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자원외교 왜 실패했나] 정보·자금·전략 달려 포기 속출

[자원외교 왜 실패했나] 정보·자금·전략 달려 포기 속출

2008년 5월 한승수 국무총리가 우즈베키스탄의 알마릭 광산을 둘러보고 있다. 이 사업은 MOU를 맺은 지 1년 만에 우리 측이 세부자료를 요청했으나 답변이 없다는 이유로 종료됐다.

올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로부터 호된 질타를 받은 지식경제부,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광물공사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MOU(양해각서)가 본 계약으로 연결되지 않은 걸 자원외교 실패로 모는 것은 부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피감기관인 한 공기업 팀장은 “자원개발의 기본도 모르는 의원이 너무 많더라”고 불평했다. 국회가 대통령과 자원 특사, 정권 실세를 겨냥하면서 자원외교 전체를 실패로 몰아세운 면은 없지 않다.

하지만 숱한 MOU 이후 어설픈 협상, 부족한 정보력과 탐사 능력, 느린 의사결정, 실탄(자금) 부족 등으로 MOU를 성공으로 이끌지 못한 실패 사례가 많은 것 역시 사실이다. 당사자들은 “해외 메이저 기업도 자원개발 성공률이 30% 안팎에 불과하다”고 항변하지만, 그것은 탐사 성공률에 해당하는 얘기다. 정부와 관련 공사는 탐사 단계는커녕 개발권을 따내기 전에 포기하거나 협상장에 제대로 앉아보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사전 준비 없이 MOU만 맺고 몇 개월 만에 종료된 사업도 부지기수다. 심지어 MOU 체결국에 세부자료를 요청했는데 답변이 없었다는 이유로 흐지부지 사업을 종료한 경우까지 있다. 몇 가지 실패 사례를 보자.



카자흐와 맺은 MOU 7개월 만에 ‘팽’ 당해2009년 5월 이명박 대통령은 카자흐스탄을 방문해 나자르바예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경제·에너지 협력을 강화하는 데 합의했다. 이때 보쉐콜 동광 개발을 위한 MOU도 맺었다. 당시 정부는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부터 나자르바예프 대통령과 쌓은 친분이 자원외교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홍보했다. 두 정상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는 친한 사이만 한다는 ‘사우나’를 함께 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보쉐콜 동광 사업은 쉬 손에 잡히는 듯했다. 예상 매장량 10억t, 14억 달러 규모였다. 하지만 MOU는 불과 7개월 만에 깨졌다. 다른 자원외교 MOU처럼 탐사 결과 자원이 없거나 경제성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팽’을 당했다. 사연은 이렇다.

당시 광물자원공사·삼성물산과 MOU를 맺은 카자흐스탄 회사는 카작무스다. 국내에서 ‘구리왕’으로 알려진 차용규씨가 키워 매각해 1조원을 벌었다고 알려진 그 회사다. 차용규씨는 현재 국세청으로부터 역외 탈세 혐의로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하지만 카작무스는 그해 말 한국이 아닌 중국 자본을 들여와 자체 개발한다는 방침을 한국 측에 전달했다. 중국 기업이 보쉐콜 동광 프로젝트 사업비로 준비한 돈은 27억 달러(약 3조원)였다. 한마디로 ‘자본력’과 ‘정보력’에서 밀린 것이다. 한국광물공사 관계자는 “MOU를 맺을 당시에도 여러 나라 기업이 사업을 따내기 위해 경쟁하고 있는 상태였다”고 털어놨다. 정상 간 우애와 비즈니스는 별개라는 냉정한 국제 자원외교의 쓴맛을 본 채 보쉐콜 동광 프로젝트는 사업이 종료됐다.

이명박 정부만 자원외교의 쓴맛을 본 것은 아니다. 몽골의 오유톨고이 광산 개발사업은 눈앞에서 황금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사례다. 2006년 5월 광업진흥공사(현 광물자원공사)는 몽골의 오유톨고이 광산 지분 66%를 가진 캐나다의 아이반호 마인즈와 자원개발 협력 MOU를 맺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방문해 얻은 성과였다. 당시 광업진흥공사는 이 동광의 매장량을 23억t이라고 발표했다. 하루에 7만t씩 40년간 채굴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동광을 확보했다는 뜻이었다. 매장량 추산 금액은 300억 달러였다.

같은 해 9월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는 “한국과 아이반호가 상호 비밀을 유지하는 협의안에 동의하는 일만 남았다”며 “자원개발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거기까지였다. 한국은 60억 달러에 달하는 높은 투자비용 부담과 최초 예상 매장량보다 실제 매장량이 적다는 점 때문에 협상에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결국 한국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아이반호는 호주의 세계적인 자원회사 리오틴토와 손잡았다. 아이반호는 외국인의 자원개발 지분한도를 제한하는 정책을 폈던 몽골 정부 탓에 난관을 겪었지만, 결국 오유톨고이 광산을 손에 넣었고 2013년 본격적인 채굴을 앞두고 있다. 아이반호는 무려 9년이나 몽골 정부와 협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기적인 성과에만 집착해 중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지 않았던 우리와 대조되는 대목이다.

그나마 앞의 두 사례는 실패 이유라도 분명하다.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우라늄 개발 사업은 왜 실패했는지 이유가 불분명한 사례다. 2010년 3월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은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나미비아를 방문해 발렌시아 광산의 우라늄 공동개발에 관한 MOU를 맺었다.



제대로 탐사 안 하고 포기하기도발렌시아 광산은 캐나다 포시스메탈이 2008년 나미비아 정부로부터 채광권을 부여 받은 곳이다. 당시 정부는 “발렌시아 광구의 우라늄 생산 가능량은 2만2000t으로 추정된다”며 “2013년부터 채굴에 들어가 최소 연 300t가량을 국내에 들여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연간 국내 우라늄 소비량의 7% 정도에 해당하는 규모다.

MOU를 맺은 다음달 광물자원공사는 현지에서 투자여건 조사를 실시했다. 하지만 8개월 만에 사업을 중단했다. 공사가 밝힌 이유는 ‘경제성 미흡’. 하지만 자원 관련 해외 전문 인터넷사이트에 따르면 포시스는 2008년 8월 약 500m 심부에서 우라늄을 확인한 것으로 나온다. 추정 매장량은 6200만 파운드다. 광물자원공사가 밝힌 2만2000t과 비슷한 양이다. 이에 대해 광물자원공사 측은 “실무자가 바뀌어 사업이 중단된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뿐이 아니다. 이상득 특사가 같은 시기에 맺었던 또 다른 우라늄 개발 MOU도 석연찮은 이유로 중단됐다. 호주 업체가 개발권을 보유한 나미비아 에탕고 광산 건이다. 광물공사는 이 MOU와 관련해 올 1월까지도 사업타당성을 검토했지만 ‘협의조건 차이와 경제성 미흡’을 이유로 사업을 중단한 상태다.

하지만 광물자원공사가 운영하는 ‘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에탕코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호주 업체인 배너만은 올 7월 나미비아 정부로부터 개발에 필요한 도로, 철도, 전력, 통신 등 인프라 사용에 대한 승인을 받았다. 에탕코 광산의 우라늄 매장량(확정+추정)은 1억8300만t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원외교가 ‘국가 백년 사업’이 아닌 ‘정권 사업’이라는 오해를 받을 여지도 보인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의 순방 결과로 맺은 자원외교 MOU는 다섯 건이다. 이 중 MOU 기간 만료로 사업이 종료된 게 세 건이다. 그냥 시간이 흘러 사업이 종료된 것이다. 광물자원공사 측은 “광량 부족이나 사업성 부족을 이유로 종료된 사업”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맺은 26건의 MOU 중 유효기간이 만료돼 중단된 것은 1건이다. 심지어 정권교체기였던 2007년에 맺은 자원외교 관련 MOU는 ‘0건’이다. 이런 식이라면 대선이 있는 내년 정부의 자원외교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외교부 장관에 오르면 첫 번째 순방지로 아프리카를 찾는 전통을 20년째 이어가는 중국의 자원외교와 비교되는 점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 미 증권거래위, 이더리움 현물 ETF 상장 승인

2IP 다변화에 도전 중인 하이브IM…향후 전망은?

3‘인화의 LG’ 흔든 맏딸·맏사위…잦은 송사·구설에 ‘도덕성 결함’ 논란

4‘100일 현장동행’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 “전기차 관련 사업, 투자 축소 없다”

5한국-프랑스 ‘경제계 미래대화’ 출범…우주·신소재·탄소중립 협력

6김상철 한컴 회장 차남, 90억 비자금 조성 의혹…검찰, 징역 9년 구형

7‘서울 선언’으로 기회 잡은 韓, 네이버 핵심 역할…하정우 ‘소버린 AI’ 강조

8달성군, 중소기업 대상 '맞춤형 R&D기획 지원사업’ 추진

9포항시, 한중일 3국이 모여 동반성장 모색하는 '동북아 CEO 경제협력 포럼' 개최

실시간 뉴스

1 미 증권거래위, 이더리움 현물 ETF 상장 승인

2IP 다변화에 도전 중인 하이브IM…향후 전망은?

3‘인화의 LG’ 흔든 맏딸·맏사위…잦은 송사·구설에 ‘도덕성 결함’ 논란

4‘100일 현장동행’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 “전기차 관련 사업, 투자 축소 없다”

5한국-프랑스 ‘경제계 미래대화’ 출범…우주·신소재·탄소중립 협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