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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앞의 복수노조 벌써부터 잡음

코앞의 복수노조 벌써부터 잡음

전국금속노조 경남지부 소속 조합원들이 19일 창원 시내에서 타임오프와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등 노동자 탄압정책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자전거 행진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8일 민주노총 운수노조 산하 전북시내버스노조가 파업에 들어갔다. 이 파업은 올해 4월까지 무려 140여 일 동안 계속됐다. 버스 파업이 이렇게 장기간 진행된 적은 없다. 이처럼 장기화된 데는 이 파업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복수노조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까지만 해도 전북지역에는 한국노총 산하의 전북지역자동차노조(19개 전 버스회사가 속함)가 운전기사 등 노조원을 대신해 회사와 교섭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전북고속의 운전기사 120여 명이 한국노총을 탈퇴해 민주노총 운수노조에 가입했다. 이어 제일여객 등 6개 회사의 일부 조합원이 한국노총을 떠나 민주노총으로 배를 갈아탔다. 한국노총과 회사 간에 맺은 임금협상 내용에 대한 불만과 한국노총 노조가 사용자 편만 든다는 것이 이들이 민주노총 산하의 노조를 만든 이유다. 이로써 7개 회사에는 한국노총 소속 노조와 민주노총 소속 노조가 동시에 활동하는 사실상의 복수노조 시대가 열린 것이다.

7개 회사의 민주노총 소속 노조(운수노조 지회)는 노조를 세우자마자 회사에 교섭을 요구했다. 사측은 이들을 협상대상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김택수 전주시내버스공동관리위원회 이사장은 “한국노총 소속 전북자동차노조가 유일교섭단체로 이미 임금을 4.5% 인상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전북자동차노조도 민주노총 운수노조와 협상하는 것에 강하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총은 이 파업이 향후 복수노조 조직화 사업의 방향타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총력 지원했다. 전북버스 파업 승리결의대회 등 대규모 파업행사가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배경이다.

법원은 ‘민주노총 운수노조의 파업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파업에 들어간 버스회사 노조가 산별노조의 지회여서 복수노조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어서다. 산별노조는 한 개의 산업에 있는 여러 사업장 노조가 단일노조로 뭉쳐 있는 것이다. 금융노조, 금속노조, 보건의료노조가 대표적이다. 한 사업장에 노조가 있다고 하더라도 산별노조의 지회가 설립되면 사실상 또 다른 노조, 즉 복수노조임에도 현행법상으로는 복수노조에 해당하지 않는다.

결국 전북도와 전주시가 나서 중재하면서 올해 4월 말이 되어서야 파업의 실타래가 풀렸다. 파업이 끝난 지 1개월 만에 전북지역 버스 노사는 또 시끄럽다. 이번에는 한국노총이 불씨를 댕기고 있다. 올해 5월 한국노총 소속 전북자동차노조는 임금 15.2% 인상과 식비 현실화 등을 요구하며 노사협상에 나섰다. 6월 8일에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20일께 파업에 들어간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민주노총 운수노조도 질세라 6월 초부터 4월 말 합의사항 이행을 촉구하며 충전·주유 거부, 행선지판 교체 거부 등 운행에 부대적으로 필요한 행위를 거부하고 있다.

파업이 끝나자마자 또 다른 노조와의 교섭이 시작되고, 또 다른 쟁의행위(파업·태업 등)가 꼬리를 무는 형국이다.

복수노조에 따른 혼란의 단면이 전북지역 버스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런 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한 사업장에 2개 이상의 노조가 설립되지 못하도록 한 단일노조 시대가 6월 말로 막을 내린다. 7월 1일부터는 한 사업장에 여러 개의 노조가 설립돼 활동할 수 있는 복수노조 시대가 열린다.



노노 간 세 불리기 치열투쟁 중심의 강성노조가 있는 곳이나 강성에서 온건으로 바뀐 사업장을 막론하고 복수노조 설립 움직임은 상당히 활발하다. 이념 투쟁이 싫다며 노조를 설립하고, 어용노조를 두고 볼 수 없다며 다른 노조를 만들려는 것이다. 투쟁에 염증을 느끼고 온건노조가 들어선 사업장에선 복수혈전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지난해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탈퇴한 상신브레이크가 대표적이다. 상신브레이크는 금속노조의 대구지역 맹주였다. 파업하지 않은 해가 없었다. 사측은 노조의 위세에 눌려 노조가 요구하는 것은 모두 들어줬다.

그런데 사무직원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들은 생산직 중심으로 구성된 노조가 파업하면 늘 현장에 투입돼 공장을 돌렸다. 이들이 “금속노조와 한판 붙자”며 똘똘 뭉쳤다. 공장의 생산성은 파업 이전보다 30% 가까이 더 올랐다. 사측은 이에 힘입어 회사 설립 이래 처음으로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결국 노조가 백기를 들었다. 이어 노조집행부 선거에서 온건파가 당선됐고,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탈퇴하고 독립노조가 됐다.

하지만 민주노총 성향을 가진 100여 명의 조합원이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제2 노조를 설립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회사 측 관계자는 “단일노조일 때는 힘에 밀리거나,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하거나 선택이 가능했지만 복수노조가 되면 노노 갈등에 회사가 끼는 형국이 돼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상신브레이크 사례에서 보듯 기존 생산직 중심의 노조에 반감을 품고 사무직 노조, 연구직 노조 등 다양한 형태의 노조가 설립될 수 있다. 각자 맡은 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사측으로선 이들의 요구사항을 어떻게 조정할지도 골칫거리가 될 전망이다.

민주노총을 탈퇴한 서울지하철, 인천지하철, 발레오와 17년째 무분규를 이어온 현대중공업과 같은 온건노선을 걷고 있는 노조에서도 마찬가지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동서발전노조의 일부 조합원은 투쟁 중심의 노조 집행부에 반기를 들고 개인별로 노조를 탈퇴한 뒤 기업별 노조를 설립 중이다. 900여 명이 제2 노조 설립에 동참했다. 지난해 300일 넘게 파업한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KEC 지회에서도 온건세력이 기업별 노조설립을 준비 중이다.

비노조 기업은 살얼음판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삼성과 포스코에 노조를 설립할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선언한 상태다. 아예 노총 안에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노조설립을 전면 지원할 태세를 갖췄다. 조만간 출범할 것으로 예상되는 제3노총인 가칭 국민노총도 여기에 가세했다.

또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갈등이 복수노조 출범을 계기로 전 산업부문에서 분출될 수 있다. 그동안의 노조는 정규직 중심으로 꾸려져 있었다. 이들 노조는 정규직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차단막을 설치해놓고 있었다. 하지만 복수노조가 되면 비정규직 노조 설립이 봇물을 이룰 가능성이 있다.



모호한 법규정이 혼란 가중한 사업장 안에 2개 이상의 노조가 있으면 교섭창구는 단일화해야 한다. 물론 사용자가 동의하면 모든 노조와 교섭할 수 있다. 하지만 전북버스노조 사태에서 보듯 1년 내내 교섭과 파업에 시달릴 공산이 크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용자는 교섭창구 단일화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사용자가 요구하면 노조는 반드시 교섭창구를 단일화해야 한다. 과반수의 노조가 교섭권을 가지든지, 조합원 수에 비례하는 교섭단을 꾸리든지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과반수 또는 다수 노조를 판단하는 기준은 가입자 수다. 그런데 1명이 2개 이상의 노조에 가입해 논두렁에 앉은 소처럼 유리한 노조의 손을 들어줄 경우 조합원 수를 어떻게 산정하느냐는 문제가 생긴다. 그렇다고 중복 가입을 막을 수도 없다. 이를 막으면 헌법이 보장한 개인의 자유의사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조합원 수를 부풀려서 신고할 경우 작은 기업은 몰라도 대기업은 일일이 확인하기도 어렵다. 단일화 과정에서 노노 갈등이 커질 수 있고, 노노 갈등 속에 단일화가 되더라도 사측과의 협상 과정에서 이 갈등이 폭발할 수 있다. 이를 조정하다 보면 교섭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사측이 모든 노조와 개별적으로 교섭할 경우 각 노조와 체결한 임단협 내용에 차이가 날 수 있다. 예컨대 A노조에는 임금을 3% 인상하는 대신 복지수준을 높이고, B노조에는 임금을 7% 인상하는 대신 복지수준을 낮추면 근로자는 어느 노조에 속했는지에 따라 임금과 복지 수준에 차이가 발생한다.

소수 노조에 대한 대우도 골칫거리다. 어느 노조에는 사무실을 제공하고, 어느 노조에는 사무실은 고사하고 비품조차 지급하지 않는다면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상반기 중에 노사교섭을 진행하다 6월 30일까지 타결하지 못했을 때다. 이런 가운데 복수노조가 시행되는 7월 1일에 제2, 제3의 노조가 생기면 기존 노조가 그때까지 해오던 노사교섭을 접고, 신생노조와 협의해서 교섭창구를 단일화한 뒤 재교섭해야 하는가다. 이는 법원의 판단을 받아봐야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포퓰리즘에 원칙 실종한나라당과 민주당, 민주노동당 등에서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노동계의 마음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파업이 벌어지는 곳이면 어김없이 야당 의원이 나타나 격려하는 ‘정치권 개입’ 현상이 보편화됐다. 한나라당은 한국노총을 다시 우군으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양 노총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노조법 개정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고, 복수노조는 유예하자는 말까지 나온다.

이런 가운데 김성태(한나라당) 의원은 기존 노조가 있는 기업에는 복수노조를 금지하고, 노조가 없는 곳에만 복수노조를 허용한다는 개정안을 마련해 의원입법 형태로 발의했다. 김 의원은 이 법안에 대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서명을 받으면서 “이 법안이 통과되면 한국노총을 우리 편으로 다시 끌어들일 수 있다”는 포퓰리즘적 설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수노조 때문에 회사가 망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혼란을 겪지만 안정세를 되찾는다. 일부 언론에서는 일본항공(JAL)이 경영난을 겪은 것은 7개의 노조가 난립해 선명성 경쟁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노조가 난립해서라기보다 경영을 잘못했기 때문이었다. 조직문화도 엉망이었다. JAL은 공기업 성격이 강하다. 이러다 보니 사측은 노조가 요구하면 거의 다 들어줬다. 반면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세계 유수의 항공사들이 도산하는 와중에도 30년 넘게 흑자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 회사에는 7개의 노조가 있다. 노조가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조직문화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고려대 김동원(경영학) 교수는 “복수노조뿐 아니라 모든 경영에서 성패는 사용자의 의지와 조직문화를 어떻게 가꾸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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