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오케스트라 지휘 같은 기업 경영
직원 특성 모르면 불협화음 난다
[CEO] 오케스트라 지휘 같은 기업 경영
직원 특성 모르면 불협화음 난다
9월 5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에 위치한 GSK 한국법인을 찾았다. GSK는 영국을 본거지로 한 다국적 제약회사로 114개국에서 의약품을 판매한다. B형 간염, 소화기 질환, 항암제 등 종류도 다양하다. 지난해 한국법인 매출은 4850억원이다. 국내 외국계 제약기업 중 1위다. GSK는 제약업계에서 음악을 통한 사회공헌 활동으로 유명하다. 10년째 해오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 콘서트, 2010년부터 시작된 첼리스트 조영창 콘서트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 김진호(60) 대표의 클래식에 대한 관심은 남다르다. 오페라 성악, 관현악 반주 등 감상만 하는 게 아니다. 오랜 연습으로 다져진 첼로 연주 실력이 프로 뺨치는 ‘첼리스트 CEO’다. 그의 첼로는 1800년대 초반 제작된 것이다. 활은 Eugeene Sartory의 제품으로 몇 해 전에 구입했다.
“주로 새벽 5시에 일어나 1시간 이상 연습을 합니다. 요즘은 여성 강사에게 강습받고 있죠.”
인터뷰 당일 집무실에서 김밥으로 점심을 때웠다는 그는 첼로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그가 클래식 음악을 처음 접한 것은 여섯 살 때다. 부모님이 집을 비운 사이 혼자 거실에 있다가 축음기에 LP판 한 장을 끼워넣었다. 순간 차이코프스키의 이탈리아 기상곡이 흘러나왔다. 그는 흥이 나 콧노래를 부르며 음을 조잘거렸다. 그가 클래식을 좋아하자 어머니는 열 살 때부터 첼로 개인교습을 시켰다.
매일 새벽 1시간씩 첼로 연습고등학생 때는 ‘피아노 트리오’를 결성해 첼로를 담당했다. 피아노를 치는 친구 아버지가 서울 용산 해방촌에 위치한 교회 목사의 아들이었다. 덕분에 수업이 끝나면 악기가 있는 교회를 연습실로 활용했다. 바이올린을 켰던 친구는 현재 이대 음악대학장으로 재직 중인 이택주 교수다. 그는 당시 클래식 음반을 사고자 찾은 레코드 가게에서 비틀스의 음악을 듣게 된다. 이에 매료돼 교내 록 밴드에도 가입한다. ‘더 매직스’라는 밴드에서 베이스 기타를 맡았다. 가수 최병걸, MC 임성훈 등이 함께했던 팀원이다. 그들의 18번은 롤링스톤스의 ‘I can’t get satisfaction’, 비틀스의 ‘Get back’이다. 그는 학교 축제 날 오전에는 첼로, 오후엔 록을 하느라 진이 빠져 혼났다고 했다.
“바흐의 음악은 정리가 잘 된 듯하지만 그 안의 작은 변화가 굉장한 것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그는 음악도 어느 순간 얼마만큼 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오래 쉬면 다음 음이 빨라지고, 조금 쉬면 적정 템포를 유지한다. 경영도 마찬가지란다. 경영자에게도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신의 인생에도 ‘쉼표’ 같은 휴식기가 있었음을 고백했다. 바로 아버지 회사인 영진약품을 떠났을 때다. 창업주인 고(故) 김생기 회장의 차남이었던 그는 6년간의 대표이사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의 돌발 행동에 모두 반신반의했다.
그는 유통업에 손을 댔다. 먼저 미국 QUAKER사 제품으로 독특한 유리병에 담긴 주스 스내플(snapple)을 편의점에 납품했다. 당시 국내에 편의점이 우후죽순 생기기 시작했는데, 기존의 소매 수퍼마켓에 비해 경쟁력이 없었다. 그는 스내풀 같은 특별한 아이템이 편의점의 차별성을 높여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예상은 적중했고, 스내풀의 편의점 진출은 성공적이었다. 그는 쇠고기, 일본 브랜드 화장품 등도 수입해 파는 등 다양한 비즈니스를 했다.
빚을 내 시작했지만 사업은 성공했다. 그러나 그는 사업을 접기로 했다. 가슴 한쪽에 제약업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다. 결국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아버지 회사는 아니었다. GSK의 전신인 한국글락소웰컴 사장을 맡았다.
곡보다 연주자가 중요한 이유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도 사실 무척 다양합니다. 지휘자, 연주자에 따라 곡에 대한 해석이 다르고 연주법에 차이가 나니까요.”
곡보다 누가 지휘하고 연주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MBC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는 가수들이 곡을 각색해 부르는 것을 예로 들었다. 같은 곡이라도 가수에 따라 분위기가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김 대표는 경영도 이와 비슷하다고 했다. CEO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랑 다르지 않다고 했다. 지휘자가 각각의 파트를 충실히 이끌 때 환상의 하모니가 나오듯 누가 회사를 운영하는지에 따라 조직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경영자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직원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케스트라를 생각해 보세요.”
오케스트라를 듣다 보면 초반엔 트럼펫은 소리가 크고, 현악기는 상대적으로 소리가 작다고 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현악기 소리가 점점 커진다. 지휘자가 이러한 악기의 개별적 특성을 이해해야 최상의 하모니를 낼 수 있다고 한다.
그가 직원들과 유대감 형성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들의 장·단점을 발견해야 적재적소에 배치해 업무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어서다. 대표적으로 그는 임직원들과 ‘김장 담그기 봉사’에 종종 참여한다. 이는 GSK 임직원들로 구성된 장애우, 소외계층을 찾아가는 ‘오렌지 봉사단’의 주요 행사다. 김 대표도 지난해 가을 직원들과 300포기의 김치를 담갔다. 봉사를 하는 즐거움도 크지만 직원들과 함께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더욱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그는 클래식을 듣다 보면 음악가와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고 했다. 음악가를 온전히 알아야 음악도 깊이 감상할 수 있어서다. 김 대표가 휴가 때 음악가의 고향을 찾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 프랑스 근대음악의 선구자로 꼽히는 라벨의 생가를 방문했다. 파리 근교에 위치한 그의 생가는 네 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작은 집이었다. 그는 좁은 공간에서 몽유병에 시달렸을 라벨을 상상하니 가슴이 저렸다.
그때부터 그의 음악이 더 친근하게 들린다고 했다.
“음악가의 삶과 그들의 음악을 사랑합니다. 언젠가는 나의 첼로 독주회도 해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음악가의 인생은 닮고 싶진 않아요. 대부분 불행했거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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