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무대의 중심에 선 MB 이니셔티브
국제 무대의 중심에 선 MB 이니셔티브
2007년 12월, 제 17대 대통령선거 당시 김우상 연세대 정외과 교수(현 주호주 한국대사)는 이명박 대통령의 외교·안보 분야 자문교수로 일했다. 이 대통령의 승리가 확정된 직후인 12월 25일 배포된 뉴스위크 한국판에는 ‘신아시아 외교 시대 연다’는 제목의 김 교수의 기고문이 실렸다.
그는 이 글에서 ‘신아시아 외교 구상은 이명박 정부의 핵심 외교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새 정부가 실용주의 외교를 바탕으로 주변 4강뿐만 아니라 호주, 인도, 아세안(ASEAN) 국가로까지 외교 지평을 확대해가리라고 예상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지 2년이 다돼가는 시점에서 그의 의견을 다시 물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글로벌 코리아 외교 목표가 신아시아 외교를 통해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주호주대사로서도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금까지 이명박 정부가 추구해온 외교 행보는 그의 예상과 상당부분 겹쳐진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월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신아시아 외교’를 언급하면서 올해의 외교적 중점 목표라고 천명했다.
아시아가 세계 인구의 절반(52%), 세계 GDP(국내총생산)의 5분의 1(10조 7000억 달러), 세계 교역량의 4분의 1을 차지할 만큼 막대한 성장 잠재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신아시아 외교는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미래 전략의 일환”이라며 실리적 측면을 강조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청와대는 “아시아 모든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함으로써 역내 FTA허브 역할을 하겠다”는 구상도 제시했다. 지난 3월엔 한국과 아세안 10개국이 참여하는 ‘한·아세안 센터’가 출범했고, 지난 6월엔 제주도에서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열기에 이르렀다.
아시아 중시정책을 추구하는 호주와의 관계도 각별하다. 양국 정상은 지난 9월 미국 피츠버그 G20정상회의를 앞두고 세계 경제가 출구전략을 서두르는 건 시기상조라는 내용의 기고문을 9월 2일자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즈’에 공동 명의로 실었다.
현지 일간지 ‘더 오스트레일리언’의 도쿄특파원 피터 앨포드는 지난 11월 9일자 기사에서 ‘양국관계 발전이 새롭지는 않지만 과거엔 한· 호주 어느 쪽도 지금 같은 정성을 쏟지는 않았다”고 분석했다. 그렇다고 주변 4강과의 외교가 소홀하지도 않았다. 지난 11월 19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서울 정상회담을 포함해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정상과 12차례 회담을 가졌다.
그 결과 미국과는 ‘21세기 국제 환경에 부응하는 전략 동맹’, 일본과는 ‘미래 지향적인 성숙한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 중국 및 러시아와도 각각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와 같은 유대 관계를 다졌다. 특히 집권초기 미국이나 일본과의 안정적인 외교 관계 정립은 역대 정부와도 차별화되는 변화로 비쳐진다.
일본 시즈오카 현립대 하지메 이즈미 교수는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는 집권 초기 2년 동안 미국과 일본 정부에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현정부는 양국에 모두 안정감을 준다”고 말했다.
국제 외교 무대 데뷔도 상당히 주목을 끌었다. 지난해 7월 한국으로선 처음으로 일본 도야코 G8확대정상회의에 초대받은 데 이어, 올해 7월 이탈리아 라킬라 G8확대정상회의에서도 이 대통령은 무역 세션 첫 발언을 통해 보호무역 타파, 거시정책 공조 등 글로벌 금융위기 해법을 제시했다.
지난 9월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제 3차 G20 정상회의에서도 지속가능 성장을 위한 국제협력 3단계 프로세스를 호주와 공동으로 제안했다. 이 회의에서 한국은 차기 G20 회의 개최국으로 결정되기도 했다.
“G20 정상회의를 내년 11월 한국이 개최키로 할 때 참가국 대부분이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인 데엔 이 대통령의 이런 전방위 활동이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고 외교통상부 경제기구환경과 서상표 과장이 전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한가지 전략적 접근을 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보호무역이 고개를 들면 수출이 경제를 이끄는 한국으로서는 큰 어려움에 빠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역장벽 해소, 신관세 부가 유예 등 자유무역 고수에 사활을 걸 수 밖에 없었다. 이왕 한국에 유리한 국제사회의 의제 설정에 뛰어든 이상 보다 과감하고 전향적인 참여를 통해 외교 무대에 한국의 존재감을 불어 넣자는 의도다.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 캠프의 외교안보 전략 파트에 몸담았던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공교롭게도 새 정부의 외교 정책이 본격 가동되는 시점에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고, 그 금융위기를 한국이 모범적으로 타개하면서 국제사회의 발언권을 높이는 지렛대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이때는 G8이 주도하던 세계 질서가 G14, G20 등 새로운 협력체제로 이전되는 과도기이기도 하다. “이런 프레임 변화를 잘 포착해 한국이 어젠다를 적극적으로 제시해 외교적인 이니셔티브를 쥐자는 게 이 대통령의 주문이었다.” (이 관계자는 “최근 발표한 2020년을 목표로 한 온실가스 감축 계획 또한 피할 수 없다면 오히려 선도해 국제사회로부터 기여도를 인정받자는 조치”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진 대통령 리더십 연구소장은 “정치논리에 갇혀 고전하는 내치와 달리 외교분야는 이 대통령이 주특기와 장점인 실용주의 스타일이 잘 통하는 편”이라고 평가했다.
해외 언론도 최근 들어 부쩍 한국 정부의 외교력을 조명하기 시작했다. 지난 11월 12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지는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석좌 교수의 기고문(Small nation wit an ever-growing voice)에서 “여태껏 문제 국가였던 북한과의 관계에 얽매였던 한국이 그 굴레에서 벗어나 글로벌 현안에서 중요한 중견국(middle-ranking power)으로 떠올랐다”고 평가했다.
그는 대표적인 사례로내년 G20 개최, 내년 최종 타결만 남겨둔 유럽연합과의 FTA 체결을 꼽았다. 뉴욕타임스도 10월 24일자에 필립 바우링 전 파이스턴이코노믹리뷰(FEER) 편집장의 기고문을 통해 한국의 외교력에 주목했다. 필립 바우링은 무엇보다 한국의 외교적 위상이 여러 방면에서 높아진다고 진단했다.
“유엔 사무총장이 한국인이며, 한국은 내년 G20회의를 주최할 뿐 아니라, 유럽연합과 FTA 협상안에 가서명했고, 세계 교역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을 반영해 국제통화기금(IMF)에서 투표권 확대를 모색한다”고 그는 언급했다. 이로써 한국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한반도 문제나 북한 핵에서 정상적인 중견국(normal middle-ranking power) 역할로 옮겨간다”고 그는 덧붙였다.
해외의 외교, 안보 전문가들도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 현안에 기민하게 대처해온 점을 높이 평가한다. 뉴욕 사회과학원의 리언 시걸 박사는 “글로벌 금융위기로부터 한국이 인상적일 정도로 빠른 회복세를 보임으로써 이 대통령의 경제 운용에 관한 평판이 높아졌다”고 뉴스위크 한국판에 말했다.
내년도 G20 정상회의 개최 역시 “세계 경제에서 한국의 위상이 강화됐다는 반증”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메 이즈미 교수는 “요즘 들어 한국이 강력한 이미지를 발산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그는 G20 개최에 대해서는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이 그에 합당한 역할과 책임을 해주기를 바라는 국제사회의 여망이 반영됐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변화가 오랜 세월 쌓아온 저력의 산물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이 일본과 중국보다 경제규모는 떨어지지만 민주주의가 앞섰다는 점을 들어 “이런 외교적 성과는 최근 이명박 정부가 노력도 많이 했지만, 지난 10~15년간 한국이 국제적 지위를 계속 다져온 결과”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가 세계 무대에서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자면 국제사회에 뿌리깊은 고정 관념을 극복해야 할지도 모른다. 바로 북한 리스크 관리다. 뉴스위크 한국판이 취재한 학자들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과 평판은 북한문제와 직결된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했다.
리언 시걸 박사는 “이 대통령의 평판은 결정적으로 북한 문제에 결부된다”면서 “지난해 한국이 부시 행정부의 대북 에너지 지원에 제동을 걸면서 핵 대치 국면이 강화됐고, 중국의 대북 영향력만 키웠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하지메 이즈미 교수는 “북한을 빼놓고 신아시아 외교를 논하기 어렵다”면서 “외교는 기본적으로 이웃나라와 어떻게 지내느냐의 문제이므로 결국 남북관계의 진전 여부가 신아시아 외교의 성패를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정부는 북한 외곽 공략에 치중하는 분위기다. 한국은 지난 10월 21일 베트남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고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외교, 안보, 기타 분야에까지 협력을 확대해 가기로 했다.
“국빈 만찬장에서 양국정상은 ‘형과 아우’라고 부를 정도로 마음을 텄다”고 외교통상부 박석환 의전장이 전했다. 인도네시아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 캄보디아 훈센총리와의 회동에서도 이 대통령은 강렬한 포옹이나 관광지 동행 등 스킨십 외교를 통해 역내 여론을 환기시켰다.
지난 11월 한국 체류 일정을 하루 늘여 화제가 됐던 알란 가르시아 페루 대통령도 그런 경우다. 페루가 북한과 수교를 맺었던 1970년대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가 바로 그다. 비동맹 노선을 강화하던 가르시아 대통령은 북한을 두 번이나 방문하기도 했다.
2006년 7월 재차 대통령에 선출된 그는 이번 양국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6자 회담 복귀를 촉구하는 등 한국 정부의 북핵문제 해결 원칙에 손을 들어주었다. 이 대통령도 오바마 대통령과의 서울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랜드 바겐’을 세 차례나 언급할 정도로 북한에 대해선 원칙론을 고수한다.
이와 관련해 김태현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쉽게 풀리지 않을 북한 문제에 집착해 힘을 뺄 필요는 없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최근 이명박 정부의 외교 행보를 진지하게 관찰해왔다. “해외 의존도가 큰 우리 경제와 4강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여건을 감안하면 이명박 정부의 외교는 주어진 국력과 자원을 최대한 활용했다고 본다”고 그가 말했다.
북한 변수와 관련해서는 “우회 전략을 통해 언젠가 있을 북한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12월 8일 스티븐 보스워즈 미 대북특사가 북한을 방문한다. 앞으로 본격화할 북·미 양자협상의 진전 여하에 따라 북한 문제는 이명박 정부 외교에 새로운 도전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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