만과 관련해서 부시는 중국 편을 들었다. 그것도 미국의 전임 대통령들보다 더 직접적으로 중국을 지지했다. 부시는 천수이볜(陳水扁) 대만 총통에게 대만이 독립을 위한 조치를 취한다면 대만은 미국의 지지를 잃을 것이라고 분명히 못 박았다. 더욱 최근엔 부시가 유럽의 일부 지도자와 달리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했다. 그로써 미국은 중국 정부만이 아니라 중국 인민들로부터도 호의를 살 게 분명하다. 물론 부시 행정부는 중국의 부상이 아시아에서 전략적 균형을 흩뜨려 놓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 때문에 미국은 일본과 전략적 관계를 더욱 공고히 다지고 인도와도 새로운 관계를 발전시키고 있다. 특히 인도와의 관계 증진의 공로는 부시에게 돌려야 마땅하다. 물론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도 미국과 인도의 관계는 돈독했지만 인도의 핵문제를 둘러싼 논란 때문에 늘 한계가 있었다. 클린턴은 인도의 핵 프로그램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도인들은 핵이 필수불가결하다고 생각했다. 부시는 인도가 예외로 인정돼야 하며, 핵보유국으로서 핵확산 방지 체제에 편입돼야 한다는 사실을 개략적으로 용인함으로써 미국-인도 관계의 교착상태를 타개했다. 현재 인도와 미국은 여러 차원에서 전략적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는 아시아의 미래에서 힘의 균형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더라도 양국에 이득이 되는 조치다. 만약 미국이 이런 신흥국가들의 세계를 적극 포용하지 않았다면 다른 나라는 더욱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정치학자 대니얼 드레즈너는 포린 어페어지 기고문에서 부시 행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G8 등 같은 국제기구에서 중국, 인도, 브라질에 더 많은 힘을 실어주려 했다고 지적했다. 티머시 애덤스 재무차관은 2006년 뉴욕타임스에 “IMF를 개편함으로써, 그리고 중국에 더 큰 목소리를 낼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중국은 IMF의 역할에 더 큰 책임감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대한 가장 강한 반대는 유럽에서 나왔다. 국제기구의 힘이 현재 힘의 균형을 기본으로 할당된다면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볼 때 유럽 국가들은 영향력을 잃게 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금 설립된다면 과연 이전처럼 거부권의 40%가 유럽 국가들에 부여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내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부시 행정부는 첫 몇 년 동안 엄청난 오류를 범했다. 그 때문에 미국 전체가 큰 피해를 보았다. 세계 주요 지역의 사람들이 미국에 반감을 갖게 됐고, 이슬람 국가들이 미국인들을 반이슬람주의자들로 보게 됐다. 또 미국은 비자 제한과 용의자 구속 및 심문으로 악명을 떨쳤다. 이 모든 것이 부시 행정부의 지울 수 없는 유산이다. 부시 행정부의 기능 장애와 무능은 수십 년 동안 불안정을 겪고 있는 이라크와 레바논 같은 나라들을 더욱 불행하게 만들었다. 용의자 고문을 비롯한 초법적인 조치들은 미국의 자랑스러운 인권 보호 전통을 무너뜨렸다. 그 대가로 미국이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부시 행정부가 외교 정책에서만 잘못한 게 아니다. 부시 행정부는 미국 역사에서 재정적으로 가장 무책임한 정권이었다. GDP의 2.5%에 해당하는 재정 흑자를 3% 적자로 돌려 놓았다. 미국의 재정에 4조 달러의 적자가 생긴 것이다. 현시대 최대의 경제적 도전이자 기회인 에너지 정책에서 부시는 완전히 훼방꾼 노릇을 자처해 업계 로비스트의 이기적인 주장만 되풀이했다. 전체 성적을 볼 때 부시 행정부는 실패한 정권이다. 그런데도 내가 현재 부시 행정부가 올바른 길로 들어선 점을 평가하는 이유가 뭘까? 우리가 2001년으로 되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차기 대통령은 2009년 취임해 현재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물려받는다. 그는 2001, 2002, 2003년의 부시 정책이 아니라 2009년 1월 현재 전임 행정부의 정책을 면밀히 재검토해야 한다. 그런 다음 그것들을 어떻게 수용하고,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취임하면서 전임자가 한 모든 행동이 무책임했고, 어리석었으며, 부족한 인식에서 나왔고, 부패했다고 확신한 대통령이 있었다. 그는 기존의 모든 것을 거부하고, 뒤집어 놓는 것을 신조로 삼았다. 전임자의 정책들을 자세히 검토하기도 전에 무조건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지자들은 그런 그의 명쾌함과 투지를 높이 샀다. 바로 그 대통령이 조지 W 부시였다. 전임자 빌 클린턴과 관련한 모든 것을 무조건 부인하겠다는 결정이 미국을 지금의 이런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은 그래선 안 된다. 아무리 부시를 경멸한다고 해도 그의 정책을 세세히 검토하고, 미국의 국익과 세계의 현황을 면밀히 살펴본 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드디어 ‘천비디아’ 돌파…수혜주는 어디?

2부광약품, 파킨슨병 이상운동증 치료제 美 2상 중단

3기업은행, 울산광역시 소재 ESG 선도 기업에 저금리 대출

4푸바오와 버즈, 이 만남 ‘바람직’…삼성전자, 바오패밀리 케이스 출시

5미래 준비하는 KGM...연구개발비 20% 늘었다

6"뭉쳐야 사는데"…1기 신도시 재건축 6070 동의율이 관건

7KB금융, 우수 스타트업 20곳 선정…미래 혁신 협업

8‘SON세이셔널’…도미노피자, 포장 주문시 모든 피자 반값

9SOOP, ‘마플샵’과 손잡고 인기 스트리머 커스텀 굿즈 제작 서비스 오픈

실시간 뉴스

1드디어 ‘천비디아’ 돌파…수혜주는 어디?

2부광약품, 파킨슨병 이상운동증 치료제 美 2상 중단

3기업은행, 울산광역시 소재 ESG 선도 기업에 저금리 대출

4푸바오와 버즈, 이 만남 ‘바람직’…삼성전자, 바오패밀리 케이스 출시

5미래 준비하는 KGM...연구개발비 20%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