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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 헤딩골’ 마케팅 vs‘옆구리 차기’ 마케팅

‘정면 헤딩골’ 마케팅 vs‘옆구리 차기’ 마케팅

마케팅 전문가가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축구의 몰입도는 어떤 종목보다 탁월하다’. 이유는 뭘까. 축구 경기는 전·후반 90분 동안 쉼 없이 전개된다. 작전 타임도 따로 없다.

공수 교체 때마다 광고가 나오는 야구와 비교하면 이해하기 쉽다. 그래서 재핑(광고를 피하기 위해 채널 바꾸는 행위), 지핑(프로그램의 일부 구간을 건너뛰는 행위) 등 시청자의 광고 기피 현상도 적다.

축구 경기장에 광고판을 설치하면 확실한 노출이 보장되는 이유다. 월드컵은 더 그렇다. 스타 선수가 즐비한 국가대표팀의 경기이기 때문에 기업 로고·브랜드의 노출도는 상승하게 마련이다. 남아공 월드컵의 팡파르가 울림에 따라 각 기업의 마케팅 대전(大戰)이 유독 꿈틀대는 이유다.

월드컵 특수를 잡기 위한 기업의 진군이 시작된 것이다. 월드컵 마케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월드컵 마케팅’과 ‘월드컵을 통한 마케팅’이다. 월드컵 마케팅은 월드컵을 상품화하는 것이다. FIFA(국제축구연맹)가 주체다. 월드컵을 통한 마케팅은 월드컵을 발판으로 기업이 벌이는 활동을 의미한다.

공식 파트너 기업의 마케팅, 비공식 파트너 기업의 매복 마케팅이 여기에 포함된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체육과학연구원 유의동 박사는 월드컵 마케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월드컵을(으로) 팔아라, 월드컵을 숨겨라.”



월드컵을 팔아라

FIFA의 머니게임 … 월드컵 상품의 소비자는 관중

“FIFA의 최고 상품은 다름 아닌 월드컵이다. 월드컵 개최로 몸집을 불린다. 월드컵의 소비자인 관중과 시청자를 끌어모으는 것은 그래서 FIFA의 당면 과제다. FIFA가 월드컵 1년 전 컨페더레이션스컵을 개최하고, 우승 트로피 순회 행사를 여는 이유다.”
# FIFA 월드컵 트로피의 진실 올 4월 20일 스위스 취리히 FIFA 본부에서 출발한 ‘FIFA 월드컵 트로피’가 한국에 도착했다. 높이 36㎝, 무게 4.970㎏의 겉보기엔 평범한 트로피. 하지만 FIFA의 보안은 철통 같았다. 이동 시엔 방수·충격 방지에 도난 방지용 자물쇠·압력 조절 밸브가 갖춰진 특수 가방을 이용했다.

이 트로피를 실은 자동차는 공개되지 않았고, 분실에 대비해 23만 달러의 보험을 들었다. 만지는 것은 물론 불가. 이 트로피는 한국을 포함한 84개국, 13만4017㎞를 순회한다. FIFA가 이처럼 애지중지하는 트로피를 굳이 공개하는 까닭은 뭘까? FIFA 측은 ‘월드컵의 추억과 경기장의 생생한 감동을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여기엔 FIFA 특유의 마케팅 전략이 숨어 있다. 실마리를 한 올씩 풀어보자. 월드컵을 주도하는 곳은 FIFA다. 무심코 월드컵이라고 부르면 FIFA가 서운할지 모른다. 월드컵의 공식 명칭은 FIFA 월드컵이다.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월드컵에서 FIFA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대회 유치와 경기장·숙박시설·건설경비는 월드컵 개최국의 축구협회에서 맡지만 그 밖에 모든 경비와 수입 그리고 지출은 FIFA에서 관리한다. 이런 점에서 FIFA는 종종 IOC(국제올림픽위원회)와 대비된다. 예를 들어 IOC는 후원금을 받으면 적당하게 배분한다. IOC 25%, 미국 올림픽조직위원회 25%, 각국 올림픽조직위원회 25%, 저개발국가 지원 25% 등이다.

FIFA는 그렇지 않다. 받은 후원금을 일단 자신의 곳간에 넣는다. 각국 월드컵 조직위원회엔 경상경비만 제공한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체육과학연구원 유의동 박사는 “원칙적으로 월드컵 조직위원회에선 배분금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FIFA의 교묘한 머니게임

FIFA의 최고 상품은 다름 아닌 월드컵이다. 월드컵 개최로 몸집을 불린다. 월드컵의 소비자인 관중과 시청자를 끌어모으는 것은 FIFA의 당면 과제다. FIFA가 월드컵 1년 전 컨페더레이션스컵을 개최하고, 우승 트로피 순회 행사를 여는 이유는 관중과 시청자를 모으기 위해서다.

사실 FIFA는 관중·시청자를 늘리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월드컵이 개최되는 시기엔 국내 리그를 반강제적으로 막는다. ‘최고 선수만이 월드컵에 뛴다’는 등식을 만들기 위해 올림픽 선수 출전 제한 방식을 고집하기도 했다.

요컨대 ‘올림픽엔 나이 제한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펴 세계적 스타가 올림픽에서 뛰는 것을 막는 식이다. FIFA의 전략은 일단 성공적이다. 월드컵은 국제 스포츠 행사 중 가장 성공한 것으로 꼽힌다. 중계방송 시청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프로그램 10개 중 8개가 월드컵이다. FIFA의 계산대로 월드컵의 주 소비자인 경기장 관중도 날로 늘어난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선 270만 명,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선 320만 명의 관중이 지켜봤다. 시청자 수도 증가 추세다. 2006년 월드컵의 시청자 수는 2002년 대비 14% 증가한 380억 명이었다. 특히 세계적 스타 지네디 지단의 박치기 사건으로 떠들썩했던 2006년 이탈리아-프랑스 결승전은 무려 2억6000만 명이 시청했다. FIFA의 월드컵은 이제 세계 최고의 스포츠 상품이다.



월드컵으로 팔아라

막강한 권리·혜택 받은 FIFA 공식 파트너 기업

“이런 독점적 권리와 보호를 받는 FIFA 공식 파트너 기업 가운덴 고속 성장한 곳이 적지 않다. 1994년 미국 월드컵의 파트너 기업 필립스는 월드컵 직후 조사된 미 브랜드 인지도에서 95%를 차지했다. 기존엔 50% 안팎이었다.”
# 현대차와 12분51초 현대자동차는 2006년 독일 월드컵의 공식 파트너 기업이었다. 경기장 광고판 설치 권리를 받은 현대차 브랜드는 경기당 평균 12분51초 노출됐다. 축구 경기 90분의 7%에 해당하는 수치다. (경기장) 대형 전광판 광고는 경기당 3회 총 192회를 실시했다. 이 월드컵을 215개국 340억 명이 시청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브랜드 노출 효과는 상당했을 것이다.

FIFA를 떠받치는 것은 관중·시청자만이 아니다. 공식 파트너 기업도 있다. 이들은 FIFA의 스폰서다. 하지만 FIFA는 이들 파트너에게 일방적으로 돈을 받지 않는다. 현대차 사례에서 보듯 일정한 후원금을 낸 파트너 기업엔 독점적 권리를 준다. 기본 틀은 ‘윈-윈’이다. FIFA 파트너 기업이 누리는 권리와 혜택은 어마어마하다.

월드컵의 명칭과 로고를 사용하는 것은 기본. 경기장 광고판도 설치 가능하다. 흥미로운 점은 계약 품목이 따로 있다는 것. 가령 아디다스 품목은 스포츠 의류·용품이고, 현대차는 승용차·미니버스·밴을 제공한다. 까다로운 조건 같지만 FIFA의 보호는 더 철저하다. FIFA가 주최하는 모든 행사의 음료는 무조건 파트너 기업의 제품이어야 한다.

심지어 FIFA 관계자가 투숙하는 호텔도 그런 조건을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FIFA는 이 호텔을 이용하지 않는다. 월드컵 경기장에 반입할 수 있는 물건은 FIFA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공식 파트너가 아닌 기업이나 단체가 관람객에게 무료로 티셔츠 또는 모자를 제공할 수 없다.



FIFA의 윈-윈 전략
경희대 김도균(스포츠 경영학) 교수는 ‘월드컵 공식 스폰서십의 행태와 내용’이라는 논문에서 이렇게 분석한다. “… FIFA와 기업의 제휴는 양쪽에 큰 이익을 준다. 이런 이유로 공식 파트너 기업은 월드컵 참여를 단순한 이벤트 후원이 아니라 자사 브랜드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이런 독점적 권리와 보호를 받는 FIFA 공식 파트너 기업 가운덴 고속 성장한 곳이 적지 않다. 1994년 미국 월드컵의 파트너 기업 필립스는 월드컵 직후 조사된 미 브랜드 인지도에서 95%를 차지했다. 기존엔 50% 안팎이었다.

2002년 FIFA의 공식 파트너 기업이었던 KT(당시 KTF)도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경기장 광고만으로 1조200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현대차도 2006년 독일 월드컵 대회 현장에서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보장받은 덕에 수조원에 이르는 광고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무려 1300만 명에 이르는 축구팬과 접촉한 것도 현대차의 성과 중 하나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의 국내 공식 파트너 기업은 현대·기아차뿐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12월 4일 남아공 현지에서 열린 본선 조 추첨식 이후 국내외 월드컵 마케팅에 본격 돌입했다. 현대·기아차는 월드컵 기간에 경기장 광고판 설치는 물론 대회 공식 차량을 제공한다. 각종 이벤트와 프로그램도 전개할 수 있다.

현대차가 시작한 월드컵 마케팅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전국 거리응원전. 이는 FIFA가 인정하는 유일한 한국 거리응원 프로그램이다. 현재 공동 파트너를 모집 중이다. 대상은 전국 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공익단체다. 사상 처음으로 FIFA 파트너 기업이 된 기아차는 남아공 현지 FIFA 행사에서 활동할 ‘기아 마스코트 프렌드’를 모집한다.

세계 각국에서 선발된 어린이가 남아공 월드컵 마스코트인 자쿠미와 함께 경기장에 입장해 퍼포먼스를 펼치고 경기 관람의 기회를 갖는 유스 프로그램이다. 월드컵 진출국 국기를 래핑한 32대의 자동차를 활용해 ‘기아 월드컵 로드쇼’도 연다.

하지만 이런 공식 파트너 기업들이 늘 승승장구하는 건 아니다. 매복 마케팅으로 무장한 비공식 파트너 기업에 덜미를 잡힐 때도 있다. 공식 파트너 기업의 적은? 바로 매복 마케팅이다.



월드컵을 숨겨라


전략과 교란의 중간 지점 매복 마케팅

“매복 마케팅이 꿈틀댄다. 국가대표 선수를 활용한 광고 또는 제품을 론칭해 ‘광고의 힘’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KT는 2002 한·일 월드컵 영웅 4명을 모델로 내세운 광고를 선보인다. SK텔레콤은 ‘당신의 Reds는 지금 어디 있나요’라는 문구로 은근슬쩍 2002년 광화문의 추억을 끄집어낸다.”
# 中 체조영웅 리닝의 비밀 리닝(Li-Ning). 그는 중국의 체조 영웅이다. 1984년 LA올림픽 3관왕(마루운동·안마·링)의 주인공이다. 현역 시절 리닝이 딴 금메달 106개는 중국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그런 그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마지막 성화주자로 발탁됐다. NBA(미 프로농구) 스타 야오밍과 허들 황제 류샹을 따돌린 뜻밖의 선택. 특히 리닝은 공중부양을 연상하게 하는 동작을 연출하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여기엔 교묘한 마케팅이 숨어 있다. 리닝은 1990년 자신의 이름을 딴 스포츠 용품업체 ‘리닝’을 설립했다. 중국 내수시장에선 아디다스, 나이키와 경쟁한다. 중국이 베이징 올림픽을 활용해 ‘리닝’을 은근슬쩍 홍보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매복 마케팅 논란이다.

매복 마케팅이란 공식 파트너 기업이 아님에도 교묘한 위장광고로 대회 또는 선수를 연상하게 하는 것이다.

일종의 교란전술. 주로 대표팀 또는 선수를 내세운 광고·스폰서·특허사용계약을 이용한다. 매복 마케팅에 가장 능수능란한 기업은 나이키다. 혹시 지금껏 나이키를 월드컵 공식 파트너 기업으로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나이키는 FIFA 월드컵을 후원하지 않고 대표팀을 지원했다. 이 전략이 큰 성공을 거둔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나이키는 한국과 브라질 대표팀을 지원했는데 한국은 돌풍을 일으켰고 브라질은 FIFA 트로피를 안았다. 2002년 당시 판매된 나이키 유니폼(한국)은 15만 장에 달했다. 미국에 나이키가 있다면 한국엔 SK텔레콤이 있다.

‘대한민국 박수 다섯 번 짝짝짝짝짝’이라는 광고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 이 회사는 국가대표 축구팀 공식 응원단 붉은 악마와 후원 계약을 체결하고 이 구호를 가져왔다. 2002년 월드컵 직후 실시된 각종 설문조사에서 SK텔레콤은 월드컵 하면 떠오르는 기업으로 꼽혔다. 공식 후원사 KT를 ‘매복 마케팅’으로 압도한 셈이다.

삼성카드 역시 비슷한 사례. 일찌감치 거스 히딩크 감독을 광고 모델로 점찍은 삼성카드는 예상치 못한 태극전사의 선전으로 톡톡히 재미를 봤다. 당시 카피는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마치 월드컵 4강 신화를 예언한 듯하다. 남아공 월드컵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요즘도 매복 마케팅이 꿈틀댄다.

국가대표 선수를 활용한 광고 또는 제품을 론칭해 ‘광고의 힘’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대표적인 곳은 KT다. 2002 한·일 월드컵 영웅 4명을 모델로 내세운 광고를 선보인다. 이 회사는 남아공 월드컵의 공식 파트너 기업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광고를 보면 누구나 월드컵을 연상한다. 매복 마케팅의 힘이다.

SK텔레콤은 ‘당신의 Reds는 지금 어디 있나요’라는 문구로 은근슬쩍 2002년 광화문의 추억을 끄집어낸다. 2002년 써먹은 ‘Be the Reds’의 2탄 격이다. 2008년 남북 축구의 상징 박지성과 정대세가 함께 출연한 박카스 광고가 소송에 휘말렸다.

축구협회는 이 광고에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경기 장면이 삽입됐다는 이유로 법원에 광고 중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물론 이 소송은 당사자의 합의로 철회됐지만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바로 매복 마케팅의 보이지 않는 폐해다.



나이키와 SK텔레콤의 공통점
FIFA는 이런 매복 마케팅을 방지하기 위해 대책 마련에 애쓴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로 공략하거나 물량공세를 취하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교묘하게 위장하면 매복 마케팅이라 단정하기도 어렵다.

더구나 이 마케팅은 단기간에 이뤄진다. 오랫동안 매복 마케팅을 꾀하면 덜미를 잡힐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매복 마케팅이 꼭 불법인 것도 아니다. 이 마케팅을 기업 전략으로 이해하는 사람도 많다.

대학 스포츠학과의 한 교수는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라며 사견을 내비쳤다. “매복 마케팅이 성공한다는 것은 최소 비용에 최대 효과를 거뒀다는 얘기다. 어쩌면 전략의 승리다. 이런 유형의 마케팅이 재산권을 심각하게 침해하지 않는다면 매복 마케팅도 전술의 일환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판단은 어차피 소비자의 몫 아니겠나.” FIFA의 공식 파트너든 그렇지 않든 월드컵 마케팅의 성패는 소비자가 쥐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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