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때 마시는 와인이 가장 맛있답니다
행복할 때 마시는 와인이 가장 맛있답니다
6월8일 저녁 서울 역삼동의 한 레스토랑. 프랑스 베스트 소믈리에 도미니끄 라뽀르뜨(Dominique Laporte·39)와 이원복 교수가 만났다. 이들은 구면이다. 전날인 7일테이스팅 클럽 르끌로(Le Clos)에서 주최한 ‘보르도 5대샤토 올드 빈티지 디너’에서 만났다. 라뽀르뜨가 객원 소믈리에로서 디너를 총괄했기 때문이다.
이원복 교수가라뽀르뜨에게 고마움을 전했다.“세계 최고의 와인들을 한 자리에서 맛보게 돼 매우 인상 깊은 밤이었어요. 라뽀르뜨 소믈리에의 친절함과 겸손함에 또 한번 감동했고요. ‘프랑스인이 오만하다’는 말은 사실과 다른 거 같아요.”
라뽀르뜨는 “겸손하면 진정한 프랑스 소믈리에가 아니라고 친구들이 놀리곤 한다”며 웃었다.도미니끄 라뽀르뜨는 1997년 프랑스에서 ‘베스트 영 소믈리에’로 선정되면서 주목 받았다. 그리고 2004년 ‘프랑스 베스트 소믈리에’와 ‘베스트 장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5성급 호텔인 파리의 Le Meurice와 런던의 Connaught 내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의 와인 컨설팅을 맡기도 했다.현재 유럽 최고급 레스토랑들의 와인 자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르끌로의 객원 소믈리에로서 각종 디너와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 날 시음한 4가지 와인은 다음과 같다. 라뽀르뜨는 이 와인들로 준비된 음식과 최선의 마리아주를 보여줬다.
1. 샤샤뉴 몽라쉐 (부르고뉴, 샤도네이)Chassagne Montrachet 09, Domaine Olivier Leflaive
2. 모레 생 드니 (부르고뉴, 피노누아)Morey St Denis Aux Charmes 1er Cru 08,Domaine Pierre Amiot
3. 꽁드리유 (북부 론, 비오니에)Condrieu 10, Domaine Bonserine4. 꼬뜨 로띠 (북부 론, 시라+비오니에3%)Cote Rotie Sarrasine 09, Domaine Bonserine
소믈리에는 운동선수와 같아여러 재료로 구성된 5가지 까나페와 곁들인 와인은 샤샤뉴 몽라쉐와 모레 생 드니. 라뽀르뜨가 설명하고 이 교수가 궁금한 점을 물었다.
라뽀르뜨 샤샤뉴 몽라쉐는 높은 산도와 바삭한(crisp) 질감, 견과류 향이 특징이에요. 풍미가 깊어 마신 뒤 여운이 길죠. 모레 생 드니는 전통적인 부르고뉴 레드 스타일이에요. 탄닌이 없어 알코올과 산도가 베이스이고 향은 우아하죠. 마시기 쉬워 식전주로도 좋아요. 익힌 광어, 까망베르
치즈, 햄이 올려진 멜론 까나페는 샤샤뉴 몽라쉐와 곁들여보세요. 참치 타르타르와 양송이 까나페는 모레 생 드니와 곁들여 보길 바래요. 특히 양송이는 피노누아의 나무숲 향과 잘 어울려요. 모레 생 드니의 산도를 중화시켜 입안에서 부드럽고 실크 같은 질감을 주죠. 음식은 와인으로, 와인은 음식으로 서로의 맛을 보완해 밸런스를 찾게 하는 것이 마리아주의 기본입니다. 소스를 만들 때 너무 시거나 쓰면 설탕을 넣듯이 말이에요. 세상에 ‘베스트 마리아주’란 없어요. 최악만 피하면 돼요. 아무리 싱싱한 굴과 값 비싼 페트뤼스(메를로 품종의 짙은 레드 와인)를 갖다 놔봤자 무슨 소용 있겠어요. 굴에는 심플한 뮈스카데(루아르밸리 지방의 가벼운 화이트 와인)가 더 좋아요.
이 교수 문득 드는 생각인데 홍어 같은 음식과 매칭할 수있는 와인이 과연 있을까요. 홍어는 문스터 치즈 같이 지독한 냄새가 나는 발효된 생선입니다.
라뽀르뜨 홍어의 맛은 상상하기 어렵네요. 하지만 문스터 치즈의 경우, 알자스 지방 음식이기 때문에 그 지역의 와인이 가장 잘 어울려요. 음식과 와인은 함께 발전하기 때문이죠. 알자스 산 피노 그리 혹은 게부르츠트라미너 품종을 추천하고 싶네요.이 교수 그렇다면 매운 향이 강한 한국의 음식과 어떤 와인을 매칭하면 좋을까요.
라뽀르뜨 맵고 강한 맛의 음식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첫 째는 음식처럼 강하고 파워풀한 와인이에요. 샤토뇌프 뒤 파프(남부 론 지방의 그르나쉬 품종)같은 와인이죠. 두 번째는 가벼운 로제 와인이에요. 입안의 매운 맛을 진정시키고 상쾌하게 하는 효과가 있죠.두 번째 요리는 광어회. 라뽀르뜨의 흥미진진한 설명이 계속됐다.
라뽀르뜨 광어회와 꽁드리유를 곁들여 보세요. 화려함이 특징인 비오니에 품종은 살구, 복숭아, 장미 꽃 향이 나요. 입안을 채우는 볼륨감이 있고 끝부분에는 떫은 질감도 느껴지죠. 달콤하고 향기로운 향 때문에 산도가 낮다는 착각이 들 수 있는데 사실 산도가 높아요. 화려한 향과 묵직한 질감에 가려진 것뿐이죠.
이 교수 (향을 맡으며) 향수처럼 무척 화려하군요. 생선회와 의외로 잘 어울리네요.
라뽀르뜨 생선처럼 지방질을 가진 식재료와 잘 어울리죠. 이 교수 당신 같은 소믈리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뽀르뜨 저는 18세 때 케이터링 스쿨에서 셰프 트레이닝을 먼저 받았어요. 레스토랑의 전반적인 운영 시스템을 배웠죠. 2년간 전문인 육성 과정인 Le brevet professionnel을 거친 다음 1년간 소믈리에 스쿨을 다녔어요. 저와 같은 자격증의 소믈리에는 프랑스에 약 500명 정도 있습니다.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는 5000명이나 되죠.
이 교수 소믈리에가 되기 위해선 후각을 타고나야 하나요.
라뽀르뜨 열정이 가장 중요해요. 후각을 타고 났다고 노력을 소홀히 하면 최고가 될 수 없죠. 소믈리에는 운동선수와 같아요. 지속적인 트레이닝을 통해 만들어지죠. 올림픽 국가대표 육상선수를 떠올려 보세요. 과연 그가 처음으로 운동화를 신던 날, 신기록을 세웠을까요?이 교수 영화 ‘퍼퓸’이나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에는 절대적인 후각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해요. 어디까지나 픽션일 뿐이지만요.
라뽀르뜨최근 신의 물방울을 본 적이 있어요. 와인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것은 불가능해요. 와인을 오픈하고 20분만 지나도 향이 변하기 때문이죠.
이 교수 로버트 파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라뽀르뜨 파커는 ‘내가 최고의 평론가다’라고 주장하지않아요. 그의 점수는 일종의 ‘제안’과 같죠. 그는 좋은 사람이에요. 하지만 그의 점수 시스템에 대해 의문이 드는 점이 있어요. 100점 만점의 스케일을 쓰면서 사실상 70점부터 시작하니 결국 0~30점 사이에서 점수를 매기는 셈이잖아요. 와인은 점수를 떠나 즐거움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점수에 집중한다면 와인의 존재 이유는 역설적이 돼버리죠. 맛은 주관적인 거에요.
포르쉐와 재규어를 비교했을 때 어떤 차가 더 나을까요. 그것은 사는 사람의 마음이죠.마지막 코스인 등심 스테이크와 곁들인 와인은 꼬뜨 로
띠. 라뽀르뜨는 꼬뜨 로띠가 스테이크와 잘 어울리는 와인이라고 설명한다.
라뽀르뜨 꼬뜨 로띠는 잼(jammy)같은 뉴월드 시라와 확연히 달라요. 서늘한 기후 덕에 높은 산도와 입안을 꽉 조이는 탄닌을 지닌 꼬뜨 로띠는 시라 품종 와인 중에서도 가장 정석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지역에서는 비오니에 품종을 최대 20%까지 블렌딩 할 수 있도록 허가
돼있어요. 지금 우리가 마시는 와인은 비오니에가 3% 섞였군요. 그래서 탄닌도 보다 부드럽고 향이 풍부하죠.
이 교수 (와인 시음 후) 이 와인은 제 취향이네요(웃음). 고기와 잘 어울려요. 역시 고기는 좀 덜 익혀야 제 맛이죠.
라뽀르뜨 맞아요. 프랑스에서 웰던으로 익힌 고기는 ‘신발 밑창’이라고 말합니다(웃음). 스테이크에 모레 생 드니를 마신다면 피노누아의 섬세하고 우아한 향이 바로 묻혀 버릴 겁니다. 피노누아는 연한 송아지 고기나 오랜 시간 서서히 로스팅 되어 부드러운 고기 요리와 어울리죠.
그는 와인과 음식을 매칭할 때 질감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같은 해산물 중에서도 대구와 랍스터를 비교해봐요. 조리된 대구는 크림처럼 부드러운데 랍스터는 꼭꼭 씹어야 하는 탱탱한 질감이 있죠. 대구는 뮈스카데나 소비뇽 블랑처럼 가벼운 와인이 어울리지만, 강한 질감의 랍스터는 부르고뉴 샤도네이처럼 구조감이 강한 와인이 좋아요.”
마지막으로 라뽀르뜨는 ‘맛있는 와인’에는 ‘행복’이라는 요소가 들어가 있다고 강조했다.“일하면서 가장 어려운 경우는 ‘베스트’ 와인을 골라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입니다. 베스트 와인이란 없어요. 무엇과 먹느냐, 누구와 먹느냐에 따라 와인의 맛이 달라지니까요. 어떤 사람이 저에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와인을 마셨다’라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누구와 언제 마셨냐고 물어봤죠. 그 사람은 ‘친구 결혼식에서 파티를 하며 마신 와인이었다’고 했어요. 그 분에게 말했지요. 그 와인을 다시 마셔도 똑같은 맛은 나지 않을 테니 기대하지 말라고요. 행복할 때 마시는 와인이 가장 맛있답니다. 친구들과 야외에서 바비큐를 하며 마시는 가벼운 로제 와인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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