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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을 압도한 통 큰 건축

대륙을 압도한 통 큰 건축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광저우 오페라 하우스와 갤럭시 소호에 중국이 열광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with the benefit of hindsight) 이라크계 영국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첫 중국 여행담은 운명적인 이야기처럼 들린다. 1981년 중국은 마오쩌둥 주의의 편집증적인 잠에서 막 깨어나(was just awakening from its paranoid Maoist slumber) 외부세계에 문호를 개방하던 참이었다. 하디드는 중국의 매력에 푹 빠졌다.

시중에 나온 모든 색깔의 마오쩌둥 복장을 사들였다(검정색·암회색·녹색·청색). 도시는 어둡고 우중충했지만 “대단히 중요한 여행”이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기차를 타고 여러 마을을 돌아 다니면서 이제껏 외국인을 한번도 보지 못한 중국인을 만났다. “워크맨 카세트 리코더를 사서 들고 다녔는데 중국인들이 밤에 들으려고 빌려갔다.” 최근 중국을 방문한 그녀가 말했다. “당시에도 ‘여기에 많은 건물을 지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생각이 현실화됐다. 10월의 어느 맑은 날 땅거미가 질 무렵, 베이징의 얼환루(二環路)에 수천 명의 축하객이 모여들었다. 교통정체를 유발하며 수년간 널따란 건설부지였던 곳을 가득 메웠다. 모두가 자하 하디드, 그리고 그녀의 가장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보려고 서로 밀치며 아수라장이었다.

갤럭시 소호(Galaxy SOHO)라는 미래지향적인 개발사업이다. “며칠 전 프로젝트의 완성 소식을 트윗으로 알리며 사람들에게 개막식에 참가하라고 권유했다.” 시행사 소호 차이나의 공동창업자이자 CEO인 장 신의 말이다. “그러자 1만5000명이 참석하고 싶다고 답장을 올렸다.” 하디드와 장이 팬들에게 인사하려고 중앙 홀로 들어서자 모두가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으려고 한꺼번에 몰려들어 큰 혼잡을 빚었다(a stampede nearly broke out as everyone surged to take cellphone photos).

여기저기 튀어나온 유기적인 형태와 매혹적인 곡선을 가진 초현실적인 건축물이었다. 베이징에서도 두 눈이 번쩍 뜨이는 걸작이다(is an eye-opener). 지난 10년 사이 개발된 첨단 컴퓨터 설계 기법의 힘이 컸다. 그게 없었다면 “불가능했다”고 소호 차이나 공동 창업자 판 쉬이(장의 남편)가 말했다.

“여기에선 유리가 모두 다르다. 저기선 똑같은 알루미늄 조각이 하나도 없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안토니아 오초아는 그 프로젝트의 “부드러움이 독특하다”고 말했다. 게리 로크 미국 대사는 “(공상과학 드라마 ‘스타 트렉’에 등장하는) 스타십 엔터프라이즈와 똑같다”고 평했다. 상하좌우로 구비치는 건물의 윤곽선만으로도 충분히 초현실적이다(As if the building’s sinuous, swooping lines weren’t otherworldly enough).

하지만 그것으로 부족한 듯 개막식의 여성 도우미는 스타 트렉 스타일의 흰색 의상에 자홍색, 보라색, 라임 녹색의 영롱한 무지개빛 가발을 착용했다. “30여년 전 처음 베이징을 방문했다”고 하디드가 환호하는 군중에게 말했다. “우리는 항상 여기서 놀라운 일을 이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We always thought we could do something amazing here). 지금이 바로 그때이며 여기가 바로 그곳이다.”

요즘에는 베이징 사람들이 대담한 건축물과 외국인 건축가에 흥미를 잃었으리라고 생각할지 모른다(By now you’d think Beijing would be blasé about bold buildings and foreign architects). 그 중국 수도에 외국인 건축가들의 정기적인 순례가 시작된 지 10여 년이 지났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최첨단 건물 일부가 베이징에 들어섰다.

건축가 렘 쿨하스가 이끄는 회사 OMA가 중력을 거부하는 듯한 CCTV 본사를 설계했다(worked on the gravity-defying CCTV headquarters). 현지인들은 그 건물에 “대형 반바지”라는 별명을 붙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시청자들은 철망으로 얽은 듯한 “새둥지(Bird’s Nest)” 올림픽 주경기장에 탄성을 올렸다. 헤르조그&드 뫼론의 작품이다.

톈안먼 광장 바로 옆에는 티타늄과 유리로 만들어진 국립대극장이 있다. 폴 앤드류가 설계한 이 건물의 건축비는 예산을 훨씬 뛰어넘어 5억 달러에 육박했다. 하지만 그 기라성 같은 스타들 중에서도 적어도 중국인들의 눈에는 하디드가 가장 밝게 빛나는 초신성이다(within that constellation of stars, at least in Chinese eyes, Hadid is a white-hot supernova).

“자하보다 더 인기 있는 건축가는 없다”고 장은 말했다. 그녀의 회사는 하디드와 두 개의 프로젝트를 더 진행한다. “자하의 회사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중국에서 가장 많은 건축사업을 추진한다.” 중국과 하디드는 천생연분인 듯하다(seem to be a natural fit).

하디드는 1994년 웨일스 카디프시의 의뢰로 파격적인 오페라 하우스를 설계했다. 하지만 관료행정 때문에 건축이 무산됐다(red tape prevented it from being built). 2011년 화강암과 유리로 지어진 검정색의 환상적인 광저우 오페라 하우스가 절찬리에 문을 열었다(opened to praise). 하디드의 회사가 설계한 이 건축물을 두고 영국에 들어설 뻔했던 건물이라고 큰 화제가 됐다.

하디드는 통 크게 생각하고 중국은 통 크게 원한다(Hadid thinks big; China wants big). “어느 나라나 지역적인 필요가 있다. 중국에서는 크게 만들어야 한다. 어느 나라에서 이만한 규모의 건물을 세울 수 있겠나?” 장이 한쪽 팔을 휘두르며 말했다. 하지만 그 제스처는 갤럭시의 33만㎡ 부지 전체를 담지못했다. “그것이 중국적인 특성이다.”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원주민을 모두 이주시키고(relocating entire neighborhoods) 넓은 부지의 땅을 매입할 수 있었다는 점도 도움이 됐다.

갤럭시 소호의 프로젝트 책임자 오하시 사토시는 개발사업 초기인 2009년 3월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기본설계를 막 마쳤을 때(We’d just finished the schematic design) 장이 찾아와 말했다. ‘이 건물을 2만 9000㎡ 더 넓힐 수 있겠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2만9000㎡를 추가해야 했다.”

그렇게 넓은 공간을 떠맡은 하디드의 숙제는 “거대한 덩어리를 창조한 뒤 그것을 다시 분해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바위를 갖고 마치 산맥을 조성하듯 단층과 등고선을 새겨 넣으며(with strata and contour lines) 조각하는 격이었다.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녀는 갤럭시를 일련의 산으로 둘러싸인 계곡에 비유하다 말고 피식 웃는다. 과거 한때 “오랫동안 자연을 싫어했던” 일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학생 시절 어디에도 식물을 두려 하지 않았다. 살아 있는 식물 말이다. 죽은 식물은 싫지 않았다.” 그러다가 인생의 분수령을 이루는 중국여행을 떠났다(But then came her seminal trip to China). 한 달 동안 공원들을 돌아다니며 마오쩌둥 복장을 한 중국인들과 어울렸다. 상하이에 가까운 쑤저우(蘇州)의 모든 정원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왕조 시대부터 공들여 설계한 공원으로 유명한 품격 있는 도시다(a genteel city renowned since imperial times for its meticulously designed parks). “공원에 사람이 가득했다. 그들의 아파트는 작았을지 모르지만 공공 장소인 공원은 개방됐다. 중국을 여행한 뒤 자연을 좋아하게 됐다.”

실제로 광저우 오페라 하우스와 갤러시 소호에는 무의식적으로 “중국적인” 특징을 연상케 하는 요소가 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특히 물과 지형을 떠올리게 하는 측면이 그렇다. “자하는 자연과 융화되는 건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has stressed the importance of the construction being part of nature)”고 베이징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주페이가 말했다.

그녀의 회사가 갤럭시를 묘사할 때 사용하는 언어도 자연을 떠올리게 한다. 돔형의 덩어리 4개가 “다리와 대지를 통해 서로 만나고 합쳐지며 분리되고 연결된다.” 중앙 “협곡(canyon)”을 소매 상점들이 에워싼다.

2004년 건축계의 노벨상 격인 프리츠커 건축상(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을 받은 그녀가 중국의 지형에 족적을 남긴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중국에서 그녀의 성공 비결은 중국 또한 하디드의 뇌리에 자취를 남겼다는 사실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may have something to do with the fact that China also left its mark on Had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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