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연내 퇴직연금 바꿔야 퇴직급여 법인세 혜택 유지
기업 연내 퇴직연금 바꿔야 퇴직급여 법인세 혜택 유지
직원이 100명 정도인 서비스업체에 근무하는 김정아(36)씨는 지난 연말 퇴직연금 운용현황 보고서를 받아 들고 깜짝 놀랐다. 퇴직급여에 예상치도 않았던 운용수익이 붙어 있었던 것. 1년 전 새로 입사한 직장이 퇴직연금 가입 사업장이어서 입사 초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에 계좌를 개설했는데 이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김씨는 “당시에는 퇴직금 떼일 염려는 없겠다는 생각에 그저 다행이라고만 여겼는데, 막상 수익보고서를 받고 보니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간 퇴직연금으로 전환한 기업이 늘어나면서 김씨처럼 퇴직연금 적립금을 운용하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직장인이 많아졌다. 특히 퇴직연금 유형 중 근로자가 직접 적립금을 운용하는 확정기여형의 경우 운용 결과에 따라 더 많은 수익을 낼 수도 있고, 추가 납입 시에는 세제혜택도 있어 장기분산투자를 통한 자산관리에 유용하다는 게 금융업계의 설명이다.
가입자 선택권 확대돼이처럼 퇴직연금은 기존 퇴직금제도에 비해 ‘떼일 염려 없이 안전하다’는 기본 장점뿐 아니라 제도설계 및 운용과정에서 개인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보다 선진적인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퇴직연금을 도입하는 기업 입장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총급여에 속하는 퇴직금이지만 사실상 직원은 이를 급여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입장 차이가 상당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최종화 KDB생명 법인사업팀장은 “과거에 퇴직금은 법정복지제도일 뿐이어서 회사 입장에서는 근로자에게 보수를 주는 것이지만 제 기능을 못해 왔다”며 “근로자는 퇴직연금으로 운용수익 등이 붙으면 즉시 이 또한 총급여에 속한다는 것을 인식하므로 근무 만족도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적립금을 근로자가 직접 운용하는 확정기여형이 모두에게 다 유리한 것은 아니다. 사업장의 규모, 개인의 투자 성격에 따라 퇴직연금 유형별로 향후 수익률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퇴직연금 가입 시에는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는 조언한다.
퇴직연금은 확정기여형 외에 확정급여(DB)형과 IRA(개인퇴직계좌)가 있다. 사용자인 기업이 적립금을 운용하는 확정급여형은 운용실적과 상관없이 정해진 금액을 지급받기 때문에 실적에 따른 수익률을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운용손실이 발생하더라도 회사가 책임지게 된다. 퇴직 시 평균임금에 근무연수를 곱한 금액이 퇴직급여가 되기 때문에 임금인상률이 높은 대기업 등 안정된 직장 근로자에게 좀 더 유리하다. 반면 임금이 동결되거나 삭감될 경우에는 확정기여형에 비해 적립금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에 경기에 영향을 많이 받는 기업은 적합하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확정기여형은 사용자가 근로자 명의의 계좌에 퇴직급여를 매달 적립하기 때문에 성과급 중심의 연봉제 근로자 등 임금이 일정치 않은 근로자에게 좀 더 유리하다. 특히 60% 이상 사외 적립하도록 돼 있는 확정급여형과 달리 전액을 외부에 적립해야 하기 때문에 퇴직금을 떼일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도 장점으로 여겨진다. 임금 체불 위험이 높은 중소기업 및 영세사업장 근로자에게 매우 유용한 제도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안정된 보수를 받는 직장 직원이라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운용 실적에 따라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확정기여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IRA는 퇴직 또는 이직 시 퇴직급여를 생활자금으로 소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개인퇴직계좌에 넣어두고 세제혜택을 받으며 확정기여형과 같이 계속 운용하도록 한 제도다. 55세 이후에 일시금 또는 연금으로 지급받기 때문에 실질적인 은퇴 시점까지 퇴직급여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미국의 경우 IRA가 퇴직연금 유형 중 적립금 규모가 가장 클 정도로 활성화돼 있다.
고용노동부 임금복지과 손재형 사무관은 “과거에는 예금이나 적금 또는 부동산이 주된 자산증식 수단이었으나 이제는 다양한 금융상품을 통해 자산을 관리하는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며 “퇴직연금제도는 퇴직급여 적립금을 자산운용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아 금융상품에 장기분산투자함으로써 자산관리환경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해 준다”고 말했다.
근로자 수가 30명인 한 방송제작 업체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퇴직금을 연봉에 포함시켜 지급해 왔다. 그러나 직원이 퇴사하면서 퇴직금 미지급을 이유로 지방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하는 사례가 잇따르자 노사 합의하에 퇴직연금제를 도입했다.
모기업에서 분리된 한 제조업체는 예측하기 어려운 경영환경에 대비하기 위해 퇴직금을 안정적으로 적립하자는 데 노사가 합의하고 퇴직연금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 회사는 노사 동수로 추진 팀을 구성하고, 설명회와 설문조사 등을 거쳐 79%가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난 확정기여형에 가입했다.
노사 합의로 도입하는 기업도 늘어삼성화재 이상혁 연금펀드기획팀 과장은 “확정기여형은 퇴직금이 경직되지 않고 자산운용 능력에 의해 더 많이 수익을 낼 수 있는 획기적인 것”이라며 “개인계좌형 시장과 함께 근로자의 노후를 보장하는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사 협의로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임금협상을 비롯한 노사 간 협상의 경우 상당수가 양자 간 이익이 분명하게 대립해 갈등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반해 퇴직연금의 경우 노사가 윈윈할 수 있는 대표적 협상 의제라고 할 수 있다. 어차피 사용자가 지급해야 할 퇴직급여의 지급방식을 두고 제도설계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쪽에 특별히 유리하거나 불리한 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퇴직연금은 노사 양측에 긍정적 요소가 존재한다는 의견을 내놓는 전문가가 많다. 퇴직연금이 기존 퇴직금제도에 비해 근로자의 수급권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근로자에게만 유리한 제도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으나 실제 퇴직연금제도는 사용자 측에도 적지 않은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기업 입장에서 퇴직연금은 법인세를 절감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된다. 확정기여형의 경우 퇴직연금 부담금 전액을, 확정급여형의 경우 퇴직급여추계액 한도 내에서 손비인정을 해주기 때문에 그만큼 법인세를 절감할 수 있다.
올해 말 기존 퇴직금제도와 퇴직연금제도의 중간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퇴직보험에 대한 손비인정이 폐지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퇴직급여에 대한 법인세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올해 안에 퇴직연금으로 전환해야 한다. 2011년에는 퇴직급여 사외적립에 대한 법인세 혜택을 받는 제도는 퇴직연금제가 유일해진다.
확정급여형에 가입한 경우라면 퇴직연금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추가 수익도 기대할 수 있다. 확정기여형의 적립금 운용주체가 근로자라면, 확정급여형은 사용자가 운용주체이므로 채권, 주식, 수익증권, 변액보험 등 다양한 금융상품에 투자가 가능하다. 확정급여형의 경우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퇴직급여가 고정되어 있는 만큼 운용수익이 날 경우 기업의 퇴직급여 관련 비용부담은 그만큼 경감될 수 있다.
또 퇴직연금은 매년 발생하는 퇴직부채비율을 개선할 수도 있다. 이는 기업의 재무건전성을 향상시키고, 퇴직금 체불에 따른 민·형사책임 등 법적 위험도 해소할 수 있다. 이외에 퇴직연봉제, 성과주의 임금제도 등 변화하고 있는 인사노무 환경에도 보다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제도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고용노동부 강운경 임금복지과장은 “퇴직연금은 근로자에게는 수급권 보장과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사용자에게는 재무건전성 제고와 법인세를 절감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제도”라며 “노사 협의하에 각 사업장에 가장 적합한 제도유형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단 확정급여형은 예금자보호법 대상이 아니고, 확정기여형이나 개인계좌도 근로자가 직접 예금자보호법 대상이 되는 상품을 골라야만 보호받을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삼성 임원, 몇 년 할 수 있을까?"...퇴임 임원 평균 나이, 56세
2팬 서비스에 진심...NPB GG 수상자, 시상식 금칠 퍼포먼스 '화제'
3'탈(脫) 하이브' 선언한 뉴진스 영향에 하이브 주가도 급락.. “주주 무슨 죄”
4차기 우리은행장 후보 정진완 부행장 “실추된 은행 신뢰회복”
5"아이폰도 접는다"…애플, 폴더블 개발 본격 착수
6삼성, 세대교체로 '인적쇄신'...30代 상무∙40代 부사장 다수 승진
7 차기 우리은행장 후보에 정진완 부행장
8"어린이용 버블 클렌저에 분사제로 LPG 사용?"…화재·폭발 주의
9엔지니어 중심의 인사 삼성벤처투자에도 이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