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세나의 힘, 기업이 ‘한국 르네상스’ 이끈다
메세나의 힘, 기업이 ‘한국 르네상스’ 이끈다
지난 4월 1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모습을 나타냈다. 한화 임직원 150명, 협력사 임직원 150명과 함께다. 한화가 2000년부터 후원한 교향악 축제에 김 회장이 아이디어를 내 협력사 직원들과 함께한 것이다.
2주 후 울산 청량초 문수분교와 길천초 이천분교 학생, 교사 38명이 같은 공연장을 찾았다. 역시 매년 오지 초등학생 300여 명을 교향악 축제에 초대해 온 한화의 문화예술 후원 활동이었다. 한화는 이외에도 찾아가는 음악회, 클래식 수학여행, 청계천문화예술마당 등 활발한 메세나(mecenat·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메세나는 로마제국의 아우구스투스 황제 당시 문화예술가에게 활발한 지원 활동을 펼친 정치가 마에케나스의 이름에서 유래한 프랑스어다. 르네상스 시대에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예술가들을 후원한 피렌체의 메디치가(家)가 메세나 기업을 대표한다. 메디치가는 막대한 부를 이용해 르네상스를 꽃피운 위대한 가문으로 평가 받는다.
1900년대 초 카네기가와 록펠러가가 기업 이윤을 조건 없이 문화예술 지원에 쏟아부으며 메세나는 현대 기업과 문화예술 사이에 없어서는 안 될 공생의 조건으로 떠올랐다.
한국 기업의 메세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한국메세나협의회가 1994년 창설됐고, 고(故)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이 2000년대 초 문화예술계에 애정을 쏟으며 ‘한국의 마에케나스’로 불렸다. 최근에는 삼성문화재단, LG연암문화재단, CJ문화재단 등을 중심으로 그룹 차원에서 메세나가 이뤄진다. 홈플러스, 현대중공업, 포스코, KT, 롯데백화점 등의 메세나 활동도 활발하다.
홈플러스는 ‘e파란 어린이 문화예술교실’을 여는 등 전국 규모의 문화예술 교육을 펼쳐 2년 연속 문화예술지원 기업 1위에 선정됐다. 이 프로그램은 문화 혜택에서 소외되기 쉬운 어린이들을 중심으로 문화예술 교육을 실시하는 사업이다.
삼성문화재단은 장애인, 독거노인처럼 문화를 접하기 어려운 계층을 대상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공연을 무료 지원해 왔다. GS칼텍스 역시 여수, 진주 등 사업장과 가까운 곳에서 친환경을 주제로 ‘그린에너지콘서트’를 열어 지역 간 문화 양극화 해소에 힘쓰고 있다.
대상을 특화해 메세나 활동을 벌이는 기업도 있다. 포스코는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을 초대해 한국의 전통문화예술을 체험하게 하고, 하이원리조트는 폐광 지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미술, 음악, 연극과 관련한 문화예술 교육을 한다.
외국은 이미 문화 마케팅이 활성화됐다. 이 역시 메세나 활동에 속하지만 마케팅·광고 효과를 노린다는 점에서 대가 없이 지원하는 순수 메세나 활동과 차이가 있다.
글로벌 종합금융그룹 HSBC는 대영박물관 인도전에 참여해 글로벌 뱅크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동시에 인도 시장 공략의 발판을 마련했다. 핀란드 국영 항공그룹인 핀에어는 영국 맨체스터 소재 왕립음악학교와 제휴해 이미지 상승과 맨체스터∼아시아 구간의 고객 증가를 꾀했다. 루이뷔통, 에르메스, 로레알 등 명품업체들도 메세나 활동에 앞장선다.
한국메세나협의회가 올해 초 국내 기업 53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업이 메세나 활동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업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서(33%, 2010년 기준)였다. 지역사회 공헌(31%)과 문화예술계 발전(16%)을 위해서라는 답이 뒤를 이었다. 의외로 실질적으로 마케팅·홍보 효과를 보기 위해 메세나 활동을 한다는 대답은 10%에 채 미치지 않았다.
이병권 한국메세나협의회 사무처장은 “문화예술가를 후원했다고 해서 당장 효과를 기대하기보다 장기간 숙성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부의 제도적 토대 위에서 민간기업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발전 방향”이라고 덧붙였다.
후원 장르와 관련해 “한국에서는 주로 미술과 서양음악 분야에 지원이 집중되고 있지만 기업의 관심 영역에 맞는 특화된 장르를 찾으면 다른 기업과 차별화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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