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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 직급 높다고 직원 위 군림 안 돼 사장실 문 늘 열어놓는 CEO

CEO - 직급 높다고 직원 위 군림 안 돼 사장실 문 늘 열어놓는 CEO

한윤석 ABB코리아 사장은 10년여 경력의 장수 CEO다. 비결로 권한 위임, 자발적 동기 부여, 팀워크를 꼽았다.

1950년 출생, 광주일고·숭실대, 국제무역학과 졸업, 수출입은행·국제그룹·효성중공업·효성ABB 근무, 1990년 ABB코리아 이사·부사장, 2002년~ABB코리아 사장


“제가 당장 그만두더라도 회사가 90% 정도는 돌아갈 겁니다. 권한 위임을 많이 했고 조직문화를 개방형으로 바꾼 덕이죠.” 한윤석(63) ABB코리아 사장은 “거액의 보수를 받고 다른 회사에 스카우트된 직원들이 권한이 작다고 돌아오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위임을 해야 경영진도 자기 시간이 생기고 그래야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권한 위임을 하라고 하면 위임받을 준비가 안돼 있다고 하는 간부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건 당신 생각이고 당사자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하죠.”

ABB는 전력 및 자동화 기술 관련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다국적 기업이다. 변압기 등 중전기, 각종 자동화 시스템 등을 생산한다. 산업용 로봇을 세계 최초로 상업화했고 제어 시스템은 몇 년째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다. 본사는 스위스 취리히에 있다. 세계 100여 나라 현지법인에서 약 14만5000명이 근무한다.

ABB코리아는 2003년 이후 국내 1000대 기업 자리를 지키고 있다. 충남 천안의 두 공장은 1999년 이래 무재해를 기록 중이다. 이 공장들은 아시아 전역에 ABB의 건식변압기를 공급하는 거점이다. ABB코리아의 실적은 그룹안에서도 독보적이다. 지난해 매출액(5185억원) 증가율은 13%로 그룹 실적(7%)의 두 배에 육박한다.

첫 한국인 지사장인 그는 장수 CEO다. 그가 CEO로 재임한 11년 동안 ABB코리아 수주액과 매출액은 각각 5배 안팎으로 늘었고 세전 영업이익은 5.5배로 증가했다. 빼어난 실적에 주목한 본사에서 지난해 ABB코리아의 성공비결에 대한 보고서를 요청했다. “무엇보다 권한 위임, 개방형 조직문화 등으로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동기부여 효과가 크다고 봅니다.”

그는 방문을 늘 열어놓는다. 지나가던 직원이 아무 때나 사장을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가 혼자 있으면 들어와 말을 건다. 어떤 직원은 그에게 지금 시간이 있느냐고 묻지도 않는다고 한다. 사사로운 이야기를 꺼낼때도 있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CEO를 찾아가 털어놓을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환경이 조성돼 있는 것이다.

“간부들에게 여러분이 직급이 높은 거지 직원들 위에 있는 게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직급이 높은 것조차 때를 잘 만나서일 수도 있어요. 직원들에게 절대 모멸감이 들게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평소 직원들과는 어떻게 소통합니까.

“비즈니스는 내가 아니라 여러분이 하는 거라고 말합니다. 글로벌 엔지니어링 기업에서 사실 저는 엔지니어 출신도, 영업통도 아닙니다. 일에 대해서는 직원들보다 더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래서 가능한 한 간섭하지 않겠지만 힘든 일이 있으면 그때그때 털어놓으라고 합니다. 그룹이나 본사 지역 임원과 협의해 최대한 도와주겠다고 하죠. 여러 차례 비서실에 근무해 장고하는 게 몸에 뱄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직원들이 불평을 하죠.”

과거엔 회사 분위기가 어땠나요.

“처음 이사로 부임했을 땐 복도에서 마주치면 얼굴을 돌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극도로 개인주의적이고, 좋은 정보가 있어도 다른 사람과 공유하려 들지 않았죠. 알고보니 개인수당 등의 명목으로 사장이 개인과 단 둘이 계약하는 인센티브 시스템 영향이 컸어요.”

그는 모든 인센티브를 팀 단위에 주도록 바꿨다. 인센티브의 투명성을 높인 것이다. 그러느라 귀국 전 홍콩에 근무할 때부터 받아온 자녀 대학 학자금 보조를 스스로 포기했다. 이런 사내 개혁이 개방적·협력적인 기업문화 형성에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심지어 부서 간에 성과급을 품앗이하기도 한다.

실적이 낮아 성과급을 줄 수 없는 부서에, 잘나가는 부서가 성과급의 일부를 이전시키는 것이다. 이런 성과급의 공유가 가능한 것은 어느 날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본사에서 나온 외국인 간부들은 “이해할 수 없는 문화”라며 고개를 젓기도 했다.

장수 CEO의 비결이 뭡니까.

“계약기간이 지난 지 오래인데 아무도 거론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실적이 좋으니까 본사에서 구태여 바꿀 필요를 못 느끼는 거겠죠. 장수하려면 기본적으로 실적이 좋아야 합니다. 개방적인 분위기도 한몫 했다고 봅니다. 본사에서 오는 사람들이 한국법인은 사람들과 분위기가 좋다고 합니다. 회사가 잘 돌아가니까 직원들이 자신감이 넘치고 매사에 자신이 있으니 감출 게 없는 거죠.”

ABB코리아 직원들은 본사에서 감사를 나오면 감사팀이 요구할 만한 자료를 미리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컴퓨터에 보관한다. 심지어 국세청 직원들이 들이닥쳤을 때도 그렇게 대응한다고 했다.

“사실 일부러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이상 크게 문제 될 것도 없으니 숨길 이유가 없어요. 본래 직무감사의 목적은 잘못된 일 처리 관행을 드러내 업무를 개선하는 겁니다.”

최근 ABB코리아의 최민규 부사장이 ABB필리핀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유럽법인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경력을 쌓으려 동남아 지역으로 오려고 해 최 사장의 영전은 ABB코리아 구성원들로서도 경사다. 그는 “ABB코리아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가 바탕이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사장은 2015년까지 전 직원의 10%를 1년 이상 해외에 근무시키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ABB캐나다와는 이미 직원 교류 프로그램이 만들어져 한국 직원들이 캐나다 현지에서 프로젝트 관리 및 영업 부문에서 근무 중이다.

“다국적 기업으로서도, 특히 중전기 기업으로서는 획기적인 프로그램이죠. 2017년까지 매출액을 1조원 규모로 키우는 게 우리의 비전입니다.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해외 시장을 더 공략해야 하는데 이렇게 해외 근무를 통해 현지의 문화와 관습을 익히는 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블랙아웃(대정전) 문제는 정부가 어떻게 풀어야 하나요.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발전량이 부족하다고 봅니다. 선진국에 들어섰다고 하면서 국민이 돈을 내고도 전기를 마음대로 못 쓴다면 문제가 있는 거죠. 전기요금 정책도 바꾸고 스마트 그리드 시스템 구축 등을 통해 에너지 효율도 높여야겠지만 근본적으로 전기 공급을 늘려서 풀어야 합니다.”

유럽 기업의 특징은 뭔가요.

“구조조정이 일반화된 미국 기업보다 따뜻하고 인간적입니다. ABB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내보내는 일이 없죠. 실적이 안 좋을 때도 능력에 문제가 없고 최선을 다했다면 문제 삼지 않습니다. 실적이야 경기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죠. 우리나라 기업엔 미국보다 이런 유럽 모델이 잘 맞는다고 봅니다.”

그는 미국 여성과 국제결혼을 했다. 결혼 전 배우자와 세가지에 합의했다고 한다. 상대방 가족에 대한 존중, 음식물 버리지 않기, 다툴 일이 생기면 상대방의 언어로 말하기. 미국인 아내가 “음식은 왜 버리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어린 시절 너무 어렵게 살아 음식이 버려지는 것을 볼 수가 없어요. 음식을 버리는 건 죄악이에요.”



따뜻한 유럽식 기업문화 지향해야

ABB코리아엔 파벌이 없다. 과거 다른 직장에 근무하면서 연고주의의 폐해를 절감한 그가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 ABB코리아에 합류해 인사를 담당할 당시 한 부사장이 자신의 학교 후배만을 뽑아 쓰려고 했다. 사내에 줄을 만들려는 그와 충돌하자 독일인 사장이 한 사장의 손을 들어주었다.

“임직원들에게 나는 국경까지 없애려 다른 나라 여성을 배우자로 선택했는데 회사 안에 파벌을 만들면 되겠느냐고 합니다.” 그 독일인 사장 호스트 디츠 박사는 그의 경영 멘토다. 전형적인 독일인과 달리 유머 감각이 뛰어나고 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겨도 심각하게 반응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

그는 임직원들에게 “진퇴유곡의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면 대처 방법을 찾을 수 있고 그러고도 돌파할 수 없으면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또 인사를 맡고 있던 한 사장에게 “회사에 출근하는 일 그 자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직원을 눈여겨보라”고 했다.

“해당 직원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담당 업무가 스트레스의 원인이면 업무를 바꿔주라”고도 했다. “그런 사람을 방치하면 본인도 불행하고 회사도 불행해진다고 했습니다. 직원들이 문제를 들고 그에게 찾아가면 대부분 해결이 되는데 그분이 해준 일은 경청하는게 거의 전부였죠. 한국 근무를 마치고 독일지사 사장으로 영전했는데 본사 사람들이 아무 영문도 모르고 한국이 그렇게 대단한 나라냐고 놀라워했답니다.”

디츠 박사는 은퇴 후에도 그룹 이사회 멤버로 있다고 한다. 한 사장은 새옹지마(塞翁之馬)를 믿는다. 서울이 고향인 그는 유년 시절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광주로 이사 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군에서 갓 전역한 담임교사가 공부 잘하는 아이들로 명문 광주서중에 들여보낼 팀을 짰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돈은 물론 수확한 곡식으로도 합숙비를 낼 수 없었다. 다른 아이와 학부모들이 수군거리자 담임이 “윤석이는 내가 알아서 한다”고 감쌌다. 그렇게 19명이 광주서중에 응시했는데 유일하게 그만 합격했다. 명문 광주일고를 거쳐 오랜 방황 끝에 숭실대에 진학했다. 장학금을 받고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친구 따라 원서를 낸 국제상사의 서류전형에서 떨어졌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들어간 그에게 어느 날 상사로 있던 과장이 국제그룹으로 같이 옮기자고 제안했다. 월급이 얼마인지도 모른 채 선배 따라 1년여 만에 국제그룹으로 옮겼는데 뜻밖에 대리를 달아줬다. 대리 진급에 4년이 걸리던 시절이었다. 그 바람에 젊은 날 생긴 2~3년의 공백을단숨에 메울 수 있었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 어떤 조언을 주고 싶습니까.

“삶의 질에 대한 기대치와 현실의 갭을 줄여야 합니다. 조건이 기대치에 못 미치면 눈높이를 낮춰야죠. 현실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어요. 돈을 벌어야 한다면 어느 직장이든 들어가세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건 그 다음 목표입니다. 부모에게 얹혀 지내는 건 해결책이 아닙니다. 내 방이 있고 부모가 먹여주더라도 그건 빌어먹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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