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UP]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의 프리미엄 경영
[CLOSE UP]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의 프리미엄 경영
지난 11월 2일 중국 장쑤성 옌청시에 위치한 기아차 둥펑위에다기아 공장. 공장 신축 협약을 체결하기 위해 장쑤성을 찾은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은 업무보고를 받은 뒤 곧장 생산현장으로 향했다. 여기서 제조되는 차량들의 품질을 직접 점검하기 위해서다. 그의 방문 소식이 알려지자 현대차 중국 법인 임원들과 둥펑위에다기아 공장 관계자들은 바짝 긴장했다. 깐깐하기로 유명한 정 회장의 현장 점검에서 무슨 얘기가 나올지 몰랐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정 회장이 나타나자 공기는 더욱 팽팽해졌다. 정 회장은 묵묵히 공장 안으로 걸어 들어 갔다. K5 생산라인 앞을 걸어가던 그가 걸음을 멈췄다. 조용히 손끝을 올리자 공장장이 지목한 차량의 보닛을 열었다. 하얀 장갑을 낀 정 회장의 손끝이 엔진 옆 라인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주위가 조용해졌다. 잠시 후 정 회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서자 둘러선 임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 회장은 임직원에게 “최근 중국 자동차 시장이 글로벌 업체들의 각축장이 되면서 중국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지고 있다”며 “품질과 브랜드 파워가 우선 돼야 성공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중국 방문은 올해 정 회장의 네 번째 공식 해외 일정이다.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시장에 본격 진출한 2003년부터 계산하면 60번째다.
정 회장은 2001년부터 품질을 경영 화두로 내걸었다. 품질이 따라주지 않으면 글로벌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독일과 일본의 강력한 경쟁자를 제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들과 어깨를 겨룰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때부터 그의 현장 경영은 가속도가 붙는다. 수시로 생산 현장을 찾아 문제점을 찾고 임직원들을 다그쳤다. 글로벌 시장을 안방처럼 드나들며 직접 생산라인을 챙겼다. 현대차 관계자는 “회장께서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현장에 몰두했다”며 “현대차가 짧은 시간에 기술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던 배경”이라고 말했다.
품질은 현장에서 만들어진다정 회장이 현장을 중시하는 건 현대기아차의 기업 구조와 연관이 있다. 현대차는 국내외 종업원 11만 명의 초대형 기업이다. 전 세계에 포진한 공장 외에도 권역별 지역본부, 판매 법인, 연구소 등 900여 개의 사업장이 있다. 차량이 판매되는 국가만 190개국에 이른다. 현지법인 지휘자에게 시장 전반을 맡기기에는 그룹 경영의 큰 그림을 그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때문에 정 회장은 국내 공장은 물론이고 미국·인도·중국·러시아·터키·슬로바키아 등 해외 생산·판매거점을 직접 찾는다. 사무실에서 보고 받는 것으로는 상황을 충분히 파악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이자 주요 생산 거점인 미국에 대한 정 회장의 관심은 각별하다. 그는 지난 6월 LA에 위치한 현대기아차 미국 판매법인과 현대차 앨라바마 공장, 기아차 조지아 공장을 찾았다. 지난해 7월 미국을 방문한 이래 11개월만이다. 현대기아차가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 10%를 돌파한 데 대한 격려와 함께 경쟁 업체에 대한 대응 전략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여기서 정 회장은 “고객에게 감동을 주고, 감성을 만족시키는 품질 수준에 도달 하는 것이 현대차의 새로운 과제”라고 말했다. 정 회장이 ‘감동’ ‘감성’을 강조한 것은 의미가 크다. 품질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자 이제는 품질만으로는 안 된다는 뜻을 품고 있다. 앞선 품질을 기반으로 모든 면에서 고객에게 감동을 주는 쪽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대차가 품질 고급화를 통해 프리미엄 자동차로 도약하는데 꼭 필요한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감동을 주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한 고위 임원은 “우리는 이제 현대차가 프리미엄 브랜드라고 생각한다”며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은 버린 지 오래다”고 말했다.
정 회장의 품질 경영은 큰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 자동차 격전지인 미국에서의 질주가 두드러진다. 10년 전인 2001년 현대기아차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3.3%(현대차 2.0%, 기아차 1.3%)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이보다 4.4% 포인트 높은 7.7%(현대차 4.6%, 기아차 3.1%)로 수직 상승했다. 올 5월에는 마의 10%를 돌파해 세계 자동차 업계를 놀라게 했다. 5월까지 현대차 5만9214대, 기아차 4만8212대 등 총 10만7426대를 판매해 시장 점유율 10.1%를 기록한 것이다. 업체별 판매 순위도 GM, 포드, 도요타에 이어 5위에 올랐다.
올해 현대차는 미국 진출 25년 만에 사상 첫 100만대 판매를 넘어설 전망이다. 10월 말 현재 누적 판매량은 95만411대를 기록 중이다. 품질과 연비가 뛰어난 소형차 판매가 늘고 있어 연말까지 무난히 106만대를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의 고속질주를 견인하는 두 바퀴는 ‘효율적인 현지화’와 ‘품질’이다. 현대차는 10여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현지화를 추진했다. 시장이 어려울 때도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그 덕에 현대차는 경쟁사에 앞서 세계 곳곳에 현지 생산공장과 현지 판매법인, R&D 센터를 갖췄다.
이는 현지 소비자들의 만족도를 높여 판매를 끌어올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현대차의 이런 현지화 전략은 칭기즈칸의 대제국 건설과 비슷하다. 칭기즈칸은 유목민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땅을 개척하며 진군했다. 현대차의 빠른 세력 확장은 몽골 기병들의 기동력을 보는 듯 하다.
정 회장의 품질에 대한 고집은 정평이 나 있다. 최근 1~2년 사이 현대기아차는 미국 컨슈머리포트나 JD파워 등 시장조사 전문기관으로부터 가격 대비 성능·품질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품질 경쟁력을 통한 브랜드 인지도 향상이 질적 성장의 기반이 됐다는 분석이다.
이제는 프리미엄 시장이다올해 글로벌 시장에서 현대차의 위상은 크게 높아졌다. 현대기아차의 올 3분기 영업이익은 2조8224억원으로 세계 자동차 업체 가운데 폭스바겐(4조4311억원)에 이어 2위다. 판매량이 많은 GM(2조4805억원)과 도요타(1조1023억원)의 순이익을 앞질렀다.
현대기아차의 올 1분기~3분기 매출(연결기준)은 89조5070억원으로 이미 전년 전체 매출(60조300억원)을 넘어섰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8조6480억원을 기록, 전년 영업이익(7조3720억원)을 가볍게 추월했다. 올해 사상 최대 실적 예약을 마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2010년 현대기아차는 모두 574만대를 팔아 미 포드자동차를 제치고 세계 5위로 도약했다. 올해는 당초 예상했던 633만대에서 20만대 초과한 650만대(현대차 400만대, 기아차 250만대)를 팔아 세계 4위 자동차 메이커로 올라설 게 확실하다. 현대기아차 경영진은 2012년에는 올해보다 7% 증가한 700만대(현대차 429대, 기아차 271대)까지 판매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12년에는 700만대 이상 판다현대차그룹 산하 자동차산업연구소는 2012년 산업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감소세를 나타냈던 유럽 1.6%, 미국과 중국 각각 5.8%와 4.2% 판매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이와 함께 신흥시장 성장과 FTA 체결로 우리나라의 자동차 수출이 올해보다 3.4%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대차는 내년 목표치를 맞추는 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내년이면 중국 3공장과 브라질 공장이 본격 가동된다. 여기에 미국 조지아와 슬로바키아 공장 가동률을 조금만 높이면 700만대 판매 기반은 튼튼하다. 정진행 현대차 사장은 최근 “내년 720만대까지 판매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며 낙관적인 입장을 밝혔다.
괄목할 성장에는 운도 따랐다. 2008년 하반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본과 미국 브랜드들이 주춤거렸다. 특히 세계를 호령할 것 같던 일본 업체들이 올해는 맥을 못 췄다. 도요타 리콜 사태와 일본 쓰나미, 태국 홍수 등이 직접 원인이다. 그 사이 현대차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정 회장은 10월 경영전략회의 회의에서 “650만대 판매까지 올라온 게 우리가 잘해서 된 것이냐”며 “운도 좋았고 상대방의 실책까지 타이밍 맞춰서 터져준 덕”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그러나 행운은 여기까지”라며 “자동차 품질을 BMW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 자동차 업계는 동일본 대지진 당시 현대기아차가 도요타를 제치고 세계 3위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판매량을 늘리는데 연연하지 않았다. 대신 당초 생산 목표인 650만대를 고수한 채 제값 받기를 통한 수익성에 초점을 맞췄다. 현대차 관계자는 “생산량을 늘리다 보면 품질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현대차는 양적 성장이 아니라 품질 향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차를 더 팔 수 있었으나 내실을 기하기 위해 내공 쌓는데 주력했다는 얘기다.
현대차가 단기간에 이룬 품질혁신을 두고 세계적인 시사주간지 타임은 ‘자동차업계 역사상 가장 놀라운 기적’이라고 극찬했다. 미국시장 신차품질조사(IQS) 순위도 2005년을 전후로 빠르게 상승했다. JD파워의 내구품질조사에서 2007년 무렵부터 순위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JD파워가 발표한 2009년 신차 품질조사에서 현대차가 얻은 1위 기록이 이를 말해준다. 이 조사에서 현대차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포함한 전체 순위에서 렉서스, 포르쉐, 캐딜락에 이어 4위에 올랐다. 벤츠, BMW, 아우디 등 세계 최고급 럭셔리 브랜드를 제치고 최상위권에 올랐다. 지난해 12월 출시된 에쿠스는 JD파워의 2011 신차 품질조사에서 역대 최고인 61점을 얻어 BMW 7시리즈와 아우디 A8을 제치고 2위를 차지했다.
세계 자동차 업계는 이런 현대기아차의 다음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싼 값을 무기로 삼았던 현대차가 이제는 메이저 업체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연구개발(R&D) 비용은 2005년 1조5680억원에서 2010년 2조2314억원으로 42% 늘어났다. 그만큼 기술개발을 중시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2012년에도 현대차는 글로벌 시장을 거침없이 누빌 것으로 예상된다. 폭스바겐·도요타·GM의 최고 경영자들이 현대차를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2012년에도 정몽구 회장의 화두는 품질이다. 그가 최근 사장단 회의에서 한 말이다. “규모를 늘릴 생각보다는 우리가 만드는 모든 차를 프리미엄 급으로 끌어 올려야 합니다. 이게 나와 여러분이 현대기아차 그룹을 위해 할 일입니다. 여기에 한국 자동차산업의 명운이 달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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