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혁 소믈리에] 와인을 안다기보다 알아가고 있지요
[이준혁 소믈리에] 와인을 안다기보다 알아가고 있지요
이준혁 소믈리에는 얼마 전 유니세프(UNICEF)를 방문했다. 그가 작년 발간한 책『와인과 사람』의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기 위해서다. 이 책은 마당발인 이 소믈리에가 와인과 사람을 ‘마리아주’하는 내용으로 등장인물이 화려하다. 한류스타 배용준, 첼리스트 정명화, 강영중 대교그룹 회장,작가 배병우, 발레리나 김주원,『신의 물방울』작가 아기 다다시 등이다. 책 속에서 이 소믈리에는 각 유명인사와 어울리는 와인을 찾아 그들에게 소개하고 함께 나눈다.
현재 뉴욕서 마스터 소믈리에 과정을 수료중인 이 소믈리에가 지난 달 잠시 귀국해 이원복 교수를 만났다. 그는 이 날 이원복 교수를 위해 자신의 셀러에서 직접 가져온 와인을 소개했다.
별명은 와인 마시는 아톰이준혁 소믈리에는 대학교 때 와인에 빠졌다. 고향이 부산인 그는 주말마다 서울을 오가며 열심히 와인을 마셨다. WSET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하고 2004년 신동와인에 취직했다. 중앙일보에서 발행하는 일요판 신문 중앙선데이에 오랫동안 와인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그에게는 ‘와인 마시는 아톰’이란 재미있는 별명이 있다. 그가 2005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파워블로그의 이름이다. 그의 블로그에는 1500여 개에 가까운 테이스팅 노트와 와인관련 정보가 꼼꼼히 기록돼 있다.
그는 ‘The Court of Master Sommelier’에서 수여하는 마스터 소믈리에 자격에 도전하고자 1년 전 뉴욕으로 유학을 갔다. 마스터 소믈리에 자격은 마스터 오브 와인(Master of Wine)보다 더 희소성이 있는 자격으로 과정을 수료하는데 최소 4년 걸린다. 현재 시험을 통과한 마스터 소믈리에는 전세계 197명에 불과하고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은 아직 없다.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 파커는 ‘페블레가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와이너리에서는 좋은 와인을 내놓고, 외국에는 안 좋은 와인을 수출한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습니다. 페블레 측은 파커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습니다. 자존심을 건 싸움이었죠. 결국 페블레 측이 이겼고 파커에게 ‘페블레 와인을 테이스팅 할 자격이 없으니 앞으로 페블레 와인에 대해 어떠한 코멘트도 하지 말라’고 선언했습니다. 페블레가 부르고뉴에서 영향력 있는 네고시앙하우스이기 때문에 파커는 자연스레 부르고뉴와 멀어지게 됐죠. 대신 보르도에 집중하게 됐습니다.”이원복 교수는 “파커가 부르고뉴의 수많은 와이너리를 다니는 것은 어차피 힘들었을 것”이라며 큰 돈이 오가는 보르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었으니 오히려 잘된셈”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페블레의 경영권이 아들로 상속되면서 와인 스타일도 바뀌었다고 이 소믈리에가 덧붙였다. 전에는 숙성기간이 10~15년 정도였지만 최근 빈티지들은 가볍게 즐길 수 있고 빨리 소비할 수 있는 스타일이라는 거다. 두 번째 와인은 이 소믈리에가 이원복 교수를 생각하며 고른 와인으로 이기갈(E.Guigal)의 라 투르크(La Turque) 88년 빈티지다. 페블레와 반대로 이기갈은 로버트 파커의 극찬으로 덕을 많이 본 와이너리다. 88년 빈티지는 파커 포인트 100점을 받았다. 이 소믈리에가 왜 이 와인을 선택했는지 설명했다.
“이기갈 와인과 이원복 교수님의 공통점은 ‘열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께서는 열정으로 『먼나라 이웃나라』를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세계사를 알리셨죠. 이기갈의 마르셀 기갈은 좋은 와인으로 세계지도에서 론 와인의 위상을 높인 장본인입니다. 또 88년은 우리나라가 88올림픽을 통해 전세계에 알려진 해이기 때문에 더욱 의미있는 빈티지입니다.”
이 소믈리에는 “장기숙성용으로 만들어진 88년 빈티지가 요새 빈티지보다 오히려 더 쌩쌩할 수도 있다”며“지금부터 2040년까지를 시음 적기로 본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 와인은 24년 된 와인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어린 빛깔을 띠었다. 이준혁 소믈리에의 테이스팅 노트가 이어졌다.“라 투르크는 꼬뜨 로띠의 이름처럼 ‘불타는 언덕’에서생산된 시라 품종의 와인입니다. 더운 바람을 이겨냈기때문에 과일을 졸여 놓은 것 같은 농축미를 지니고 있지요. 허브와 동물성 가죽향, 스파이시한 향신료 향이 느껴집니다. 알코올 캐릭터는 오랜 숙성을 거쳐 많이 튀지 않습니다. 88년산처럼 잘 만들어진 빈티지는 페부까지 시원해지는 민트향이 특징입니다. 마치 한여름 원두막 밑에서 불어오는 바람처럼 시원한 향기가 떠오릅니다.”
처음 반한 와인 ‘마스 라 플라나’뉴욕은 단연 전세계 부의 메카다. 이준혁 소믈리에는 “뉴욕에서 한 개인이 한국 수입사 한군데보다 와인을 많이 소비하는 경우도 있다”며 뉴욕의 거대한 와인시장을 흥미진진하게 들려줬다.“로마네 콩티의 공동소유주 오베르 드 빌렌이 유일하게 직접 방문해 프리 테이스팅을 하는 곳이 뉴욕입니다. 전세계 와인메이커, 오너, 부호들이 모이는 곳이니까요. 3월에는 샤토 마고 오너의 남편이 가까운 사람들과 테이스팅 디너를 하기 위해 뉴욕에 오기도 했습니다.”얼마 전에는 페트뤼스 59개 빈티지를 버티컬 테이스팅하는 행사도 있었다고 한다. 참가비는 무려 2만 달러. 이소믈리에는 “2주 동안 고민을 하다가 문의를 해보니 이미 자리가 없었다”며 “뉴욕이 대단한 곳임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잘만 찾으면 비싼 와인을 좋은 가격에 맛보는 행운도 있다고 털어놨다. 와인 샵은 매년 가격을 올리지만 레스토랑의 경우 와인을 납품 받았던 해의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 소믈리에는“로마네 콩티를 거의 3분의 1 가격에 마신 적도 있다”고 밝혔다.
이원복 소믈리에로서 ‘와인을 안다’라는 것이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세요?
이준혁 저는 와인을 ‘안다’라기보다 ‘알아간다’라는 표현을 쓰고 싶습니다.
이원복 ‘알아간다’라는 진행형의 표현이 일리가 있군요.와인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으니까요.
이준혁 그렇습니다. 또 ‘와인’하면 ‘사람’을 빼놓을 수 없죠. 와인 덕분에 교수님도 알게 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 알아가고 있습니다.
이 소믈리에가 처음부터 와인을 좋아한 것은 아니다. 떫고 신 와인의 맛을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 입안에서 착’하고 감긴 와인은 스페인산 마스 라 플라나 1996년 빈티지라고 회상했다. 신세계 와인을 시작으로 보르도 좌안에서 우안, 론에서 부르고뉴 와인으로 옮겨갔다. 지금은 테이스팅 하는 와인의 70~80%가 부르고뉴 산이다. 거의 매일 와인을 마시는 이준혁 소믈리에도 외국인 친구들과 뉴욕의 한식당에 가면 소주와 막걸리를 마신다고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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