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칼끝 어윤대 회장 겨누나
금융당국 칼끝 어윤대 회장 겨누나
3월 18일 오전 10시 KB금융그룹은 임시 이사회를 열고 KB금융 박동창 전략담당 부사장을 보직 해임했다. 미국계 주주총회 안건분석 전문회사인 ISS(Institutiona l Shareholder Services) 보고서가 왜곡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ISS가 3월 11일 기관투자가를 상대로 KB금융 보고서를 발간하면서다.
ISS는 보고서에서 “지난해 말 ING생명 인수가 무산된 것은 정부 입장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외이사들의 반대 때문”이라며 “이경재·배재욱·김영과 이사의 선임 반대를 권고한다”고 밝혔다. 어윤대 KB금융 회장이 ING생명 인수를 추진했지만 이사회의 반대로 실패한 걸 지적한 것이다.
어 회장은 지난해 초부터 ING생명 인수를 추진했다. 그러나 사외이사들은 보험업황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1년 가까이 반대하면서 어 회장과 갈등을 빚었다. 지난해 11월 어 회장은 중국 출장 중 사외이사들과의 술자리에서 “왜 ING생명 인수를 반대하느냐”며 술잔을 깨고 고성을 지르는 등 극심한 감정 대립을 노출했다. 이번에 해임된 박 전 부사장은 어 회장이 측근으로 ING생명 인수 작업을 총괄했다.
KB금융그룹 이사회는 박 전 부사장이 2월부터 두 차례에 걸쳐 ISS 애널리스트를 만나 ING생명 인수에 대한 왜곡된 정보를 전달한 것으로 판단했다. 사외이사들은 격분했고 결국 박 전 부사장은 보직 해임됐다. 이 과정에서 어 회장이 이 일에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어 회장은 “나도 사후에 보고받고 알았다”고 소명했다.
이번 사건으로 KB금융의 지배구조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 KB금융의 사외이사는 9명이다. 신한(10명)·우리(6명)·하나(8명)금융과 비슷한 수준이다. 사외이사를 뽑는 주체인 사외이사 추천위원회도 지주회장과 사외이사 4명으로 구성돼 다른 지주사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KB금융은 다른 지주사보다 사외이사 독립성과 권한이 강하다.
KB금융은 2008년 금융권에서는 처음으로 지주 회장과 이사회 의장을 분리했다. 또 회장 후보 추천위원회는 9명의 사외이사로만 구성한다. 사외이사의 연봉과 처우도 이사회가 결정한다. 신한·하나금융 경영진이 회장후보 추천위원회에 참석할 수 있는 것과 비교하면 사외이사의 힘이 막강하다. 또 KB금융의 사외이사 추천은 회장과 사외이사 4명으로 구성된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사실상 사외이사도 사외이사들이 선임하는 것이다.
이사회에서 잇단 충돌우리금융 고위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어 회장을 비롯한 KB금융 경영진이 그에 동조하는 일부 이사들과 그의 반대파가 충돌한 꼴”이라고 말했다. KB금융 사외이사는 금융회사 대표 출신 3명, 학계 4명, 기업 대표 2명이다. 이 중 대학교수 출신은 4명이다. 하나금융과 우리금융은 각각 2명이다.
어 회장은 2011년 3월 김영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와 이종천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KB금융 관계자는 “대학총장 출신인 어 회장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같은 계통에 있었던 만큼 자기와 뜻을 함께할 수 있다고 판단하지 않았겠냐”고 말했다.
지난해 3월 선임된 황건호(전 금융투자협회장)·이영남(이지디지털 대표)·조재목(에이스리서치 대표) 사외이사도 KB국민은행노동조합의 반대에도 만장일치로 선임됐다. 조재목 사외이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선 외곽조직이었던 선진국민연대 출신이다. 어
회장은 이 전 대통령과 같은 대학·과 후배로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한지주의 한 사외이사는 “해당 기업과 사업에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 선임되는 게 바람직하지만 대부분 경영진과 학연·지연 등으로 엮여 선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예정대로 7명 사외이사 연임어 회장과 갈등을 빚고 있는 이경재 이사회 의장은 한국은행 입행 이후 한은 은행감독원 부원장보와 기업은행장 등을 역임했다. 법조계와 정부 등 각계 인맥이 두텁다. 주로 학계에 머물렀던 어 회장과 정면대결이 가능할 수 있는 이유로도 꼽힌다.
일각에선 이번 사건을 2010년 9월 신한지주 사태와 같은 맥락에서 보기도 한다. ‘신한사태’는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이 신상훈 전 신한지주 사장을 횡령혐의로 고소한 사건으로 금융지주사의 지배구조 문제를 드러냈다. 이에 대해 한 금융지주 고위 관계자는 “신한 사태는 지배구조의 허점을 보여준 단적인 예”라면서 “신한지주는 17%의 지분을 가진 재일교포 주주가 오랫동안 이사회를 장악하면서 주인 노릇을 한 데에서 비롯된 만큼 KB금융 사태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거수기’ 노릇을 했던 사외이사가 제 목소리를 냈다는 의견도 있다. ‘거수기’ 사외이사의 문제는 최근 하나금융의 새 식구가 된 외환은행에서 잘 드러난다. 3월 5일 열린 외환은행 이사회에서는 대주주인 하나금융을 제외한 소액주주들에게 배당하겠다는 안건을 의결했다. 하지만 하나금융에서 난색을 표하자 외환은행은 이튿날인 6일 이사회를 다시 열어 하나금융에도 배당을 해주기로 했다. 하루 만에 결정을 뒤집었다.
우리은행 한 임원은 “경영진과 사외이사가 공생 관계에 있기 때문에 하나금융 사외이사들은 제 역할을 수행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지주사 사외이사들이 최근 3년간 처리한 안건 400여 건 중 부결된 안건은 단 1건뿐이다. 1건이 바로 ING생명 인수 건이다.
ISS 보고서 파문 이후 3월 22일 열린 KB금융지주 주주총회는 어느때보다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사외이사 8명의 선임 안이 주총 안건에 올랐기 때문이다. 안건 통과 여부에 따라 어 회장이 입지가 달라질 수 있는 자리였다. 주총에서 사외이사 선임 안은 66.5%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신임 사외이사로 김영과 한국증권금융 고문이 선임됐고 이경재 이사회 의장을 비롯해 배재욱·김영진·이종천·고승의·이영남·조재목 사외이사의 중임이 확정됐다.
신임 사외이사의 임기는 2년, 중임 사외이사의 임기는 1년이다. 이번 연임 결정은 예상했던 결과라는 반응이 많다. 지난해 KB금융 사외이사 9명 중 5년 임기가 끝난 1명을 제외하곤 전원 연임했다. 2008년 KB금융이 출범한 뒤 5년 임기를 채우지 못한 사외이사는 한 명도 없었다.
사외이사의 연임으로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어 회장의 향후 행보에는 적신호가 켜졌다. 이번 사태에 대해 어 회장은 “(ISS 보고서 파문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 임기는 7월이다. (거취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며 사퇴 가능성을 부인했다. 정부의 기관장 교체 방침과 사외이사들과의 갈등이라는 겹악재에도 임기를 마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금융당국은 KB금융에 대한 종합검사를 통해 관련자들을 엄벌할 계획이다.
금융권에서는 금융감독원의 칼끝이 어 회장을 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신한은행 한 임원은 “(어 회장이) 알았던지 몰랐던지 간에 이번 일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검사에서 중징계를 받으면 어 회장은 연임은 물론 다른 금융회사에서도 일할 수 없게 된다.
ISS(Institutional Share holder Services) - 미국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의 자회사로, 기업의 주주총회 안건을 분석하는 회사이다. 해외의 기관투자가가 ISS의 의견을 주로 참고하며 KB금융지주의 1대 주주인 국민연금(8.6%)도 이 회사의 보고서를 받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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