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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용 (전두환 전 대통령 차남) vs 미 헤지펀드(안젤로고든) 서소문 지구의 `결투`

전재용 (전두환 전 대통령 차남) vs 미 헤지펀드(안젤로고든) 서소문 지구의 `결투`


재산이 29만원뿐이라는 전직 대통령의 아들이 땅값만 1000억원 가까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부동산 개발사업을 하고 있다. 낡은 건물을 허물고 오피스빌딩을 세워 임대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은행에 담보를 맡기고 수백억원의 돈을 빌렸다. 개발사업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미국계 헤지펀드와 개발할 땅을 놓고 맞서 있기 때문이다. 이 헤지펀드는 세금을 적게 내려고 국내 자산운용사를 앞세웠다. 또 개발 이익에 따른 세금을 피하기 위해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세웠다. 서울시청 인근 서소문동에서 벌어지는 전재용씨와 헤지펀드의 땅싸움을 취재했다.

아직 1672억원의 추징금을 내지 않은 전두환(80) 전 대통령의 차남 전재용(47)씨와 미국계 헤지펀드가 서울 한복판에서 오피스빌딩 개발 부지를 놓고 3년 가까이 밀고 당기기를 하고 있다. 서울 중구 서소문동 85-3번지 일대다. 서울시청에서 도보로 5분 거리, 태평로 삼성 본관 뒤에 위치한 알짜배기 땅이다.

이곳은 도시환경정비사업 일환으로 2008년 재개발이 결정된 부지(서소문구역 5지구)다. 개발이 예정된 땅은 2914㎡(약 880평). 현재는 오래된 14층짜리 빌딩(옛 알리안츠생명 사옥)과 소규모 건물이 밀집해 있다. 지난해 초 한 주간지가 “전재용씨가 이 땅을 매입해 부동산 개발에 나섰다”고 보도하면서 잠시 화제가 됐다. 전재용씨가 대표이사로 있는 부동산 개발·임대업체 비엘에셋 관계자는 당시 “사업에 필요한 부지 매입을 완료했고 현재 차질 없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비엘에셋은 필요한 부지 매입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개발사업은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사정은 이렇다. 2008년 5월 이 부지에서 가장 큰 알리안츠생명 사옥이 매물로 나왔다. 이 건물은 사연이 많은 곳이다. 1971년 지어진 이 건물은 원래 서울시 소유였다가 1977년 12월 당시 율산그룹으로 넘어갔다. 3년 후 율산은 도산했다. 이어 입주한 진흥기업 역시 3년 만에 도산하고 제일생명에 소유권이 넘어갔다. 1988년에는 조양상선이 입주했지만 이 회사는 2001년 파산했다. 이 때문에 이 건물은 재계에서 오랫동안 ‘흉가’로 회자됐다. 이후에는 알리안츠생명이 보유했다.



율산·조양상선 사옥 낀 사연 많은 땅매각 입찰에는 비엘에셋과 블리스자산운용(현 드림자산운용)이 조성한 부동산펀드가 참여했다. 빌딩 매입에 성공한 것은 블리스자산운용이다. 매입가는 543억원. 이 부동산펀드는 미국계 헤지펀드인 안젤로고든이 실소유한 일종의 OEM(주문자부착생산방식) 펀드였다. 자산운용사는 이름만 빌려주고 자금 출자와 운용을 안젤로고든이 주도하는 방식이다. 전재용씨는 본지의 서면 질의 답변서에서 “(안젤로고든이 입찰 경쟁한 부동산펀드의 실소유주라는 것을) 2008년 6월 20일께 알게 됐다”고 밝혔다. 외부적으로 사업 주체로 알려진 드림자산운용 관계자는 안젤로고든의 실체를 인정했지만 “OEM 펀드는 아니다”고 해명했다.

뉴욕에 본부를 둔 안젤로고든이 당시 국내 자산운용사를 앞세워 부동산 개발사업에 뛰어든 것은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불법은 아니지만 제도의 구멍을 이용한 것이다(박스기사 참조).

위에서 내려다본 서소문구역 5지구 일대.

안젤로고든이 5월 말 알리안츠생명 사옥을 인수한 직후 비엘에셋은 개발 부지 내 다른 건물을 집중적으로 매입하기 시작한다. 이 회사는 2009년 중순까지 주변 6개 건물을 매입했다. 비엘에셋이 매입한 면적은 전체 개발 부지의 30% 정도다. 일종의 알박기다.

이 사업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전재용씨가 현금을 들고 당시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매입했다”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전재용씨는 “비엘에셋은 사업 추진을 위해 사업부지 매입을 포함한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며 “매입 금액은 기업 비밀인 사업원가에 해당해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 부동산개발 전문가는 “당시 시세를 볼 때 적어도 250억원 정도는 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주도권은 비엘에셋으로 넘어갔다. 얼핏 부지 면적의 70%를 확보한 안젤로고든이 유리해 보이지만 비엘에셋은 관련 제도의 틈을 이용했다. 전 대표는 낡은 건물 6개 동을 사들이며 필지 수를 늘렸다. 필지는 하나의 지번이 붙는 토지 등록 단위. 한 필지 토지에는 한 개의 소유권이 성립된다. ‘도시와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정법)’은 다른 재개발 관련법과 달리 면적과 상관없이 땅 한 필지가 한 개의 의결권을 갖도록 한다. 1평짜리 땅이건, 1000평짜리 땅이건 한 필지라면 권리가 같다는 것이다. 도정법에 따라 부지를 개발하려면 토지 소유자 4분의 3 동의 요건이 필요하다. 당시 필지를 기준으로 한 의결권은 비엘에셋이 30표, 안젤로고든이 8표였다. 비엘에셋이 압도적인 우위를 갖게 된 것이다. 훨씬 넒은 땅을 소유했는데 오히려 안젤로고든이 알박기를 한 셈이 됐다.

이후 개발사업은 팽팽하고 지루한 싸움으로 이어졌다. 비엘에셋은 부동산 매입 이후 서울 중구청에 시행사업 신청을 넣었다. 하지만 일부 요건이 맞지 않아 반려됐다. 이 사이 안젤로고든은 필지를 분할해 의결권을 늘렸다. 이후 양측은 서로 땅을 자신에게 팔라며 맞섰다.

전 대표는 안젤로고든에 부지 매각을 제안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550억원짜리 건물을 매입할 현금 동원력이 그에게 있었다는 얘기다. 비엘에셋은 안젤로고든에 공동 개발해 수익을 나누자는 제안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안젤로고든 측이 높은 가격을 제시해 결렬됐다. 안젤로고든 역시 비엘에셋 측에 부지를 팔라고 제안했다.



전재용씨 표 대결에서 뒤집어한 부동산 개발업체 관계자는 “양측이 여러 차례 협의했지만 결국 한쪽이 못 버틸 때까지 끌고 가는 싸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비엘에셋은 직접 시행하려 했고, 안젤로고든은 부지 매각을 통해 차익을 얻으려고 했지만 둘 다 실패한 것”이라고 했다. 이러는 사이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부동산 경기는 빠르게 침체됐다. 양측 모두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이 사업 관계자는 “양측이 당시 시세보다 비싸게 샀기 때문에 모두 원가도 건지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악재가 이어졌다. 서울 도심에 오피스 빌딩이 넘쳐난 것이다. 2000년대 후반 서울과 수도권에는 고층빌딩 개발 붐이 일었다.

이때 공사를 시작한 건물이 대부분 2009년 후반~2010년 완공됐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서울시 오피스빌딩 공실률은 4.5%로 전망된다. 전년 대비 0.5%포인트 상승한다는 것이다. 반면 임대료 상승률은 2.4%로 전년보다 4%포인트 가까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2008년 ㎡당 평균 420만원이던 오피스빌딩 가격은 지난해 340만원까지 떨어졌다. 시장이 침체되면서 양측은 벼랑으로 몰렸다.

사정은 급했다. 안젤로고든이 사실상 소유한 부동산펀드는 올 7월 운용기간이 만료된다. 드림자산운용 관계자는 “시간이 촉박하고 그 전에 건물이 팔린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펀드 운용 기간을 연장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팔아서 차익을 남기거나 개발해 임대수익을 얻어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이자만 내고 배당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부동산펀드는 조성액 550억원 중 306억원이 담보대출이다.

비엘에셋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과 2009년 매출은 각각 3억2000만원, 9억6000만원이다. 모두 임대료 수입이다. 반면 이자 비용은 2008년 15억원, 2009년 34억원이다. 비엘에셋은 2009년에만 44억원의 순손실을 봤다.

이 회사는 2008년 3개 시중·저축 은행에서 170억원을 빌렸다. 2009년 단기 차입금은 249억원으로 늘었다. 부림·인천·삼정·유니온·스카이상호저축은행 등 9개 저축은행에 빌라, 상가, 토지 등을 담보로 맡기고 빌린 것이다. 이자는 9~11%다. 전재용씨는 “담보자산 내역은 기업 비밀에 해당해 공개할 수 없다”며 “10개 이상의 은행 및 기관으로부터의 공동 대출이었으면 전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개발이익 500억원 예상

전재용씨는 외삼촌인 이창석(전두환 전 대통령의 처남)씨에게도 99억원의 장기 차입금을 끌어왔다. 비엘에셋의 총부채는 482억원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땅값이 떨어지고 오피스빌딩 개발 수익이 불투명한 상황이라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전재용씨가 서대문구역 5지구 전체를 매입해 오피스 빌딩을 지어 팔았다면 수익률은 얼마나 될까? 이 분야에 정통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연면적이 3만6300㎡(약 1만1000평) 정도이기 때문에 땅값과 부대비용을 약 1000억원, 공사비를 3.3㎡당 500만원 정도로 계산하면 약 500억원 정도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금융비용을 감안하면 수익성이 아주 높다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이 사업 내용을 잘 아는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전재용씨는 실제 직접 시행하려는 의지가 있었는데 초반에 무리하게 일을 추진했다”며 “안젤로고든을 안고 갔어야 하는데 경험 부족으로 실기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안젤로고든 역시 시장이 안 좋은 상황에서 욕심을 부리다 매각 타이밍을 놓쳤다”고 설명했다.

현재로서는 한쪽이 백기를 들고 손해를 감수하며 부지를 넘기거나, 양측이 합의해 땅을 일괄 매각 또는 공동 개발하는 방식 외에는 대안이 없다. 중구청 도시환경정비팀 관계자는 “소유자 간 다툼으로 중단된 상황이기 때문에 관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며 “양측이 원만히 해결할 때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주도권은 여전히 전재용씨가 쥐고 있지만 양자가 제3자에게 일괄 매각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전했다. 실제로 비엘에셋과 안젤로고든은 이 부지를 제3자에게 파는 협의를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전재용씨는 “안젤로고든과 협의해 제3자 매각을 추진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반면 안젤로고든 측 관계자는 “제3자 매각 가능성에 대해 비엘에셋과 협의할 수 있지만 아직 공식적으로 협상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양측이 손을 잡으려고 한 것은 지금처럼 쪼개진 땅을 따로따로 매입할 곳이 나설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한 부동산개발 업체 관계자는 “손해를 보고 팔거나 부동산 경기가 살아난다면 모를까 현 상황에서 이 부지를 매입할 대상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직 대통령의 아들과 국내 자산운용사 뒤에 숨은 대형 헤지펀드 간 지루한 땅싸움이 어떻게 끝날지 주목된다.



■ 비엘에셋은

28억원에 외삼촌에게 산 땅 400억원에 매각


전재용씨가 대표로 있는 비엘에셋은 2000년 10월 설립됐다. 당시는 전재용씨의 전처인 최 모씨가 대표이사였다. 이후 회사는 상당기간 휴면 상태였다. 그러다 2007년 초 전씨가 탤런트 박상아씨와 동업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당시 전재용씨는 한 스포츠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전처가 대표이사로 있었던 회사는 지금 휴지조각과 같다”며 “언젠가는 회사를 다시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죽이지 않았던 것뿐”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 휴지조각 같다는 회사가 서소문동 5지구 개발사업에 뛰어든 비엘에셋이다.

전씨가 세간의 이목이 쏠리던 비엘에셋을 통해 부동산 개발에 나선 것은 세금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새로 법인을 세워 투자하면 세금이 확 늘기 때문이다. 정부는 5년 미만 법인이 수도권정비계획법상 과밀억제권역 부동산을 취득하면 등록세를 세 배 중과한다.

전씨는 2008년 4월 비엘에셋 대표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서소문동 알리안츠 빌딩 입찰에 참여하기 한 달 전이다. 이 회사는 전재용씨가 지분 30%로 최대 주주다. 부인인 박상아씨가 감사로 주주로 등재돼 있다.

이 회사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비엘에셋은 9개 저축은행에 담보를 맡기고 249억원을 차입한 것으로 나온다. 담보 설정금액은 325억원이다. 법인인 비엘에셋이 대표이사인 전재용씨로부터 제공 받은 담보물은 토지, 빌라, 상가 등이다.

또한 비엘에셋은 전재용씨의 외삼촌인 이창석씨에게 99억원을 장기 차입하고, 사장이나 주주(전재용, 전우성, 전우원)에게 일시적으로 차입하는 ‘주임종 단기차입금’은 12억 5000만원으로 나와 있다.

서소문동 일대 외에 이 회사가 보유했던 토지(경기도 오산시 양산동)의 공시지가는 97억원이었다. 이 토지는 전재용씨가 외삼촌인 이창석씨로부터 2006년 28억원에 매입해 2008년 말 400억원에 매각했다. 감사보고서에는 “엔피엔지니어링을 매수인으로 늘푸른오스카빌, 하이브리드건설, 아시아디엔씨 그리고 박정수 개인을 연대 의무자로 해 400억원에 매각했다. 매각대금 중 계약금 60억원은 선수금으로 받고, 중도금 240억원은 어음으로 수령했다”고 나와 있다. 전씨의 땅을 산 늘푸른오스카빌은 이창석씨의 지인인 박모씨가 운영하는 건설회사다.

이 땅은 1990년 대 후반 늘푸른오스카빌이 매입했는데, 당시 소유주가 이창석씨였다. 이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인인 이규동씨로부터 증여 받았다. ‘이규동→이창석→늘푸른오스카빌→전재용→늘푸른오스카빌’ 순으로 거래된 것이다.

전씨는 이 땅을 사면서 잔금을 받기 위해 늘푸른오스카빌이 소유한 경기도 용인시 동천동 소재 2만1540㎡(6500평) 땅에 수익권을 설정했다.

수익권은 땅이 팔려 이익이 났을 경우 수익금을 배정 받을 수 있는 권리다.

이 땅 수익권자는 비엘에셋 앞으로 340억원, 전씨가 대주주(지분 60%)인 삼원코리아 앞으로 500억원이 설정돼 있다. 지난해 7월 이 땅 인근 부지는 3.3㎡당 70만원에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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