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중소기업의 FTA 활용법
수출 중소기업의 FTA 활용법
2년 가까이 끌어온 한·EU(유럽연합) FTA(자유무역협정)가 5월 4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FTA 지각생 한국은 세계 2위 시장 EU와 경제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한·미 FTA도 발효되면 우리나라의 경제영토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우리 기업의 활동폭도 그만큼 넓어진다. 국내 수출 중소기업의 FTA 활용법과 소비자가 누릴 수 있는 혜택을 살펴봤다. <편집자>편집자># 사례1 극세사 세계 1위 기업 웰크론이 날개를 달았다. 5월 4일 한·EU FTA가 국회비준을 통과해서다. 웰크론의 지난해 매출은 674억원. 이 중 44%는 EU에서 올린다. 올 7월 한·EU FTA가 발효되면 웰크론의 EU 수출비중은 20~ 30% 증가할 전망이다. 12.8%가 붙던 관세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FTA의 직접적 관세철폐 효과다.
# 사례2 영국의 해러즈백화점. 세계 최고급 백화점으로 명성이 높다. 여기에 한국도자기의 단독매장이 있다. 고급 브랜드 ‘프라우나’를 판다. 한국도자기의 매출(2010년 671억원) 중 10%가 EU 수출에서 나온다. 한국도자기가 한·EU FTA 체결의 수혜기업으로 떠오르는 이유다. 웰크론과 마찬가지로 한국도자기 역시 관세효과를 볼 수 있다. 한·EU FTA가 체결되기 전 영국의 관세율은 12%였다.
칠레가 체결한 FTA로 성장한 이건산업한국도자기는 원가절감도 할 수 있다. 이 회사는 원료 대부분을 EU에서 수입하는데 소뼈가 대표적이다. 소뼈를 고아 먹는 한국에선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EU FTA 체결로 소뼈가 이전보다 싼값에 들어오면 한국도자기는 제조원가를 크게 낮출 수 있다. 이 회사 염창선(마케팅팀) 주임은 “FTA를 잘 활용하면 큰 결실을 볼 수 있다”며 “한국도자기가 FTA를 어떻게 활용할지 연구를 거듭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염 주임은 하지만 “FTA를 체결한 국가 정보를 일일이 수집하는 게 여의치 않아 좋은 전략이 나오진 않는다”고 털어놨다.
FTA는 국가경제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기업에도 혜택을 부여한다. 웰크론·한국도자기처럼 원가절감·수출증대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혹자는 ‘한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와 거래하는 기업만 열매를 따먹는 게 아니냐’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 FTA 활용법은 많다.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FTA 네트워크를 활용해도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목재기업 이건산업은 한·칠레 FTA뿐 아니라 칠레가 멕시코·EU·미국과 체결한 FTA를 활용해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1970년대부터 합판을 생산한 이 회사는 1990년대 들어 경쟁력이 떨어졌다. 합판 제조에 필요한 원재료인 ‘베니어’를 안정적으로 조달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목이 풍부한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브라질 기업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돌파구를 찾던 이건산업은 1993년 칠레 남부의 라우타로에 ‘이건 라우타로’라는 현지법인과 공장을 세웠다. 베니어의 안정적 수급을 위해서였다. 이건 라우타로는 1993년부터 1997년까지 합판 제조용 중간재인 베니어 생산기지로 입지를 굳혔다. 이건산업 본사에 베니어를 공급하는 등 한국으로 집중 수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위기를 완전히 탈출한 듯했다.
위기는 또 몰려왔다. 1997년 터진 외환위기로 국내 건설경기가 얼어붙으면서 한국 수출길이 막혔다. 미국 경기침체까지 겹쳐 매출이 급감했다. 벼랑 끝에 몰린 이건 라우타로를 살린 건 칠레가 멕시코·EU·미국과 맺은 FTA였다. 이건 라우타로는 이건산업 본사에 합판을 공급하는 대신 칠레가 FTA를 체결한 나라에 수출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1998년 칠레·멕시코 FTA 이후 베니어 대신 합판으로 주력제품을 교체하고, 시장도 한국에서 멕시코로 바꿨다.
2002년 칠레·EU FTA 이후에는 유럽 수출 비중을 늘리면서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잡았다. 특히 2004년부터 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 등을 중심으로 수요가 늘면서 5% 선이던 유럽 매출 비중이 2008년 40% 선으로 급증했다. 이건 라우타로의 매출은 1998년 722만 달러에서 2008년 4200만 달러로 8배가 됐다.
한·EU FTA의 발효를 앞둔 지금, 기업은 EU뿐 아니라 EU와 FTA를 체결한 국가의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 EU는 남아공·멕시코·칠레와 FTA를 맺었다. 그래야 FTA의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다. 이건산업처럼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또 다른 FTA 활용법을 소개한다. 원부자재의 이동경로를 FTA 체결국가로 바꿔도 성장 날개를 달 수 있다. 가령 한국에서 원부자재를 중국으로 보내 티셔츠를 만들고, 이를 일본에 수출하면 10.9%의 관세가 붙는다. 그러나 원부자재를 우리나라와 FTA가 체결된 말레이시아로 수출·생산한 뒤 일본과 말레이시아가 체결한 FTA를 활용하면 무관세로 일본에 수출할 수 있다. 자연주의 화장품 브랜드인 더페이스샵(2009년 LG생활건강 인수)은 이런 방법으로 성장했다.
더페이스샵은 일본에서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으로 완제품과 반제품을 생산했다. 2007년 6월 한·아세안 FTA 상품협정이 발효되자 더페이스샵은 OEM 생산지를 태국으로 옮겼다. 일본에서 제품을 만들어 아세안 국가에 팔 땐 원산지 기준이 충족되지 않아 8% 관세를 물었지만 태국에서 생산하면서 관세를 단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역내산으로 인정받아서다.
FTA를 적절하게 활용한 더페이스샵은 눈부시게 성장했다. 매출은 2005년 1501억원에서 2009년 2571억원으로 71% 늘었고,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1.9배(2005년 224억원→2009년 415억원)가 됐다.
FTA가 모든 산업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농업·축산업·낙농업계는 직간접적인 타격을 입을 공산이 없지 않다. 한·EU FTA가 국회비준을 통과했을 때도 축산·낙농업계는 울상을 지었다. 돼지고기와 치즈 수입 때 부과되는 높은 관세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농업·축산·낙농기업이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니다. 이 분야에서도 FTA를 잘 활용하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FTA로 돌파구 마련한 백합 생산업체백합 생산업체 제주플라워가 대표적이다. 화훼 구근(알뿌리)을 수입해 키워 일본·두바이에 수출하는 제주플라워는 원래 구근 100%를 네덜란드에서 수입했다. 칠레 구근의 수입은 꿈도 꾸지 못했다. 칠레 구근의 가격이 네덜란드산(産)보다 10% 넘게 비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칠레 FTA가 체결되자 제주플라워는 승부수를 던졌다. 칠레 구근의 수입 비중을 10%로 늘렸다. 한·칠레 FTA 효과로 칠레 구근 가격이 네덜란드산보다 싸진 게 이유였지만 또 다른 전략도 있었다. 네덜란드 구근의 신선도가 떨어지는 9~11월에는 칠레 구근을 수입해 키울 생각을 했던 것이다. 한·칠레 FTA를 전략적으로 활용한 제주플라워는 계절별 구근 확보가 가능한 시스템을 갖췄다.
제주플라워는 지금 국회비준 절차를 밟고 있는 한·미 FTA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한·미 FTA가 발효되면 12% 안팎의 관세가 사라져 우리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FTA, 잘만 활용하면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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