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웃는 MBA
다시 웃는 MBA
금융계 고위층 인사들이 거의 필수적으로 지니고 있는 한 가지를 꼽으라면 뭘까? 크리스토퍼 콕스 전 증권거래위원회 위원장, 메릴린치의 전 최고경영자 스탠리 오닐, 오닐의 후임자 존 테인에게도 있다. 골드먼삭스 최고경영자 출신으로 재무장관에 오른 헨리 폴슨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모두 지난해 가을 시작된 금융위기의 핵심 인물들이다. 그리고 모두 자랑스러운 하버드대 MBA 학위 소지자들이다. 따라서 이들을 배출한 상아탑에서 이번 금융위기의 원인을 찾으려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비즈니스위크의 칼럼니스트 파블로 트리아나가 대표적이다.
그는 “몇 안 되는 금융기관 내부의 소수 무리”가 이번 금융위기를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들은 “지난 50년간 비즈니스 스쿨 내에 만연한 문제” 탓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그는 말한다. 한 마디로 비즈니스 스쿨이 문제의 근원이라는 의미다. 그런 비판은 느낌상 그럴싸하게 들린다.
그러나 깊이 곱씹어보면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혼동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비즈니스 교육과정에 결함이 있다는 말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그런 문제를 금융위기의 실질적인 원인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금융위기의 주범 다수가 MBA 출신이라 해도 비즈니스 스쿨을 나오지 않은 핵심 관련자도 많기 때문이다.
비판론자들은 MBA 과정이 학생들에게 데이터와 금융모델을 지나치게 맹신하도록 가르치고, 윤리를 장식품 취급하며, 학문적인 전문화가 지나쳐서 학생들이 시스템 전반의 위험에 무지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결함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미국의 재계 엘리트들 사이에 근시안적인 용병 마인드를 심어놓았으니 금융위기의 발생은 미리 예견된 일이었다고 일부 전문가는 주장한다.
이런 비판의 저변엔 더 기본적인 실패가 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교수이자 2007년 MBA 역사를 다룬 ‘더 높은 목표에서 용병으로(From Higher Aims to Hired Hands)’를 펴낸 라케시 쿠라나는 비즈니스 스쿨들이 원래의 목적을 망각했다고 주장한다. MBA는 1900년대 초 진보주의 시대에 태어났다.
당시 미국의 대기업들이 사회의 신흥세력으로 떠올랐으며 정부 당국은 스탠더드 오일이나 US 스틸 같은 대기업이 시장과 고객을 제멋대로 이용하지 못하게 하려고 고심했다. 한 가지 대책이 초창기 MBA 교육과정을 통해 눈앞의 이익이 아닌 공동선을 위해 기업을 경영하도록 전문 관리자를 교육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 포드 재단은 MBA의 근대화에 1억7500만 달러를 투자해 오늘날의 비즈니스 스쿨 형태에 가까운 교육과정을 구축했다. 이 같은 구조개혁은 급진 자유주의적이고 친자유시장적인 관점을 가진 밀턴 프리드먼과 시카고 경제학파가 시장을 지배하려던 시점에 일어났다.
이들은 시장이 효율적이며 자율 규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경영자들은 주주가치 극대화에만 집중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이념이 개편된 MBA 프로그램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념이 이번 금융위기를 불러와 우리를 커다란 곤경에 빠뜨린 주범이라고 비판론자들은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의 비판엔 근거 없는 주장도 많다. 먼저 MBA가 통계모델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주장을 살펴보자. 트리아나는 비즈니스 스쿨 체제가 “잠재적으로 위험성이 큰 분석적 트로이의 목마를 우리 경제와 시장에 심어놓는다”고 비난한다. 어떤 측면에서는 비즈니스 스쿨들이 그런 비난을 들어도 마땅하다.
하지만 금융 리스크는 첨단 분석기법으로 거의 완벽히 통제 가능하다는 주장에 현혹돼 나팔수 역할을 했던 학자·기자·금융가 무리보다 책임이 더욱 크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금융분석의 시조로 널리 알려진 마이런 스콜스와 로버트 C 머튼은 모두 비즈니스 스쿨 교수(각각 스탠퍼드대와 하버드대)다.
그러나 지난해 위기에서 사람들을 현혹시킨 진짜 숫자의 마술은 ‘가우시안 코퓰라 함수’와 더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이는 다수의 금융가에게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를 최우량 등급 채권으로 안전하게 재포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준 통계적인 눈속임이다.
그 못된 속임수는 비즈니스 스쿨 강단에 단 한 번도 선 적이 없는 보험계리사 데이비드 X 리가 2000년 발표한 논문에서 나왔다. 학문적인 전문화가 지나쳐 MBA 출신자들이 큰 그림을 보지 못한다는 비판도 따져보면 허점이 있다. 비판론자들의 주장대로 학문적인 연구가 세분화된 건 사실이다.
그러나 비즈니스 스쿨의 학생들은 여전히 조직론으로부터 마케팅에 이르는 온갖 분야에서 다양한 교육을 받으며 대다수 일류 비즈니스 스쿨의 사례연구 방식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혁신적 사고를 장려하기 위한 목적으로 채택됐다.
아마도 비즈니스 스쿨 교육과정에 쏟아지는 가장 일반적인 비판은 이익추구에 눈이 멀어 윤리의식은 거의 가르치지 않아 도덕성이 마비된 용병을 배출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경영자 코치이자 저술가인 마셜 골드스미스는 윤리 교육이 어쨌든 “상당 부분 시간낭비”이기 때문에 어떤 문제라도 학교를 탓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진짜 문제는 MBA 학생 중 대다수가 정직한 시민이지만 2%가량은 선량하지 않으며 그들에겐 대학원도 “큰 도움이 안 된다”고 그는 주장한다(그들은 때때로 직장에서도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골드스미스는 말한다. 기업들이 윤리규정 위반자를 항상 해고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요즘 비즈니스 스쿨들은 적어도 학생들에게 도덕성을 가르치려고 노력한다. MBA 프로그램의 독립적인 윤리과정 수는 1988년 이후 500% 증가했다. 그러나 교육의 질도 문제다. 이런 강좌들은 2000년대 초 엔론·월드컴 등을 비롯한 기업들의 스캔들 이후 “덤으로 끼워 넣은 셈”이기 때문이라고 필립 델브스 브러튼은 말한다.
그는 ‘시대를 앞서가다(Ahead of the Curve)’ 라는 책에서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공부한 2년간의 경험을 썼다. 또 하버드의 쿠라나는, 윤리 강좌들이 비판을 미연에 방지하는 일종의 학문적 제스처로 개설되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많은 경우 “이런 강좌가 개설 이후 조용히 폐지되거나 유명무실해진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런 비판이 모두 일리 있다 하더라도 MBA 프로그램들이 실제 금융위기를 초래했다는 증거는 안 된다. 제아무리 교육을 잘해도 부패한 시스템의 유혹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더 깨끗한 시스템에서는 MBA의 역기능이 드러나지 않았다. 캐나다의 예를 보자. 캐나다 양대 은행인 스코셔뱅크와 CIBC의 최고경영자 모두 MBA 출신이다.
하지만 맨해튼의 은행들이 자본 1달러당 무려 34달러를 빌렸던 반면 캐나다의 은행들은 자본 1달러당 평균 18달러만 차입해 안전 위주의 경영을 했다. 그 결과 미국 은행 다수가 아직도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생명을 유지하는 반면 그 캐나다 은행들은 요즘 펄펄 난다.
이는 MBA들이 졸업 후 발을 들여놓는 시스템이 진공상태가 아니라 자체적인 규제와 인센티브를 갖춘 생태계라는 사실을 시사하며 이것이 학교 교육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위기를 초래하지 않았다고 해서 비즈니스 스쿨들이 개선될 수 없거나 개선돼선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MBA 프로그램들이 사회의 공동선을 목표로 삼도록 관리자를 교육한다는 당초의 목적을 망각했다는 쿠라나의 기본 취지는 일리 있는 말이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경영관리자를 진짜 전문 직종으로 만들어 변호사나 의사처럼 면허시험을 치르게 하고 회원들을 감독하는 기구를 둬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그런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비즈니스 스쿨도 거의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드러난 가장 두드러진 변화래야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모방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도입한 선서가 고작이다. 미래의 기업계 지도자들이 먼저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행위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졸업생 54%를 포함해 아리조나주로부터 뉴햄프셔에 이르는 수십 개 비즈니스 스쿨의 졸업생들이 이 선서에 동참했다. 명문 비즈니스 스쿨들은 규제와 현 위기의 교훈 등 과목을 포함한 새로운 강좌도 추가했다. 많은 학교는 특별대책반을 구성해 금융위기 이후의 세계에 적응하는 법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한다.
그러나 비즈니스 스쿨들은 기성체제와 결탁한 기관들이 변화 압력을 받을 때 보여주는 관례적인 의식을 따를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쿠라나는 말한다.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이번 위기는 “교과과정의 구조적인 혁신을 초래하지 않았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고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짐 라이트 학장은 말한다. “아주 넓게 보면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진정한 변화를 불러올 만한 한 가지 시나리오는 비즈니스 스쿨이 가장 중시하는 요소인 시장이 그들의 실패를 응징하는 경우다. 하지만 여느 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학생 수가 오히려 증가한다. 이는 비즈니스 스쿨이 앞으로도 평소와 달라지지 않는다는 의미인 듯하다. 다행히 그 MBA 비즈니스가 아마도 최근의 위기를 초래하지는 않은 듯하며 다음 위기를 촉발할 가능성도 희박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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