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에 선 중국 경제
갈림길에 선 중국 경제
공장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속도가 몇 십 년 만에 가장 빠르다. 지금 같은 매출 둔화를 예상하지 못했던 자동차회사들은 구제금융을 받으려고 정치인들에게 로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주식시장은 붕괴돼 잔해만 수북이 쌓여 있다. 주택가격은 여러 도시에서 35% 이상 떨어졌고, 악성 채권이 은행에 큰 부담을 주기 시작했다.
요즘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중국을 떠올려보라. 글로벌 경제위기로 이제 중국마저 30년 동안 지속돼온 고속 성장이 옛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중국 정부는 1989년 공산당 일당 체제를 위협한 민주화 시위 이래 가장 큰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물론 그것이 아직은 중국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는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진국이 경기후퇴에 들어섰고 세계의 모든 나라가 지구상에서 가장 부양력이 큰 경제대국 중국이 세계적인 경기침체를 막아주지 않을까 하고 요행을 바라는 상황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그런 예측은 충분한 설득력을 갖는다. 저축액이 많고 외환보유액도 2조 달러가 넘는데도 중국은 2008년 중반 본격적으로 시작된 세계적인 수요 하락의 화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은 10억 소비자의 부상이라는 요란한 선전에도 불구하고 현재 산업의 심장지대에서 받는 엄청난 타격은 수출과 투자보다는 가계 소비에 기반한 새로운 성장 모델로 옮겨가고 있다는 생각이 허구라는 걸 밝혀줄 것이다. “우리도 중국이 새로운 성장 모델로 이동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고 스탠더드 차터드 은행의 중국경제 분석가 스티븐 그린이 말했다. 그는 중국의 소비자 지출이 세계를 경기침체에서 구할 거란 기대는 “헛된 꿈”이라고 말했다. 중국을 필두로 아시아 전체가 외부 충격에 위험스레 노출돼 있다. 중국의 경우 가계소비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990년대 말 약 50%에서 지금은 35%로 떨어졌다.
한편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이 지역의 전체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현재 45% 이상이다. 1997∼98년 아시아 금융위기 직전보다 약 10%포인트 높아졌다. 빌려서라도 돈을 쓰는 미국의 소비 수요에 비하면 아시아의 미약한 구매 욕구는 글로벌 경제가 크게 잘못됐다는 걸 반영한다.
“정책 입안자들과 정치인들이 지난 10년 동안 방치한 불균형 때문에 지금 같은 상황이 왔다”고 모건스탠리 아시아의 스티븐 로치 회장이 말했다. “그런 불균형은 절대로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오래갈수록 더욱더 많은 사람이 유혹에 넘어갔다. 이제 우리는 그에 대한 막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물론 그 대가를 누가 얼마나 지불해야 할지 아직 정확하게 계산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중국이 그 청구서의 가장 많은 부분을 부담해야 할지 모른다. 중국이 소비를 늘려 다시 균형을 잡는 것이 미국이 저축을 늘리는 일보다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현재의 위기 때문에 저축을 늘리고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최근의 통계는 미국 소비자들이 이미 그런 쪽으로 신속히 바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가계 소비 총액이 미국의 5%에 불과한 중국에서는 현재의 위기 속에서도 투자와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를 지탱해갈 수밖에 없다. 산업의 과잉생산을 지속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베이징 대학의 금융학 교수인 마이클 페티스는 미국이 1929년에 똑같은 곤경에 처했다고 말했다.
“1920년대 미국은 그때까지 사상 최고의 자금 보유액과 막대한 무역흑자를 냈다”고 페티스가 말했다. “그렇다고 미국이 세계적인 위기에 휩쓸리지 않았던가? 아니다. 가장 크게 당한 나라가 미국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중국은 당시의 미국과 똑같다.”
중국 정부는 이제 스스로 성장의 덫에 빠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11월 10일 4조 위안(약 590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내놓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미국의 7000억 달러 구제금융에 육박하는 규모다. 그 부양책은 중국 경제가 3분기(7∼9월)에 9% 성장했다고 발표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시점에 발표됐다.
3분기 이후 중국의 경제 성장이 크게 둔화됐다는 것이 일치된 견해다. 2009년의 성장률 추정치(전년도 대비)는 대부분 7% 선이며, 가장 최근의 전망에는 “거기에 못 미칠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경고까지 덧붙었다. 얼마 전 스코틀랜드 왕립은행은 내년도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5%로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2007년 전년도 대비 11.9%의 성장을 기록한 중국 경제는 1990년 이후 연간 성장률이 6%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다. 중국의 경기부양책은 국제사회의 환영을 받았다. 깊어가는 위기를 수수방관하지 않겠다는 중국 지도부의 의지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책 실수는 중국에 엄청난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다.
특히 그로 인해 세계무역체제가 손상된다면 중국은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중국은 어떤 경제대국보다도 무역 의존도가 크기 때문이다. 1929년 대공황 초기의 미국이 좋은 예다. 미국의 자멸적인 실책은 세계무역을 가로막은 것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스무트-홀리 관세법(1930년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도입한 법으로 미국의 국내 산업을 보호하려고 2만 개 이상의 수입품에 최고 400%에 이르는 관세를 부과했다)이다.
당시 세계는 엄청난 과잉생산의 부담을 안고 있었고 미국은 최대 수출국이었다. 지금은 중국이 최대 수출국이다. 그리고 세계는 또다시 거대한 과잉생산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중국 정부가 반드시 피해야 하는 실수는 더 많은 상품을 수출하기 위해 지나치게 애를 쓰는 일이다. 그러면 이미 허약한 세계시장을 중국산 상품으로 범람시켜 보호주의 반발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 결과는 세계시장의 디플레이션이다. 가격이 낮은데도 소비자들이 가격이 좀 더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면서 수요의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말한다. 중국의 경기부양책은 여러 사람의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지출계획 없이 두루뭉술하게 뭉뚱그려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념상으로는 내수 진작과 수출을 구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경기부양책에는 농촌 기반시설 구축, 의료와 교육을 위한 사회지출 증대, 주요 도시의 이주 근로자들을 위한 저가 임대주택 건설 등이 포함돼 있다. 이 모든 것을 실행한다면 장기적으로 가계 지출을 늘릴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중공업 특혜, 수출 부문의 부가가치세 인하, 민간기업을 제외하고 도로 및 철도 건설에 참여하는 국영기업에만 은행 자금을 제공하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초점은 분명히 수출과 인프라”라고 그린이 말했다. “하지만 의료와 교육에 대한 지출은 여덟 가지 우선순위 중에 들어 있긴 하지만 충분히 지원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도 확실하다.”
경제 전문가들은 5900억 달러의 4분의 1만이 새로 투입되는 자금일 것으로 추정한다. 그 외에는 전부 이전에 발표된 지출계획, 향후의 감세, 지방정부로 재원 없이 이양된 인프라 구축 계획 등이라고 본다. 약속된 사회 지출의 대부분, 그리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소비자의 권한 확대가 이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우려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는 중앙정부가 사회안전망 건설의 대부분을 지방정부에 위임했다는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중앙정부에서 예산을 할당해 지시하지 않는 한 지방정부는 학교를 짓는 데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한 가지 새로운 우려는 지방정부의 세입이 경기침체로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로치는 사회안전망에 대한 투자로 “많은 아시아 국가의 소비 증가를 가로막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예방 차원’의 저축이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중국은 과거에도 때때로 이런 시도를 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늑장을 부려 결국 실패했다”고 덧붙였다.
중국에서 사회 서비스와 가계 소비의 관계를 이해하려면 병원을 찾아가보라. 입원 수속을 할 때 환자들은 일정 금액을 선불로 지불해야 한다. 그 돈이 소진되면 환자들은 치료가 끝났든 그렇지 않든 강제 퇴원을 당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중국의 의료비 지출은 GDP의 1%에도 못 미친다. WHO가 조사한 196개국 중 156위다.
마찬가지로 가난한 아이들이 수업료를 내지 않고는 학교에 다닐 수 없다. 또 대다수 이주 근로자는 산재 보험이 전혀 없다. 그 때문에 각 가계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가처분소득의 약 25%를 저축해둔다. 이런 방식은 후진타오 주석이 2006년부터 주창해온 ‘조화 사회’ 건설에 도움이 되는 사회계약이 아니라고 유엔개발계획(UNDP)과 중국개혁발전연구소(CIRD)가 공동 작성한 새로운 보고서에서 지적했다.
그 보고서는 중국이 13억 인구를 위해 사회복지 시스템을 개혁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기본 의료, 교육, 실업 및 퇴직 수당을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농민, 이주 근로자, 빈민 등 ‘잊혀진’ 사회 구성원들을 돌보아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간 550억 달러 정도가 필요한데 그 비용은 도로, 철도, 교량 건설보다 투자 대비 효과가 훨씬 크다고 그 보고서는 주장했다.
지금 중국이 안고 있는 위험 중 하나는 근로자들이 미국의 대공황 시절 유개 화차를 몰래 타고 다니던 부랑자들처럼 경제 파산의 부랑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광둥성의 폐쇄된 공장에서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들의 이동이 시작됐다. 30년 전 중국의 개혁이 시작되면서부터 중국 정부는 경제성장률 8% 이상을 지속하는 것이 내륙의 농촌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근로자를 고용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책이라고 주장했다.
매년 약 1500만 명이 노동력으로 유입되는데 성장률이 8% 아래로 떨어질수록 실업자 수는 더 늘어난다. 그러나 정책 입안자들은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고속 성장을 추진하면서도 이 근로자들을 새로운 소비자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은 등한시했다. 충분한 사회 보호를 누리면서 저축보다는 소비를 더 많이 하는 계층을 말한다.
중국의 변화를 위해서는 어떤 처방이 필요한지 1990년대 말 이후 확실히 드러났다. 급속히 발전하는 동부와 낙후한 서부 사이의 균형 잡힌 성장, 초갑부와 나머지 계층 사이의 소득 격차 해소 노력, 중국의 기업계를 지배하는 국영 복합기업들이 내는 막대한 수익을 국고로 환원해 사회 지출을 늘리는 정책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서부 오지에 투자를 촉진하려는 ‘고 웨스트(Go West)’ 같은 운동은 정치선전 이상의 효과를 거두지 못했고, 국영기업들에 막대한 수익의 일부를 징수하려는 것은 소규모 실험에 그치고 있다. 지난 10월 스탠더드 차터드 은행은 중국 정부의 투자와 수출 편향, 그리고 “국가의 보호를 받는 독과점” 지원에서 잘 드러나듯이 “원하는 바와 실제 정책 사이에는 매우 큰 간극이 있다”고 지적했다.
페티스는 중국 정부가 고집하는 중상주의는 1997∼98년 아시아를 유린한 것과 비슷한 외부의 부채 충격을 막아내는 데 효과가 있을 뿐, 지금 같은 위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막대한 저축과 외환보유액으로 그런 외부의 부채 충격을 가볍게 막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1929년의 미국처럼 중국은 지금의 세계적 수요 붕괴에 가장 위태롭게 노출된 나라이기도 하다. 이처럼 중국은 2008년이 불명예스럽게 끝나가는 시점에서 딜레마에 봉착했다. 수출 진흥은 중국 공장의 가동을 지속시키는 단기적인 수단을 제공한다. 그러나 세계적인 침체 와중에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것은 보호주의를 자극하는 지름길이다.
11월 15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G20 금융정상회의에서 공개적으로 논의된 내용의 초점은 세계 금융구조를 보강하고 자유무역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99년에서 2002년까지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을 지낸 마이크 무어 전 뉴질랜드 총리는 막후의 대화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대다수 정상이 아시아가 무역으로 현재의 위기에서 벗어나려 해서는 안 된다는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믿는다. “중국, 그리고 정도가 약하긴 하지만 인도와 동남아 국가들이 소비자 사회가 돼야 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겉으로는 애써 외면하는 현실”이라고 무어는 말했다. “수출 의존도를 크게 줄이는 것이 그들에게 큰 이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주 불쾌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1930년대에 세계 무역은 70%가 감소했다. 그 당시와 같은 치명적인 경제 국수주의로 돌아가려는 시도는 “위기를 대참사로 바꿔 놓을 것”이라고 무어가 경고했다. 중국 정부가 직면한 리더십 도전이 바로 그것이다. 그 도전은 1989년 탱크와 군대로 억눌렀던 민주화 시위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지금 중국 정부는 중대한 해외시장 접근권을 잃지 않으려면 국제 무역의 조화를 유지하려고 애써야 한다. 동시에 국민에게 고속 성장이 타고난 권리가 아니라는 것을 주지시켜야 한다. 본질적으로 중국 정부는 지난 30년 동안 중국 경제를 이끌어온 수출 주도형 성장엔진 대신 사회안전망으로 지탱되는 소비 모델을 새로운 사회계약으로 제공해야 한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0년대에 미국에서 그렇게 했다. 그러나 그 전환에는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중국 지도부가 더 잘 해낼 수 있을까? 1990년대 말 주룽지 총리는 이웃 국가들과 달리 자국 통화의 가치를 평가절하하지 않았다. 그 결정으로 중국은 일부 수출 추진력을 잃었지만 지도부는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행동을 했다는 평판을 얻었다.
지금의 지도부도 그 명성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당면한 경제 도전의 거대함을 감안하면 그들의 지도력은 2009년 아주 엄격한 시험대에 오를 것이 분명하다. 특히 비관주의자들의 생각이 옳은 것으로 판명돼 중국 경제가 서서히 멈춰 선다면 그 시험은 더욱 고통스러울 것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1인 가구 월평균 소득 315만원…생활비로 40% 쓴다
2‘원화 약세’에 거주자 외화예금 5개월 만에 줄어
3서울 아파트 실거래가 지수 9개월 만에 하락
4국제 금값 3년 만에 최대 하락…트럼프 복귀에 골드랠리 끝?
5봉화군, 임대형 스마트팜 조성… "청년 농업인 유입 기대"
6영주시, 고향사랑기부 1+1 이벤트..."연말정산 혜택까지 잡으세요"
7영천시 "스마트팜으로 농업 패러다임 전환한다"
8달라진 20대 결혼·출산관…5명 중 2명 ‘비혼 출산 가능’
9김승연 회장 “미래 방위사업, AI·무인화 기술이 핵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